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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76화 (176/403)

176. 학교는 언제나 파티 뒤 호러.-3-

백예은은 이른바 천재라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또래 평균에 비해 공부 머리가 아주 좋은 편에 속하며, 어린 시절부터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왔기에 초등학교 입학 후 고등학생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위 5% 이하로 내려온 적이 없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백예은 자신이 그런 재능보다 더욱 대단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다. 분위기를 잘 읽는다고 보아도 좋다.

대화에 끼거나 교우를 쌓는 것에 한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이라 불리는 장르 전반에 대한 센스. 그게 바로 백예은이 가진 특유의 강점 중 하나다.

그렇기에, 백예은은 자신이 뽑은 제비를 보자마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알아챘다.

─당신은 임포스터입니다.

"…… 헤에."

짝을 짓는 번호와 미션이 적힌 곳 아래에 추신을 덧붙이듯 쓰인 단출한 한마디 문장.

그 아래로 도움이 되는 정보 몇 마디가 추가로 쓰여 있긴 했으나, 그녀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기에는 오직 그뿐이면 충분했다.

임포스터imposter.

사전적 의미로는 사기꾼, 협잡꾼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이나, 최근 그녀 또래를 비롯한 2030세대에게 그 단어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세간에 유행하는 일종의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의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의 명칭이 바로 임포스터. 즉, 그녀는 바로 조에 끼어든 스파이이자 X맨인 셈이었다.

'아니, X걸인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백예은은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제비 중에 이런 게 있다는 건…….'

적으면 최소 몇 명, 많으면 반 아이들의 반절은 그녀와 같은 임포스터라는 뜻.

담력시험 같은 고리타분한 게임인 주제에 제법 머리를 굴렸다고 생각하며 백예은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성숙한 면이 있다 하여도 결국 그녀도 학생. 이런 재미난 장난을 칠 기회를 얌전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더 잘 골려줄 수 있을까.

백예은은 그 음흉한 속내를 바로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장난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도 한몫 했겠지만, 그녀 또한 몇 주 동안 이어진 고생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리프레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보다 더 큰 이유였다.

그렇게 잘 마른 장작에 불씨를 놓은 듯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기 시작한 그녀의 의욕에 기름을 붓다 못해 드럼통 째로 끼얹은 이가 있었으니.

무엇을 숨기랴. 바로 그녀의 장난에 놀아날 가련한 희생양이 될 짝이 다름 아닌 찬혁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이란 보통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기 보단 가까운 사이인 사람에게 하는 것이 더 재미난 법이다. 평범한 모럴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러리라.

백예은이 아무리 영특한 아이라 해도 그런 부분에서는 다른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 그녀가 또래 아이에 비해 월등히 머리가 잘 굴러간다는 것이야말로 찬혁에게 있어선 가장 큰 문제였다.

"히힛."

"뭐야, 왜 웃어?"

"혁이랑 같은 조라서?"

"의문문에 의문문으로 답하지 말라고."

찬혁이 짝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제비를 펼친 직후부터 백예은의 두뇌는 사냥감을 점찍은 치타마냥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4층의 남성 교직원 화장실의 네 번째 변기칸이라는 지리적 특성.

비상구 표시등을 제외한 모든 전등이 꺼진 극히 제한되는 시야.

미션 장소 바로 근처에 있는 여성 교직원 화장실에 마련해두었다는 소품.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공포에 취약한 찬혁의 반응까지.

전술의 신이라 불렸던 나폴레옹 부럽지 않은 천재적 발상이 백예은의 머리에서 홍수처럼 솟아올랐다.

완벽한 작전이다.

자화자찬이었지만, 참으로 옳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작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성심고 7대 불가사의 몰라?"

"…… 그런 게 있었어?

하나. 즉흥적으로 떠올린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시나리오.

"꺄아아악!"

─꽈아앙!

"무, 뭐야?!"

둘. 비명과 잠긴 문이라는 연출로 끌어올린 긴장감.

─깜빡. 깜빡깜빡.

"…… 저건 또 뭐야."

셋.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된 손전등을 이용한 양동.

─똑. 똑.

"……?!"

넷. 미리 안배한 배경 시나리오의 장치를 응용한 공포의 증폭.

"후욱."

"흐어윽!"

다섯. 소품을 이용해 변장하여 화룡점정을 찍고. 마지막으로…….

─동영상 녹화가 종료되었습니다.

"흐, 흐힛……!"

"…… 뭐?"

이 모든 작전을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수행해낸 자신을 위한 포상까지.

실익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기고 환한 웃음을 짓는 백예은과, 허탈함과 황당함, 공포와 분노. 그 외에도 온갖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은 찬혁이 서로를 마주 봤다.

***

"오호라, 그랬단 말이지."

상황을 대충 정리한 뒤, 우리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같은 차림으로 화장실 앞에 섰다.

내 손에는 백예은에게서 뺏은 종이쪽지가 하나. 조 추첨 시간 때 녀석이 뽑은 제비다.

"에헤."

"에헤가 뭐야 에헤가."

아주 그냥 비상식량마냥 끓는 냄비에 갖다 박아 버릴라.

웃음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려 애쓰는 백예 에 적당한 힘으로 딱밤을 먹여준 뒤, 손에 들린 제비를 사정없이 구겼다.

"아얏!"

"사람 놀려 먹으니까 좋냐."

"으으, 나도 시켜서 한 거란 말이야!"

"웃기시네."

카메라까지 꺼내 들어 촬영한 녀석이 잘도 그딴 소리를.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그나저나…… 젠장. 모조리 한통속이었다 이거지.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그런 영화나 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거적때기 망토 같은 게 갖고 싶다고 그리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일 리가 없으니까.

"그거 말고도 많이 있었어! 피 묻은 간호사복에 붕대가 둘둘 감긴 실리콘 마스크 같은 거! 아, 나무로 만든 가짜 식칼도 있었다? 색은 완전 진짜 같더라."

화장실이 아니라 양호실이었다면 그걸 썼을 것이라며 아쉬운 척하는 녀석의 마빡에 다시 한번 딱밤을 갈겼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빨갛게 부었지만 알 게 뭐야. 전부 이 녀석이 나쁜 거다. 나는 나쁘지 않아.

"이런 악랄한 짓을 잘도 하는구만."

대부분의 공포계열 서브컬쳐에서 최후의 2인이란 말 그대로 운명공동체다. 가끔 어느 한쪽이 사실 귀신이었다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귀신에 홀려 있었다거나 하는 클리셰도 있긴 하지만 설마 담력시험 같은 이벤트에서 그걸 당할 줄이야.

아마 인력소모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 같긴 한데, 내가 잘 놀라는 편이라는 걸 빼고도 효과가 과하게 좋았다.

서로를 전적으로 믿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 사이에 배신자를 섞어놓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그 상황에서 누가 안 놀라겠냐고.

"거기다 나도 엄청 잘 속였…… 그만! 이제 딱밤 싫어! 혹 난단 말야!"

"싫으면 입 다물고 있자."

"너무해……."

불쌍한 척하지 마라. 그게 다 네 업 보니까.

투표수만 안 밀렸으면 지금쯤 너는 용암 속이나 우주선 바깥이었단 걸 확실히 기억해두라고.

"아무튼 이제 다 끝난 거 맞지?"

"그렇겠지? 따로 더 나올 것도 없으니까."

"그럼 가자. 볼일 다 봤잖아."

"응!"

상쾌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백예은의 행동거지에 또다시 열불이 터질 뻔했지만,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여길 나가고 싶으니 일단 참았다.

"근데 혁아. 미션 물품은?"

"미션? 아. 뭐 갖고 오라던 거?"

"응. 왜 안 들고 있어? 어디 떨어뜨린 거야?"

"없던데? 원래 아무것도 안 놔둔 것 같더라고."

"진짜? 근데 다른 애들은 다 갖고 왔잖아."

"어…… 그러네?"

생각해 보면 우리보다 앞서 반으로 복귀한 팀은 분명 뭔가를 가져오긴 했었다. 소금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항아리나 조잡하게 만든 부적, 혹은 십자가 같은 것을 말이다.

"이상하네.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

"왠지 오래 걸린다 했더니 계속 찾고 있던 거였어?"

"어. 수조까지 전부 열어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혹시 소품박스에 뭔가 들어있지 않았느냐는 내 질문에 백예은은 고개를 저었다.

"소품이 많긴 했는데, 표시된 건 하나도 없었어."

갖고 돌아가야 하는 물건의 어딘가에는 미션물품이라는 표시가 있다고 했으니, 백예은의 말이 맞는다면 소품박스에는 미션 물품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처음 내가 생각한 대로 운영위원 측에서 소품배치를 깜박 잊은 게 맞을 것이다.

"…… 아니,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내 스스로 말하면서도 말의 모순을 느낀다.

미션지역 옆에 변장용 소품박스를 준비해놨으면서 정작 미션지역에 가져갈 물품을 배치하는 걸 까먹는다?

'앞뒤가 안 맞잖아.'

소품박스를 가져다 놨다면 당연히 남자 화장실에도 배치가 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백예은 또한 그런 상황에 의아함을 느낀 듯 내게 질문을 건넸다.

"혁이 너 정말 잘 찾아본 거 맞아?"

"진짜라니까."

미심쩍다는 듯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화장실 방향이다.

"다시 찾아보자. 너무 어두워서 미처 못 본 걸 수도 있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예은은 이미 남자 화장실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는 남자 화장실이라 못 들어간다고 뻐겼으면서.'

그래도 혼자 찾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 또한 녀석의 뒤를 따랐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여전히 어두컴컴한 화장실. 날 속일 때 썼던 손전등을 든 백예은은 자연스럽게 화장실 가장 안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난 여기서부터 찾아볼게. 혁이는 거기서부터 봐봐."

"오케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주도하는 백예은을 따라 다시 한번 처음 확인했었던 변기칸의 문을 열었다.

"없는데."

결과는 뭐, 말할 것도 없이 똑같았다. 변기 위, 수조 안, 옷걸이와 휴지걸이. 심지어 변기 뒤쪽의 가려진 부분까지 손전등을 비춰가며 찾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다.

1번 칸에서 물건을 찾는 것은 포기하자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그때, 갑자기 옆 쪽에서 백예은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찾았다!"

"뭐?"

말도 안 돼. 이렇게 벌써?

깜짝 놀라 칸에서 빠져나온 나는 백예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반대쪽 끝에서 두 번째 칸. 내가 조사한 곳부터 세면 네 번째 칸인 곳이다.

"찾았다고?"

"응. 이거 맞지? 엄청 대놓고 올라가 있던데?"

"뭐야 대체."

이상하다. 분명 아까 조사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날 향해 내민 백예은의 손에는 분명 처음 보는 물건이 들려 있었다.

여기저기 헤진 실밥과 솜이 튀어나온 손바닥 크기의 작은 인형. 마치 몇 년은 먼지구덩이에서 뒹군 것 마냥 잔뜩 흙먼지를 뒤집어쓴 추레한 몰골이었지만, 상태가 깨끗했다면 제법 귀여웠을 것 같은. 손때가 가득 묻은 체크무늬 드레스를 입은 자그마한 여자아이 인형이었다.

"여기 봐봐."

"'Bring it back'……?"

인형이 입은 드레스자락에 적힌 글자는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인형에 직접 글씨를 적어 넣은 듯 보였다. 갖고 돌아오라니. 아무리 봐도 미션물품을 표시해둔 것이 분명한 듯 싶다.

내게 내민 인형을 다시 제 품으로 회수한 백예은은 여봐란 듯 나를 다그쳤다.

"제대로 안 찾은 거 맞잖아!"

"아니, 어이가 없네. 이게 어디 있었다고?"

"그냥 변기 위에 올라가 있었어."

"…… 진짜 이상하네."

그걸 내가 발견 못 했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백예은은 이미 내 말을 믿을 생각이 사라졌는지, 자신이 찾은 인형을 챙기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앞서 화장실을 나가 버렸다.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된 나는 그저 억울한 마음을 꾹 삼키고 묵묵히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되게 중요한 걸 하나 까먹었었네.

"야. 근데 영상은 왜 찍은 거야?"

"음…… 그냥?"

"…… 그럼 좀 지워주면 안 되냐?"

"싫어. 기분 우울해질 때마다 보면서 힐링할 거야."

"그게 무슨 놈의 힐링이 된다고……."

"아, 한다면 하는 거야! 소문나기 싫으면 처신 잘해!"

"…… 그래, 알겠다."

젠장. 꼴받네 진짜.

***

잠시 후. 가져온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운영위원을 찾아온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와 맞닥뜨렸다.

"응? 이건 뭐니?"

"4층 남성 교직원 화장실에서 가져온 미션물품인데요."

"4층 교직원 화장실? 아. 그 4번 칸?"

"예. 거기요."

"그래그래. 확인해줄게. 어디 보자……."

잠시 뜸을 들이며 우리가 챙겨온 인형을 들고 물품명단과 사진이 찍힌 인쇄물과 교차검증을 하던 운영위원이 이내 의문 섞인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띄우는 우리를 향해 운영위원이 질문을 던졌다.

"어라? 4층 교직원 화장실에서 가져왔다고 했지?"

"예."

"이상하네. 여기 보니까 거기서 가져와야 할 물건은 이게 아닌데?"

"예?"

"진짜요?"

나와 백예은은 동시에 인쇄물에 달려들어 종이를 넘겼다. 4층, 4층…… 아, 이거다.

"어라?"

"진짜네?"

운영위원의 말대로, 인쇄물에 기록된 물품은 우리가 가져온 것과는 다르게 생긴 물건이었다. 같은 인형이긴 하지만, 인쇄물에 찍힌 사진에 보이는 인형은 생김새나 청결상태부터가 전혀 달랐으니까.

"게다가 우리는 표시를 전부 도장으로 남기거든. 이거 봐봐."

"…… 그러네요."

그 말대로, 사진에 찍힌 인형의 뺨에는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가 가져온 인형은 드레스자락에 문구가 쓰여 있을 뿐. 이 두 인형을 비교하면 아무리 봐도 사진 속에 나온 인형이 훨씬 미션물품 다운 생김새였다.

"이걸 어쩐다……."

그걸 우리한테 묻지 말아줬으면 한다. 거길 다시 다녀오는 건 사양이다.

그런 우리의 바람이 통했는지, 운영위원은 하는 수 없다며 우리가 가져온 인형을 챙겨들었다.

"이미 가져온 건데 어쩌겠어. 그냥 이걸로 대신한다 치자."

"감사합니다."

다행히 다시 거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체력과 정신을 가리지 않고 소모시키는 그곳에 재차 다녀오는 건 사양이다.

"잘됐네. 다시 안 가서."

백예은은 안도의 한숨을 뱉는 나를 보며 놀리는 투로 말했지만, 나는 그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녀석을 외면한 채 앞으로 걸을 뿐이었다.

"얘! 그거 어디서 났어?!"

그때, 갑자기 뒤에서 그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와 백예은의 시선이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운영위원회를 담당하는 어느 선생님. 그 당황한 표정을 본 우리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서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그거 어디서 났냐니까?"

이제는 목소리까지 떠는 선생님의 시선은, 다름 아닌 우리가 가져온 낡은 인형을 향하고 있었다.

"이거요? 방금 담력시험 다녀온 애들이 가져온 건데요. 왜 그러세요?"

"그, 그거! 그거 분명 내가 몇 년 전에 담력시험 소품으로 썼다 잃어버린 거란 말이야! 어, 어디서 가져온 거라고?"

"4층에 교직원 화장실이요."

"4층? 설마 남성 교직원 화장실 4번 변기칸?!"

"그, 그렇다고 하던데요……?"

"거기 예전에 유령 나온다고 소문난 우리 학교 괴담 스팟이잖아?! 저것도 거기 뒀다가 사라진 거였어! 누가 거길 고른 거야?!"

"저는 아, 아닌데요."

"저도요……!"

"근데 대체 왜 거기가 미션 장소로……! 이, 이럴 때가 아냐. 어, 어떡하지……?! 버려야, 아니 버리면 또……!"

…… 아수라장이 따로 없구만.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버린 현장을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눈알을 굴려 백예은을 바라봤다. 아, 이 녀석도 넋이 나가 있네.

"…… 야."

"…… 응?"

"불가사의, 뻥이라며."

"…… 나는, 그랬는데."

"…… 튈까?"

끄덕.

녀석의 고개가 작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래. 튀자. 우린 이 상황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다.

잠시 흔들렸던 우리 사이의 유대감이, 다시금 끈끈하게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 옛 사람 말 중에 틀린 말 하나 없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듯하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군자는 위험한 벽 아래 서지 않는다君子不立危墙之下.

맹자님. 당신은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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