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네거티브 힐링.-2-
출근 첫째 날.
평범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손님이 아닌 직원의 위치에 서서 바라본 주방은 놀랍도록 낯설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서 팬을 돌렸던 것 같은데, 그게 마치 수십 년은 지난 일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감정.
그런 미묘한 어색함도 찾아오시는 손님의 면면을 보고 곧장 풀렸다.
이 가게는 기본적으로 단골 장사라 찾아오는 얼굴이 대부분 익숙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중에는 특히나 반가운 사람도 몇 있었다.
"어? 찬혁이냐? 맞네! 찬혁이네! 류찬혁이, 돌아왔구나!"
"안녕하세요, 아저씨."
"난 네가 뭐 기숙사 딸린 학교에 갔다길래 대체 어디서 뭐하고 사나 걱정했더니 뜬금없이 TV에 나오더라? 거 참. 세상일 모르는 거야."
일한 기간이라고 해봐야 반년에 불과한 일터이긴 하지만, 이 좁은 동네에서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살았으니 이래저래 인연이 많다. 선연이든 악연이든. 날 보고 격하게 반기시는 이 아저씨도 그런 분이시다.
"서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잘 클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저 아저씨의 직업은 경찰이다. 예전에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수사를 담당했던 분. 아마 그때 자리에 모인 어른 중 유일하게 가장 중립적인 시선에서 사건을 보려고 노력하셨다.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떠올리면 굉장히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훈방조치 정도로 적당히 끝난 것도 이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편을 들어준 것도 아니고 고작 중립적으로 봐준 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어도 정작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가 상대의 편이란 걸 깨달았을 때의 무력감은 상상 이상이다.
그 참담한 심정 속,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어른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됐었다.
옛 추억을 회상하며 희미하게 웃는 내게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어때, 실력은 좀 나아졌냐?"
"예전처럼 돈 줘도 안 먹을 걸 만들 때보다야 훨씬 나아졌죠."
"하긴, TV까지 나갔으니 오죽하겠어. 오랜만에 네가 만든 거나 먹어보자."
"오늘은 고기로요? 아님 생선이요?"
"음…… 고기!"
"평소처럼 철판제육볶음이면 되죠? 매콤하게."
"바로 그거지."
주문이 들어왔으면 더 지체할 필요는 없다.
제육볶음은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다. 백반집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면 십중팔구는 반드시 메뉴에 있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분식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일 만큼.
만들기 쉽고 레시피 변조도 상당히 간단한 요리이기에 각 가게엔 저마다의 제육볶음 레시피가 있다. 그건 우리 가게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늘은 평소랑 조금 다르게 해볼까.'
살짝 중화 느낌을 곁들여서. 본래 함부로 레시피를 바꿔서 쓰는 건 어지간해서는 하면 안 되는 짓이지만, 저 아저씨는 여길 왔다 하면 열 번 중 여덟 번은 제육볶음만 드시니 오늘은 질리지 않도록 맛의 변화를 조금 줘보자.
먼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파와 마늘을 볶아 파기름을 뽑아준 뒤, 여기에 고춧가루를 먼저 살짝 집어넣어서 고추기름을 만든다.
그리고 얇게 썬 돼지 뒷다리살을 투입. 설탕, 소금, 후추를 적당량 뿌려 고기 자체에 먼저 간이 밸 수 있도록 볶다가 간장, 고추장, 식초, 설탕,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순서대로 넣고 센불로 단숨에 볶는다.
-치이이익!
음, 좋다. 이 지글지글 끓는 기름이 수분과 만나 튀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인생의 활력소가 되는 기분 좋은 소리다.
팬을 흔들 때는 재료가 살짝 공중에 떠서 불가를 스치도록 컨트롤. 흔히 말하는 불맛을 입히는 과정이다. 중화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지.
이제 미리 생선구이용 그릴에서 뜨겁게 달군 철판에 제육볶음을 옮겨 담으면 완성. 철판의 열기가 양념을 살짝 눌어붙게 만들수록 응축되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여기에 미리 만든 몇 종류의 밑반찬을 더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봉밥과 함께 세팅.
순식간에 끝난 요리를 직접 서빙하자 아저씨의 표정이 밝게 핀다.
"오, 벌써 나왔어?"
"간단한 요리잖아요."
"나 놀리냐? 나는 그 간단한 요리도 제대로 못 만든다고. 그나저나……."
킁킁. 한 차례 코를 벌름거리며 제육볶음의 농후한 향을 맡은 아저씨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감탄했다.
"오늘따라 더 맛있는 냄새가 나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그래야지. 아, 그러고 보니 방학 때는 계속 여기 있는 거냐?"
"예, 그럴 생각이에요. 용돈도 벌 겸 방학 때는 계속 나오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우리 아들딸들은 도통 제 용돈도 직접 안 벌고 아빠한테 손만 벌린단 말이지. 나도 그렇게 잘 버는 건 아닌데 언제쯤 철이 들 건지…… 음?"
여느 때처럼 자식 자랑인지 불평인지 모를 말을 쏟아내며 고기를 집어 입으로 넣은 아저씨의 몸이, 한순간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 마냥 움찔! 하고 정지했다.
"어, 어…… 어? 어……."
"아저씨?"
꼭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외마디 말을 되풀이하는 아저씨. 뼈라도 씹은 건가 싶어 아저씨를 부른 그 순간, 그의 몸이 마치 과전류를 넣은 모터라도 된 듯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저를 들고, 비벼 먹는 데 사용하게끔 첨부한 빈 대접에 제육볶음과 밥을 쏟아붓고는 쓱싹쓱싹 비비더니, 이내 같이 준 포장김까지 잘게 부수어 넣고는 누가 훔쳐갈세라 숨이 가빠지도록 입에 욱여넣는다.
"아, 아저씨?"
"음! 음음!"
"예? 아, 물이요?"
"음!"
거 참. 다 먹고 말씀하시지.
원래는 셀프인 물을 컵도 아닌 대접으로 떠 갖다 주니, 그새 대접을 비워 버린 아저씨는 대접을 뺏어가듯 잡아채곤 꿀꺽꿀꺽 시원하게도 들이켠다.
"크아! 좋다!"
"뭘 그리 급하게 드세요. 긴급출동이라도 하셔야 해요?"
종종 있던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와서도 무전기에 노이즈라도 한 번 섞이면 양이 얼마나 남았든 3분 안에 식사를 해치우시는 게 일상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 나도 이후 이어진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한 그릇 더!"
"예?"
아저씨는 본래 예전부터 한 그릇 이상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다. 간신히 뺀 뱃살이 다시 돌아오지 않게끔 하자는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했던가. 그런 아저씨가 두 그릇째 주문을 시키는 건 여기서 일한 반년 중 처음 보는 사건이었다.
"얼른!"
"아, 예!"
당황스럽지만 주문은 주문. 못 들은 척 넘길 수는 없지.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반찬그릇까지 깔끔하게 비운 접시를 다시 들고 온 뒤, 이전과 완벽히 똑같은 구성으로 채운 한 상을 갖고 가자 아저씨는 이번에도 똑같이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웠다.
잠시 후, 식후 커피로 식사를 마무리 한 아저씨가 경탄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찬혁이 너 진짜 몰라보겠다. 예전에 해줬던 것도 제법 맛있었는데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 되네."
"감사합니다."
"괜히 방송 같은 데 나오던 게 아니구나.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자, 여기. 거스름돈은 가지고."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가 넘긴 돈은 2만원. 제육볶음 정식이 8천원인 걸 생각하면 2인분을 시켰으니 4천원이 남는다.
"아니에요. 거스름돈은 잘 챙겨가셔야죠."
"그냥 받아. 맘 같아선 용돈으로 더 챙겨주고 싶은데 참는 거야."
월급날 직전이라 지갑에 돈이 뚝 떨어졌다며 울상을 짓는 아저씨. 그럼에도 내게 내민 손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주시는 걸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니 그제야 아저씨의 얼굴이 핀다.
"그럼 가보마. 아,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랬지?"
"1월 말까지는 계속 있어요."
"…… 그래? 알겠다."
그럼 당분간 점심은 계속 외식이겠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저씨는 가게를 떠났다.
조금 영문 모를 일이긴 했지만, 이건 아저씨 나름의 칭찬이라도 봐도 되는 걸까. 세종대왕 님 두 분을 얌전히 돈 통에 넣으며 나는 오늘의 첫 번째 손님을 떠나보낸다.
-딸랑!
"아, 어서 오세요!"
식당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누군가가 가면 누군가가 와서 빈자리를 메꾼다. 옳게 된 동네 밥집이란 그런 법이다. 짧은 쓸쓸함이 스칠지언정 영영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
첫째 날의 영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받은 고객은 약 서른 팀. 적당하다면 적당한 숫자다. 평균보다 살짝 더 많은 수준일까. 월요일이란 걸 감안해도 괜찮은 수치였다.
"야, 오늘도 제법 바빴네."
"그러게요."
사장님의 엄살에 맞장구를 친다. 여태껏 일한 식당에 비하면 확연히 손님의 숫자가 적지만, 그런 곳과 이 가게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실례다. 애당초 일하는 직원의 수만 해도 가장 적은 곳이 최소 이 가게의 열 배는 될 테니까.
'내가 여기 온 이유부터가 그것 때문이기도 하고.'
이 정도 업무 강도면 충분히 편한 수준이다. 힐링이 따로 있는가. 편하게 돈 벌면 그게 바로 힐링이지.
"오늘 먹는 손님마다 다 맛있다고 난리더라. 잘 키운 알바 하나 열 손님 거뜬하단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런 말 없어요."
흰소리 좀 그만하라는 눈치에 사장님이 멋쩍게 웃었다. 하여튼 이 아저씨도 도통 변한 게 없다.
"매일 이만큼만 꾸준하게 팔려주면 진짜 바랄 게 없겠다."
"정말로요."
아마 사장님과 나는 지금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겠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매출 장부를 정리하며 웃는 사장님과 늦은 저녁, 아니. 이미 야식이 되어 버린 식사를 함께하는 나 또한 함께 웃었다.
아, 이거다. 역시 여기로 오길 잘했어.
나는 참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 그런 착각이 깨지는 건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출근 이틀 차와 사흘 차도 영업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뭔가 묘한데…….'
무어라 확실히 이거다! 하고 설명은 못 하겠지만, 뭔가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오늘은 마흔 팀이나 되네. 생각보다 많이 팔았어."
"…… 그래요?"
이틀 차는 첫날에 비해, 사흘 차는 이틀 차에 비해 조금씩 매출이 늘어났다.
이게 유의미한 변화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은 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장부에 쓰인 단순한 숫자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이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꼭…….'
무언가의 전조 현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홍수가 오기 전 동물이나 곤충 따위가 거처를 옮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영문 모를 불안감이 마음속에 싹텄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내 마음속에 살짝 피어났던 불안은 이윽고 현실로 만개하여 내게 닥쳐들었다.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 장부를 살피는 사장님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세, 세상에……! 찬혁아, 믿겨지냐? 일 평균 대비 매출이 두 배가 넘게 찍혔어!"
"…… 아, 예. 그러네요."
어째서야.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
공황상태에 빠진 나의 갈 곳 없는 함성이 내 마음속을 메아리친다. 대체 난 언제부터 선택을 잘못한 거지? 이대로 사장님 해피엔딩 루트로 갈 수는 없단 말이다!
오호 통재라. 하늘도 무심하게 그런 내 소리 없는 반항은 이어지는 쐐기의 연쇄로 인해 순식간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사장님, 그거 알아요? 조만간 요 근처에서 무슨 방송 촬영을 한다는데요."
"예? 진짜요? 무슨 방송이랍니까?"
"사장님도 잘 알 것 같은데. 왜, 박종원의 골목 레스토랑이라고."
"와, 진짜요? 저 그거 되게 자주 보는데."
"잘 하면 사장님도 방송 타는 거 아니에요? 방송만 한 번 나갔다 하면 손님이 벌떼처럼 몰리잖아요."
"아하하, 정말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뭐…… 라고?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모략이다. 누군가 내 힐링을 방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단지 그런 근거 없는 믿음만이 내 마음을 좀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