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어셈블.-5-
케밥이라는 요리가 있다.
케밥이란 터키의 대표음식으로, 보통 터키라는 나라는 잘 모르더라도 세로 방향으로 우뚝 선 원통 모양 고기를 구워서 썰어주는 모습을 실제로든 미디어 매체로든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란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사실 그건 케밥이 아니지만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어디까지나 케밥의 일부분이라는 뜻이다.
애당초 케밥이란 단어는 '구운 고기'를 뜻한다.
꼬치에 꽂아 구우면 쉬쉬케밥이 되고, 생선을 구우면 생선 케밥이 되고,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구우면 되네르 케밥이 된다.
그저 구이에 불과한 요리가 한 나라의 전통요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그건 케밥이 그만큼 깊이 있는 요리임을 뜻한다. 언뜻 단순해 보여도 제대로 익히려면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요리를 내가 이 녀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의 손질, 양념, 적층, 굽기, 썰기.
되네르 케밥은 큰 덩어리가 아니라 얇게 저민 고기를 수십, 수백 장을 꼬치에 겹쳐 쌓아 굽는 것이라 평범한 바비큐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덤으로 구운 고기만으로는 요리가 되지 못하니 함께 곁들일 사이드와 몇 가지 응용 레시피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은 이 모든 걸 배우려면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건 내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좋아, 이면지 다 빼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보자. 처음보다 훨씬 나아졌어."
"화력 조절할 때는 정말 큰 고기를 굽는다는 생각으로 구워. 가장 겉면은 모조리 태워도 괜찮아. 잘라내면 돼. 처음 구울 때는 외곽보다는 내부에 온기를 침투시킨다는 생각으로. 알겠지? Slow&nice. 천천히, 잘."
"고기만큼 중요한 게 빵이야. 종류도 다양해. 피타, 라바쉬, 에크멕. 어느 걸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덩어리에서 나온 케밥이라도 다른 요리가 된다."
나현주를 비롯한 가판대 담당 삼인방은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고기에 해박한 녀석들을 특별히 골랐다.
제빵의 경우 정확한 레시피와 계량, 그리고 노동력이 있으니 남은 건 반복 숙달 뿐.
양념이나 요거트 등도 크게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기에 잘 해내리라 믿는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데.'
다들 하기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의욕이 없어 보이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어딘가 결여된 느낌이 든다.
아직 딱히 문제가 보이는 건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긴 하지만, 표현할 방법을 찾질 못하겠어서 살짝 답답한 느낌이라고 할까.
찝찝한 심정 탓에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주방 구석에서 홀로 방해가 안 되게끔 연습하고 있던 나에게 아이들 몇이 다가왔다.
흔히 4인방으로 불리는 김철정, 양희연, 나현주였다.
"찬혁 하이."
"김철정 어서오고."
"왜 그리 죽상이야?"
"누가 자꾸 꼴…… 아니, 그냥 좀 이거저거 생각하느라."
남고생의 흔한 밈 대화.gif를 직관한 양희연이 얼굴을 구깃구깃 찡그렸다.
"뭔 개소리고."
그러고 보니 이분도 워딩이 꽤 쎘지.
"농담이야, 농담."
"빙시 같이 논다 진짜."
원래 고딩이 그렇다. 그나마 남녀공학이라 이 수준 아닐까.
"지금 뭐 하는 거야?"
"대회반 연습."
"…… 굳이 지금?"
"시간은 유용하게 활용해야지."
이제 가르쳐줄 건 다 가르쳐준 느낌이고, 이제 내가 할 일도 별로 없다.
나머지는 궁금한 게 있는 애들이 오면 좀 도와주거나, 효율적인 연습 방법 같은 걸 알려주는 게 전부다.
"그래서 요리 연습 중이시다?"
"하고 마, 부지런도 하다 참."
"놀리는 거냐?"
"삐뚤어진 거 보소. 칭찬이다 마, 칭찬."
그런 것 치곤 말투가 좀…… 뭐, 아무렴 어때.
"그래서. 뭐 하러 온 거야?"
"그냥 쉬는 겸 뭐하나 보러 왔지. 그나저나 대회반 연습이면, 이게 그 대회반 가설 식당에서 쓸 메뉴야?"
"어. 전채로 나갈 비프 칼파쵸야."
"거의 다 된 거지?"
"응."
비프 칼파쵸라고 해도 크게 특이한 건 없다. 아주 얇게 저민 쇠고기에 올리브, 샬롯 등의 부재료와 새콤한 양념을 뿌려 먹는 요리니까.
단순해서 만드는 과정도 크게 시간이 들지 않아 전채로 자주 사용되는 요리다. 레시피는 손을 좀 봤지만.
"먹어봐도 돼?"
"괜찮아. 먹어봐."
마침 혼자 맛보기 하는 것도 질린 참이다.
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달려든 젓가락 세 쌍이 접시 위의 칼파쵸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식을 마친 녀석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죽인다. 엄청 맛있는데?"
"내가 아는 칼파쵸랑 달라. 뭔가…… 좀 더 고기에 존재감이 있어."
"와사비 향이 살짝 나네. 거기에 단맛이 살짝 섞여서 고기 맛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오, 눈썰미가 좋다. 일본식 고기구이인 야키니쿠에서 살짝 착안한 부분이 있거든. 표면만 바싹 익히고 와사비를 조금 발라준 뒤 양념에는 육회 스타일로 배즙을 양념에 살짝 섞어본 게 좋은 시도가 된 것 같다.
"뭐해? 뭐야 이거, 칼파쵸?"
"뭐 연습하고 있는 거야?"
주방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점점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몰리기 시작했다.
오는 손님 가리지 않는다고, 시식해도 되겠냐는 아이들의 요처에 맞춰 조금 더 요리를 준비했다. 물론, 이번에도 반응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와, 수준 봐라. 이런 걸 준비하니까 축제 때 요리하지 말란 말이 나오지."
"걱정 마. 우리 준비하는 것도 그렇게 꿇리진 않아."
"그래도 이게 전채 수준이면 한 번 가서 먹어보고 싶긴 하다."
"교체하고 가면 우리도 먹을 수 있어?"
아쉽게도 그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아마 먼저 줄이라도 서고 있어야 자리가 좀 날 텐데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할 우리 반 녀석들한테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내 부정적인 대답에 단박에 시무룩해지는 아이들의 얼굴.
'아, 그러고 보니.'
"교장 선생님이 이거 주시긴 했는데."
주머니를 뒤적인 나는 이내 반으로 접힌 직사각형 종이를 여러 장 끄집어냈다. 티켓이다.
"뭐꼬 그게?"
"예약석 이용권. 예약이라고 해봤자 당일날 현장에서만 받는 거긴 한데, 이거 있으면 전날에 미리 예약석 몇 개는 빼줄 수 있어."
"오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상당히 큰 문제다.
"근데 이게 몇 장 안 되거든. 보자……."
가족이나 친지가 있으면 사용하라고 받은 거니까, 내일 온다고 했던 어머니랑 주아, 그리고 사장님 몫까지 빼니 8장 정도가 남는다.
대회반을 제외한 반의 정원은 26명.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렇다고 백예은이나 안창민 몫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막무가내로 줄 서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방법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수그리고 떠나는 아이들을 보던 도중,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녀석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겸, 목표를 부여해주는 방법이.
"야, 얘들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떠냐?"
"?"
"1, 2, 3조 중에서 축제 1일차에 가장 많이 판매한 조가 갖는 거지."
내가 생각했지만 제법 명안이었다.
자고로 노력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런 작은 보상이라도 하나 있는 편이 아이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이는 데에는 더 낫겠지.
"뭐…… 라고?"
"판매량, 1위?"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틀린 생각이었던 것 같다.
"2조, 들었지?"
"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어."
"좋아, 가자."
"가자."
"가즈아아아아아!!"
"저 티켓 우리가 상위입찰 했다!"
"까고 있네! 입찰은 무슨!"
"저건 우리 거다! 아무한테도 못줘!"
뭐야. 너네 왜 그래.
"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내가 불을 붙인 건 경쟁심이 아니라 도화선이었던 건가?
고작 '티켓을 준다'는 한마디에 그야말로 폭발해 버린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저 반납하고 각 조로 나뉘어 서로의 구역으로 달려간다. 마치 꼬랑지에 불이 붙은 경주마처럼.
어딘가 허탈한 눈으로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어깨를 누군가가 붙잡았다.
"찬혁아."
"어, 어. 현주야."
나현주, 여태껏 본 기억이 없을 만큼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던 녀석이 나를 보며 끄덕였다.
"걱정 마. 티켓은 우리가 받을게."
틀렸어. 이놈도 제정신이 아니야.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는 내게 양희연이 물었다.
"…… 마, 니 이거 뒷감당은 우짤라고 그라노."
모르겠으니까 나한테 묻지 마라.
축제를 향한 폭주가 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
"어…… 여긴가?"
"이쯤에 주차하면 될 것 같은데요, 아저씨?"
"오, 고맙다 주아야."
성심고의 축제가 개최되는 날.
박춘배를 위시한 류주아, 신미정 세 사람은 제법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른 아침 수준이 아니라 새벽 댓바람부터 이러했다고 함이 옳겠지.
개막식부터 확실하게 구경하고 싶다고 떼를 쓴 류주아 덕에 새벽 일찍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운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사장님.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저야말로 찬혁이 덕에 이런 곳까지 와보고 좋은데요 뭘."
"엄마, 얼른 가자!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 것 같아!"
예의를 차리느라 바빠 어딜 구경할 생각도 못 하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말로만 들었지 오는 건 처음인 성심고의 미려한 외관에 예술적 감성을 자극받은 류주아는 거의 뛰다시피 두 사람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얘도 참. 감사하다고 먼저 인사드려야지."
"아하하, 놔두세요. 한창 뛰어놀 나이잖아요. 그런데 주아 넌 학교는 괜찮은 거니?"
"넹! 왠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현장학습으로 출석처리 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이것저것 찍고 남겨야 할 감상문이 많다며 질린 표정을 짓는 류주아의 익살스런 모습에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잠시 후, 학교 입구에 도착한 세 사람. 그 앞을 한쪽 팔에 완장을 찬 학생이 막아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입장권 확인할게요."
"여기요!"
류주아가 실행위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찬혁이 보내준 전자 입장권이 뜬 화면을 본 실행위원이 화들짝 놀랐다.
"아, 대회반 학생 가족이셨구나. 잠시만요. 야! 1학년, 이리 와봐!"
성심고라는 학교에서 대회반이 얼마나 대단한 위신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세 사람이 그 반응에 당황스러워할 무렵, 실행위원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색이 다른 완장을 찬 학생이 그들 앞에 섰다.
"이 학생이 지정석으로 안내해드릴 거예요. 성심조리고등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 그래. 학생도 수고해."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어, 어어."
생각지도 못한 극진한 환대에 당황한 세 사람이었지만, 교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성심고의 내부 풍경을 보게 되니 그런 것에 놀랄 틈은 없었다.
운동장은 잔디가 깔린 축구장용과 매끄러운 흙이 깔린 구형 운동장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그 주변을 따라 설치된 육상트랙이나 테니스장, 농구장 등의 시설도 출중했다.
요리를 배우는 학교에서 이만한 운동설비를 갖출 필요는 없을 테니, 어디까지나 학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시설일 터.
그 사실을 모르는 류주아는 '우리 학교도 이랬으면 좋겠다.'며 부러워할 뿐이었지만, 어른의 사정에 조금 더 해박한 박춘배나 신미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이윽고 도착한 그들의 자리도 상당히 놀라웠다.
운동장을 둘러싼 계단식 좌석의 가장 앞에 다른 좌석보다 확연히 넓은 좌석이 그들에게 떡하니 주어졌으니까.
이쯤 되니 류주아 또한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 …… 혹시, 우리 오빠 좀 대단한 사람이야?"
"아무래도 그런가봐."
확실치 않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며, 신미정은 자리에 앉았다.
점점 차기 시작하는 좌석.
무언가를 체크하던 학생들과 교사들이 하나둘 운동장을 비우고.
드디어 성심고 축제의 시작이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