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78화 (178/403)

178. 컴플레인 액시던트.-2-

"브레이크 타임 때 교장실로 오도록 해요. 이야기는 그때 합시다."

그 한마디 말만을 남긴 채, 교장 선생님은 주방을 떠나셨다.

지금 내가 빠지면 주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걸 알고 계시기에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겠지. 감사한 배려였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골치 아파진 상황에 작게 한숨을 내뱉던 때, 누군가가 내 옆에 서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죄, 죄송해요……."

"응?"

시선이 향하기 무섭게 머리를 깊게 숙이는 사람. 뭔가 했더니 아까 그 진상을 상대했던 홀 팀의 김서령이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안쓰러워 곧바로 일으켜세웠다.

"죄송할 게 뭐가 있습니까. 얼른 고개 드세요."

"그치만 저 때문에 셰프가……!"

"지금 여기서 잘못한 사람은 김서령 서버가 아닙니다. 되도 않는 컴플레인을 건 고객이랑 이성적인 대처를 못한 제 잘못이죠. 그러니까 괜찮아요."

연달아 괜찮다며 연호하니 그제야 김서령 서버도 고개를 든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맺히니 정말 사슴 같은 눈이 따로 없었다.

"이만 가보세요. 적당히 추스른 뒤에 복귀 부탁드립니다."

"…… 예, 감사합니다. 셰프."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축객령을 빙자한 배려를 순수히 받아들인 그녀가 다시 한번 깊게 고개를 숙이곤 떠났다. 하, 일단 이걸로 간단히 정리는 됐나.

한층 후련해진 심정으로 뒷문을 통해 나가는 김서령의 뒷모습을 잠시 눈에 담은 뒤, 아크릴창 건너에서 홀 정리를 지시하던 하유리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하유리 팀장님. 남은 정리도 마저 부탁드릴게요."

"알겠어. 손님들 분위기도 꽤 어수선한데, 저건 어떻게 할까?"

"음…… 서비스도 조금 늦어졌으니 홀에서 여력이 된다면 시간을 끌어주실 수 있나요? 음료 서비스라든가."

"그 정도는 문제없어. 우리 애들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 그리고 김서령 서버가 돌아오면 케어도 좀……."

"말 안 해도 할 거야.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우리 애 감싸준 것도."

"이러라고 있는 헤드니까요."

하유리 팀장처럼 말이 잘 통하는 동료가 있으면 어깨의 짐을 더는 기분이다.

홀은 주방에 비하면 대인 서비스로 쌓이는 스트레스가 높은 만큼 팀장의 직원 케어 능력 또한 중요하다. 오히려 손님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팀장도 종종 있지만, 적어도 하유리 팀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자, 그럼……."

홀 팀장의 역량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이젠 헤드 셰프의 역할에 충실할 때.

방치되어 있던 앞치마와 조리모를 다시 챙겨 입는다.

밀리고 쌓인 주문이라는 이름의 산과, 그 뒤에서 날 기다릴 개인 면담이라는 봉우리.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

"후……."

결국 이 시간이 왔나.

나는 속으로 작게 한탄하곤 내 앞을 가로막은 높다란 벽. 아니, 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교장실. 고풍스런 빛깔의 마호가니 문 위에 달린 상아색 명패에 적힌 세 음절 낱말에 내 가슴이 절로 무거워진다.

여태껏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헤드 셰프에게는 주방과 홀의 관리 외에도 또 다른 의무가 있다.

'이걸 의무라고 불러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건 바로 오너의 잔소리를 듣는 것.

가게를 소유한 오너 셰프라면 모를까, 모든 레스토랑의 오너가 엄청난 요리사인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이 가진 땅의 입지와 건물의 여건이 죽여주게 좋아서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사람도 있다.

…… 사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요리사가 아닌 사장이 훨씬 많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애당초 월급쟁이 요리사라는 게 고급 레스토랑을 떡하니 지을 만큼 돈을 잘 버는 직업도 아니라.

아무튼, 그런 업장의 헤드 셰프는 기본적으로 실무진 중에서는 1인자가 맞지만, 업장 전체의 권력순위를 따졌을 때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업장 전체의 권력순위란 어떤지 아는가?

손님이 1위, 사장이 2위이며 헤드 셰프는 3위에 불과하다. 콩조차 될 수 없는 신세다 이거지.

중간관리직의 비애 같은 건 요즘에는 식상해진 이야기지만, 정작 그 주인공이 되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게 된다.

특히 헤드 셰프라는 직책 자체의 특수성도 그런 고달픔에 한몫한다.

헤드 셰프가 있는 업장의 경우 사장은 실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 사무 정도나 하면 다행이지. 그렇기에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헤드 셰프와 자잘한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뭐, 말하자면 생긴 게 전혀 다른 톱니바퀴가 서로 부대끼는 꼴이니 잘 돌아갈 리가 없지만.

그러나 결국 갑은 사장, 을은 셰프. 갑을 관계는 항상 을이 더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셰프가 이름만 들어도 만인이 알만큼 유명한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다른 사람 가게에서 일을 할까? 그 정도 수준의 셰프라면 진즉 자기 가게를 가진 사람이다.

요컨대, 헤드 셰프는 실무진을 대표해서 사장을 들이박고 된통 깨지는 역할을 맡는, 맡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한때 헤드 대리를 한 적도 있으니 그런 노고에는 익숙하다. 이번 경우는 나도 잘못이 있는 거니까 좀 다르긴 하지만.

그나마 교장 선생님은 그런 사장들과는 달리 실무에도 비할 데 없이 정통하신 분이니까, 부디 선처를 바랄 수밖에.

어떤 쓴소리를 듣더라도 하는 수 없지.

─똑똑

"교장 선생님. 1학년 팀장 류찬혁입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두터운 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교장 선생님의 대답이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두꺼운 목재 특유의 묵직함이 꼭 내 가슴 위에 얹힌 무게추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열리는 감각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어서 와요. 거기 앉으세요."

"예."

교장실에 온 게 처음은 아니었으나, 혼나러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기에 어딘가 느낌이 새롭다. 좋은 의미로 새로운 건 아니지만.

교장 선생님이 가리킨 손님용 소파에 앉자, 선생님은 내 앞에 직접 끓인 홍차와 다과를 내려놓았다.

"드세요. 일하느라 밥도 못 먹어서 배고플 텐데."

"아니에요. 나름 일하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어서."

"류찬혁 학생 나이에 그걸로 성에 차겠어요?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 어라? 이거 생각보다 분위기 괜찮지 않나?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여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 살짝 긴장이 풀렸지만, 그렇다고 한가하게 과자나 먹을 만큼은 아니었기에 얌전히 홍차만 홀짝였다.

뜨거운 차를 후룩거리며 몇 모금 마시니 바깥공기에 식었던 속에 온기가 도는 게 느껴진다. 찻잎도 고급품인지 적당한 동네 카페에서 가끔 맡는 것보다 배는 진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켜주었다.

"감사합니다. 엄청 맛있어요."

"고마워요. 홍차는 최근에 연습하기 시작한 취미라 입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취미 수준이라니. 아무리 취미라도 교장 선생님 정도 되는 분이 정성을 쏟으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맛이다.

그렇게 온기와 맛에 취해 나도 모르게 정신무장이 느슨하게 풀린 그때, 교장 선생님이 돌연 말씀을 시작했다.

"식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듣고 싶네요."

분위기가 일변했다. 방금까지의 그 부드러움은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 마냥 완벽히 싸늘하게.

한순간 내가 어디 취조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앉은 곳은 소파가 아니라 철제 접이식 의자고, 내 앞에 놓인 차와 다과가 차게 식은 배달 설렁탕처럼 느껴질 정도로 냉랭한 목소리.

순식간에 정신을 바짝 차린 나는 막 생활관에 들어가 앉은 이등병 못지않은 정자세가 된 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에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럴 때 괜히 자신을 변호한답시고 상대를 나쁜 놈으로 몰아가면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뭣보다 교장 선생님 또한 그런 태도를 그리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다.

"…… 그렇게 된 거로군요."

잠시 후, 설명이 끝나자 교장 선생님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 아마 당신이 생각해도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게 누군지는 명백했을 테니까.

교장 선생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연히 그저 알겠다며 넘어가시지는 않았다.

"우선, 류찬혁 학생도 자신이 한 대응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 예."

분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서비스업의 세계란 본디 그런 곳이다.

"저희 같은 사람의 사고는 언제나 고객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객이 어떤 맛을 좋아하실지, 어떤 걸 드실 수 없는지, 어떤 걸 불편해하시는지,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합당한지. 스스로의 신념과 기치를 내거는 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이죠."

교장 선생님은 목을 축인 뒤 말씀을 이어나갔다.

"대회반 중에서도 실무에 가장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류찬혁 학생이니만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기에 교육자인 저는 더더욱 류찬혁 학생을 마냥 칭찬해줄 순 없습니다. 학생의 치기와 프로의 오만은 달라요. 저희에게 고객을 선택할 권리는 없습니다. 류찬혁 학생은 오늘 자신의 선택으로 평생토록 고객 한 사람을 잃게 됐어요. 분명 그분이 좋은 고객은 아니었을지라도, 고객이 가진 가능성을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길 바랍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걱정되는 건 류찬혁 학생이 적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적. 21세기에 와서는 어딘가 생소한 낱말이지만, 그 속뜻을 모를 만큼 어수룩하진 않다.

"앞으로 류찬혁 학생이 무엇을 하든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될 겁니다. 어디선가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다면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고, 실패를 겪는다면 그걸 보고 비웃겠죠. 각박한 사회에서 그런 상대를 만드는 건 현명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류찬혁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제, 미래요?"

"예. 류찬혁 학생은 뛰어난 사람이에요.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는 법이죠. 분명 류찬혁 학생은 미래에 저보다도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심해야 해요. 누군가는 자기보다 월등한 이를 보며 이유 없는 적의를 갖기도 합니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맹목적으로 류찬혁 학생의 앞길을 막으려 들죠."

그러니.

짧은 추임새를 넣은 교장 선생님의 명정明正한 눈빛이 날 향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덜미를 잡힐 구실을 만들지 마세요. 오늘 일은 류찬혁 학생에게 의가 있으니 반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완벽한 인생을 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에게 부끄러운 행동만큼은 해선 안 됩니다."

"네."

"좋아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날 때쯤이 되니, 손에 들린 잔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빈 찻잔이 접시와 닿아 맑은 울림을 자아낸다.

"이만 돌아가 봐도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말로만 훈계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죠. 다음 주 월요일까지 반성문 한 장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교직원임을 뜻하는 명찰을 옷에서 떼어놓으시고는 말을 이었다.

"보호자로서, 류찬혁 학생의 행동에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는 고객에게 즐거움을 서비스하는 사람이지,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에요. 학생을 대표해 떳떳하게 나서줘서 고마워요."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인 교장 선생님은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시더니, 그걸 그대로 내게 쥐여주셨다.

설마 돈?…… 은 아니다. 촉감과 사이즈가 전혀 다르다.

"축하합니다. 3일 연속 중간 만족도 평가에서 교내 이벤트 중 최고점이 나왔더군요. 이건 가설식당 팀원들과 함께 나눠 가지도록 하세요."

체크가 잘못 되어 있던 한 장은 오류인 것 같아 자신이 처분했다며 웃으시는 교장 선생님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장난기가 배어 있었다.

"…… 아무래도, 그 손님은 수전증이 꽤 심한 분이었나 보네요."

"정말, 누가 아니랍니까."

그런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오랜만에 장난기어린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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