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학교는 언제나 파티 뒤 호러.-1-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어렸을 적, 우리 집안의 상황은 말 그대로 개판 5분 뒤였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갓난아기인 주아를 두고 먼저 세상을 등지신 아버지.
홀몸으로 가계를 책임지느라 어린 두 자식까지 챙길 여유가 없던 어머니.
불우한 가정의 비행청소년의 모범 답안지 같은 꼴로 살던 나.
주아 녀석이 멀쩡한 학창생활을 보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웠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는 게임, 영화, 만화 같은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다.
2003년생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에야 스마트폰 조작법을 배웠다고 말하면 조금은 감이 잡히리라. 회귀 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간신히 전자기기에 익숙해졌더랬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그 후에는 완전 빠져 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사유로 나는 기본적으로 대중문화에 상당히 무지한 편이다.
인기 가수? 저 먼 미국에서 갑자기 빌보드 1위를 찍고 십수 년 후엔 레전드가 된 사람 정도만 간신히 안다.
인기 게임? 직접 게임을 해 본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옛날 일이다.
인기 영화? 영화관에 가본 적이 손에 꼽는다. 심지어 웹플릭스 같은 서비스를 계약해본 적도 딱히 없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내 사고구조는 기본적으로 요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요리, 혹은 그와 관련된 지식을 쌓고 익히기 위해서 소비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가 생활을 누리는 시간을 아까워했을 정도다.
사회인에게 있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고, 또한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그 시절의 나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그저 병적으로 무언가를 익히는 것에 몰두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내가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출 수 있는 무기란 고작 그것뿐이었으니까. 덕분에 일은 잘해도 사회성이 결여된 녀석이란 소리를 들었던 거고.
그런데 말입니다.
옛사람의 말처럼 무지가 공포를 낳는다 한다면, 공포에 대해 무지한 사람은 대체 무엇에 떠는 걸까.
갑자기 주제가 어긋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것 하나는 집고 넘어가고 싶다.
나는 공포영화도, 만화도, 게임도, 심지어 계절을 타고 유행하는 괴담 하나조차 제대로 모른다.
물론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어두운 곳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같은 것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건 그저 본능적으로 께름칙하게 느낄 뿐이지 딱히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다. 뭣보다 그런 거에 일일이 겁을 먹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삭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넘기다가 나온 공포영화의 한 장면.
온몸에 피칠갑을 한 귀신이 화면 가득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나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앉아 있던 소파째로 뒤로 넘어갈 만큼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뭐랄까…… 마치 태어나서 지금껏 연못만 헤엄친 개구리에게 200도짜리 끓는 기름을 부은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서글픈 말이지만, 문화와 단절된 유년기는 내게서 공포에 대한 저항력을 앗아간 것이다.
뭐, 그 일 뒤로도 비슷한 상황은 몇 번이고 있었다.
TV, 핸드폰, 컴퓨터 등등. 사람은 자신이 원치 않는 순간에 그런 것과 맞닥뜨리는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면역력을 키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주변 사람과 비교하면 호러 계열의 서브컬쳐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건 회귀를 한 뒤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나에게 하필 축제 2일차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담력시험이라니, 이건 내게 악의를 가진 무언가의 농간이 분명하다.
"그래서, 변명은 끝난 거야?"
"…… 변명이 아니라 팩트라고."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웃긴다는 생각 안 들어?"
게다가 하필 내가 아는 녀석들 중 가장 사람 놀리기를 좋아하는 백예은과 함께 조를 짜게 될 줄이야.
"혁이는 맨날 인상만 쓰고 다녀서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입꼬리가 그믐 직전의 초승달마냥 얇은 곡선을 그렸다.
"지금 보니까, 되게 재밌을 것 같다."
"…… 쯧."
젠장.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네.
나는 이런 시련을 내게 내려준 누군가를 원망하며 손전등을 들지 않은 빈손으로 미간을 매만졌다.
사태의 시작은 약 수십 분 전으로 돌아간다.
***
"정말 아니었으면 했는데."
캠프파이어가 끝난 직후, 밤 12시에 다다른 학교에 음산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평소였다면 학생이 전부 하교하더라도 야간순찰을 도는 수위 아저씨들을 위해 최소한의 가로등 불빛만은 남겨두었을 테지만, 이렇게 빛줄기 하나 없이 깜깜해진 것은 다름이 아닌 학교 측에서 학생들이 모인 일정 구역의 전등을 제외한 학교 전체의 전등을 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올해의 단체 게임! 담력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반은 조 추첨을 서둘러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역할을 맡은 선생님의 쓸데없이 활기찬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아 씨, 쫄린다. 제비 좀 빨리 넘겨봐."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제비가 어디 도망가냐."
거기에 더해 어딘가 신난 듯 제비뽑기 상자를 나르는 아이를 채근하는 다른 녀석들의 분위기가 내 짜증에 박차를 더했다.
'어떻게 이런 걸 재밌어 하는 거지.'
공포 영화나 게임 따위를 즐겨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대체 왜 자기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느낌을 즐길 수 있는 걸까.
차라리 공포 체험을 하는 누군가를 구경하는 걸 즐긴다면 이해라도 간다. 갑툭튀에 놀라는 모습을 보면 같이 무서워도 결국 재미는 있으니까.
하지만 직접 그 당사자가 되는 것만큼은 사절이다.
"자, 찬혁이 네 차례야."
…… 사절인데 말이지…….
내게 제비뽑기 박스를 들이대는 아이를 보고 저리 꺼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최대한 인상을 쓰지 않게끔 노력하며 제비를 뽑았다.
"흠."
짝을 정할 숫자와 장소. 펼친 제비는 상상 이상으로 단출한 구성이었다.
"…… 뭐가 씌인 건가……."
다만, 적힌 주제가 좋지 않았다.
숫자는 4. 장소는 본관 4층의 남자 교직원 화장실 4번 칸.
"좀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냐……."
내가 초능력 따위가 실존한다고 믿는 오컬트 신봉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다 보면 직감이라는 것이 마치 뇌리에 전류가 흐르듯 '팍!'하고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랬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느낌이 정말 빡세게 왔다.
"쓰읍……."
떨떠름한 눈으로 구깃구깃 구겨진 흔적이 남은 제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 불안함을 털어냈다. 그래, 꼭 감이 맞으리란 법은 없잖아. 언제든 예외라는 건 있다고.
"제비 안 뽑은 사람 없지? 그럼 순서대로 부를 테니까 잘 보고 알아서 모여."
근데 아무래도 오늘은 그 예외에서 벗어나는 날인 듯 싶었다.
"4조. 손 들어봐."
"여기."
"나야!"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비해 쓸데없이 밝고, 또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아핫!"
"실화냐."
백예은. 손을 든 나를 발견하고 한껏 함박웃음을 지은 녀석이 내게로 달려오는 모습에, 나는 내 감이 오늘도 열일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이렇게 된 것이다. 녀석은 나와 짝이 됐다며 좋아했고, 나는 질색하고. 그러니 토라진 척을 하고.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대화.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그냥저냥 허세라도 부려서 웃음거리 신세는 면했을 텐데.
바로 뒤에 일어난 사건 탓에, 나는 그럴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14조."
"나다! 내 상대는 누구냐!"
"아니, 짝 안 된 거 여기 너랑 나밖에 없잖아."
"그런가?"
"15조."
"여기."
"응."
"뭐야 남았잖아."
"어라? 왜 남지?"
"좋아. 다 짝 찾았지?"
드디어 슬슬 발동이 걸린 듯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는 아이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방금 일어난 이상 현상을 눈치챈 아이 몇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른 아이들의 이목을 모았다.
"야…… 야! 자, 잠깐만……!"
"어, 왜? 야, 너 왜 그래? 왜 그리 떨어?"
"우, 우, 우리 반 지금 총 28명 아니야?"
"응? 어…… 어, 맞아. 28명. 근데?"
"그럼 방금 15조 불렀을 때 대답한 거, 누구야?"
"……."
그 질문에 대답하는 아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든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끊겼다.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 순간, 나는 허세를 부릴 마지막 기력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저 직감이 옳았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으니까.
***
"으으, 계단 너무 많아.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서서 일했는데……!"
"얼마 안 남았잖아. 조금만 더 힘내봐."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내 직감의 타당성을 증명해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담력시험 이벤트의 규칙은 간단하다. 조마다 바톤터치 레이스를 하는 것 마냥 각 조가 교대로 조 추첨 제비에 써진 장소로 가서, 그곳에 운영위원이 세팅해둔 물건을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근데 심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못하네.'
불이 죄다 꺼져서 가끔 번뜩이는 비상구 표시 말고는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학교의 풍경은 어딘가 평소와 너무 달라서 싸한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어두운 곳을 다니는 건 괜찮지만, 갑자기 뭔가 튀어나와 놀래키는 종류의 점프 스퀘어 틱 공포에는 약해서 살짝 긴장이 됐다. 대체 무슨 준비를 해놓고 애들을 들이는 걸까.
딱딱하게 굳은 걸음을 어떻게든 옮기자니, 나란히 걷던 백예은이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해왔다.
"그나저나 재수도 없네. 하필 꽝이 걸릴 줄이야."
"꽝?"
"응? 몰라?"
설마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고개를 저어 답했다.
"있잖아. 우리 학교 7대 불가사의."
"…… 뭐?"
우리 학교에 그런 게 있었어?
내 말 없는 질문에 녀석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답했다.
"당연히 있지. 과학실에 움직이는 인체모형이나 미술실에 눈물 흘리는 흉상, 음악실에 혼자 울리는 피아노 같은 거."
뭔가 하나같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괴담이었다.
"그치? 아, 그런 것도 있다? 지하 3번 실습실에선 새벽 세 시만 되면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누가 불을 키려는 것처럼 스파크 소리랑 불빛이 보인대."
"아니, 그건 위험한 거 아냐?"
만에 하나라도 가스 점검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그대로 대형사고잖아.
"소문이야 소문. 그것 말고도 이거저거 있어."
"허…… 근데 그거랑 꽝이 무슨 상관이야?"
"사실 그 화장실이 바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이 말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게 깐 백예은이 말을 이었다.
"4층 교직원 화장실 4번 칸은 밤만 되면 변기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대. 똑, 똑. 하고. 신기한 게 낮에는 전혀 안 그러는데 밤에만 그런다는 거야. 천장에서 물이 샌 흔적 같은 것도 하나도 없고."
"……."
"어느 날은 그 소리를 듣다 못한 수위 아저씨가 물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화장실로 갔어. 역시 밤이 되니까 또다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지. 수위 아저씨는 물소리가 들리는 변기 칸을 활짝 열었어."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은 3층을 지나 4층 복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문을 열자마자 물소리가 멎었어. 수위 아저씨는 당황하며 사방을 살폈지. 천장, 벽, 변기, 심지어는 변기의 수조까지. 근데 역시 아무 이상도 없었던 거야. 결국 수위 아저씨는 물방울 소리를 들은 건 기분탓이라고 생각하고 변기 수조 뚜껑을 닫았어."
그러던 그때.
백예은이 갑자기 뚝 말을 끊었다. 흠칫 놀란 나는 허리가 끊긴 녀석의 말문처럼 제자리에서 발을 뚝 멈추고 말았다.
"똑. 똑. 물방울이 떨어졌어. 다만, 물방울이 떨어진 자리는 변기가 아니었어."
"…… 그럼?"
"뒤통수. 변기를 내려다보고 있던 수위 아저씨의 뒤통수에, 한 방울, 한 방울. 천천히,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목덜미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지. 수위 아저씨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천장을 바라봤고……."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내 두 눈은 굳게 닫힌 백예은의 입에 단단히 고정됐다.
이윽고, 녀석의 입이 열렸다.
"나머지는, 직접 확인해봐."
"…… 뭐?"
"도착했어. 4층 교직원 화장실. 혁이가 다녀와. 남자 화장실이잖아. 난 못 들어가."
어딘가 으스스한, 이미 연기하는 기색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기름칠 안 한 경첩마냥 굳은 고개를 돌렸다.
환기를 위해서일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도사린 시꺼먼 어둠.
─똑. 똑.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부디 기분탓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두 손 모아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