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87화 (187/403)

187. 대리기사.-1-

내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간단한 데몬스트레이션이 끝난 뒤, 제작진과의 미팅을 통해 언제 대리운영을 시작할지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

"휴일도 없이 일하게 생겼구나. 힘들겠는걸."

"제가 좋다고 한 일인데요, 뭐."

그리하여 정해진 날짜는 곧 찾아올 내 휴일. 못해도 반나절 정도는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보니 하루에 세 곳, 이틀 동안 여섯 곳의 대리 업무를 맡게 됐다.

그건 좋다. 좋지만, 아직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이건 또 다 언제 본다."

책상 위에 쌓인 USB 무더기를 보는 내 눈이 허망하다. 한숨이 절로 나오네 진짜.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무얼 숨기랴. 이건 여태껏 제작진이 촬영한 각 가게의 영상이 담긴 USB 되시겠다.

대리 업무를 보려면 어찌됐든 저 가게의 상황이나 성향을 대충이나마 알아야 하는데 내가 직접 가서 그런 걸 살필 시간이 없으니 고육지책으로 받은 것이다.

물론 아직 방영하지 않은 물건이기에 유출은 엄금. 당연한 거지만 실수해서 책잡힐 짓은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아무튼 받았으니 일단 보긴 봐야겠지."

휴식 시간을 쪼개다 못해 내 손으로 직접 없애고 있자니, 뭐라고 해야 하나…… 좋은 기분은 아니네.

하지만 사회 일이란 게 어디 기분 따라 변하는 것이던가. 책상 위에 어질러진 USB를 네임택이 붙은 대로 분류하여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영상 시청을 시작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한두 시간 같은 만만한 길이가 아니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이토록 아플 리가 없을 테니까.

"어우, 야……."

뚫어져라 바라보던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아예 누울 기세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느새 올라온 손이 피로에 지친 눈을 덮는다. 아마 거울로 보면 빨갛게 부었을 게 분명하다.

얼굴을 덮은 손 아래로 찌릿한 고통이 스친다.

그러나 그건 결코 눈 때문이 아니다.

아니, 눈이 아프지 않다는 소리가 아니라 눈의 통증을 '따위'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충격이 그것을 앞서 버린 탓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이거, 문제가 많네."

골목 레스토랑에는 상상 이상의 빌런이 많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싶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프로그렘에 나온 출연자들은 방송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말이다.

아니 잠깐. 이걸 문제가 많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자기가 만든 걸 자기가 싫어하는 거? 그럴 수 있다. 의외로 제법 있는 일이다. 내가 본 셰프 중 하나는 해산물 파트를 맡고 있으면서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야 그 분야에서 이룰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알려지가 있는 몸으로 간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배울 점이 있는 양반이었지. 무식했지만.

근데 그냥 싫다는 이유로 간도 안 보고, 그 이전에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손님 대응이 엉망인 집이나 손이 느려서 고작 한두 팀에도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가게, 심지어는 그냥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문제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아니, 요리사를 따로 고용한 것도 아니면서 식당 주인이 요리를 못하면 어쩌라고. 다른 요리는 못해도 자기가 파는 요리만큼은 잘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근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와."

한쪽 눈깔에 파란색 불이 들어온 해골 대가리가 눈앞을 맴도는 것 같은 기분에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답이 안 보이는데. 내가 과연 저 사람들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그건 사돈누이매부팔촌 가리지 않고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타인을 변하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변할 계기를 주는 것뿐. 그 계기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건 그 사람 본인에게 달렸다.

다만 그 계기가 얼마나 와 닿을지를 결정하는 건 나다.

그걸 알고 있으니 설렁설렁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간섭한다는 게 얼마나 무겁고, 또 무서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 겸사겸사, 내 평판까지 걸린 문제기도 하고.

물론 후자는 그저 덤이다. 덤 치고는 제법 덩치가 크긴 하지만.

"…… 다시 볼까."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로 복사한 영상을 처음부터 반복한다. 아까는 문제가 뭔지 찾기 위해 봤다면, 이번에는 문제의 해결법을 찾기 위해서.

엉망진창인 가게 꼴을 보는 것만으로 가셨던 두통이 슬금슬금 머리를 재차 좀먹는 기분이지만, 앞으로 찾아올 두통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거다. 문제의 해결법을 찾기 위해선 그만큼 짱구를 굴려야 할 테니까.

모니터 속 영상이 마치 수학의 정석 페이지처럼 보이는 환시를 떨쳐내고 영상을 보는 눈과 펜대를 잡은 손끝에 힘을 줬다.

부디 지금 챙긴 노트의 페이지가 부족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

그렇게 찬혁이 의욕을 불태우며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있는 한편, 컴퓨터와 이어진 인터넷의 한구석에서는 오늘도 하릴없는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인터넷의 화제란 그 소스가 전 세계의 인터넷 사용자인 만큼 그 종류가 무한에 가까우며 시시각각 같은 곳에 머물지 않고 천변만화의 기질을 가진다.

그러나 최근 서로 다른 커뮤니티 사이에서 이전보다 더더욱 높은 유행을 선도하는 화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찬혁이 일하는 배불뚝 백반이 그 정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까. 소스를 공급하는 유저의 풀이 비슷하니만큼 한 차례 화제가 된 것은 마치 불이 번지듯이 사람과 사람을 타고 이어진다.

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은 언뜻 보기에 불쏘시개 하나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다시 한번 불길이 옮겨붙는다는 점일까.

보통 이러한 유행은 마치 소나기처럼 불현듯 나타나 사람들을 적시고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번에 그 바이럴인지 뭔지는 어떻게 됨?

─그거 바이럴 아닌 걸로 끝났잖아. 다녀온 애들 후기 못 봤음?

─후기? 그런 것도 올라오냐?

─한 번 간 뒤로 매일 다녀온다는 놈이 올리는 후기 있음. 궁금하면 한 번 봐보던가. 어젠가 여섯 번째 후기 올라왔던데.

─여섯 번? 미친놈이신가;; 거기가 뭔데 여섯 번을 가냐.

─나 갔다 왔는데 거기 ㄹㅇ개미쳤다. 생긴 건 동네 밥집인데 맛은 호텔밥임; 제육 시켜 먹었는데 ㄹㅇ화랑호텔 스위트룸에서 룸서비스로 시킨 것 같은 맛이었음;;

─ㄴ나도 가봤는데 이거 진짜다. 이번에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양식으로 한정메뉴 팔거든? 이거 가서 안 먹어보면 후회한다. 2만원에 저런 거 먹을 수 있는 가게 국내엔 없다 진심.

본래 인터넷 상의 유행은 콜라에 멘토스를 넣은 것과 같다. 단숨에 폭발할 것처럼 거품이 확 오르면, 그 뒤에는 경험의 공유로 인해 거품이 가라앉으며 저절로 유행의 파도가 지나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어지는 방문에도 늘어만 가는 호의의 물결은 그야말로 콜라에 멘토스를 넣고 그 위로 맥주를 직수로 쏟은 것 마냥 오히려 거품의 크기를 키워나간다.

이 단계에 이르면 그건 이미 거품의 형상을 한 무언가다. 꺼지지 않는 거품이라니, 말 그대로 언빌리버블한 거품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이 화제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 근래 퍼지기 시작한 어떤 소문 때문이었다.

─너희 그거 아냐? 거기 식당에서 누가 박종원 봤다던데?

─ㄹㅇ?

─ㄹㅇ임. 나 저번에 줄서서 기다리다가 누가 새치기 하려고 해서 빡쳐갖고 보니까 박종원이었음ㅋㅋㅋㅋㅋㅋ

─뭐임. 박종원이 거기 왜 있음ㅋㅋㅋㅋㅋ

─카메라도 같이 있던 거 보니까 뭐 촬영 중이었나 봄

─거기 사는 친구한테 들어서 아는데 그 근처에서 골목 레스토랑 촬영하고 있다더라.

─ㄹㅇ? 그럼 거기도 골목 레스토랑 촬영하는 거였음?

─아닐걸? 골목 레스토랑 촬영하는 곳은 솔루션 중이라고 간판 걸어놓잖아. 그런 거 없던데.

─나 그거 뭔지 암ㅋㅋㅋㅋㅋ. 촬영팀에 내 친구 스태프로 일하는데 거기로 사람 몰려서 솔루션 하는 가게에 손님이 안 와갖고 확인하러 간 거라던데ㅋㅋㅋㅋㅋ

─방송사고 레게노ㅋㅋㅋㅋ

─그럼 지금 가면 거기서 밥 먹고 골목 레스토랑 촬영하는 거 구경할 수 있는 거임?

─밥 먹고 팝콘까지 씹네;; 현실온라인 컨텐츠 개혜자;;;

─내가 봤을 때 새벽에 안 가면 이 날씨에 바깥에서 팝콘만 씹다가 강냉이 오들오들 떨면서 돌아올 확률이 높다.

─ㄹㅇㄹㄷㄱㅋㅋㅋㅋㅋㅋ

이와 같이, 그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이란 다름 아닌 골목 레스토랑의 촬영에 대한 것이었다.

골목 레스토랑은 프로그램적 특징 때문에 촬영 장소의 공개가 훨씬 더 개방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 고객이 많이 찾아오게 되는 시점은 방송이 나간 이후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이미 그곳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매체가 있는 곳에서 골목 레스토랑이라는 소재까지 겹쳐지자, 그 소식이 퍼지는 속도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배불뚝 백반이란 가게를 모르는 이들에게마저 퍼졌고, 찬혁이 대리 운영을 맡는 날에 이르렀을 때엔, 이미 커뮤니티를 좀 한다 하는 유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야기가 퍼진 뒤였다.

즉, 이러한 것이다.

"…… 왜, 또 이런……! 왜 나만……? 왜 나만……?!"

첫 가게의 대리 운영이 시작된 지 약 5분.

순식간에 만석이 된 가게를 바라보며 찬혁은 대체 이제껏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셀 수도 없는 외침과 함께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땅으로 쏟아냈다.

***

첫 번째 대리 운영을 하게 된 곳은 골목의 입구, 근처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분식집이다.

사실 처음 이 가게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대체 왜 이 가게가 망할 위기에 놓였는가'였다.

솔직히 말해 이번 솔루션에 참가한 가게 중에서 이 가게는 입지상으로는 가장 좋은 곳에 있었다.

식당에게 있어 입지는 가장 중요한 것.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 근처의 분식집은 보통 실패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학교라는 시설 근처에 있는 매장은 종류를 불문하고 어지간해서는 위기를 맞는 일이 없다고 봐도 좋다. 무언가 학생들이 오랜 기간 학교에 나오지 못할 사건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말이다.

'왜냐면 여기를 통행하는 인구는 항상 보장되어 있는 셈이니까.'

인구통행량=잠재적 고객.

그 잠재적 고객 중 100분의 1. 아니, 200분의 1만 확실하게 챙겨도 가정 하나 먹고사는 데에는 충분할 정도의 매출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위기를 맞다니, 첫 번째부터 머리가 꼬이는 느낌을 견디며 나는 대책을 강구했다.

"우선 이게 첫 번째지."

가장 먼저 할 일은 냉장고의 정리다.

식당은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이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그 어떤 조건을 붙여도 성공할 수가 없다. 예외가 있다면 음식의 맛을 뛰어넘는 화제성일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음식이란 건 만드는 사람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우선 재료가 좋다면 기본적으로 뭘 만들든 최소한의 맛이 보장된다.

'그리고 지금 냉장고에 남은 재료는…….'

단언한다. 쓰레기다.

극악의 회전률 탓에 재료의 소모가 거의 없다. 못해도 가장 최근에 산 물건이 2주는 넘었겠구만. 거기다 쓸데없는 재료가 많아.

냉장고의 오래된 내용물을 전량 폐기하고 직접 발주한 재료로 채운다. 다만 그 양은 적다. 하루 필요량을 대충 계산하여 약 사흘 치 정도의 재료만 구매했으니까.

난 이 재료를 사용해서 분식집의 기본이 되는 메뉴를 만들 생각이다. 물론 레시피는 전부 뜯어고친다.

'솔직히 내가 대리운영을 한다고 해봤자 반나절 정도로는 크게 바꿀 수 있는 게 없어.'

가게의 운영 방침은 박종원 선생님과 이곳의 사장이 알아서 정할 문제다. 나는 이곳에 딱 한 가지만 보여주러 왔다.

이 위치에서 음식만 기본 이상으로 한다면 적어도 밥벌이 정도는 충분하다는 걸.

그렇기에 재료는 좋은 것을 고르되 가격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물건을 골랐고, 만드는 방법도 결코 어렵지 않은 레시피를 준비했다.

순대는 시판품이지만 그건 어지간한 수준의 분식집이면 다 똑같지. 결국 가게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모든 가게에서 직접 만들 수밖에 없는 떡볶이, 튀김, 오뎅. 이 세 가지다.

순식간에 떡볶이 양념장과 튀김을 만들 튀김반죽, 그리고 오뎅 국물을 우려낼 재료와 양념을 만들고 한숨을 돌렸다. 물론 이것도 전부 미리 만들어온 레시피다.

레시피는 소중하다. 장사의 기본은 계량. 프로란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안정적으로 이끌어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 맛이 만드는 사람 멋대로 변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떡은 근처 떡집에서 아침 일찍 공수한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가래떡. 단가가 조금 있으나 대량주문을 하면 충분히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가격이다.

오뎅은 시판품. 하지만 오뎅의 맛은 국물에서 나오는 것이니 괜찮다.

튀김. 이것만큼은 직접 연습을 해봐야 한다. 재료와 반죽이 아무리 좋아도 온도와 시간 조절을 직접 깨우치지 못하는 이상 말짱 도루묵이니까. 이것마저 연습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장사를 접으면 된다.

"좋아. 준비 끝."

…… 은 났는데, 요 근래 이 근처에 유입되는 손님이 없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과연 문을 열어도 여길 찾아올 손님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음식을 얼추 완성 직전 단계까지 요리한 뒤 비로소 가게를 가리고 있던 암막을 걷어 올리자,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대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사람의 행렬이었으니까.

"…… 실화야?"

조리대 근처에 설치된 카메라 렌즈가 날 비추고 있단 것도 잊은 채, 나는 그저 허탈한 목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조그만 분식집이 만석이 되기 5분 전의 일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