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66화 (166/403)

166. 성심고 축제.-1-

종이 울린다.

평소 수업시간을 알려주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싸구려 같은 종소리가 아니다. 학교 비품 중 하나인 거대한 종에서 울려 퍼지는 뼛속을 울리는 듯 한 묵직한 저음이다.

…… 대체 왜 저딴 게 학교 비품인지는 모르겠는데.

'요리랑 종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는 모른다. 테스형도 아마 그건 모를 것이다.

뭐, 그건 넘겨두더라도 저 종이 울렸다는 건 개막식이 시작됐다는 뜻.

교장 선생님이 개막식은 간소하게 치른다고 말씀하셨으니, 곧 고객이 들이닥칠 것이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에 한창이던 1학년 팀원. 그리고 홀에서 테이블을 세팅하던 관광고 학생들의 이목을 잠시 내게로 모았다.

"자자, 하던 일 잠시만 놔두고 제자리에서 들어주세요."

평소 실내 체육 등의 활동에 사용되던 소강당은 지금 거의 뜯어고치는 수준의 리모델링을 통해 겉모습만큼은 훌륭한 식당이 되었다.

소강당이라고는 해도 그 크기는 농구장 두 개를 이어 붙여도 공간이 남을 만큼 커다란 별관 건물이지만.

고객의 반응을 최대한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음식과 기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홀과 주방을 잇는 임시 합판 벽에는 아크릴 창이 붙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주방과 홀의 소통이 원활한 것도 이 녀석 덕분이다.

"축제 개막식이 시작됐습니다. 30분쯤 지나면 끝날 거예요. 다들 준비 잘 마무리 해주시고, 홀은 20분쯤 후에 한 명만 입구에 대기시켜서 고객 안내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다들 들었지? 테이블 세팅 얼른 마무리하고, 기물 중에 하자 있는 건 잘 체크해서 빼내! 특히 식기! 이 브랜드 모르는 사람 없지? 비싼 물건이니까 조심해서 다뤄!"

"옙!"

저번 따로 1학년 팀과 미팅을 가졌던 관광고 측 인원은 제법 손발이 잘 맞는다. 특히 경영과에서 진학 후 호텔리어를 준비하고 있다는 2학년 선배의 리더십이 나이답지 않게 대단하다.

"저쪽도 살벌하네."

"그러게. 우리처럼 좀 설설 하면 안 되나."

"맞아맞아. 혁이는 유도리가 있어서 편해!"

그건 내가 유도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녀석들이 딴지를 걸 건수를 주지 않아서다. 다들 언제 그렇게 연습했는지 내 예상보다 30분은 이르게 준비가 끝났으니까.

'이놈들이 이 환경이 얼마나 편한 건지 알까…….'

실제 업장으로 가면 유능한 상위 1퍼의 인재가 다른 인원을 갈구고 욕하면서라도 이끌어야 한다. 근데 지금 여기 있는 다섯 명 전원이 상위 1퍼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팀원이니, 아마 그 누구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좋지만.'

세상에 살다살다 주방 일 하면서 마음이 편한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아무튼, 진즉 준비를 끝내고 모여서 노가리나 까고 있는 아이들을 각 구역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자니 백예은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애들은 괜찮을까?"

"애들?"

"반 애들 말이야."

그쪽 이야기었나.

하긴, 걱정스러워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반에서 나름 주력 딱지를 달고 있던 나랑 얘, 안창민 세 사람은 진즉 이쪽으로 갈라져 나왔고, 남은 건 대회반에 비하면 지원을 적게 받은 우리 반 녀석들뿐이니까.

'적다곤 해도 충분하긴 하겠지만.'

애당초 대회반에 오는 지원이 이상한 수준인 거다. 다른 학급도 규모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만만치 않다. 애당초 그 케밥 머신부터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품이기도 하고.

'뭣보다…….'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연습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던 시기의 반 아이들을 못 봤기 때문이다.

그 치열하다 못해 화상을 입을 것 같은 경쟁의 열기는 도저히 입으로 표현하기가 힘들 만큼 격렬했으니까. 그건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괜찮아. 걱정 마."

아마 지금쯤 우리 못지않게 단단히 준비를 마쳐놨을 테니까.

***

"어, 어쩌지? 우리 준비 다 된 거 맞지?"

"운동장 보고 왔는데 곧 있으면 개막식 끝날 것 같아! 으으, 우리가 첫 타자니까 잘 해야 하는데……!"

한편, 축제의 시작 타임을 담당하게 된 1반 1조의 상황은 찬혁의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산만했다.

오죽하면 평소에는 조용히 지내는 편인 양희연이 나서서 조원에게 쓴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마, 야들아. 좀 조용히 안 하나. 뭐 준비가 안 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디 적당히 와가 할 일이나 해라."

그녀의 말대로, 당장 손님을 맞을 준비는 얼추 끝난 지 오래였다.

제과제빵 실습실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 공수한 빵은 충분했고, 그 외의 양념이나 일회용기 등의 준비도 완벽했다.

남은 건 진정하고 손님을 맞이하면 될 뿐인 작업.

하지만 어른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스스로 주관하여 일종의 장사를 준비하는 건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제법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마, 현주야. 니도 뭐라 좀 해봐라."

"……."

한편 가판대 앞에서 한창 고기를 준비하던 나현주는 그런 상황에서도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고기를 굽는 일에 충실하면서.

"……."

나현주는 자신의 몸통보다 커다란 고기를 빈틈없이 확인하며, 한편으로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과거라고 해봐야 고작 일주일 정도 전에 불과했지만, 분명 근래에 들어선 가장 삶의 밀도가 높았던 일주일이었다.

쇠질을 하느라 제법 굳은살이 생긴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열중한 고기를 다루는 연습.

그런 과정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뜻을 돕기 위해 그토록 발 벗고 도와주려 노력한 사람은 부모님 말고는 찬혁이 처음이었다.

나현주는 찬혁과 함께한 연습을 떠올렸다.

"이런 골판지를 푹 적신 다음 적당히 말리면 얇게 저민 고기랑 되게 비슷한 느낌이 되거든. 물론 탄력 같은 걸 생각하면 실제로는 상당히 다르겠지만 제일 싸게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이란 말이지."

"고기를 양념에 재울 때는 순서를 잘 기억해. 양념, 고기, 양념, 고기. 불고기 같은 건 그냥 통째로 붓고 잘 섞어주면 되지만 케밥은 하나하나 펼쳐서 쌓아야 하니까 다음 일도 생각하면서 재워야 돼."

"고기를 꽃을 때는 밸런스를 생각해. 특히 이렇게 축을 다르게 꽂아서 쌓을 때는 고기끼리 겹치는 부분이 같은 선에 있으면 안 돼. 고기는 덤벨 원판이 아니니까 두께가 일정하지 않거든. 고기가 겹치는 선이 계속 어긋나서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항상 명심해."

그런 교과서적인 정석을 이해하기 쉽게 잘 알려주기도 했지만, 가끔 유머 감각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가판대에 서면 쇠질하는 것처럼 규칙적이게 움직이려고만 하지 말고, 가끔 딴짓도 조금 해줘."

"딴짓?"

"뭐, 손에 든 칼로 도마를 살짝 두드린다거나, 고기를 자를 때도 조금 오버액션으로 썬다거나. 아, 위험하지 않게."

"왜?"

"생각해봐. 너도 맨날 벤치프레스만 하면 지겹지? 가끔은 데드도 하고, 어떨 때는 스쿼트도 하고, 종종 유산소도 해야지. 너무 같은 모습만 보면 손님도 지겨워. 조금은 위트를 보여줘."

"나는 맨날 해도 안 지겹던데."

"…… 아무튼 그렇다고."

평소에 해본 적이 없어서 익히느라 힘들었던 쇼맨십도 다시 생각하면 즐거운 기억이다.

힘들었다.

힘들었지만, 분명 그만큼 얻은 것이 있다.

나현주는 그 사실을 알았기에 믿을 수 있었다.

"괜찮아."

한층 더 산만해지기 시작한 천막의 소란 사이로 그녀의 묵직한 중저음이 파고들었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이 적은 나현주였으나, 타고난 그녀의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하는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로 모이는 이목에 잠시 부담을 느낀 그녀였으나, 이내 이보다 더 많은 시선을 감당해야 함을 되새기고는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연습도 많이 했고, 모두 맛있다고 했어.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어. 그러니까 괜찮아."

말주변만큼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으나, 그 뜻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한 학생은 없었다.

잠시 그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는다.

다만, 그 고요함은 불안함이 만들어낸 불편한 스산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폭풍전야의 바다에 찾아온 적막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의 귀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의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며 나는 커다란 울림.

그것을 느낀 일동 앞에 선 양희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 들었제? 퍼뜩 안 움직이나! 철판 달구고! 식권 받는 아는 얼른 나가 있고!"

"아, 알겠어!"

발이 떨어져라 뛰기 시작한 아이들 앞에서 양희연이 나현주의 몸을 팔꿈치로 툭 쳤다.

신장 차이 탓에 옆구리 근처에 간신히 다다른 팔꿈치가 불만스러운 듯 표정을 살짝 찡그린 양희연이었으나, 이내 다시 웃음을 지었다.

"마, 말 잘 했다."

"그런 거야? 잘 모르겠어."

"잘 했다 안 카나."

"…… 찬혁이는, 조금 더 잘 말했을 것 같은데."

"그건 가가 입을 잘 터는 기고, 가는 그런 건 쓸데없이 잘 하니까. 우리도 마 시작하자."

"응."

***

개막식이 끝난 뒤. 찬혁의 가족 일행은 앞자리에 앉아 있던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늦게 운동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몸이 나왔어도 정신은 그곳에 두고 온 사람 마냥 방금 보았던 개막식의 광경을 몇 번이고 되새기고 있었다.

교장인 안영길이 주관하여 시작한 개막식.

본인은 관객과 학생 모두가 최대한 오랜 시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개막식을 간략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정작 그 내용은 간략하다는 말로는 차마 가리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학교 축제는 축제라는 이름을 쓰기는 해도 수많은 학생의 학부형과 미래의 예비 학부형이 될 사람이 모이는 자리.

그런 만큼 성심고 측은 여느 학교가 그러하듯 개막식에서 본인들이 이룩한 업적과 교육상황, 방침 등에 대한 자료를 늘어놨다.

다른 게 있다면 그 질과 양의 차이일까.

도통 발표가 끝나질 않을 만큼 방대한 수상이력.

교육청을 비롯한 수많은 기관에서 받은 상장.

그 모든 것이 성심고가 얼마나 뛰어난 학교인지를 뒷받침했으나, 관객의 눈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것은 그런 문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대단하네요…… 요즘 학생은 다들 저런 걸 할 수 있는 걸까요?"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개막식을 알리는 봉화라는 소개와 함께 공개된 그것.

지금도 운동장 중심에서 그 웅장한 자태를 만천하에 드러낸 하나의 스태츄.

정확히는 성심고의 본관을 약 5분의 1 사이즈로 구현한 그 정교한 조형물을 오로지 학생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그 자리에 모인 이중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안효민을 비롯한 대회반 2학년은 그 건물이야말로 3학년 대회반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제단임을 알기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거 참, 성심고 성심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나 대단한 학교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찬혁이가 그렇게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니……."

신미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으나, 사실 그 사실을 제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박춘배였다.

한때 직접 가르친 그 작은 불량소년이 알고 보니 요리의 천재였다니,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어른 두 사람이 그렇게 경악에 잠겨 있을 무렵, 정반대인 인물도 있었다.

"엄마, 나 배고파! 어디 뭐 먹을 곳 없나?"

"아, 응. 아침도 안 먹고 올라오느라 고생했지. 잠깐만 기다리렴."

요 몇 년. 아니, 거의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족 나들이라는 말과는 담을 쌓았던 류주아였기에 이런 커다란 축제는 마냥 신날 수밖에 없었고, 신미정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찬혁이가 준 티켓은……."

"12시 예약이었죠? 그럼 어디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어디 좋은 곳이 없으려나…… 아, 맞다. 찬혁이가 반에서 하는 식당이 있다고 했어요. 거긴 어떠세요?"

"저야 어디를 가든 좋습니다. 주아는 괜찮니?"

"응. 오빠 반이면 뭘 하든 맛없진 않을 것 같아요."

평소 얼굴만 보면 서로 유전적 공격성을 발휘하는 남매여도 능력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그렇게 찬혁이 보낸 메시지를 따라 자리를 옮긴 세 사람은, 이번에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우와! 저거 뭐야?"

"아, 아니……."

가판대에 선 여학생, 나현주 옆으로 천천히 회전하는 거대한 고기 덩어리.

척 보아도 성인 남성의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그 사이즈에, 세 사람을 비롯한 주변을 지나는 관객 모두가 압도당했다.

감히 고개를 돌릴 생각도 못 하고 시선을 고정하는 사람들.

"어, 어서 오세요."

그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적어도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 나현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의 첫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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