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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83화 (183/403)

183. 네거티브 힐링.-4-

그리하여 주변 상권 탐색을 나선 박종원과 촬영팀 일행.

그들은 수수께끼에 싸인 매출 하락의 원인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조사에 임했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들은 그럴듯한 무언가를 찾아내기는커녕 사건의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선생님. 정말 이 근처에 뭔가 있는 거 맞죠?"

"거 이상하네. 분명 요 어디 있을 것 같은데."

박종원은 현 사태가 발생한 이유를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찾은 곳이 바로 솔루션을 진행하는 가게가 모인 골목 근처의 번화가.

그토록 많은 식당이 동시에 매출이 줄었다는 것은 경쟁자가 그만한 종류의 음식에 대항할 역량을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

그건 단 한 개의 매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 그렇기에 박종원은 번화가에 새로 개장한 백화점이나 그에 준하는 상가 건물을 그 원인으로 생각했다. 번듯한 새 건물에 들어선 푸드코트라면 다양한 계층의 손님을 끌어모으기에 안성맞춤일 테니까.

"아무리 찾아도 새로 개장한 백화점 같은 건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요?"

"흠…… 아무래도 제가 틀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수확은 0. 결국 탐색을 그만둔 제작진과 함께 트레일러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박종원은 자신의 생각을 기초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뭔가 놓친 게 있나?'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같은 지역에 있는 서로 다른 가게 여섯 곳의 매출이 동시에 하락.

이런 골목상권의 매출은 기본적으로 이미 정해진 통행량이라는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그 말은 즉 어느 누군가가 그 파이를 독점했다는 뜻.

'파이를 독차지했다면 그게 티가 안 날 리가 없을 텐데.'

불가사의한 현상에 턱을 매만지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무언가 이상한 모습이 박종원의 눈에 들어왔다.

"음?"

저만치 골목이 꺾이는 곳의 전봇대 앞에 서 있는 통행인의 모습.

평범하다면 평범한 모습이지만, 어쩐지 그 기색이 이상하다.

핸드폰을 보다가 종종 고개를 들어 앞을 살피는 걸 보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보통 저렇게 길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엔 전봇대 쪽이 아닌 길 쪽을 바라보거나 주변을 살피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앞만 보고 바로 다시 고개를 숙인다? 박종원은 그 행동거지에서 굉장한 기시감을 느꼈다. 저건 마치…….

'줄?'

긴 줄 뒤에 서서 앞에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모습 같다.

박종원은 직감했다.

"찾았다."

"선생님?"

"갑시다."

갑자기 그의 발길이 돌아가자 당황한 제작진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박종원과 그 일행이 목표한 곳에 다다르자 박종원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남자는 갑자기 등장한 유명인과 카메라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어, 어어! 박종원!"

"아, 예. 박종원입니다. 잠시 실례할게요."

사과는 했으나 이미 박종원의 눈은 그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박종원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남자가 바라보던 방향. 그의 생각대로 이 지역에서 이만한 규모의 줄을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할 만큼 기다란 인파의 행렬이었다.

놀란 남자의 목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하나둘 뒤를 돌아보는 줄 선 행인들이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경악의 연쇄를 이룬다.

"박종원이다!"

"뭐야, 박종원?"

"왜 박종원이 여기 있어?"

"촬영 나왔나?"

그 연쇄반응의 끝에 있는 '배불뚝 백반'이라는 어딘가 촌스러운 간판을 발견한 박종원의 눈가가 휘었다. 바로 이곳이다. 이 지역의 파이를 혼자 독차지한 식당은.

"야, 촬영 나온 것 같은데 잠깐 비키자."

"갑자기 웬 촬영이래. 무슨 촬영이지?"

"골목 레스토랑은 절대 아닐 텐데."

"촬영한다고 괜히 늦어지는 거 아니겠지?"

박종원과 제작진을 보고 그들이 줄 선 가게를 촬영하러 온 것이라 착각한 사람들이 슬금슬금 양옆으로 길을 비켰다.

'착각인데.'

착각이지만, 자신을 비롯한 일행이 착각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임을 상기한 박종원은 고개를 연달아 숙여 가며 이 착각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모세와도 같이 사람의 파도를 양쪽으로 가르고 전진한 일행은 마침내 식당의 정문에 도달했다.

이 추운 날씨에 못 해도 한 시간은 족히 찾아 헤맨 장소. 요리조리 살펴봐도 그저 평범한 백반집으로만 보이는 이 가게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마치 오지 저편의 신대륙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탐험가의 그것과 같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박종원이 가게의 문을 열어젖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이제는 쓰는 곳도 몇 없어 보기 힘든 현관 종의 정겨운 종소리와 입구부터 손님을 환히 반기는 종업원의 당찬 목소리. 그리고 가게 내부를 가득 메운 손님들의 대화 소리까지.

그 전부가 들어설 때부터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것만 같아 환한 미소를 짓던 박종원은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라, 이 목소리 어디선가…….'

언젠가 분명 들어봤던,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에 그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 어?"

"…… 아."

얼마 전…… 이라고 해도 1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박종원은 인터넷 방송의 세계에 들어서며 원활한 방송을 위해 흔히 밈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적게나마 공부했고, 지금도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때 배운 것들 중 하나가, 이 상황에 굉장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박종원의 뇌리를 스쳤다.

파이를 독점한 방법?

'아, 이럼 인정이지.'

정답은 단 하나.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 저, 왜 오신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좀 이따 다시 와주실 수 있나요. 보시다시피 조금 바빠서요."

"아, 예. 예. 물론 그래야죠."

서로의 시선이 부딪치기가 무섭게 튀어나온 찬혁의 축객령에 박종원은 얌전히 따랐다.

***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진짜로 사람을 눌러 죽이러 찾아왔다.

기막힌 우연이고, 또 예상한 필연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필 이런 때에 이렇게 만나는 건 너무한 거 아닐까.

가게 일을 마무리 짓고 얼추 정리를 끝내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 8시. 아주 빨리 끝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유가 뭐냐고? 가게에 남은 모든 재료가 싹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사 잘 되니까 아주 좋아 죽겠구만.

…… 진짜 죽겠어, 아주.

뭐 아무튼. 그쯤 되니 슬슬 타이밍이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낮에 돌려보냈던 박종원 선생님과 낯선 사람 한 명이 같이 가게로 들어왔다.

'카메라는 없네.'

무턱대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건 아닌가. 그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적어도 뭔가 하기 앞서 대화를 나눌 상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니까.

아직도 어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종원 선생님과 그 일행을 히터 가까운 자리로 안내한 뒤 대용량 온수기로 끓인 보리차를 대접했다.

"바깥이 많이 춥죠. 아까는 쫓아내서 죄송합니다."

"아뇨. 바쁜 걸 알고 대뜸 찾아온 저희 잘못도 있어요."

박종원 선생님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류찬혁 학생은 왜 여기에 있는 건가요? 이 근방에서 방송을 진행하다 유난히 손님이 많은 가게가 있어서 들렸는데 익숙한 얼굴이 있어서 깜짝 놀랐네요."

"아, 그게……."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나는 대략적인 사유를 설명했다. 힐링이니 뭐니 하는 말은 쏙 빼고, 그냥 학교 방학 숙제 겸 아는 분 가게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박종원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로요? 이거 엄청난 우연이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딱히 원하는 우연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우연이란 게 원하는 대로 생기는 건 아니라지만 이건 선 넘는 거 아니냐고.

"박종원 선생님은 골목 레스토랑 촬영하러 오신 거 맞죠?"

"알고 있었어요?"

"좁은 동네니까요. 그만큼 소문이 빠르거든요."

발 없는 말도 이 동네에서라면 미터기 속에서 사는 명마 못지않게 빠르거든.

"아, 소개가 늦었어요. 이쪽은 우리 프로그렘 총괄PD인 방우석 PD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PD님. 류찬혁이라고 합니다. 성심고 1학년이에요."

"아,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쪽에서 소개를 해준 만큼 나도 우리 사장님을 소개해드리고 싶긴 하지만, 부끄러움을 타는 건지 어째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저기 주방에 저희 사장님이 계시긴 한데 얼굴을 안 비치시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모셔올게요."

"아뇨아뇨. 일하느라 바쁘실 텐데 굳이 안 그래도 괜찮아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날 만류하는 손길에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근데 이거 알바생이 사장 일하는데 혼자 농땡이 피워도 되는 건가?

…… 모르겠다. 꼬우면 부르시겠지 뭐.

군소리는 이쯤 하고, 슬슬 본론에 들어갈 때가 됐다. 이 사람들도 수다나 떨자고 아까운 시간을 쓰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저희 가게는 어쩌다 찾아오신 건가요? 보니까 이쪽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골목이던데."

"그…… 류찬혁 학생. 혹시 지금 알바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됐나요?"

알바?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일주일 조금 더 됐어요. 방학 시작하자마자 내려와서 바로 들어왔거든요."

"역시……."

역시? 눈에 의아한 기색을 담아 보내니, 박종원 아저씨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답했다.

"그게 사실, 저희 방송에 문제가 좀 생겨서요."

"문제요?"

그들이 말한 문제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솔루션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쪽 골목으로 오는 손님이 없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서 찾아보니 대략 일주일 전부터 대부분의 외식 소비자가 이쪽으로 몰린 것 같다.

"어…… 그 말은 즉……."

요컨대 우리가 너무 장사를 잘해서 방송 진행이 힘들다. 거친 표현이긴 했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런 뜻이다.

…… 아니, 그건 답이 없는 문젠데?

우리가 뭐 불법적인 영업을 한 것도 아니고, 손님을 우리 멋대로 오고가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가게를 고르는 건 손님의 권리. 손님을 대접하는 게 가게의 의무.

식당이 할 수 있는 건 의무를 지키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저토록 난색을 보이는 것일 테고.

"으음, 이게 다른 이유로 손님을 빼앗기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냥 순수하게 음식 퀄리티 때문에 그런 거니까 저희도 손 쓸 방법이 없어요."

"그렇다고 손님을 직접 캐스팅하는 식으로 방송을 진행하면 저희 방송의 컨셉이랑 진정성 논란도 분명 따라붙을 겁니다."

박종원 선생님과 방우석 PD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생산자라는 위치에선 결코 해결할 방도가 없다.

"촬영지가 이곳이라는 게 알려진 뒤에는 손님이 좀 붙겠지만 참가자들의 의욕이 그때까지 붙어 있을지 의문이네요."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빠졌다. 나? 내가 여기서 뭘 하겠어. 막말로 장사를 접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모레부터는 크리스마스 대비 시즌한정 메뉴도 판매해야 하는데.

그런데, 아무래도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쑥덕쑥덕 논의를 나누기도 잠시. 어느새 대화를 마무리한 그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불온하고도 불길한 기색에 뒷덜미의 잔털이 삐죽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방사능 거미에 물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왜 그러세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내뱉은 내 질문에, 박종원 선생님이 답변을 돌려주었다.

"류찬혁 학생. 혹시 방송 나가고 싶은 생각 없어요?"

"…… 예?"

Pa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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