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눈높이 선생님.-3
식당의 업무는 극단적이다.
손님의 내방이 잦다면 할 일은 태산처럼 불어나지만, 반대로 손님이 없다면 청소 이외엔 멍하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특히 더욱 악랄한 점은 종사자 입장에선 그것을 뜻대로 제어할 방도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라는 장르에 속한 업무 중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식당이란 특히 소비자와 생산자의 대면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업종이기에 그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도 그 사실은 익히 아는 바였다.
그들 또한 나름 짧은 시간이나마 직접 식당을 운영했고, 그 나름대로 바빴던 순간과 한가했던 순간을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 자리에서 감히 '아는 척'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여태껏 그들이 알고 있던 '극단적'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그들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으니까.
"이, 이건 무슨……."
"저게 다 얼마야?"
"저걸, 둘이서?"
배불뚝 백반의 주방은 넓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같은 고급 식당의 주방에는 비견될 수 없겠으나 평범한 백반집과 비교하자면 확연히 넓은 크기.
대부분의 식당이 주방보다 고객이 앉을 홀을 훨씬 넓게 설계하는 것에 반해 주방과 홀의 너비가 거의 비슷한, 어찌 보면 특이한 구조로 지어진 매장이 바로 이곳이다.
자신의 경험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 건물을 직접 리모델링한 박춘배의 고집이 가미된 설계는 근래에 와서는 쓸데없이 주방만 넓은 거 아니냐는 찬혁의 빈축을 사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는지, 한때 이 매장을 직접 설계한 박춘배에게마저 덩치만 큰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주방은 최근에야 그 속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토록 많은 고객을 큰 차질 없이 소화한 데에는 분명 박춘배와 찬혁이라는 동네 식당에는 어울리지 않는 솜씨를 가진 두 사람의 힘도 컸지만, 거기에 시설이 잘 갖춰진 주방의 힘이 더해진 덕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주방에 설치한 카메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참가자들은 그런 사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들의 눈과 귀는 결코 장식이 아니다.
저런 주방에 빈틈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꽉꽉 들어찬 온갖 조리도구와 식자재.
이 추운 겨울에 아지랑이가 생길 만큼 피어오르는 열기.
아무리 스포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프로 운동선수를 보고 대단하다고 느끼듯이.
아무리 문화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훌륭한 노래를 들으면 감탄하듯이.
시각과 청각으로 전달되는 정보량 자체에 그들은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만약 지금 당장 저 두 사람의 자리를 이곳에 있는 참가자 전부가 나서서 대체하더라도. 아니, 지금의 두 배가 되어 저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결코 그들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단순 노동력의 양적 차이 따위의 수준을 벗어난 무언가의 경지.
참가자들의 눈에 비치는 찬혁과 박춘배의 모습은 그러한 곳에 이르러 있었다.
이 가게의 사장이라던 박춘배야 그렇다 치지만, 단순한 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던 찬혁마저 박춘배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도 더한 몸놀림으로 부엌을 종횡무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멈출 길이 없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듯 질린 눈빛으로 화면 너머를 응시한다.
'설마, 저런 걸 매일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래?'
'한 달 일하고 몸져누울 것도 아닌데 저건 아니지…….'
그들은 마치 찬혁과 박춘배가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만큼 못할 거면 썩 꺼져.'라고.
사실상 그들의 속내에서 비롯된 피해망상에 불과했으나, 우스운 점은. 저들은 아직 오픈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의 견학은 이제 전반전은커녕 아직 구장의 잔디조차 밟지 않은 단계에 있었다.
물론, 참가자들은 아직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지만.
***
"에라이 망할 놈아. 대체 이게 뭔 난리야?!"
"아, 사장님이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정도라는 게 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할 수만 있다면 시즌한정 메뉴를 팔아보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인 과거의 자신을 후려치고 싶다는 사장님의 통렬하고도 원통한 외침이 온갖 잡기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한 주방을 가로질러 내게 다다랐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다고요.'
속으로 짧은 사죄를 읊조리며 겉으로는 쓴웃음을 머금는다.
사실 사장님도 말은 저렇게 할지언정 진심으로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죽을 각오로 요리를 하는 게 꼭 옛날 생각이 난다며 기뻐하시는 걸 종종 봤으니까.
"맨날 같은 것만 팔아서 지루한 차에 잘 됐다고 하신 게 누군데요?"
"그러니까! 그게 내 실수라고!"
시즌한정 메뉴라고 거창하게 말해봐야 실질적인 메뉴의 가짓수가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일종의 묶음 상품으로 파는 로스트비프, 매쉬 포테이토, 스프, 빵 정도인데 그나마도 빵의 경우는 친분이 있는 근처 빵집에서 납품을 받고 있으니 딱 세 개의 메뉴가 늘어난 셈이다.
다만, 얼추 규격이 정해진 주방에서 메뉴를 하나 늘리려면 배에 달하는 일거리가 몰려온다는 게 문제지.
거기다가 이런 세트를 눈곱만한 인건비만 남기는 단돈 2만 원가량에 판다는 호화로운 구성.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하다. 그만큼 일거리가 늘어나지만.
그나마 이건 미리 대량 조리를 하면 만드는 과정이 크게 까다롭지는 않은 메뉴를 선택해서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시금 말하지만, 내 진짜 특기는 대량조리다. '많이, 빨리, 맛있게.' 이 신조를 지키지 못하는 놈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서 일했으니까 말이지.
뭐, 그렇다고 우리가 할 일이 간단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4번 테이블에 제육 셋, 불고기 하나, 된장찌개 하나!"
"예!"
주문접수와 서빙을 담당하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외침에 냉큼 답하고 프라이팬 두 개와 뚝배기를 꺼낸다.
아무래도 본래 이용하시던 고객 중 몇 분은 '물 건너 음식보다 우리나라 게 훨씬 입에 잘 맞는다'며 본래 메뉴를 시키시는 일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입맛은 결국 주관. 비슷하게 맛있는 요리여도 간장맛이 나느냐 크림맛이 나느냐에 따라 평가는 천차만별로 갈리니까.
중요한 건 고객의 평가에 과민반응하지 않는 것.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되 휘둘려서는 안 된다. 어차피 고객이 내 요리에 만족한다면 다른 메뉴를 찾을 테니까. 그게 다양한 메뉴를 가진 식당의 장점이다.
이 시기 한정으로 그런 메뉴의 양극화가 특히나 두드러진 우리 식당은 더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손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시키니 군말 없이 내어드리면 된다는 거다. 서비스에서 침묵은 금이라는 경언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다.
'대신 손이랑 머리는 더 바빠지는 게 문제긴 해도.'
두 개의 팬에 요전날 손수 대량으로 만들어둔 파기름을 넣어 달굼과 동시에 미약하게 불을 켜둔 커다란 냄비에서 육수를 퍼서 뚝배기에 붓는다.
뭘 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알겠지. 이른바 멀티태스킹이다.
사람의 손은 세 개가 아니지만 세 개인 것처럼 일 하는 건 가능하다.
못 하겠다고? 아냐. 너도 할 수 있어. 사지 멀쩡하면 진짜 누구든 할 수 있어. 한 10년 정도만 그렇게 못하면 죽일 것처럼 구는 상사 아래서 일하면 내 입에서 욕이 터지는 걸 막고 싶어서라도 하게 돼.
아니면? 뭐, 딴 직장 알아보는 거고.
참으로 부조리의 온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이게 또 주방이라는 곳의 현실이 그렇다.
만나는 상사마다 옛날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하던데, 그럼 대체 그 사람들이 말하던 옛날이란 건 무슨 지옥도였던 걸까. 생각하기도 싫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팔은 뚝배기에서 끓는 된장찌개의 거품을 걷어내고, 양손에 하나씩 팬을 잡고 신나게 흔들며 머리의 잡념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저절로 움직인다. 거기다가 줄기차게 들어오는 특선 메뉴까지 동시에 처리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처럼 느껴진다.
쌓인 짬은 인간을 기계로 바꾸는 마법을 현실로 승화한다. 내가 바로 그 증거다.
인간의 형상을 한 기계.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오늘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금일 판매. 대략 200인분 이상.
배불뚝 백반의 연속 완판 기록에 다시금 새로운 한 줄이 추가된다.
***
'아이고, 이를 어쩐다.'
이건 박종원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당초 이런 견학 계획을 짜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사유가 있었다.
하나는 배불뚝 백반이 어떻게 다른 참가자들의 가게에 몰린 손님을 끌어올 수 있었는가를 심도 깊게 관찰해보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참가자 대신 단기간의 대리운영을 맡을 찬혁이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게끔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건 너무 과했어.'
박종원은 사실 배불뚝 백반에 무언가의 문제가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폭포수 아래에 작은 컵을 가져다 댄다고 해봐야 잔에 물은 채워지지 않는다.
과한 수압에 오히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바깥으로 튀어나가고, 자칫 잘못하면 컵이 깨져 버릴 수도 있다.
그의 눈으로 본 배불뚝 백반의 상태는 딱 그러한 상황이었다. 과도하게 몰린 고객이라는 폭포수를 어떻게든 받아내려 애쓰는 작은 컵.
이건 여태껏 박종원이 솔루션을 진행했던 다른 가게에서도 흔히 발생한 일이다.
평소 받던 손님보다 과하게 많은 손님을 받다 보니 여태껏 유지해온 인력으로는 손님 대접에 미흡해지게 돼 버린 사고는 언제든 있었다.
박종원은 배불뚝 백반도 크게 다른 상황이 아니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그만한 숫자의 고객을 감당하기에는 그 가게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그런데 이게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질 않았다. 찬혁과 박춘배라는 변수 탓이다.
찬혁의 솜씨야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극한상황에 몰린 찬혁의 몸놀림은 더더욱 세련미를 더해갔다.
거기에 더해 평범하게 요리를 잘하는 백반집 사장이라고 믿었던 박춘배 사장 또한 상상 이상의 걸물이었다. 과거가 궁금해질 정도로. 호랑이의 자식은 호랑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그 반대의 경우 또한 통용되는 것임을 박종원은 새삼 실감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가 참가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본래 화면은 '어쩔 수 없는 불의의 사태에 대처하는 베테랑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불의의 사태는커녕 불만을 표하는 손님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만 보여준 것이다.
"……."
"……."
덕분이라고 할까, 때문이라고 할까.
오픈 준비부터 가게 마감까지. 그 모든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던 참가자들의 기가 팍 죽은 것이 피부에 닿을 듯 느껴진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에게 우사인 볼트의 전성기를 들이대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준 꼴이니까. 박종원 본인조차 살짝 위축될 정도인데 참가자들은 오죽할까.
"와, 저번에도 봤지만 이분들은 진짜……."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박종원을 보조하는 역할인 다른 두 진행자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본직이 연예인이라지만 그들 또한 제법 오랜 시간 이 방송에 몸을 담았다. 식당이 잘하고 못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고, 이미 그들 자신이 평론가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방금 본 그 광경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당초 찬혁과 박춘배라는 두 인물이 이런 곳에 있는 게 이상한 인물들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아, 그러니까, 그……."
한참 동안 말을 더듬던 박종원이, 간신히 한마디 말을 뱉었다.
"…… 방금 아침에 봤던 류찬혁 학생이 여러분의 가게를 대리 운영하며 여러분의 문제점을 지적해줄 겁니다."
이의 있습니까?
박종원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방송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