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67화 (167/403)

167. 성심고 축제.-2-

1반의 학생들의 티켓 쟁탈전은 사실 반 정도는 농담이긴 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나머지 반은 제법 진심이 섞여 있었다.

진심이라고는 해도 '진심으로 싸우는 것'과 '진심으로 노는 것'은 다르다. 그들은 후자였다.

말하자면, 남고에서 반 전체가 피시방 내전으로 어느 그룹이 제일 게임을 잘하느냐를 다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들에게 있어서 요리란 게임 그 이상의 가치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긴 했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나름 머리를 맞대고 각 조마다 그들만의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때 별다른 소통이 없던 세 조 사이에 한 가지 공통된 문제점이 급부상했다.

각 조마다 배정된 시간에 따른 유불리有不利.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1조는 8시부터 시작하는 아침 준비 후 12시까지.

2조는 12시부터 3시까지.

3조는 3시부터 6시 이후 마감까지.

여러 가지 사항을 합쳐 보면 합리적인 시간배분이었으나, 이번 경쟁의 중점이 '판매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각 조가 맡은 업무량은 기본적으로 비등하다. 다 똑같이 바쁘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바쁘냐?'가 바로 중요한 점이었다.

1조는 개점 준비 및 아침 판매 담당.

2조는 고객이 가장 많이 식당을 찾는 점심시간 담당.

3조는 축제를 즐긴 관객이 하나둘 떠나는 시간인 저녁 담당 및 마감 후 청소.

요컨대 판매량을 올려주는 고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시간을 담당하는 건 2조였고, 그만큼 판매량 경쟁에서는 그들이 우세하다.

세 조의 학생들은 자연스레 그 사실을 눈치챘다. 학습의 성과다.

그리고 깨달았다.

찬혁이 알려준 것만을 무기로 싸운다면 이미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그들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1조와 3조는 이 불리함을 타파할 방법을 찾기 위해. 2조는 자신들이 점한 유리한 고지를 지키기 위해.

단순한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주는 점수 따위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냈던 찬혁이지만, 그도 이 반의 분위기가 거의 각축전에 가깝게 흐를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 의미 진정으로 젊다는 게 어떠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 찬혁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란 아직 채 성숙하지 못하지만, 그런 만큼 쓸데없는 곳에서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저돌성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그런 과정을 거친 뒤, 각 조에서 내린 결론은 동일했다.

차별성을 갖는다.

그들은 그것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했고, 각자만의 결과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

1조가 내놓은 차별화의 해답은 레시피의 변조였다.

찬혁의 가르침대로 원조에 가까운 형태의 케밥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1조의 학생들은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분명 아주 맛있는 요리지만, 담백하면서도 살짝 신맛이 강한 맛은 해외의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에게는 다소 어색할 수 있다. 그런 요리에 대중성을 부여하기에 가장 편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바로 소스였다.

기본 베이스를 케밥으로 두고, 여러 나라의 소스를 순차적으로 대조하며 실험한 끝에 1조가 선택한 소스는 미국식이었다.

서양의 수많은 나라 중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맛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었고, 고기와 빵의 조합에 미국식 소스는 특히나 금상첨화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 선택은 성공이었다.

"여기요! 여기 비프칠리 케밥 하나만 더 주세요!"

"저는 세 개 추가요!"

"저희는 이스켄데르 케밥 두 개요!

"자, 잠시만요, 여러분! 순서를 지켜주세요!"

문전성시. 그 단어의 뜻이 그대로 들어맞는 광경이었다.

식권을 받아 음식을 내어주는 가판대 앞은 몰려든 관객으로 인해 그쪽을 담당하는 학생은 건너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와, 이거 저번에 이태원 가서 사먹었던 것보다 맛있어."

"뭐? 너 그거 맛있다고 또 가고 싶다며."

"그러니까 그것보다 맛있다니까?"

"진짜? 야, 한 입만."

"아 알아서 사먹어. 500원 밖에 안 해."

"거 500원 정도로 쩨쩨하게 구네."

공강 시간을 활용해 들른 대학생들도.

"……아니, 이게 포장마차에서 나올 수 있는 맛인가?"

"우리 주방에서 만들어도 이만큼 제대로 나올 것 같진 않은데."

"장비를 보세요. 저런 게 있는 포장마차가 세상에 어딨어요."

"여기 있네."

"아니 좀. 그나저나 막내는 어디 갔대요?"

"내가 몇 개 더 사오라고 보냈어."

"또요? 여기서 배 채우려고요? 대회반 보러 간다면서요? 서둘러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것도 잘 시켜놨어."

"……가끔 여유 조금 부린다고 큰일 나진 않죠."

일종의 사전 시찰을 위해 가게까지 닫고 들른 셰프 일행도.

"이야, 이래서 성심고 성심고 하는 건가? 웬만한 식당 정도론 상대도 안 되겠네 이거."

"이걸 다 학생이 한 거래요? 어쩜."

심심한 차에 발걸음을 돌린 평범한 주민들도.

누구 하나 호평을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건 축제 분위기에 흥이 오른 덕분이기도 했고, 한 장에 음식 하나와 교환할 수 있는 식권이 고작 500원 정도 뿐이 안 되었기에 관객의 부담이 덜어진 덕분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였다.

그들이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1반의 축제 데뷔전은 아주 성공적으로 그 막을 열었다.

***

한편, 소강당의 대회반 가설 식당.

문을 열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진 주문을 만들던 찬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잘 하고 있으려나."

백예은에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찬혁이었으나, 그 또한 걱정을 완전히 접어둘 수는 없었다.

의욕이 높으면 좋기야 하지만 의욕만으로는 부족한 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잠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찬혁이었으나, 그는 이내 그 걱정을 덜어놓기로 결정했다.

'뭐, 지금 내가 누구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오히려 걱정 받아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라 자조하며 찬혁은 안 그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손을 더욱 기민하게 놀리기 시작했다.

오픈 시작 5분 만에 홀은 만석. 거기다 점점 늘어나는 웨이팅 고객에게 대응하기 위해 처음 바깥으로 나간 관광고 학생을 도우러 두 명의 인원이 추가 지원을 나간 상태다.

그만큼 한 번에 몰린 주문에 홀에서 지연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자신이 더 걱정을 받아야 한다는 찬혁의 자조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4번 테이블 손님 세 분 전채 나갔지? 몇 분 지났어?"

"10분 됐어~. 아, 7번 테이블에 5인은 3분 지났어. 메인 늦는 거 아니지?"

"설마 늦겠냐. 아무튼 메인 나간다. 디저트 쪽은 어때?"

"문제없어. 계속 진행해."

"알겠다."

다만, 북적북적 고객으로 넘쳐나는 홀의 전쟁터 같은 상황에 비해 주방은 말 그대로 평온 그 자체였다.

누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서 말썽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작업은 그저 순탄하게 흘러갔다. 음식은 제때에 정확히 나왔으며 순서나 주문 상의 자잘한 실수 하나 틀리는 게 없었다.

바깥의 상황에 비교하자면 그들에게서는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이 이토록 여유로운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그들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고객이 몰리는 것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방의 모든 인원이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120% 이상 해냈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얘들 대체……?'

너무나도 평화로운 주방의 환경을 아크릴 창 건너편에서 바라보던 관광고 지원팀의 팀장, 하유리는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이론만큼 실무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형태의 업장을 견학하고 체험해왔다.

이만한 퀄리티의 음식을 만드는 곳은 아주 적게나마 있었다.

영업시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는 바쁜 매장 또한 있었다.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업무를 처리하는 업장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세 가지 경우를 한 곳에서 보게 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미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야. 프로. 그것도 초1류 프로 수준이야. 저 팀 전체가.'

누구도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러면서도 결코 늦어지지 않는다.

주문 실수? 홀에서 실수가 있으면 있었지 주방에서는 단 한 번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험이 적은 그녀의 후배가 저지른 실수를 주방에서 커버해주고 있을 정도다.

"대단해……."

잠시 전쟁터 그 자체가 된 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살핀 하유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홀에 있는 고객 전원이 웃고 있다.

기쁜 웃음, 그윽한 미소, 격한 환호, 만족스런 홍소.

종류는 달라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족, 커플, 친구, 개인. 그 모두가 긍정적인 감정으로 넘쳐났다.

심지어 홀을 종횡무진 하는 그녀의 후배와 동급생들마저 그 기운에 영향을 받은 듯 고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주방의 모습도 그러했지만, 이 또한 이 업계에서 결코 쉽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리라는 것을 직감한 하유리 또한, 그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한편, 봉사시간을 빌미로 설거지나 식자재 정리를 비롯한 잡무를 맡고 있던 몇 명의 성심고 학생 또한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하유리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단어로 치환하자면 경악에 가까우리라.

"이, 이게 대회반인가?"

성심고 3학년 중에서도 중하위권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성재준은 설거지를 하며 살핀 주방의 모습에 그런 한탄에 가까운 혼잣말을 흘렸다.

그 또한 성심고에서 3년이란 시간을 악착같이 버텨왔다.

어지간한 어중이떠중이 요리사보다 자신의 실력이 나으리라 확신했고, 또한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분명 국내 어느 곳을 가나 환영받을 인재였다. 성재준은 그 사실에 자부심을 품었다.

그렇기에 처음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회반의 위상이 아무리 높다지만 고작 1학년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다니, 그 반대가 되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생각을 실시간으로 수정 당하고 있었다.

'차원이 달라.'

국내 어느 곳을 가든 환영받을 인재?

그가 보는 대회반 1학년의 수준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국내, 아니 세계 어느 기업이든 그 실체를 알게 된 순간 직접 모시러 올 수준의 천재들.

대회반이란 그런 괴물 같은 놈들의 소굴이라는 것을 성재준은 실감했다.

'특히 저 녀석.'

그의 눈이 주방의 중심에 있는 찬혁에게로 향했다.

세 가지 코스의 메인을 홀로 담당하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여유로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태연한 얼굴.

하지만 그런 찬혁의 손은 그의 눈으로도 대체 뭘 하는 건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있어서야.'

아무리 대회반에 비해 수준이 달린다지만 그 또한 나름 칼밥을 먹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 이토록 순탄하게 주방이 굴러갈 수 있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저 천재들의 중심에서 탄탄한 축이 되어 주방 전체를 주관하는 찬혁의 귀신같은 용병술이 없었다면 이 주방이 이토록 평화롭지는 않았으리라.

'……젠장.'

성재준의 가슴 속에서 자신감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구멍 뚫린 풍선마냥 쭈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차이란 이토록 뼈아픈 것임을 실감했다.

그때였다.

"재준 선배?"

"어, 어?"

방금까지는 성재준의 시선을 받고 있던 찬혁이, 이번에는 반대로 성재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보고 있던 걸 들켰나?'

식은땀을 흘리는 성재준에게, 찬혁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홀 쪽에서 식기 상태가 아주 좋다고 인사 부탁드린대요. 저희도 선배님들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어, 그, 그래."

"괜히 축제날에 끌려오셔서 고생하시네요.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죠. 교장 선생님이 일 잘 풀리면 인센티브도 생각해 보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이대로 계속 가면 거뜬하겠어요."

"아, 응!"

성재준은 찬혁의 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주방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찬혁의 립 서비스였으나, 감사하다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성재준은 저도 모르게 그 술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대회반의 가설 식당은 순항 중이었다.

그야말로 모터를 두 배로 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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