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끝이 없는 것이 끝.-3-
'어, 어색해……!'
어색하다.
사물이나 인물이 익숙하지 못하여 불편함을 느낀다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의 참뜻을 이유나는 지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뼈저리게 이해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단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마음은 그야말로 내면의 평화를 찾은 듯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그 수면 아래에서는 당장이라도 함수를 45도 상각으로 짓쳐들고 뛰쳐나갈 순간을 기다리는 잠수함이 사냥을 앞둔 짐승의 기세로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찬혁과의 대화도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자길 못 알아보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것도 잠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신을 알아본 찬혁의 반응에 스멀스멀 올라오던 긴장감조차 눈 녹듯 사라졌었다.
'…… 알아본 이유가 조금 그렇지만…….'
안 그래도 심심하면 시청자가 놀림감으로 삼았던 소재이니만큼 그리 반갑게만 느껴진 건 아니긴 해도, 아무튼 알아봐 줬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이제 그가 차려주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즐기기만 하면 전부 해결이다.…… 라고 생각했던 건 바로 아까까지.
그녀의 뒤를 이어 들어온 다른 손님의 얼굴을 본 이유나는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박종원, 강백동. 그리고 방금 대회에서 그들과 같이 심사위원 역할을 수행한 진영배.
그녀 자신도 일반인 기준에서라면 충분히 유명한 사람이지만 앞의 두 사람과 비교하면 달빛 앞의 반딧불. 아니, 태양 앞의 반딧불 신세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그녀의 옆자리에 그들이 앉기가 무섭게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찬혁 덕에 잠시 한숨을 돌릴 틈이 생겼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갈 곳을 잃고 커다란 눈망울 속을 천적을 만난 물고기마냥 헤엄쳤다.
'어쩌지어쩌지어쩌지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점심나가서먹을것가태.'
여타 방송인이었다면 '올튭각 씨게 떴다!' 같은 소릴 하면서 찬혁과 심사위원단의 대화에 끼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막 하꼬라 불리는 단계를 벗어나 발돋움하고 있던 이유나에겐 과하게 부담스러운 소리였다.
'말하다 한번 실수라도 했다간……!'
인터넷 위의 사건사고를 쥐 잡듯 좇는 사이버 렉카의 갈고리에 걸려 갈가리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가까운 두려움에 이유나는 방송 중이던 핸드폰마저 통화를 하는 척 귀에 갖다 대고 카메라를 가렸다.
─? 화면 왜 이럼?
─폰으로 실시간 방송하다 튕긴 거 아님? 오늘 시청자도 좀 많잖아.
─아닌 것 같은데. 소리도 들리고, 바에도 라이브 표시 아직 떠 있고.
─화면 가린 거 모르는 거 아냐? 누가 도네 좀 쳐봐.
이유나와 그녀의 시청자가 서로 다른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찬혁은 갑자기 찾아온 심사위원단을 맞아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니, 세 분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찬혁의 당연하다 싶은 의문에 박종원이 답했다.
"하하, 사실 대회 2라운드가 끝난 뒤에 미리 예약을 좀 해놨었어요. 여러분처럼 어린 학생이 그렇게 맛있는 작품을 만드는 가게는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했거든요."
"저희는 선생님이 같이 자리를 잡아주셔서……."
"이렇게 함께 오게 됐습니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요, 류찬혁 선수."
강백동과 진영배의 이어지는 말에 찬혁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뇨.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죠. 식사는…… 더 하실 수 있나요?"
의아함과 웃음이 반반 섞인 찬혁의 질문에 박종원과 진영배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은 몰라도……."
"솔직히 저희는 좀……."
강백동의 등을 툭툭 치며 말하는 박종원의 말에 찬혁도 이해한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리 대회가 끝난 지 세 시간 정도가 흘렀다지만, 오늘 그들이 먹은 양은 평범한 사람 같았다면 이튿날 하루 정도는 안 먹어도 괜찮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중 한 명의 식성은 평범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기준을 전부 강백동mc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뷔페 식당은 폐업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찬혁은 남몰래 실소를 터트렸다.
"확실히 배가 꽤 차긴 했는데 와서 아무것도 안 먹고 자리만 차지할 수는 없고……."
"저희 때문에 기회를 놓친 다른 손님을 생각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주문을 앞두고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두 사람 사이로 찬혁이 끼어들었다.
"그럼 최대한 배에 부담이 안 가는 메뉴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음? 그럼 저희야 좋지만 까다로운 주문일 텐데, 괜찮겠어요?"
"아무렴요. 손님 고민은 요리사가 덜어드려야죠. 괜히 오마카세가 아니니까요."
오마카세. 한국어로 번역하면 '맡기다'라는 뜻이 담긴 단어다.
그리고 오마카세 주방은 그 말뜻 그대로 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권한, 예를 들면 메뉴 선정이라든가 하는 자질구레한 사항을 전부 요리사에게 맡기는 곳.
물론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 또한 요리사의 몫이다.
찬혁의 제안을 박종원을 비롯한 일행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의 음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찬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직후 무언가 깜박했다는 듯 "아차"하는 소리와 함께 급히 고개를 올렸다.
실제로, 찬혁이 까먹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한 분 더 계신 걸 깜빡했네요. 이유나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분들과 같은 코스로 준비해드려도 괜찮을까요?"
"?!"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찬혁이 그녀의 존재를 까먹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심사위원단 일행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노력은 찬혁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그녀는 대답도 없이 기름칠하지 않은 철문처럼 뻣뻣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박종원을 위시한 일행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들이 워낙 유명한 탓에 주변 시민이 긴장하는 건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게 카메라도 없는 사석일지라도 말이다.
그에 더해 그들의 흥미와 호기심은 그보다는 찬혁이 만드는 요리에 더욱 쏠려 있었다.
"그래서, 어떤 걸 만들어주실 건가요?"
"소바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소바요?"
찬혁의 선택에 박종원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면 요리는 탄수화물 특유의 수분에 의한 부피팽창이 굉장히 크기에 전채로는 그다지 어울리는 요리가 아니고, 찬혁이 앞서 말한 것처럼 배에 부담이 덜 가는 음식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찬혁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류찬혁 선수라면 뭔가 생각이 있겠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찍어 드실 육수는 차게 해드릴까요, 아니면 따뜻하게 해드릴까요?"
"어느 쪽을 추천하시나요?"
"음, 바깥 날씨도 쌀쌀하고, 맛을 즐기기에도 따뜻한 쪽이 더 좋으니 온 육수를 추천 드리고 싶네요."
"그럼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저도요."
"저도 똑같이 부탁드립니다."
"…… 저도요."
말 그대로 모기가 기어가는 소리로 마지막 순서를 차지한 이유나를 끝으로, 찬혁이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걸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다만, 한 가지 과한 친절을 곁들여서.
"아, 그러고 보니 박종원 선생님하고 강백동 선생님은 인터넷 방송도 하시지 않나요?"
"예. 저는 간단한 레시피 방송이고 강백동 씨는 먹방…… 컨텐츠라고 해야 하나요 그걸?"
"그렇죠. 저야 회사 측에서 기획한 방송의 출현자로 나가는 거긴 해도."
찬혁의 질문에 두 사람이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박종원의 개인 채널 구독자는 440만 명이나 되었고, 강백동의 경우에는 222만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의 얼굴마담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럼 마침 잘 됐네요. 옆에 계신 이유나 씨도 같은 인터넷 방송을 하시는 방송인이시거든요. 대화 주제가 잘 맞을 것 같은데 같이 이야기하시면서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
찬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에게로 향하는 세 쌍의 눈빛을 느끼며, 이유나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
"와, 이거 진짜 예술이다."
내가 만든 소바를 후루룩 빨아들인 박종원 심사위원. 아니, 이제 대회도 끝났으니 그저 박종원 아저씨, 혹은 사장님이 된 그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입맛에 맞으시면 다행이네요."
소바는 면을 만들 때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6:4, 혹은 7: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반죽한다.
메밀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 성분이 거의 없어서 그 자체로는 굉장히 반죽이 까다롭고, 설사 어떻게 반죽을 한다 해도 찰기가 없어서 면이 후두둑 끊어지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성질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루텐이 적다는 것은 팽창으로 인한 더부룩함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이며, 더욱이 메밀에는 혈당치를 낮춰주는 효능도 있기에 앞선 심사로 혈당치가 제법 올랐을 심사위원단에게는 딱 알맞은 음식이다.
"9:1 소바라니…… 솔직히 만들 수 있다고 듣기만 했지 실제로 만드는 걸 본 건 처음이에요."
거기다 내가 준비한 소바는 9:1 소바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소바는 메밀가루의 비율이 밀가루에 비해 높아질수록 반죽이 어려워진다. 또한 그에 따라 느껴지는 메밀의 향도 천양지차. 그렇기에 본토에서는 메밀가루의 비중이 늘수록 고급으로 취급한다.
"거기다 이 무와 오리로 우린 육수도 굉장히 좋네요. 부드럽고, 고소하고, 따뜻해서 몸이 쫙 풀리는 게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밀은 여러모로 인체에 좋은 효능을 가졌지만 성질이 차고 소화를 더디게 만드는데, 따뜻한 국물이 그걸 상쇄하다 못해 뒤집는 것 같아요."
"오리고기에는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고, 무에는 소화를 돕는 성분이 있죠. 대회에서나 손님 앞에서나, 변하지 않고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이 참 좋네요, 류찬혁 선수."
처음 낸 요리에 호평이 이어지니 내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갔다.
"내가, 후룩, 20만이라고, 후루룩, 22LYN이니, 후룩, 11.1LYN이니, 후루룩, 너무하잖아 너네, 후룩. 마시쩡…… 너무 마시쩡……!"
…… 뭔가 점점 언어구사 능력을 잃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지금은 무시하자.
물론 내가 준비한 요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소바를 첫 타자로 내세운 건 섬세한 메밀의 향이 다른 요리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내 오마카세 콤보는 아직 40단 정도가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한 대만 맞아도 끝장날 만큼 자비심 없는 콤보는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의 주력으로 나가던 대회용 메뉴를 누구보다 먼저 먹어보았던 손님들이기에 메뉴도 차별화 됐다.
전갱이 튀김이나 생선 머리구이, 힘줄 조림 덮밥 등등.
식사를 마친 뒤 양희연이 만든 3색 양갱과 녹차를 후식으로 먹는 세 사람의 얼굴에는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는 듯 깊은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먹은 건 네 사람인데 한 사람은 어쨌느냐고?
"훌쩍, 얘들아. 나, 오길 잘했어……! 박종원 선생님이랑 강백동 선생님도 만나고, 밥도 너무 맛있고……!"
야, 우냐? 울어?
'…… 아니, 이게 아니지.'
어떤 이유인지 이제는 숫제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한 그녀를 잠시 혼자만의…… 라고는 해도 시청자가 함께이기에 완전한 혼자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방치해둔 우리.
마침내 양갱까지 마무리 지은 박종원 아저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먹었어요. 원래는 가게가 어떤지 궁금해서 온 건데, 류찬혁 선수가 대단하다는 것만 더 확인했네요."
"다음에도 부산에 오시면 한 번 더 들려보세요. 여기 사장님이 저보다 실력이 훨씬 좋으시거든요."
"그건 그것대로 무섭네요. 이것보다 대단한 음식이 나오면 아예 부산으로 이사하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말은 너스레를 떨지만 한편으로는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마주 웃기도 잠시.
갑자기 박종원 아저씨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궁금하네요?"
"예? 어떤 거 말씀이세요?"
"류찬혁 선수가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요."
그가 잠시 말을 골랐다.
"류찬혁 선수도 알겠지만 요리사라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왜, 3D 업종이라고 하잖아요?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직업. 이 업계가 딱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그 정도 솜씨면, 솔직히 요리사를 하는 것보다 인터넷 방송이나 요리 실력을 활용한 다른 일이 훨씬 편할 거란 생각, 해본 적 없어요?"
"음……."
왜 없겠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생각만 한 적도 있는데.
어떤 때엔 대체 왜 이런 삶을 골랐는지 과거의 나를 저주한 적도 있었다.
"근데 류찬혁 선수는 그게 아니에요. 요리사라는 직업을 벌써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깊게 생각하고 있어요. 단지 멋지고,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아니라, 먹는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박종원 아저씨는 거기서 말을 끊었지만, 그의 눈빛이 내게 묻고 있었다. '어째서 요리사가 될 생각을 했느냐'라고.
사실, 그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단순히 요리가 좋아서 그랬다거나 하는 말로 적당히 핑계를 대는 것도 방법이었겠지.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요식업계에 몸을 담은 셀럽 중에서도 특히나 고객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내 나름 존경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냥, 처음 요리를 가르쳐 준 선생님…… 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분한테 배운 게 있어요."
"?"
"요리는 끝나지 않는 게 끝이다. 요리사가 되려면 그걸 알아야 한다."
사장님이 했던 말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잘 몰랐거든요. 끝나지 않는다는 게 대체 뭘 말하는 건지. 혹시 이놈의 일이 끝도 없이 쌓이는 걸 보고 말하는 건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하하, 확실히 이 일이 한번 시작하면 도통 끝이 없죠."
"근데 조금씩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되더라고요. 끝나지 않는 게 뭔지."
"그게 뭔가요?"
"웃음이요."
내가 만든 요리를 먹어준 사람의 웃음. 내가 더 나은 요리를 계속 만드는 이상 그 웃음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내일도, 모레도. 내 요리를 먹어주는 고객을 웃음 짓게 해야 한다.
요리사의 목표는 손님을 웃음 짓게 하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리 웃음을 짓게 만들어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해석이지만요."
사장님의 진짜 속뜻이 뭐였는지는,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 지금은 그냥 물어보면 된다지만 그건 그것대로 좀 부끄럽지 않은가.
"웃음…… 웃음이라."
박종원 아저씨와 나의 문답을 엿들은 다른 세 사람이 감동적이라는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그 가운데에 있던 그는 어딘가 진지한 얼굴로 턱을 괸 채 웃음이라는 단어만을 되뇌었다.
잠시 후, 드디어 장고長考를 끝낸 박종원 아저씨가 내게 시선을 향했다.
"류찬혁 학생."
그 눈빛은, 어딘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해탈한 듯 보이면서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탐욕을 가득 품고 있었다.
"혹시 졸업한 뒤에 저와 계약하지 않으실래요?"
"…… 예?"
"가게 하나 세웁시다. 류찬혁 학생 명의로."
그 눈빛이, 마치 우주 어딘가의 보라피부 빡빡이가 형형색색 돌멩이를 바라보는 표정 같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