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끝이 없는 것이 끝.-1-
저 옛날, 고향을 떠난 사람이 성공하여 비단옷을 입고 돌아온다 하여 금의환향이라 부르는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우리도 어느 의미에선 비슷한 상황이었다. 딱히 외지까지 가서 성공한 거 아니니 환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인가 싶긴 했지만.
"비단옷이 없어서 아쉽네."
"그거 말고 나를 거는 잔뜩 있다 아이가."
딱히 비단옷을 입고 온 것도 아니고, 손에도 대단한 귀물 대신 쓰고 남은 조리도구의 잔해뿐인 우리였으나, 아무튼 이것도 금의환향이라면 금의환향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니는 환향이 아니잖아 환향이. 니 집 여 아이다."
"아, 그러네."
생각해 보니 엄밀히 따져서 난 아직 집에 돌아가려면 멀었으니 아직 환향이란 말을 붙이기엔 이른 셈이다. 돌아갈 목적지가 바뀐다고 비단옷이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파란만장한 격전 끝에 우승을 쟁취하고 시상식까지 깔끔하게 마친 우리는 지금, 집에서 출발했을 때 챙긴 짐을 그대로 다시 등에 짊어진 채 멍하니 주차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이 큰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답지 않은 처량한 몰골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걸 전부 거기 버리고 올 것도 아닌데.
대회가 끝난 뒤 돌아가는 관객이 용케 우릴 알아보고 인사를 해온다거나 심지어는 사인까지 부탁해오는 상황을 어찌저찌 넘기고 있자니 슬슬 묘하게 억울한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이러려고 대회 나왔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그런데 우리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냐?"
"쪼매 기다려 봐라. 엄마야가 우리 태워가꼬 올 사람 보냈다더라."
"오, 누구?"
"내도 모른다. 엄마야랑 가게 아저씨들은 바빠가 몬온다 했으니께, 음…… 작은 아버지일 수도 있겠는데."
"작은 아버지?"
"응. 원래 아빠랑 같이 어부일 하다가 꽤 예전에 잡는 거에서 파는 걸로 일 바꾼 가까이 사는 친척이다. 니도 한 번 봤을 긴데?"
"봤다고? 언제?…… 아."
내가 부산에 와서 생선 도소매업자와 봤던 게 언제였나 생각하다가 바로 어제 있었던 장어대란이 떠올랐다.
"그럼 그때 장어 들고 오신 분이……?"
"맞다. 그게 우리 작은 아버지다."
그 트럭에 있던 상호, 내가 일할 때도 몇 번이고 보았던 이름이기에 꽤 오래전부터 계약한 회사였구나 싶었는데, 또 하나 새로운 비밀을 알게되는구나.
"그럼 그분이 우리 태우러 오시는 거야?"
"아마? 추석에는 집에서 쉬신다 하셨으니까."
사실 여기선 작은 아버지보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는 게 정상이겠으나 양희연의 아버지는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새벽 일찍 집을 비우셨다. 일이 있으시다고 하던가. 아마 이번에 대회를 보러 오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일 확률이 높다.
결국 소거법을 반복하니 남은 건 작은 아버지 뿐이라며 양희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내심 부모님이 와서 봐주시길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부모님이 오지 않은 수준의 충격이지 않을까.
하지만 잠시 후, 우리는 여태껏 했던 추측을 깡그리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뭐하노. 얼른 짐 싣고 타라."
"아빠야?"
우리를 데리러 온 이는 양희연의 작은 아버지도, 그 외의 다른 사람도 아닌 양희연의 아버지 본인이셨으니까.
용달차에 탄 채 무뚝뚝한 어조로 말하는 양희연 아버지의 재촉에 따라 황급히 짐칸에 집을 옮겨 담은 뒤, 흔들려서 떨어지지 않도록 짐칸에 나뒹굴던 고무밴드를 체결했다. 군대에서 배운 건 아주 가끔 쓸모가 생길 때가 있다.
"니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아, 예. 조금 배운 적이 있어서요."
알 듯 말 듯 한 얼굴로 감탄하는 아저씨에게 다 끝났다고 신호를 준 뒤, 잽싸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안 그래도 슬슬 추워져서 온기가 그리운 참이었는데, 히터로 달궈진 차량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양희연은 아버지의 얼굴이 퍽 달가웠던 건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저씨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아빠야가 우에 왔노? 아침에 일 있어서 나간 거 아이었나?"
"일이 끝났으니까 왔지. 엄마가 대회 끝났다꼬 얼른 가보라 안 카나."
"맞나. 킁킁. 아우, 짠내. 아빠 바다 다녀왔나?"
"어부 일터가 거 말고 있나. 바다에서 물고기 잡고 왔다."
"어차피 맨날 나가면서, 오늘은 좀 쉬지. 추석인데."
처음 봤을 때부터 쿨내가 진동하던 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저씨에 반해 양희연은 어딘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답지 않게 소극적으로 틱틱 대는 모습이었다.
내 나름 해석을 하자면, 어차피 연휴인데 일 좀 쉬고 대회나 구경하러 오지 그랬냐는 항의로 보였다.
"됐고, 거 사진 몇 개 찍어놨으니까 좀 봐봐라."
차를 몰던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가 앉은 뒷좌석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핸드폰을 휙 던졌다.
당황하며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양희연이 이게 뭐냐 물으니 아저씨는 툭 던지는 듯한 특유의 말투로 답했다.
"니 우승 선물 할 만한 거 몇 개 봐놨다. 마음에 드는 거 골라 놔. 나중에 사러 가자."
"뭐?"
그 말을 듣고 황급히 핸드폰의 전원을 켜는 양희연.
녀석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리니, 웬 옷, 신발, 모자, 화장품, 가방, 지갑 따위가 중구난방하게 찍힌 사진이 보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 대부분이 패션이나 여성용품에 문외한인 나라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었다는 것과, 가격의 최소단위가 최소 여섯 자리부터 시작한다는 것 정도일까.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란 양희연이 핸드폰을 거의 던지는 기세로 시트에 떨어트렸다.
"무, 뭑꼬 이게?!"
"못 들었나. 대회 우승 선물."
"아니, 그게 아이라. 갑자기 이런 건 와? 이런 거 살 돈이 어디 있다고?"
"돈 걱정 마라. 오늘 아침에 별 이상한 양반이 우리 아침 복귀 배에서 귀한 것만 웃돈에 죄다 쓸어가가 벌 만큼 벌었다."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나와 희연의 표정이 해괴해졌다. 뭔가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아니, 그럼 이거 산다꼬 새벽 댓바람에 나간 기가? 우리 우승 몬 했음 우얄라고?"
"니가 우승 할 거라 안 했나."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고."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와 닿는 아저씨의 대 쪽 같은 신뢰가 부담스럽다는 듯 양희연이 제 앞의 등받이에 얼굴을 묻고 크게 한숨을 뱉었다.
"아무튼, 잘 보고 사고 싶은 거 골라 봐라. 없음 따로 적어두고."
"…… 알았데이."
"그리고 거, 아야. 찬혁이라 캤지?"
"아, 예."
갑자기 나를 향해 날아온 대화의 화살에 황급히 답하자, 아저씨는 여전히 기탄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도 몇 개 골라라. 엄한 데까지 와가 고생 많이 했다 안 카나."
"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충 반응이 예상돼서 얌전히 감사하다 말하며 수긍했다. 아마 그냥 입 다물고 고개나 끄덕이라 하겠지.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뭐.
남극 벌판 한가운데서 모닥불을 쬐고 있는 것 같은 쿨함과 훈훈함 사이에서 헤매는 사이, 어느새 우리를 태운 차는 목적지에 다다라갔다.
낯익으면서도 어색한 거리를 지나, 드디어 코너 하나만 더 돌면 가게에 도착하는 상황.
이 순간, 우리 일행은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뭐야 저거?"
기실, 발견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훤히 보이는 대로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다.
코너에서부터 시작하여 척 보아도 수십 명은 너끈히 될 만큼 많은 사람이 벽에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서고 있었다.
"…… 아니, 잠깐만."
아니다. 이 줄은 코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벽에 가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 그 너머에서부터 이 줄은 이어지고 있다.
'…… 설마.'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상상.
마침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공포에 질린 양희연의 떨리는 두 눈이 나와 마주쳤다.
"사람 한 번 많네. 이 아들은 여서 뭐하는 기고?"
그러나 그런 우리의 불안함을 모르는 아저씨는 망설임 없이 코너에서 핸들을 꺾었고, 결국 우리는 그 광경을 눈에 담고야 말았다.
"아니, 그……."
"…… 하아."
스즈의 간판 옆에서부터 시작하여 코너를 넘어서 이어진 행렬에 나와 양희연이 동시에 숨이 턱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래, 이럴 것 같긴 했다며 넋두리를 읊조리면서.
젠장, SAN치가 떨어진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
정문에서 대놓고 내렸다간 분명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라는 판단 아래 우리는 가게의 식자재 운반용 출입구인 뒷문을 통해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 정답이었다.
"어? 너네 왜 뒷문으로 들어와? 아니, 잘 했다. 앞문으로 들어왔음 난리 났을 거야."
주방으로 들어온 우릴 가장 먼저 맞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주방의 막내, 김재훈 선배였다.
"무슨 일이에요? 저 줄은 또 뭐고요?"
"저거 말이지…… 하아."
듣고 놀라지 말라며 한 차례 뜸을 들인 김재훈 선배는 넋이 빠진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며 말했다.
"저거, 다 너네 보겠다고 온 손님들이야."
"…… 아이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저, 저희요?"
희연이 녀석은 여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솔직히 난 예상은 하고 있었다. 너무 못한다는 이유로 방송에 나온 가게마저 한 달은 바람 잘 날 없게 만드는 게 방송의 위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잘하는 사람만 모으는 방송에서 가게 이름을 내걸고 우승까지 하고 온 상황. 거기다 아직 연휴기간이니 시간과 금전, 양측으로 여유가 많은 관광객이 부산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을 시기다.
방송과 연휴의 콜라보. 효과는 대단했다.
"낮에도 장난 아니었어. 방송 때문인지 사람이 엄청나게 몰리더라고."
"고생하셨겠네요."
"고생? 그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진짜 팔이 네 개가 된 것처럼 일했는데 일이 점점 쌓여만 가는 공포는 진짜 겪어보지 않음 모를 거야. 사람은 오지, 사장님이 구한 주방 단기알바 하는 애는 어느새 없어졌지, 진짜 오후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하하……."
알지, 그 기분. 분명 100명 예약을 받았는데 전달 실수로 100명이 아니라 200명이래요!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가 딱 이런 느낌이었다.
주방 구석에 주저앉아 넋두리를 쏟아내던 김재훈 선배가 이내 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아, 음. 미안하다. 너도 무진장 고생하고 왔을 텐데 어째 힘들단 얘기만 했네."
"아뇨. 아니에요. 이해해요."
"그리고 또…… 미안해, 처음 왔을 때 괜히 짜증내서. 실력이 어떻건 휴일도 내팽개치고 도와주러 왔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선배의 진심 어린 사과에 나도 괜찮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고, 내가 같은 입장이었어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용서해줘서 고맙다며 선배가 웃었다.
"저, 이런 말을 한 다음에 할 소리는 아니지만. 혹시 괜찮다면……."
그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앞주방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은.
살짝 거친 소리에 놀란 우리가 퍼뜩 고개를 돌린 그곳에서 얼굴을 내민 성 셰프가 우리의 얼굴을 발견하고 웃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애 아빠 차 소리가 들린 것 같아가 와봤는데!"
고된 일은 무엇 하나 없었다는 듯 밝은 얼굴로 말하는 성 셰프.
그 갑작스런 등장에 말을 잃은 우리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그야말로 쏟아내는 기세로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서 온나. 정말 고생 많았데이! 잘 한다, 잘 한다 생각만 했지 진짜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다 안 카나. 희연아, 기물 가져온 건 어딨노?"
"아, 그게, 저기."
"그래그래. 여 놓고 얼른 가봐라. 설거지는 우리가 잘 해둘게. 고생 많이 했는데 푹 쉬어야 하지 않겠나."
"아니, 엄마야. 잠깐만. 가게는?"
"됐다됐다. 아들이 무슨 가게 걱정을 다 하노. 아빠 차 타고 가가 푹 쉬어라."
갑자기 나타나 옥신각신하기 시작한 모녀. 그러나 내 눈과 귀는 그 대화의 내용보다 성 셰프의 상태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었다.
어딘가 과장된 말투. 핏기가 가셔서 평소보다 조금 더 하얗게 질린 얼굴.
'대충 알겠네.'
이 이상 우리가 고생하는 걸 마냥 두고 보기는 싫으시다는 거다. 그 언동에서 우리를 향한 깊은 배려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성 셰프."
"응? 불렀나, 우리 찬혁이."
…… 언제부터 내가 '우리' 찬혁이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도울게요. 가게."
"? 무슨 말이고. 안 그래도 된다. 우리만 해도 충분하다 안 카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성 셰프지만, 그런 모습으로 말해서야 설득력이 부족했다.
"저희가 고생했다고 생각하셔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전혀."
우리 얼굴을 보고 이 가게를 찾은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는 둥 하는 소리는 그저 상대를 납득시키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우리가 한 걸 꼽아봐야 고작 다섯 시간 동안 음식 세 개 만든 게 전부.
여태껏 학교에서 그 난리통을 거친 우리는 그 정도로는 지치고 싶어도 못 지친다.
그러니 이건 그냥 과잉보호에 불과하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희연이 녀석도 과거의 양희연이 아니다. 성 셰프가 생각하는 만큼 나약하지 않다.
지금만큼은 우리를 학생이 아닌 같은 요리사로 봐달라는 나와 양희연의 간곡한 설득에, 성 셰프는 한풀 꺾인 기세로 우리의 기색을 살폈다.
"…… 하아, 그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꼬. 하는 수 없네."
못 말린다며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이어 말했다.
"좋데이. 그라믄, 우리 가게 좀 도와줄 수 있나?"
이대로 가다간 정말 다 죽을 판이라며 비로소 솔직한 속마음을 드러낸 그녀가 쓰게 웃는다.
그 요청에, 우리가 돌려줄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