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75화 (175/403)

175. 학교는 언제나 파티 뒤 호러.-2-

─끼이익.

오늘따라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밀어 입구의 틈새를 살짝 벌린 나는 들어가기에 앞서 틈새로 보이는 화장실 내부를 손전등으로 샅샅이 비췄다.

"뭐해?"

"누가 뭐 설치해둔 거 없나 살피는 중."

안 그래도 여기 도착할 때까지 이렇다 할 일이 없던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여기가 제비에 쓰여 있던 미션 구역이란 걸 생각하면 분명 뭐가 있을 게 틀림없다.

"보이는 거 있어?"

"아니."

그런데, 어째 아무리 살펴도 딱히 보이는 게 없다.

가장 주의해야 할 입구도 깨끗하고, 벽이나 천장에 뭔가 설치된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의심스러운 곳은 저긴데…….'

손전등을 움직여 화장실 안쪽의 변기칸이 있는 곳을 비췄지만, 굳게 닫힌 문 탓에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씁."

하는 수 없지.

일단 저 안에 있다는 물건을 갖고 나와야 이런 지겨운 짓도 그만둘 수 있을 터. 각오를 굳히자. 이젠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탐색은 이쯤 하자."

"들어가게?"

"어."

뭐가 나와 봤자 끽해야 분장한 사람이겠지.

깔끔하게 한번 놀라고 얼른 끝내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 훨씬 이로우리라는 판단 아래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

조용하다.

손전등 불빛이 없다면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달빛 한 줄기 들지 않는 화장실에는 염소 소독약 냄새와 방향제 향기만이 감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소리라고는 물펌프가 돌아가는 미세한 모터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숨어 있는 누군가의 숨소리나 발소리, 옷 스치는 소리 따위도 전혀 나지 않는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게 안 들려서 다행이라는 감상은, 몰래 마음속으로 감췄다.

"다녀올게. 기다리고 있어."

"응! 나올 때까지 노래라도 불러줄까?"

"필요 없어."

왠지 모르게 한껏 들뜬 기색을 내비치는 백예은이 오늘따라 밉상스런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살짝 이마에 핏줄이 솟았으나 이내 화를 가라앉혔다. 하긴, 이놈이 얄미운 짓을 하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천천히,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가장 먼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이쯤에 있을 텐데…… 아, 찾았다.

─딸깍. 딸깍딸깍.

"역시."

스위치를 이리저리 눌렀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전등 쪽 차단기를 내린 것이리라. 정성 한 번 대단하네, 진짜.

"후……."

하는 수 없지. 불을 켜는 건 포기하자. 비교적 큰 화장실이긴 하지만 결국 화장실. 재빨리 챙길 것만 챙기고 나가면 된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굳게 닫힌 변기칸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어디부터 세서 네 번째 칸인 거지."

눈앞에 있는 변기칸은 총 다섯. 보통은 입구 쪽부터 시작해서 순서를 정하겠지만 그 반대로 세는 곳도 있으니 좀처럼 고르기가 어렵다.

과연 어느 쪽 문이 정답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그 생각을 덮어 버렸다.

'고민할 거 있나.'

어차피 별것도 아닌 미션,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열어보면 될 것이다. 겸사겸사 날 놀래키려 숨어 있던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빨리 결판을 낼 수 있으니 좋고.

"아무나 있으면 그냥 빨리 나와라."

우선 첫 번째. 경첩 소리가 거의 전혀 들리지 않는 문을 조심스레 잡아당겨 열었다.

"여긴…… 없네."

첫 번째는 꽝이었다. 닫힌 변기뚜껑, 수조 위, 화장지 걸이와 문에 달린 옷걸이를 차례대로 살폈지만,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조 안은…… 설마. 제정신이 있으면 거기에 뭘 넣어놨겠어.'

문을 닫고 지체없이 두 번째 칸으로 움직였다. 2순위 후보인 만큼 살짝 더 긴장됐다.

두근, 두근. 하고 심장이 펄떡이는 감각을 느끼며, 다시 한번 문을 열었다.

"…… 없네?"

이번에도 꽝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구석구석 샅샅이, 심지어 휴지통 안까지 살폈지만 화장실 내부는 깨끗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서둘러 다음 칸으로 향했다.

"뭐야 이거."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마지막 다섯 번째 칸까지.

챙겨 와야 한다는 물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럴듯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사물이 놓여 있을 뿐, 눈에 띄는 물건은 없다.

혹시나 내가 놓친 게 있는 건가 싶어 수조까지 열고 확인했으나, 역시 수조 안도 별다를 게 없었다.

"여기가 맞을 텐데……."

주머니에 넣어놨던 제비를 다시 꺼내 읽어봐도 분명 이곳이 맞았다. 본관 4층 남자 교직원 화장실 4번 변기칸. 4층에 있는 남자 교직원 화장실은 여기 하나뿐이니 제비에 쓰인 장소가 이곳이 아닐 리가 없다.

있어야 할 물건이 있어야 할 장소에 없다. 그렇다는 건…….

"운영위원 애들이 실수라도 한 건가?"

소품을 깜박하고 갖다 놓지 않았다. 그게 내 결론이다.

생각해 보면 이곳엔 찾아오는 누군가를 놀라게 할 장치조차 없었다. 아마 여길 담당하는 사람이 준비하는 걸 잊어먹은 것이리라.

"거 참 사람 맥 빠지게 만드네."

모처럼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구만. 잔뜩 긴장하고 4층짜리 계단을 걸어 올라온 내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고는 어지럽혀놓은 화장실을 정리했다. 돌아가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얼추 다녀간 흔적을 없앤 뒤, 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백예은에게 돌아가기 위해 발을 돌린 그때.

"꺄아악!"

─꽈앙!

"무, 뭐야?!"

갑자기 열어놨던 문이 세차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복도 쪽에서 터져 나왔다.

"목소리가…… 백예은?! 야!"

낯익은 목소리. 이건 분명 백예은의 비명이다.

나는 황급히 변기칸을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백예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열어두었던 화장실 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까 문 닫히는 소린 이거 때문에 난 건가?'

─철컹! 쿵!

"아 씨, 이거 왜 안 열려? 아, 전자록 있네. 쓰읍."

몇 차례 문고리를 돌려 잡아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아 성을 내다가, 이윽고 문에 전자자물쇠가 달린 것을 보고야 간신히 쪽팔림과 함께 평정심이 돌아왔다.

덕분에 바깥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바깥에 있는 사람을 노렸던 건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4층까지 올라오는 길에 아무런 방해도 없었던 것. 이 화장실 안에 장치나 소품 따위가 전혀 없었던 것까지.

사람이 가장 취약할 때는 다름 아닌 대비를 하고 있지 않을 때다.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맥이 빠져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한 그 순간을 노려 놀래킨다. 그게 바로 이 구역을 담당한 사람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근데 하필 백예은 녀석이 혼자 바깥에 있어서 타겟이 된 걸 테고.'

거기까지 정리를 끝내자 내 얼굴에 절로 웃음이 맺혔다. 사람을 혼자 사지로 내몰면서 실실 쪼개더니, 꼴좋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해?'

외마디 비명이 들린 뒤로 생쥐 기어가는 소리조차 나질 않는다. 설마 너무 놀라서 기절이라도 한 건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잊고 있던 조급함이 돌아온 나는 조금 더 서둘러 잠금을 풀고 문을 열며 녀석을 불렀다.

"야, 백예은. 너 괜찮…… 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날 기다려야 할 백예은이나, 녀석을 놀래킨 장본인. 둘 중 누구도 없었다. 흔적 하나조차.

"…… 백예은?"

복도는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전등이란 전등은 모조리 꺼진 탓에 맞은편에 있는 교무실의 전경마저 한 치 앞을 알아보기 힘들고, 손전등이 비추는 복도는 마치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것 마냥 복도 끝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 뭐야."

한심한 조도를 자랑하는 싸구려 손전등을 툭툭 치며 사방을 둘러봤지만 그리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시인할 수 없는 어둠도, 사라진 백예은의 행방도. 모든 게 오리무중에 빠진 상황.

패닉에 빠진 두뇌는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눈앞에 당착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백예은이 놀라서 혼자 도망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다. 누군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 여기까지 소리가 날 것이다.

정말로 기절이라도 한 건가?

아니다. 진짜 그랬다간 난리가 났을 텐데, 조용한 데다 손전등 빛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 진짜 귀신이 납치?

어림없는 소리. 군자의 나라에 이매망량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망언이란 말이냐.

…… 아무튼, 도무지 상황을 알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내 눈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응?"

반짝. 반짝반짝.

복도에서 층계참으로 꺾인 통로 저편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벽에 가려 빛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신호를 보내는 듯 반짝이는 미약한 빛줄기가 벽 위로 점멸하며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어둠에게 먹히기 직전, 최후의 저항을 하는 것처럼.

…… 가봐야 하는 건가.

마른침이 목젖을 통과하는 소리가 유독 귓가를 크게 울리고, 결심을 굳힌 나는 조심스레 손전등을 비추며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슬금슬금. 슬금슬금.

잔뜩 긴장한 탓에 그야말로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속도였지만.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발을 옮긴 끝에 나는 비로소 통로가 꺾이는 곳 바로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빛은 아직 점멸하고 있었지만, 그 세기는 아까보다 훨씬 약해져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놓쳐 버릴 듯 미약했다.

"쓰읍……."

진정하자. 진정해.

나는 벽에 몸을 밀착한 뒤, 조금씩 코너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혹시라도 무언가 나온다면 곧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서.

─반짝. 반짝.

"…… 손전등?"

코너 바깥으로 고개를 완전히 내민 나는 그제야 벽을 비추던 광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손전등이다. 다만,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모양새를 한 손전등.

나는 이내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거, 백예은이 들고 다니던 거 아닌가?"

몸을 수그려 집어든 손전등을 세심히 살핀 뒤 확신했다.

그렇다. 주기적으로 깜빡이며 벽을 비추던 손전등은 다름 아닌 백예은의 소지품이었던 것이다.

대체 왜 이게 이런 데 떨어져 있는가. 의문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순식간에 몸집을 불렸다. 설마, 진짜 백예은한테 무슨 일이─

─똑. 똑.

"?!"

그 순간, 갑자기 들린 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니, 소리 때문이 아니다. 촉감이다.

내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린, 낯선 이물질의 감촉.

─똑. 똑.

물방울. 대체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 모를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내 정수리를 적셨다.

물방울이 점점 내 머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천천히, 천천히.

정수리에서 시작하여, 가르마를 타고 구레나룻을 타고 내려와, 귓불을 스치고, 턱선을 어루만지며 그 끝에서 다시금 땅으로 낙하한다.

따뜻한 물방울. 어딘가 기시감이 있는 온도. 그렇다. 이건 마치…….

'피……?'

회귀 전, 언젠가 도축을 하며 느꼈던 핏물의 온도 같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온몸이 굳었다.

느껴지는 감촉은 분명 뜨거울진대, 몸에는 뼈마디 사이사이마다 날카로운 고드름을 꽂아 넣는 것 같은 오한이 파고든다.

「수위 아저씨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

문득 이곳에 올 때 백예은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뇌리를 스쳤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수위 아저씨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 의문의 물방울.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의도치 않게 이야기 속 남자의 행동을 따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천장을 바라봤고…….」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어 천장으로 시선을 향한다.

어두컴컴한 시야 끝에서, 무언가의 형체가 보였다.

손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음침한 빛을 반사하는 듯, 핏기없고 가녀린 누군가의 손.

내 머리 위로 물방울을 떨어뜨리던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그 손이었다.

그리고 손이 있다면, 당연히 손과 이어진 손목도, 팔도 있다. 그 정체불명의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위로 향했던 고개가 점점 손을 따라, 손목을 따라, 팔뚝을 따라 돌아가고, 종국에는 몸마저 그 손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섰다.

"후욱."

"흐어윽!"

몸을 돌린 그 순간. 정체모를 무언가가 분 입김이 나의 눈을 가격했다.

아픔을 느낄 만큼 거친 숨결은 아니었으나, 그건 내 다리에 힘이 풀리게 만들기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몸을 기대고 있던 벽을 타고 미끄러지는 몸.

볼품없이 주저앉은 나는 그 무언가를 올려다봤다.

그것은 마치 십수 년을 쓰레기장에서 구른 것 같은 넝마를 둘렀고, 깊게 눌러쓴 후드 탓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드에 진 그림자 아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의 한 손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고.

다른 한쪽 손에선 나를 향한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가 반짝…… 아니 잠깐. 뭐라고?

"히, 흐히힉."

"…… 설마."

도저히 이 상황과 맞지 않는 그것을 발견한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순식간에 내 머리를 강타했다.

후드 속 가려진 입에서 터져 나온 미처 참지 못한 웃음소리에는,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 백예은?"

"저, 정답……! 흐헷, 흐히힛……!"

반사적으로 얼굴을 향해 비춘 손전등 빛 속에서 그것의 얼굴이 드러났을 때, 나는 사지에 힘이 풀리며, 동시에 주먹에 여태껏 느낀 적 없는 엄청난 괴력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예은. 그 녀석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