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56화 (156/403)

156. 난제풀이.-3-

5위부터 3위까지. 찬혁 팀의 이름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일부 관중은 마침내 호명된 그들의 이름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저 아들이 진짜 했네!"

출전한 모든 팀 중 최연소. 여타 참가자의 자식뻘, 많으면 손주뻘 되는 아이들이 이룬 성과를 대견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찬혁 일행에게 이입한 관중의 환호는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 분위기에 공감하지는 못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남자. 이치로 같은 경우에는 특히.

"류 씨의 스시. 분명 기술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 좋습니다."

확신이 담긴 그 어조를 누군가 들었다면 오만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심사위원단의 판정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치로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니기리스시와 테마리스시. 이 두 요리를 비교했을 때 만드는 난도는 단연 니기리스시가 훨씬 어렵다.

랩으로 꼭꼭 말아 동그란 모양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테마리스시와는 달리 니기리스시는 밥 하나를 쥘 때에도 모양, 악력, 크기, 네타와의 조화.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을 고려하며 신중을 가해야 한다.

물론 심사위원단 또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많은 부분에서 이치로 선수의 역량이 소폭이나마 우월했죠."

그걸 알고 있음에도 심사위원단은 그런 선택을 했다.

이치로는 더욱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자신의 실력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면 어째서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와 같은 의문을 품은 건 이치로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중이 해답을 바라는 눈빛으로 심사위원단을 바라보았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 이분께서 해주실 겁니다."

"?"

심사위원단이 내놓은 해답이라며 내민 것. 그것은 바로 박종원의 손길에 떠밀려 한 발짝 앞으로 나선 강백동이었다.

면목 없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짓는 강백동의 뒤에서 박종원이 말했다.

"심사를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셨거든요. 말씀해주세요, 강백동 씨."

***

'강백동mc?'

갑작스레 앞으로 나선 그를 본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 이외의 다른 참가자나 관중 또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천하장사. 국민MC. 수많은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와 요리라는 분야에는 뚜렷한 연결점이 없다.

그렇기에 처음 그가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인선에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영화 평론가가 영화 감독일 필요는 없듯이 요리 심사위원이 꼭 요리사일 필요는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요리를 심사하기 위해선 지식이 뒷받침 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론이니까.

이후 강백동mc가 어떤 위치에서 평가하는지를 듣고 그런 의문은 다소 해소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승자를 가리는 이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하하, 제가 무슨 크게 대단한 걸 한 건 아니고요."

대체 어떤 활약을 했기에 다른 심사위원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건지 궁금한 눈길을 향하자 강백동mc는 겸연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두 팀의 순위를 정할 때 두 선생님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셨거든요……."

***

심사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박종원과 진영배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세 팀은 보다 확연히 드러나는 단점이 몇 가지 있어서 그나마 순위 배정이 쉬웠지만, 남은 두 팀은 명확히 보이는 단점도, 그렇다고 다른 쪽보다 아주 월등히 뛰어난 요소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초밥의 본질적인 기술과 재료에선 무라쿠모가, 참신한 발상과 들어간 수고는 스즈가 앞서는 상황.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맛을 평가하는 부분에서도 두 팀의 우열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결국 마지막에 쥐기로 결심한 지푸라기가 바로 강백동이었다.

"저, 선생님들? 아시다시피 제가 요리는 잘 아는 게 없어서……."

당황한 강백동이었지만, 물론 두 사람도 강백동의 요리지식 수준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도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했을 뿐이다.

음식을 먹었을 때 어땠는가? 먹고 처음 떠오른 감상은 무엇인가? 혹시 뭔가 특이한 걸 느끼진 못했나?

지성이 아닌 감성에 치중한 느낌을 말해달라는 요청.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리 신통치 못한 대답만을 돌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낌…… 이요?"

한 때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라든가 짐승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강백동에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지식이 깊지 않기에 오히려 더욱 심도 깊은 부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음…… 일단 아주 맛있게 먹었고요. 또…… 확실히 씹히는 느낌이 서로 달랐죠. 그 무라쿠모 팀이 만든 건 뭔가 씹으면 부드럽게 흩어지는데, 학생들이 만든 건 조금 더 알차고 단단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

말을 고르던 강백동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든다.

"이게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학생들이 만든 동그란 초밥을 먹은 다음에 뭔가 속이 편해졌어요."

"편해져요? 속이?"

"예. 오늘 조금 먹은 게 많지 않습니까?"

강백동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적게 시식하며 평가를 했다 하더라도 평소 먹는 양을 생각하면 이미 기존의 두 배를 가뿐히 넘는 음식을 먹어치운 그들이다. 미리 소화제도 챙겨 먹었다곤 하지만 속이 더부룩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도 뭔가…….'

이 순간, 박종원과 진영배 또한 강백동이 말한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마지막 라운드에 들어서 더이상 먹을 것을 들여보내지 말라며 아우성을 치는 것 같던 배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

그저 시간이 지나 소화가 됐다고 보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 아!"

그때,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박종원이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을 향해 박종원이 말했다.

"스즈 팀이 요리 설명할 때 기억 나세요?"

"요리 설명할 때요? 글쎄요. 워낙 황급히 먹어서 기억이 잘……."

"잘 생각해 보세요! 사이즈가 작아서 평소보다 샤리 간을 강하게 하고, 네타 맛이 지지 않게끔 조린 무랑 생선살을 갈아서 소스를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아, 그랬었죠.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

아.

박종원과 강백동이 꺼낸 말 사이의 연관점을 찾던 진영배 또한 박종원이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무! 맞아요. 무에요!"

찬혁 팀이 소스의 매개체로 사용한 무는 전반적인 소화운동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효소를 갖고 있다.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를 돕는 디아스타아제와 장운동에 도움을 주는 섬유질. 느끼함을 잡는 티오시아네이트와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거기에 더해 위장벽을 코팅해주는 효능도 적게나마 있어 다량 섭취 시 소화기관에 무리가 가는 초산계 조미료의 섭취를 용이하게 해준다는 장점도 있다.

진영배는 박종원과는 달리 그 모든 이름과 효능을 외우고 다닐 만큼 박식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무가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맞다면, 찬혁 일행은 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음식을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그 놀라운 발견에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진 진영배였으나, 그런 분위기도 뒤에 이어진 의심에 휩쓸려 그리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의도한 걸까요? 우연이 아니라?"

만약 이게 의도한 것이라면 찬혁 팀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만들 음식을 시식할 심사위원을 위한 배려까지 음식에 담아놓은 셈이니 당연히 보다 많은 가산점을 줄만하다.

하지만 진영배의 마음속 저울은 우연과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접시에서 전자에 추를 더욱 싣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무리 뛰어난 솜씨를 가졌대도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 아닙니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기까지 시야가 넓을 것 같진 않아서요."

저 나이에 그 생고생을 하는 상황 속에서 저만한 시야로 사물을 살필 여유를 발휘할 수 있다니, 그건 이미 학생이 아니라 경력이 수십 년도 더 된 무언가가 학생의 모습으로 둔갑했다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하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으니, 이건 의도가 아니라 우연으로 보는 게 옳지 않냐는 그의 말해 박종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그건 어른의 편협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나이에 그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결승까지 올라온 것도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이에요."

"그건……."

진영배는 그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실제로도 작금의 상황 자체가 기적이지 않은가.

"얘들이 거기까진 못할 거라고 정해놓고 봐선 안 되겠죠. 뭣보다 다른 심증도 몇 가지 있어요. 이건 의도한 게 확실합니다."

진영배는 박종원의 장담에 마지못해 따르는 척 수긍했다. 이로써 우승자를 정하는 토의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박종원이 강백동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마워요, 강백동 씨. 덕분에 우승자가 정해졌어요."

"어…… 예? 제가 뭐 했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백동은 그저 어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그런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박종원과 진영배의 굳은 얼굴이 단번에 활짝 펴졌다. 아무리 보아도, 요리 심사보단 사람을 웃기는 데에 더욱 많은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

강백동mc를 주축으로 한 심사위원단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난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의 소화효능을 기대하고 요리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설마 그 비밀을 밝혀낸 이가 강백동mc였을 줄은 몰랐으니까. 정확히는 가장 큰 단서를 찾아낸 거지만.

'아니 잠깐, 그럼 이거 살짝 엇나갔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단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심사위원단이라면 분명 알아주리라 믿고 굳이 말하진 않았는데, 강백동mc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졌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다음부턴 괜히 숨기는 거 없이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네…….'

올해의 대회반 할당량은 처리했으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닭살이 돋은 팔뚝을 문지를 때에도 심사위원단은 내 의중을 파악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럼 그게 전부 의도한 게 맞다는 뜻인가요?"

"예."

"니기리스시로 만들었다면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걸 일부러 테마리스시로 만든 것도 심사위원단이 식사량을 조절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고요?"

"맞아요. 안 그래도 많이 드신 데다가 저희가 제일 마지막 차례가 될 것도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포만감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세상에…… 정말 박종원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군요."

사방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심지어는 순위가 발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선 이치로 셰프조차.

"…….

휘둥그레진 그의 눈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가, 이윽고 치켜 올라갔던 눈매가 다시 내려오며 여느 때와 같은 쌀쌀한 무표정으로 변했다.

"고객의 취향을 그 자리에서 파악하고 조리하는 이치로 선수의 솜씨는 분명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대회와는 거의 상관없는 주제에도 심혈을 기울여 고객에 대한 정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저희는 높게 샀습니다."

"…….

"이상이 평가내용입니다.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이치로 셰프가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점차 가까워지는 서로의 거리.

내 바로 앞에 당도한 이치로 셰프는, 어딘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요리는 맛있게 만드는 게 전부라고 말했는데,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은 한 적 없어요. 저한테는 이게 더 나은 요리였을 뿐이라고요."

"더 나은 요리…… 그래. 그건, 네 말대로 됐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한 그가 손을 내민다. 심사대에 나오기 전 대화를 나눴을 때와 같은 구도였다.

─꽈악.

그리고 나 또한,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민 손을 맞잡았다. 단, 이번에는 내가 그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많이 배웠습니다. 최고의 실력이었어요. 제가 여태껏 본 일식 셰프 중 수위에 꼽힐 만큼."

"최고는 가장 나은 걸 말하는 것 아닌가? 최고가 여럿이다."

"뭐, 사람마다 최고는 전부 다른 거니까요."

최고 중 최고인 사람은 이미 정해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이치로 셰프는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작게 웃었으나,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지만, 오늘만큼은 틀린 말이다."

"예?"

"오늘 가장 나은 사람. 이미 있으니까."

그 순간 이치로 셰프는 악수를 나누던 내 손을 잡고 그대로 위로 올렸다.

신장차이도 있고, 갑작스러웠던지라 순순히 끌려 올라가는 내 팔. 어느새 손에서 손목으로 잡는 위치를 바꾼 이치로 셰프의 손을 따라 내 팔이 좌우로 흔들린다.

"오늘 최고는 류 씨, 너야."

우릴 바라보는 관중을 향해, 그가 내 손을 흔들어보인다.

결과에 승복한다는 이치로 셰프 나름의 표현.

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분명 지금의 나보다 뛰어난 셰프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욱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