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82화 (182/403)

182. 네거티브 힐링.-3-

박종원은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본격적으로 안방극장에 얼굴을 드러내기 전부터 이미 같은 업계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성공했고, TV에 나온 뒤로는 그 성공마저 빛이 바랠만한 명성을 얻었다.

사업, 가정, 명예. 살면서 이룰만한 과업은 얼추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만큼 한때는 치열했던 인생도 두 번째 황금기를 맞이한 작금에 이르러선 예전 같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흔히 '사람이 나이를 먹더니 유순해졌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할까.

"하, 진짜."

하지만 그런 박종원이라도 가끔씩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바로 그런 때였다.

"이렇게 장사하시니까 손님이 없죠! 시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데 무작정 장사를 하려고 하면 그게 잘 되겠어요?"

"그게……."

"많은 분들이 장사를 시작할 때 하는 착각이 뭔지 아세요? '아, 나도 장사만 시작하면 저렇게 성공하겠구나.'하는 생각이에요. 가게 열기 전에 같은 음식 파는 가게 조사해 보신 적 있어요?"

"아, 예. 몇 번 정도……."

"그걸 셀 수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같은 가게를 열 번, 스무 번은 들려봐야 가게 분위기를 알고 왜 잘 나가는지 알 수라도 있죠. 사람 없는 가게도 가본 적 없죠?"

"예……."

"옛말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괜한 말이 아니에요. 성공한 가게보다 실패한 가게에서 배울 게 훨씬 많아요. 왜냐? 성공한 가게는 어딜 가나 엇비슷해요. 뭘 하면 안 되는지 아니까! 근데 사장님은 뭘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잖아요. 막말로 똥, 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구분은 할 수 있겠어요?"

박종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박종원의 골목 레스토랑은 '점점 침체되는 골목상권의 활성화'를 명제로 하는 방송이다.

생각은 좋다. 세월의 흐름에 개인 자영업자가 대항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박종원 자신은 당초 그 프로그램 자체에 그다지 좋은 생각은 갖지 못했다.

안 그래도 과포화 상태인 한국의 요식업 현황. 그 속에서 도태되는 곳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박종원도 연이은 제작진의 설득에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고쳐먹은 박종원은 '그렇다면 이 방송으로 다른 식당에도 도움이 될 조언들을 퍼트리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후우……."

최근 들어 점점 그 생각이 나약해지는 것이 스스로가 봐도 명백했다.

망할 이유가 있으니 망한다. 그 예상은 얼추 맞았다.

약 한 달 정도의 간격으로 방송지를 바꿀 때마다 시청자 사이에서 흔히 '빌런'이라 부르는 가게가 속출한다.

사전조사도, 요리에 대한 공부도 없이 무작정 요식업에 뛰어든 사람들.

그런 사람에게 컨설팅을 해줄 때마다 '정말 이런다고 사람이 바뀔까?'하는 회의감이 들면서도, 종종 구원의 동앗줄처럼 등장하는 소수의 가게 탓에 좀처럼 이 방송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은 유독 그놈의 빌런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구밀도나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땅값 자체가 싼 지역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대포로 장사하는 가게가 많다.

'이런 곳이라도 자리만 잘 잡히면 얼마든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러나 이번에 컨설팅을 신청한 가게의 주인들은 경험에서 근거한 박종원의 생각을 무시하고 부진의 이유를 입지 탓으로 몰기 바빴다.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마지막 1차 컨설팅을 마치고 방송용 트레일러로 들어온 박종원을 두 명의 진행자가 반겼다.

"아, 박종원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자신을 반기는 김선주와 조수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인사한 박종원이 그들 가운데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몸을 떠는 박종원에게 의례적인 멘트를 건네며 걱정하는 두 사람. 시시콜콜한 대화 몇 마디가 오가고, 비로소 김선주가 본론을 꺼낸다.

"선생님. 이번 사장님들은 어떤 것 같으세요?"

"아니 내가 제작진들한테 신기할 지경이야. 어떻게 이런 가게를 매번 잘도 찾아온단 말이지."

"그 말씀은……?"

"엉망이에요, 엉망."

어이가 없다는 듯 한탄하는 어조로 말하는 박종원의 모습에 두 사람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들 또한 트레일러에 설치된 화면으로 바깥을 대충이나마 살폈기에 설명할 필요도 없긴 했지만, 방송이란 것이 원래 그런 법이다. 누군가는 나서서 시청자에게 내용을 정리해줘야 하고, 겸사겸사 방송 분량 또한 뽑아내야 했으니까.

"문제가 많아요. 고치려면 아주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 돼."

"그 정도예요?"

돌아온 질문에 박종원이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그 반응에 김선주도 더이상 대화를 나눠봐야 좋은 소리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돌렸다.

"하하, 이번 컨설팅도 난항이 예상되네요. 잠시 사장님들께 카메라를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생방송도 아니고 녹화편집방송에서 카메라를 돌린다는 것은 오프 더 레코드 상태로 잠시 전환하자는 뜻. 그 의도를 날카롭게 캐치한 감독의 지시로 연기자 일행을 찍던 카메라를 비롯한 촬영기기의 전원이 꺼진다.

이제 각 가게로 나간 팀이 인터뷰를 촬영하고 돌아올 때까지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으나 연기자들에겐 당장의 영상을 찍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잠시 회의 들어갈게요."

"예."

총괄PD의 부름에 연기자들의 시선이 모인다.

"이번 참가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고 뭐고 엉망이에요."

"곤란하네……."

본래 방송에서 빌런의 존재는 말뜻 그대로 나쁘게만 쓰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그만큼 화제를 끄는 힘, 요컨대 어그로성이 있다는 건 시청률에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 전체에 빌런만 나와서야 모처럼 어그로를 써서 끌어 모은 이목이 전부 마이너스로 돌아올 뿐이다. 고구마만 먹이고 사이다는 없는 방송을 누가 좋다고 보겠는가.

"그나마 소질이 보이는 가게는 몇 군데 있긴 한데, 그 외에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흐음……."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다. 실제로 박종원은 시청자가 도통 답이 없다고 평가하던 가게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전적이 있지 않은가.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는 성장의 묘미를 담은 방송. 좋다. 좋지만…….

'뭔가 한 끗 부족한데.'

PD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종편 방송이란 한 편을 보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한 시간 분량의 방송에 빌런만 나온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시청자 복장 터지게 만들 것도 아니고.

'골목 레스토랑 사상 최악의 골목!' 같은 명제는 짧은 어그로에는 최적화된 프레이밍일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악수에 불과하다.

'히어로가 필요해.'

히어로. 요컨대 빌런으로 고구마를 목이 메일 만큼 섭취한 시청자에게 빵 터지는 사이다를 선사할 수 있는 요소. 빌런이 많을수록 히어로는 빛을 발하고, 그런 점에 있어서 현 상황은 히어로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으며, 또한 가장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젠장, 섭외팀은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방송을 하루이틀 한 것도 아니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한 섭외팀을 속으로 마른 오징어다리처럼 씹은 PD가 말을 끝맺었다.

"일단 미팅은 여기까지만 하죠. 판단은 인터뷰 영상이 다 들어온 다음에 다시 모여서 하는 걸로 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당장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결국 네 사람은 짧은 회의를 그만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가 되는 도가 되든, 이후의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건 인터뷰 촬영이 끝난 뒤가 될 것이다.

***

잠시 후. 시간이 흘러 각 가게에서 촬영한 인터뷰 영상을 모은 일행은 휴식을 끝내고 영상시청을 시작했다.

영상의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자신의 경력과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가게를 시작했을 때의 꿈과 이상, 그리고 현실의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

박종원의 모토인 '누구나 식당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실행에 옮겨선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집고 넘기기 위한 단계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큼 촬영지를 옮길 때마다 매번 등장한 장면이기에 골목 레스토랑의 애청자라면 질릴 법도 한 과정.

시청자가 그런데 연기자를 비롯한 방송팀은 오죽할까. 그들 사이에서도 이 시간은 분량을 때운다는 느낌이 유독 강한 순간이다.

그중에서도 수천 번은 이와 같은 영상을 접한 PD는 특히 그러했다. 지루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로 시간이 가지 않는 감각과 앞서 회의에서 언급한 문제까지. 다른 날보다 더한 골머리를 앓은 PD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면에서 눈을 돌리고 오디오에만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가게, 두 번째 가게, 세 번째, 네 번째.

계속해서 이어지는 영상을 살피던 그때, PD는 문득 각 가게의 인터뷰 영상 속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찾아냈다.

─어제 촬영분을 봐도 좀처럼 손님이 안 오시는데, 원래 이런 건가요?

─아뇨. 이상하게 요 근래에 손님이 통 없어요.

─근래에요? 언제부터요?

─어…… 글쎄요. 일주일 됐나?

영상 속에서 나눈 대화. 크게 특이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PD의 직감이 대화 속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며 경종을 울렸다.

'뭐지?'

그는 곧바로 영상팀을 찾아가 직접 다이얼을 쥐고 영상을 되풀이했다.

─언제부터요?

─어…… 글쎄요. 일주일 됐나?

'크게 이상한 건 없는데.'

대화를 아무리 다시 들어봐도 똑같았다.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대화. 잠시 머뭇거리던 PD는 이내 자신이 가진 영상이 이것 하나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다른 영상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발견해내고야 말았다.

─오늘도 어제랑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요.

─말도 마요. 원래 하루에 열 팀 정도는 오거든? 근데 저번 주부터 아예 뚝 떨어졌다니까. 어떤 날은 손님이 아예 없는 날도 있어!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이었던 분식집도.

─하루에 보통 손님이 얼마나 오세요?

─으음, 잘 되는 때엔 스무 팀이 넘는 날도 있었어요. 근데 요새는 이상하게 손님이 없네요. 한 일주일 전부터 손님이 점점 줄어들더라고.

두 번째 백반집도.

─일주일 전부터…….

─한 일주일 됐나…….

세 번째, 네 번째도. 남은 가게 전부.

총 여섯 곳에 달하는 인터뷰 영상 속에서 빠짐없이 한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일주일. 일주일 전부터 인터뷰를 딴 모든 가게의 매출이 확연히 줄었다.

'이거다!'

이 일주일에 숨겨진 비밀.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는 알 수 없어도 시청률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란 강렬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PD는 지체 없이 이 사실을 박종원에게도 알렸다.

"일주일이요?"

"예."

"흐음…… 알겠습니다. 알아보도록 할게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가게의 매출이 줄었다는 걸 알고도 아직까지 그 이유조차 모르는 사장들의 행동력이 한심할 지경이었으나, 이 또한 컨설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리라는 걸 박종원 또한 느꼈다.

'매출의 지속적인 감소…….'

이토록 급속도로, 꾸준히 매출이 감소한다면 보통 이유는 몇 가지 안 된다.

하나는 언론. 예전 대만 카스테라 사태나 조류독감, 돼지콜레라 등의 뉴스가 돌 때처럼, 어느 특정한 뉴스는 가게의 매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번에 매출에 영향을 받은 가게는 전부 다른 종류의 요리를 판매한다. 종목이 겹치지 않는 가게가 전부 매출이 줄었으니 이 경우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

그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더욱 곤란해진다. 오보로 인한 매출의 피해 정도는 같은 방송인 자신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직접 경쟁자와 싸워 이기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으니까.

"이건 직접 찾아봐야겠네요."

박종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를 따르는 촬영팀 또한 채비를 갖추고 따라나선다.

골목 상인들을 위협하는 단체 매출감소 사태. 그 원인을 찾아 나서기 위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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