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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68화 (168/403)

168. 성심고 축제.-3-

순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순조로운 시작을 맞은 가설 식당이었으나, 주방도 어느 순간부터는 점차 여유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전에 준비한 재료 등이 점차 끝을 보이기 시작하며 각자가 맡아야 할 일이 상당히 늘어난 탓이었다.

"으으,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아."

"같은 게 아니고 맞아."

뿐만 아니라 모처럼 찾아온 브레이크 타임 때에도 이후 장사 준비 탓에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해 체력적인 소모도 제법 큰 상황.

아주 죽을 만큼 힘든 건 아니었지만, 전반기 때에 비하면 후반기의 주방은 확실히 여유가 부족했다.

'사실 이게 정상이긴 하지.'

아까 같은 바쁜 상황 속에서 그토록 여유가 넘치던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사실 지금도 힘들다 타령을 하고 있긴 해도 실상을 보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다.

'아마 정상적인 매장이었으면 이렇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

원래 식당에 손님이 찾아오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다. 바쁜 때와 한가한 때가 나뉘는 것이다.

보통 한가한 때에 주방 상황을 확인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도 없이 영업시간 내내 홀이 가득 차있으니, 이렇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라스트 오더까지 30분 정도밖에 안 남았어."

"드디어……!"

"어우, 힘들다. 내일도 이래야 한다는 거지? 으으……."

내일만이 아니라 내일 모레까지 이래야 한다는 사실은 굳이 되새겨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내일은 2학년 선배들의 조수까지 겸해야 한다는 것도.

30분 동안의 라스트 스퍼트.

마지막 손님이 들어오셨다는 홀 팀의 무전을 들은 나는 아크릴 창 건너편을 바라봤다.

확실히, 여태껏 계속 사람이 가득했던 홀에 드문드문 빈자리가 생기는 게 보였다.

"자자, 이번 주문만 나가면 끝이다!"

이번 게 마지막 주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의 움직임에 점차 활기가 돌아왔다.

전채가 나가고, 내가 만든 메인이 나가고, 마지막으로 여준기가 담당하는 디저트 파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홀은 아직 정리 중이고 주방에도 조금 더 일거리가 남기는 했지만, 우리의 공식적인 축제 첫째 날 일정은 이것으로 끝.

나는 그 기쁜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렸다.

"좋아! 모두 고생했어! 주방 영업종료!"

"끝났다!"

"야호!"

근데, 미안하지만 영업이 끝난 거지 일이 끝난 게 아니란다.

"아직 안 끝났어."

"…… 뭐? 왜?"

"주방 정리하고, 내일 영업 준비해야지."

아침에 와서 고작 한 두 시간 준비하는 걸로 이 퀄리티를 지키려면 턱도 없단 말이다.

5초 전까지만 해도 활짝 피어 있던 여준기의 얼굴이 사정없이 찌그러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었다.

***

영업종료 후 약 한 시간.

우여곡절 끝에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힘까지 쏟아낸 팀원은 그야말로 하얗게 불타 버린 것 같은 상태가 됐다.

"…… 너네, 괜찮니?"

"예. 별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 녀석들 평소 하는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엄살이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내 모습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것일까, 어딘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하유리…… 선배?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냥 좋을 대로 불러."

"그럼 팀장님으로."

"…… 그건 그것대로 좀 어색하네."

그러면서도 제법 그 칭호가 마음에 든 듯 작은 미소를 짓는 하유리 팀장이었다.

'마음에 든다면야 뭐.'

실제로 홀과 주방은 서로 참견이 어려우면서도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존칭으로 부르는 일이 많았다. 어째 그 시절이 생각나는 느낌이다.

"홀 팀은 슬슬 귀가시킬 생각인데, 주방은 어때?"

"아, 먼저 들어가세요. 저희도 곧 돌아가려고요."

중요한 일은 대강 끝났으니 일에 지친 이 녀석들을 풀어줄 때가 됐다.

"그래?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볼게. 고생 많았어."

"팀장님도요."

"그래, 류찬혁 팀장님."

어딘가 애수를 느끼게 하는 호칭을 돌려준 하유리 팀장이 등을 돌려 다시 홀로 떠났다. 마무리 확인을 하러 돌아가는 것이리라.

'홀 확인은……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겠지.'

미팅 때를 생각하면 일에 대충대충 임할 사람은 아니다. 아까 일하던 걸 봐도 그렇고.

아무튼, 홀도 정리가 얼추 끝난 것 같으니 우리도 강당을 비워야 할 시간이다.

"자, 이쯤 하면 됐다. 다들 퇴근 준비하자. 각자 자리에 가스랑 수도 제대로 잠겼나 확인하고."

조리도구와 식기를 비롯한 기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잘 잠가둔다. 비싼 물건이라 누가 가져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포크와 나이프가 몇 개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기도 했다. 아마 웨이터가 제대로 확인하기 힘든 바쁜 시간을 틈타 고객이 몇 개 집어간 것 같다.

'비싼 건데 말이지…….'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이라고 말하기엔 여타 매장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가게의 품위를 위해 싼 기물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판국에 이런 손실까지 일어나면 주방 팀장이자 총괄 지휘를 맡은 나로선 골이 아프다.

'내일부터는 먹고 나간 테이블 체크도 잘 해달라고 하는 수밖에.'

주방 팀원이 옷을 갈아입으러 소강당 뒤편의 탈의실로 간 사이 주방에 남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던 때, 누군가가 주방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아이들이 뭔가 두고 갔나 싶었으나, 주방에 들어온 이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 안녕. 찬혁아."

"재준 선배님?"

주방을 다시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가설 식당의 잡무를 도와준 성재준 선배였다.

봉사시간을 준단 말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왔다고는 하나 재준 선배를 비롯한 2, 3학년 선배들은 분명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이 아니라면 주방 일에 혼선이 왔을 것이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뒷정리 및 내일 영업 준비는 대회반 다섯 명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영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돌려보냈을 터다.

"아하하, 그게 말이지……."

재준 선배는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내일 일 도우러 오는 건 다른 애들 맞지?"

"어…… 네."

축제가 열리는 3일 동안 대회반을 돕는 일반 학생은 하루 단위로 바뀐다.

봉사시간을 원하는 학생이 많기도 했고, 뭣보다 대회반이 아닌 일반 학생이 일하느라 축제를 즐기지 못해선 안 된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다.

"저기, 혹시 내가 내일도…… 아니, 내일 모레까지 도우러 와도 괜찮을까?"

"예?"

잠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저기, 선배. 봉사시간이 필요하신 건 이해하겠지만 봉사 인원 TO는 선생님들 선에서 결정된 사항이거든요. 죄송하지만 제가 그걸 결정할 권리가……."

"아니, 그게 아니야. 봉사시간은 안 줘도 괜찮아."

"안 줘도 괜찮다고요?"

이번에 나온 말은 한층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봉사시간이 없다면 왜 굳이 이 힘든 일을 하려는 거지? 안 그래도 다른 학우들은 정신없이 노느라 바쁜데, 일하느라 바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째서요?"

"그게, 그러니까…… 음……."

말을 고르던 선배가 이윽고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주방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올지 알 수가 없었거든.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조금 더 견학해보고 싶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야."

"어……."

그거 참, 우리를 그렇게 좋게 봐주니 고맙긴 하지만…….

"봉사시간을 안 받고 나오시겠다면 저야 말릴 수는 없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지!"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드는 데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본인의 생각이 이토록 확고하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식간에 환해진 재준 선배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나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선배는 그 손을 망설임 없이 맞잡았다.

"도와주신다면야 저야 언제든 환영이죠. 감사해요, 재준 선배.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아, 그래! 그리고 형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예. 재준이 형."

"그래, 그편이 듣기 좋네."

가벼운 악수와 함께 웃음이 오갔다.

학교에 있으며 이런저런 사건을 겪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사건은 제법 오랜만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허락 못 해주겠네요."

그때였다. 우리 사이로 불청객이 끼어든 것은.

"누구…… 교, 교장쌤?!"

"선생님이라고 부르세요. 성재준 학생."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요. 주의하세요."

"옙!"

'대체 언제 들어오신 거지?'

문 열리는 소리는커녕 인기척도 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악수를 나누고 있던 우리 옆으로 다가온 교장 선생님은 어딘가 흥미로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지나가는 길에 들려본 친구마다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기에 한 번 살펴볼까 해서 왔더니,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류찬혁 학생."

"아, 그게…… 하하."

뭔가 잘못을 저지르다 딱 걸린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크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원래 학생의 인사를 학생이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요. 봉사시간 없이 계속 여기서 일해보겠다고요?"

"저기, 그게요. 교장 선생님……."

"이미 일하러 올 인원이 정해져 있다는 건 아는데, 허락해주시면 안 될까요?"

성재준 선배는 부탁을 넘어 숫제 애원하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태도는 확고했다.

"안 됩니다."

"…… 그런가요."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일언지하의 거절에 선배의 안색이 거멓게 가라앉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너무 쌀쌀맞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시간도 받지 않겠다는데, 그 정도는 허락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재준 선배는 교장 선생님의 뜻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결국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억지 부려서 죄송해요."

"아뇨. 가긴 어딜 가요?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가야죠."

"예?"

그런 선배를 막아서는 교장 선생님. 의아함을 담은 나와 선배의 시선이 교장 선생님에게 향했다.

"제가 허가해줄 수 없다는 건 봉사시간을 받지 않고 일하겠다는 소리였어요. 사회에선 열정 페이니 뭐니 하며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확실히 받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여러분 같은 학생이 벌써 그런 경험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기, 선생님. 그렇다면……?"

"성재준 학생이 바란다면 내일도 나오도록 하세요. 봉사시간은 오늘과 똑같이 처리해주도록 할게요."

"아……!"

성재준 선배의 표정이 다시금 환하게 피어났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상의 도움은 받는 쪽도 마음이 불편한 법인데,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해주신다면 그런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다만, 학생 본인이 나서서 한 말인 만큼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행동합시다. 농땡이 부리지 말고, 열심히 행사에 임해주길 바라요."

"예!"

"류찬혁 학생은 팀장으로서 확실히 확인하도록 해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좋아요. 저희 학생이 이토록 학구열이 높으니, 교사인 저도 마음이 흡족하네요. 앞서 한 말과는 별개로 훌륭한 자세에요. 성재준 학생. 앞으로도 열심히 학업에 힘쓰도록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교장쌤!"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요."

이만하면 볼일은 끝났다고 생각하신 걸까. 등을 돌리고는 출입구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시는 교장 선생님.

나와 선배는 나란히 서서 그런 교장 선생님을 배웅했다.

그때. 갑자기 문을 연 채 나가시지 않고 이쪽을 바라본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보곤 말씀하셨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잊고 있었네요. 성재준 학생?"

"예?"

"만약 남은 축제 기간 동안 행사 만족도가 오늘과 같고, 류찬혁 학생이나 다른 학생에게서 좋은 평가가 이어진다면 성재준 학생의 진학 추천장은 제가 써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하세요."

"어…… 네? 선생님? 쌤?!"

교장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재준 선배의 부름마저 듣지 못한 체를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셨다.

굳게 닫힌 방화문을 나란히 바라보는 우리 두 사람.

거의 넋이 나간 것 같은 선배에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 땡 잡으셨네요, 선배."

"…… 그러게."

살면서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배의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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