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70화 (170/403)

170. 파티 나이트.-1-

이튿날 점심.

1반 1조는 그들이 쟁취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보무도 당당히 소강당을 찾았다.

"우와……."

"이기 다 뭐꼬."

"많네. 사람."

아쉽게도 그들의 당당함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제보다 많은 거 아냐?"

"그런 것 같은데."

학급의 포장마차가 있는 교문 근처부터 시작하여 대회반의 가설식당이 있는 소강당까지 이어진 길목.

그들이 포장마차를 나설 때부터 드문드문 눈에 띄던 사람의 무리는 소강당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이미 행렬이 되어 있었다.

입구 옆으로 길게 늘어선 인파. 말만 소강당이지 실제로는 제법 큰 소강당 건물을 빙 둘러쌀 정도로 기다란 줄의 선두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학생 여럿이 번호표와 입장 예상 시간 등을 알려주며 어떻게든 행렬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찬혁에게서 받은 예약 티켓이 있기에 그 줄의 후미에 합류할 필요는 없었다.

행렬을 가로질러 입구로 다가가던 도중 줄서 있던 고객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그들에게 들려왔다.

"야. 이거 사람 너무 많은 거 아냐? 밥은 먹을 수 있는 거 맞지?"

"그러게. 한 시간은 지나야 겨우 우리 차례일 것 같은데 그냥 가는 게 낫지 않아?"

"여기 전용 식권도 장당 천 원이던데, 그럼 음식도 별로일 것 같고……."

"너네가 뭘 몰라서 그래. 우리 어제도 여기 왔었는데 진짜 기절할 뻔 했다니까? 괜히 너희까지 데리고 왔겠어?"

"그래?"

"그렇대도. 안 그래도 여기 축제 유명해서 이 근처 사는 유명한 사람이면 한 번씩은 찍고 가잖아. 마북이나 아웃스타 같은 데 찾아보면 바로 나올걸?"

"게다가 올해는 더해. 사람들 아침부터 교문에 줄 서고 있던 거 알아? 진짜 대박이라니까. 우리 좀 믿어봐."

스쳐지나가듯 그 대화를 들은 1조 일행은 그제야 어제보다 사람이 늘어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가게를 찾았던 이들, 어쩌다 오늘 들린 관객,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까지.

유출이 적고 유입이 많다면 풀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산수의 이치다.

"으음……."

그들 또한 아침부터 상당한 양의 고객을 소화하긴 했지만, 과연 이쯤 되니 궤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행렬을 헤치고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일행을 향해 쏠리기 시작한 시선이 점차 무게를 더해가는 상황.

이윽고 일행에게 다가온 웨이터에게 그들이 예약 티켓을 꺼내 내민 순간, 그 시선에 질투심이 가득 담겼다. 일행 또한 단번에 눈치챌 정도로 일치단결된 진한 감정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총에 당황하여 웨이터의 안내를 따라 서둘러 매장으로 들어서는 일행.

허둥지둥 안내받은 자리에 앉은 일행은 그제야 평정심을 되찾고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오……."

"힘 제대로 줬네."

"여기 진짜 소강당 맞아?"

사물을 살필 여유가 돌아오니, 그들은 새삼 실내에 구성된 환경에 크게 놀랐다.

내부 공간 창출을 위해 최대한 간략하게 만들어져 있던 소강당이 정말 식당 그 자체가 되어 있었으니까.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쳐서 살짝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벽걸이 램프의 따스한 빛.

휑하던 벽을 가린 이름 모를 식물의 덩굴 위로 장식된 조화는 마치 생화가 피어오른 것 같았고, 사람이 걷는 통로에 깔린 카펫과 고급스런 테이블 가운데에서 빛나는 앤티크한 느낌의 촛대는 사람의 넋을 앗아가는 듯했다.

그야말로 표본적인 고급 식당 같은 모습에 일행은 묘한 긴장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 뭔가 좀 어색하네."

"이렇게 본격적일 줄은 몰랐는데. 하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고급 식당에서 일한 경험은 제법 있지만, 정작 고객의 입장으로 찾은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그나마 평범한 일반인보다는 음식에 대한 지식이 훨씬 많다는 게 심적으로 위안이 됐다. 적어도 주문하면서 버벅거릴 일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일행은 육류 코스와 해산물 코스를 정확히 반반씩 나눠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쯤 그들이 시킨 메뉴가 나왔을 때. 일행은 가게에 들어왔을 때와는 또 다른 감탄을 느꼈다.

"이거 저번에 찬혁이가 만들었던 칼파쵸네."

"이건 참치 타르타르야."

얇고 바삭한 빵과 곁들여 먹는 참치 타르타르와 안심을 살짝 구워 만든 칼파쵸.

살짝 양이 부족했지만 전채란 본래 식욕을 돋우기 위해 먹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요리는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감을 뒤흔들며 침샘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맛에 정신없이 미식에 몰두하기 시작한 아이들.

뒤이어 나온 메인 또한 더없이 훌륭했다.

빵가루와 다량의 허브와 양념을 갈아 만든 가루 옷을 입혀 구운 허브 크러스트 스테이크.

랍스터를 먹기 좋게 갈라 통째로 고열의 오븐에서 단숨에 구운 랍스터 치즈버터구이.

이쯤 되니 일행의 입에선 감탄을 넘어, 질려 버린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 아니, 이게 천 원이라꼬? 학교는 무슨 땅 파서 장사하나."

"우리 돈으로 하지."

"아."

나현주의 일침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양희연과 그 일행이었으나, 이내 그들의 의견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어차피 우리 등록금에서 나온 음식이라면, 후회 없이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말고 먹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로 행동했겠지만 말이다.

밀푀유와 셔벗, 케이크 등을 끝으로 산뜻하게 입가심을 끝낸 일행은, 결국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성심고 축제에서 요리는 미친 짓이다.'라는 격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크게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우리, 이겨서 진짜 다행이다."

"인정합니다."

일행 중 누가 꺼냈는지 모를 그 넋두리 같은 말에 모두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 장사…… 라고는 해도 우리한테 들어오는 건 거의 한 푼도 없지마는. 아무튼 오늘도 대회반 가설 식당은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어제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영업을 종료했음에도 식권함에 들어간 식권 매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많았으니, 어제보다도 더욱 손님의 밀도가 높았다는 뜻이리라.

"근데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지."

"실화냐 진짜……."

"슬프게도 이게 현실입니다."

숫제 한탄에 가까운 여준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현재 시각 다섯 시. 앞으로 한 시간 동안 뒷정리와 간단한 식사를 끝낸 뒤 바로 대강당에서 열릴 파티를 도우러 가야 한다. 참으로 빡빡하기 그지없는 일정이다.

하유리 팀장이나 성재준 선배 같은 보조 인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이라도 있는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마저도 부족한 실정이긴 하지만.

"자자, 이제 반 넘게 왔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우리도 75% 정도는 한 거 아니겠어? 남은 25%만 잘 해보자고."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이론이냐는 듯 황당함으로 물든 시선이 날 향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을 굴릴 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철면피다.

부하가 고됨을 토로해도 흔들리지 않고 끌고 나갈 멘탈이 바로 리더의 덕목이다.

거기다 그런 부하를 위로해줄 수단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리고 그 수단이란 보통 한 가지면 충분하다.

"우리 행사 잘 끝내면 추가 학점 나온다더라."

"!"

"거기다 다음 대회 상금도 부비로 빼는 거 없이 전부 우리한테 나눠주겠다고 하시던데."

"!!"

그건 바로 철저한 보상이다. 부상이면 좋고, 금전이면 더더욱 좋다. 두 가지가 합쳐지면? 완전 개쩌는 거지.

물질적인 풍요는 때때로 정신적인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주는 법이다.

"이해했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하자."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댓발 튀어나와 있던 입을 쏙 집어넣고는 투정 한마디 없이 자기 할 일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것 봐. 하려면 할 수 있잖아.

내가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자기 할 일만 확실히 하면 터치하지 않는다 이거야. 뭐, 애당초 할 생각도 없지만.

***

강호에서는 전력의 3할을 숨기라는 말이 있다.

뭐 딱히 여기가 중원 무림도 아니고, 이놈들이 협객인 것도 아니지만 의외로 숨겨둔 전력의 3할은 있었던 것일까.

온 힘을 다해 뒷정리에 나선 녀석들은 단 30분 만에 어제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뒷정리를 마무리 지었다. 들인 시간은 반인데 결과물은 비슷하다니. 대체 뭘 얼마나 숨기고 있던 건지.

덕분에 대충 끼니를 때울 시간이 생겼지만 뭘 만들어 먹기엔 시간이 부족한 상황. 이건 반 아이들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더 늦게 마감하는 우리 반의 가게에서 컨설팅 대표의 권한으로 공짜 케밥을 강탈…… 이 아니라 기부 받았다.

"식권 판매소 문 닫아서 그런데 좀만 주라!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꼭 갚는다니까?"

"아니, 달라면 주기야 하겠는데 뭔가 킹받네."

받은 거다. 뺏은 게 아니다.

아무튼 내가 뼈대를 세우고 반 아이들이 저마다 살을 덧붙인 케밥은 대회반 팀원을 비롯한 홀 팀이나 선배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원체 식성이 좋은 여준기 같은 경우에는 혼자 네 개에 달하는 케밥을 먹어치울 정도였다.

"좀 작작 먹어. 거기서 살 더 찌면 어쩌려고?"

"케밥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 괜찮아.

"케밥이?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 완전식품이잖아."

"…… 아, 그래."

송지영은 반박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 말에 찬성하는 파였다.

딱히 내가 한창 막내 시절에 끼니를 이 케밥과 구성이 비슷한 햄버거만으로 때우며 살았기 때문은 아니다. 진짜로.

'그나저나 쟤는 일부러 무시하는 건가.'

정작 백예은 같은 경우는 지금 혼자 다섯 개째 케밥을 먹고 있음에도 교묘하게 화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제 그쪽 이야기로는 상종해도 상처만 받을 뿐이라는 걸 깨달은 걸까.

어쨌든 그렇게 무사히 식사를 통해 재충전을 마친 우리는 대강당 주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힌 대강당 정문을 빙 돌아 뒷문을 열고 들어가니, 입구부터 뜨거운 열기가 우릴 마중한다.

지지고, 볶고, 굽고, 끓이는 가스 불의 열기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누가 보면 주방이 아니라 사우나 문을 연 걸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누구? 아, 왔구나. 어서 들어와."

저녁이 되어 차가워진 바깥 공기와는 전혀 딴 세상인 주방에서 우릴 가장 먼저 맞이한 이는 다름 아닌 효민 선배였다.

열기 탓에 벌겋게 홍조가 든 얼굴이 묘하게 웃기다.

"기다렸어 우리 귀염둥이들."

"진짜 누나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

안창민이 끔찍하단 얼굴로 번개같이 대꾸하자 효민 선배의 볼이 부풀었다. 그걸 따라서 안창민의 얼굴은 더욱 썩어들어 갔지만.

"그쯤하고 다들 준비하고 와. 나는 잠깐 선배랑 이야기 좀 할게."

"쓰읍. 알겠다."

내 말을 듣고 물러선 안창민을 비롯한 팀원이 나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선배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이거 먼저 받으세요."

"응? 뭐야?"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저희 반에서 하는 식당에서 선배들 드시라고 좀 받아왔어요. 허기 가실 정도는 될 거예요."

"와, 땡큐!"

내가 내민 봉투를 윤재 형에게 넘긴 효민 선배.

고맙다며 손을 흔드는 윤재 형의 인사를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받은 뒤, 효민 선배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래서, 준비 상황은 어때요?"

"잘 되고 있지. 너희도 왔으니까 파티 시작 전에 여유롭게 끝낼 수 있을 거야."

"그건 다행이네요."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2학년 선배들의 실력을 믿었으니까.

다행히 별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나름 속으로 안도감을 느끼던 그때, 효민 선배가 갑자기 군소리를 덧붙였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예?"

문제? 무슨 문제? 파티 시작까지 앞으로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갑자기 또 왜.

"찬혁이 너 혹시 술 좀 잘 하니?"

"…… 예?"

pardon?

잠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내 귀를 의심했지만, 뒤이은 효민 선배의 말은 내 청력이 정상이라는 확신을 들게 할 뿐이었다.

"술 잘 하는 애가 필요한데. 혹시 찬혁이가 맡아줄 수 있을까?"

"……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준비됐어, 간?

물론이지, 류!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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