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85화 (185/403)

185. 눈높이 선생님.-2-

"뭐? 우리 가게를 찍으러 오신다고?"

미팅이 끝난 당일 저녁. 사장님과 만나 앞선 미팅에서 있던 일을 알려주자 사장님은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예상은 했지만 거절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촬영은 언제 시작한대? 내일? 모레?"

"좀 진정하세요. 그쪽에서도 자기들끼리 계획을 짜고 시간을 잡은 다음 알려주겠죠."

과하게 흥분한 사장님의 텐션을 가라앉히며 그쪽에서 내게 준 기획안의 내용을 대충 끄집어내 이야기하니 가게와 내 촬영을 번갈아 한다는 것을 들은 사장님이 얼굴을 애매하게 찡그렸다.

"뭐, 우리 가게야 언제든 괜찮다만 너는 괜찮겠냐?"

"뭐가요?"

"대리 운영 말이다. 혼자서 할 수 있겠느냐는 거지."

"에이, 당연하죠."

날 뭘로 보고. 이래 봬도 수십 년의 요리 경력을 자랑하는 중고 신인이다. 그것도 중고 중에서도 상중고란 말이지.

적당한 가게 정도야 몇 개가 됐든 문제없다 이거야.

라고, 내 센터를 까발릴 순 없었지만, 사장님의 걱정을 그치게 하는 데에는 그런 소리까지 안 해도 충분하다.

"대본이에요, 대본. 어차피 손님이 온대 봤자 제작진이 섭외한 평가단 정도일 걸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사장님이야말로 책 안 잡히게 확실히 준비해 두세요."

"걱정할 필요 없는 건 너도 알면서 무슨."

확실히 사장님 가게야 항상 위생 철저가 모토긴 하지. 언제든 식당의 사신인 식품위생과에서 불시 점검을 나와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청소하고 있으니까.

요즘 들어 일이 상당히 바빠져서 청소할 시간이 충분할까 걱정스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이게 의외로 장점이 있었단 말이지.

하루 장사해서 냉장고가 싹 비어 버리니까 청소가 엄청 편해졌다. 굳이 냉장고 내용물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어진 덕분일까. 식당 청소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냉장고 청소의 프로세스 하나가 깔끔하게 없어진 셈이니 당연한 일이긴 해도.

'자영업자의 꿈을 또 하나 이뤘구만.'

특히 이번 건 제법 난이도가 높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기쁘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지만.

"그래, 알겠다. 네가 알아서 하겠다면야 됐지 뭐. 너도 이제 마냥 애는 아니니까."

하긴, 지금 나는 아가 찬혁이라기보단 애기셰프 찬혁 같은 느낌이다.

…… 뭐라는 건지.

아무튼, 대충 이야기도 끝났으니 남은 건 저쪽에서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릴 뿐이다.

이제 힐링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알고 싶지만 이제는 그냥 신포도에 불과하니까.

그래! 힐링이 뭐 별거야? 어차피 방에서 뒹굴 거려봐야 지루하기만 할걸? 잠은 죽어서 자면 충분하잖아! 저 포도는 실 게 분명해!

…… 실 게, 분명해.

속으로 갈 곳 없는 한탄을 읊조리며 진동을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꺼냈다.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구만.

─제작진 미팅이 끝났습니다. 일정표를 보낼 테니 검토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들도 양반은 못 되겠어. 정말로.

***

며칠이 지난 아침. 새벽녘이 뜨기 무섭게 박종원을 비롯한 여러 명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게조차 내버려 두고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만스런 기색이 떠올랐지만 그 심정을 굳이 입 바깥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기실, 이 시간에 가게에 나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거, 어차피 다 노는 시간이었을 거면서.'

물론 그 사실을 모를 박종원이 아니다.

식당은 본래 오픈 전부터 미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할 일이 굉장히 많으니까. 재료 준비나 청소뿐만 아니라 어제 미처 못 끝낸 설거지나 그날 아침에 들어올 식자재의 정리 같은 것까지 할 일이 태산이니까.

'물론 평소에 그렇게 노력했으면 여기 나올 일이 없었겠지만…….'

저번 첫 방문 이후로 과연 배운 게 있긴 할지, 의심스러운 심정을 꾹꾹 눌러 담은 박종원이 의자에 앉은 그들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그나마 인사만이라도 반갑게 웃으며 건네는 이는 차라리 낫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장사를 할 때 어떤 모습일지 뻔할 뻔자니까.

박종원은 이번 촬영도 쉽지 않겠다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 일찍 모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급한 소식이 있어서요."

"급한 소식?"

"뭔가요?"

"요 근래 여러분의 가게 매출이 급격하게 하락한 원인이 뭔지 찾았습니다."

박종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각 참가자의 눈이 번쩍 뜨이며 박종원을 향했다.

안 그래도 잘 풀리지 않는 장사가 더더욱 망조에 빠진 원인. 그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는 게 이상한 희대의 관심사였으니까.

"그, 그게 뭐죠?!"

"진정하세요. 천천히 말씀드릴 테니까."

시선으로 재촉해오는 참가자의 분위기에 이기지 못한 척 박종원이 옆으로 비켜서자, 그가 가리고 있던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가 빛을 쏘아낸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화면에 집중되고, 잠시 후 스크린 위로 배불뚝 백반의 매장 정면 사진이 잡히자 그들 중 한 사람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저기!"

놀라는 목소리를 낸 참가자는 참가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5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회사 퇴직 후 먹고 살길을 찾아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는 분식집을 열었지만, 요 근방의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몇 번이나 점심을 먹으러 들렸던 가게의 모습에 깜짝 놀란 것이다.

"저긴 뭐야?"

"식당…… 이지?"

"저게 왜……."

그에 비해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다른 참가자들.

그때, 스크린 화면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사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사진이 아니라 영상을 정지한 화상이었던 것이다.

빨리감기로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모습.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것은 인파가 되고 줄이 되어 화면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편집된 영상이 순식간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기 시작한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순간도 빈자리가 남아나지 않는 가게.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의 가게와는 전혀 다른 양상에 그들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잠시 후, 짧게 편집한 영상이 끝나자 박종원이 입을 열었다.

"최근 여러분 가게에 고객이 많이 줄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이게 그 이유입니다. 이 가게는 여러분의 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여러분의 가게로 몰리던 고객이 대부분 몰리게 된 거죠."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가게라도 저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여기서 주목하셔야 할 건 저곳으로 몰린 고객이 '여러분의 가게'에서 유출됐다는 점이에요."

"유출…… 이요?"

"여러분이 속한 지역에서 식당 장사가 흥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줄 아세요? 바로 어제 다른 식당으로 간 고객을 오늘의 내 고객으로, 오늘의 내 고객을 내일의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구가 한정된 지역에서 손님 쟁탈전을 지면 바로 매출에 타격이 와요."

박종원의 말은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여러분의 식당이 그만큼 경쟁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다른 식당의 경우 매출이 줄기는 했어도 급격한 하락세를 기록할 정도의 하락은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배불뚝 백반에서 흘러나온 고객으로 인해 소폭이나마 매출 상승을 기록한 가게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식사가 아닌 카페나 디저트 등을 파는 후식이 중점인 가게이긴 했지만.

"저기 그럼, 대표님. 이 경우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박종원의 단호한 대답에 참가자들의 얼굴에 진 그늘이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 부정한 방법을 통해 고객을 빼앗겼다면 모를까, 가게가 잘나서 고객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이 아무리 장사에 무지하다 한들 그런 당연한 사실까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이 상황은 저희 제작진 입장에서도 곤란해요. 식당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건 손님인데 정작 오는 손님이 없으면 아무리 변해도 평가가 힘들어지니까."

빔 프로젝터의 전원을 끈 박종원이 말을 잇는다.

"그러니 오늘은 가게 문 닫고 한 번 견학이나 가봅시다."

"견학이요?"

"예. 종류는 달라도 식당이잖아요. 대체 저 식당이 뭔데 저렇게 잘 나가나. 그걸 쉽게 견학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지 않아요."

당장에라도 떠나려는 듯 외투를 걸치며 채비하기 시작한 박종원의 태도에 당황한 참가자가 그에게 물었다.

"벌써 출발하나요? 시간이 너무 이른 거 아닐까요?"

"무슨 소리예요. 거긴 이미 진즉 시작했어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초 치지 말라는 듯 툭 쏘아내는 박종원의 답에 참가자가 고개를 수그렸다.

***

"사장님. 식자재 영수증 가져왔어요."

"어, 그래. 체크는?"

"끝냈죠."

식당의 아침은 빠르다. 오픈이 언제냐에 따라 그 시간은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오픈 한 시간 전에는 개장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식당, 혹은 일하는 사람이 적은 식당일수록 그 시간은 앞당겨진다.

애처롭게도, 여태껏 후자에만 해당되던 우리 식당은 요 근래 전자에까지 해당사항이 미치고야 말았지만.

"그게 누구 탓인데 이놈아."

"아, 사장님도 좋다고 했잖아요."

그래. 숨겨서 뭣하랴. 일이 이렇게 된 것엔 내 탓이 크다.

시즌 특선 메뉴를 준비한답시고 소비되는 식자재의 품목을 늘린 탓에 택배로 배송되는 식자재의 물량이 가히 두 배 가까이 늘었으니까.

안 그래도 손님이 많아지면서 기존에 오던 식자재 물량도 늘렸는데 거기에서 배가 늘어나니, 우리한테 식자재를 공급해주는 시장 아저씨 얼굴은 볼 때마다 웃음이 늘어난 게 훤히 보였다.

그 대신 그쪽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할수록 내 얼굴에는 땀방울이 늘어났지만.

"아, 이건 또 언제 정리하냐."

내 키도 이제 곧 180을 찍을 듯 말 듯 늘어났는데, 그런 내 가슴팍에 닿을 만큼 쌓인 식자재 박스의 위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거기다 이렇게 쌓인 게 한 줄인 것도 아니고 아예 언덕을 쌓고 있으니 오죽하랴.

한숨을 내쉬고 주방에서 꺼내온 카트에 물건을 하나하나 싣고 있을 때, 저 큰길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거 일찍도 오네."

사람의 면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척 봐도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저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를 비롯한 갖가지 촬영도구.

저번에 가게 상황만 하루 종일 촬영했던 그들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뭐, 이번에는 조금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조금 더 심층적인 부분까지 촬영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어느새 가게 앞까지 다가온 그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고, 무리의 선두에 있던 박종원 선생님이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류찬혁 학생."

"옙. 좋은 아침입니다. 박종원 선생님."

거기에 날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와 화면에는 잡히지 않는 제작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간단히 인사한 뒤, 박종원 선생님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호, 저게 이번 솔루션 참가자들인가.

그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우리 가게와 내 옆의 짐더미를 향해 있었다. 이만큼 많은 식자재가 한 가게에서 쓰이는 걸 보는 건 처음인 걸까. 하긴, 시장이라도 가는 게 아니면 이만큼 박스가 쌓여 있는 걸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긴 하다.

"이야, 아침부터 고생하네요. 이걸 다 혼자 옮기고 있어요?"

"저희 사장님이 게으름뱅이라…… 는, 농담이고.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할 일이 많거든요."

차곡차곡 카트 위로 테트리스 하듯 물건을 쌓아올린 뒤에야 한숨을 돌리고 제대로 이야기할 틈이 생겼다. 이렇게 몇 번을 오가야 겨우 운반이 끝난다. 매일 하는 일이라지만 지겨울 따름이다.

인내심 있게 내 일이 끝나길 기다린 참가자들 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매번 물건 받을 때마다 이만큼씩 받아요?"

"네."

"와. 이 정도면 대충 얼마나 써요? 사나흘?"

"하루요."

"예?"

"딱 하루 쓰면 쫑나요. 매일 이만큼 들어오거든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휘둥그레 눈을 뜨는 그들을 향해, 나는 그저 미소를 돌려줄 뿐이었다.

지금부터 참교육 들어간다.

어디서 받기 힘든 교육이니 입 딱 벌리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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