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53화 (153/403)

153. 제3라운드.-9-

약 손가락 한마디 반 정도의 직경을 가진 동그란 구체 모양의 초밥.

평범한 기존의 초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그것을 찬혁과 희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심사위원단에게 내밀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생소한 생김새에 신기한 듯 입을 둥글게 오므리며 감탄하는 강백동. 하지만.

"…… 음."

"……."

정작 심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박종원과 진영배의 얼굴에는 얕은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이걸로는 힘들 텐데.'

'어째서 이런 선택을…….'

혹자는 너무 쌀쌀맞은 것 아니냐고 그들을 규탄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구슬초밥. 테마리스시는 말하자면 기존의 초밥인 니기리스시의 조카쯤 되는 위치에 있는 음식이다.

스시의 계보는 생선을 절여먹는 문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저 옛날 식품의 저장과 운송이 어려운 시절. 잡은 생선을 썩히지 않기 위해 소금과 밥을 섞은 것에 생선을 저장했고, 그것이 발효되어 만들어진 것이 초밥의 원류라 불리는 나레즈시なれずし다.

하지만 이때의 초밥은 결코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쌀은 발효돼서 죽처럼 됐고, 먹으면 절로 올라오는 시큼한 젖산의 맛이 강한 젓갈 같은 음식이었으니까.

현대식 초밥. 초산계 초밥은 에도시대 때 처음 등장했다.

식초로 절인 밥을 틀에 넣어 먹던 오사카 스시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일본으로 퍼지며 생긴 니기리스시가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초밥을 대표하는 위치로 우뚝 섰다.

'그리고 테마리스시는 그보다 훨씬 나중에 태어났지.'

요컨대 말하자면 후기형 스시.

하지만 후기형이라는 말이 그 앞 세대보다 항상 좋다는 뜻은 아니다.

최신형 경차가 연식이 된 고급 세단보다 뛰어날 수는 없는 것처럼.

물론 최신형 경차에도 장점이 있다. 연비라거나 컴팩트함, 편의기능 등등.

하지만 그렇다고 차의 핵심인 주행성능으로 그 차이를 따라잡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테마리스시도 마찬가지지.'

테마리스시는 재료를 랩으로 말아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뭉쳐 만드는 스시다. 니기리스시에 비해 그 조리 난이도가 아주 낮고 모양도 쉬이 망가지지 않아 도시락 등의 내용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모양새도 기존의 스시와 비교하면 귀여운 구석이 있어 의외로 고급식당에서 취급하는 경우도 많으며 게이샤가 분칠을 한 상태로 화장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먹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전승이 있는 만큼 먹기도 굉장히 간편하다. 그냥 간식처럼 이쑤시개 등으로 찍어서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좋으며 만들고 먹는 게 편하다는 장점은 분명 니기리스시가 결코 테마리스시를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라면이 간편히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온갖 고생을 해서 만드는 라멘보다 나은 음식이 아니듯, 테마리스시가 니기리스시보다 나은 음식인가? 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종원의 의견이었다.

'이 학생들이 그걸 모를 것 같진 않은데…….'

안 그래도 짱돌로 바위를 깨부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찬혁과 희연이 자신들의 손에 들린 도구를 그나마 단단한 짱돌에서 직접 계란으로 바꿔 쥔 상황.

그럼에도 심사위원단을 향한 두 사람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했다.

'포기한 건지, 아님 여기까지 온 걸로 만족하는 건지.'

박종원과 진영배는 그들의 의중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심사에 차질을 줄 수는 없었기에 두 사람은 그들보다 앞서 음식을 받은 강백동을 이어 찬혁과 희연이 건네주는 접시를 받아 들었다.

"흐음……."

사선으로 정갈하게 놓인 8개의 테마리스시. 그 아래로 굵은 선을 그은 듯 장식된 무엇인지 모를 각기 다른 소스가 더해지니 꼭 LED가 반짝반짝 들어오는 이퀄라이저 같았다.

'소스?'

예쁘장한 플레이팅 속 메뉴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박종원의 눈길을 끌었다.

초밥에 찍어 먹는 양념은 본래 간장이 주류고, 다른 양념이 있다 하여도 그 전신이 되는 것은 보통 간장의 역할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건 간장은 아니란 말이지…….'

박종원은 요리와 함께 받은 자그마한 목제 포크로 소스를 한 차례 쓱 훑었다. 액체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갈아서 유동성을 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림도 보이질 않네.'

조리 단계부터 찬혁 일행을 유심히 살펴온 박종원은 그들의 접시 위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더했다.

굳이 고른 테마리스시, 정체불명의 소스,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 않는 조림.

온통 수수께끼만이 가득한 심사를 앞둔 심사위원단에게 찬혁이 말했다.

"드실 땐 왼쪽부터 시작해서 초밥이랑 맞닿아 있는 소스를 잘 찍어서 드세요. 포크로 같이 퍼서 드셔도 좋고요."

굳이 젓가락 대신 포크를 준 건 그런 이유였나. 포크와 초밥이라는 생뚱맞은 조합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된 심사위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초밥을 저들만의 방식으로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 순간.

─툭

박종원의 손에서 포크가 떨어졌다.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손에서 저도 모르게 힘이 빠져 포크를 놓쳤을 뿐.

"어, 어떻게……."

입에 들어온 초밥을 채 씹지도 못하고, 박종원은 떡 벌어진 입으로 제 말을 쏟아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빙고.

속으로 한마디 탄성을 읊조린 찬혁과 희연의 주먹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

순식간이었다.

첫 번째 스시를 입에 댄 심사위원단이 남은 스시를 전부 먹어치운 것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기세. 거대한 태풍이 제 몸에 닿은 모든 것을 저 멀리 날려 버리듯, 그들의 손이 지나친 접시 위에는 밥풀 하나 남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마치 정신을 잃었던 사람 마냥, 그저 허해진 눈으로 자신 몫의 접시를 바라보는 심사위원단.

허공을 헤매던 그들의 시선이 뒤늦게 찬혁에게 향했다. 의문의 해답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맛있게 드셨나요?"

그런 그들을 향해 찬혁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앞선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사실상 물어볼 것도 없는 말이었다. 맛있다. 단순히 그런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 이상의 수식어를 찾기도 어려웠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너무도 적다는 것을 태어나 처음 느낀 심사위원단이 입을 뻥긋거렸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결국 그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그런 말이었다.

마법. 심사위원단이 먹은 그 맛에 마법이란 말이 그토록 어울릴 수가 없었다.

박종원은 방금 자신이 먹은 초밥의 맛을 되새겼다.

마치 굳게 닫힌 댐을 방류한 듯 순식간에 입속에 들어찬 풍부한 맛. 물고기 한 마리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입에 욱여넣은 같은 농후하면서도 결코 비리지 않은 그 풍미가 고작 500원짜리 만한 크기의 밥 구슬에서 폭발했다.

생선의 맛을 이토록 입 안 가득 느껴본 게 과연 언제였을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박종원이 허탈한 심정을 속으로 토해냈다.

섬세하고 조화로운 샤리와 네타의 화합은 이미 이치로의 초밥을 먹으며 충분히 느꼈다.

그건 말하자면 샤리와 네타의 합주회였다.

엄청난 실력의 피아노니스트와 그와 비등한 솜씨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가 스타인웨이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합주를 펼치고, 그 중심에 이치로라는 마에스트로가 그 균형을 조율했다.

다음 초밥, 다음 초밥으로 갈수록 불어나는 연주자와 원숙함을 더해가는 지휘자의 합.

대뱃살 스테이크초밥에 이르러 합주회는 오케스트라로 변했고. 참마의 부드러움에 단맛이 더해진 계란초밥이 부드럽게 커튼콜을 장식한다.

무라쿠모의 초밥을 먹었을 때, 심사위원단은 마치 잘 꾸며진 하나의 음악회를 즐긴 기분이었다.

부드럽게 귓바퀴를 쓰다듬고 지나치는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찬혁 일행이 만든 초밥은 전혀 달랐다.

무라쿠모의 초밥이 오케스트라였다면, 그들이 만든 이 테마리스시는 락 밴드였다.

그것도 평범한 락 밴드가 아니다. 수만의 관중이 기다리는 무대 위에 서서 귀가 찢어져라 일렉기타를 튕기고 그라울링을 쏟아내는 락 콘서트다.

부드럽고 세심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곡조가 아닌, 수만 명의 함성마저 찢고 고막을 강타하는 강렬함. 그러나 그 속에서도 밴드를 구성하는 각각의 악기는 서로의 개성을 전혀 잃지 않고 서로와 맹렬하게 충돌했다. 충돌함으로써 조화를 이뤄냈다.

내가 여기 있다고 과시하는 맛. 심사위원단은 졸지에 오페라 하우스에서 락 페스티벌로 갑자기 끌려온 문외한이 되고 말았다. 그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혀를, 찬혁 일행의 초밥이 무참히 공격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토록 조그마한 물체 안에 그런 강렬함을 담아낸 방법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비교적 간이 강하기는 했지만, 이건 고작 무작정 간을 세게 한 수준이 아니다. 그저 그뿐인 음식이었다면 그들은 진즉 그것을 뱉어 버렸을 테니까.

간을 세게 한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재료의 품질로는 규명할 수 없는.

외관만 봐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이 초밥 안에 숨어 있었다.

그 수수께끼를 도저히 풀지 못해 고뇌하는 심사위원단의 질문에 찬혁이 웃었다.

"간단합니다."

간단?

심사위원단의 눈이 황당하다는 듯 찡그려졌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 돼요."

찬혁은 그 이상 알맞은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내가 이때를 위해 안배한 메뉴의 조리법은 이러했다.

가게에서 소중히 보관하던 수제 쌀식초에 다시마를 불려 식초 속에 다시마의 맛을 녹이고, 반대로 다시마 속에도 쌀식초의 맛을 충분히 담는다.

이렇게 준비된 다시마는 생선의 비린맛을 제거함과 동시에 살의 단백질을 굳게 하여 단시간 동안 최고의 숙성을 가능하게 한다.

해체한 생선의 머리를 사용하여 전부 따로 조린다.

뼈도 뼈마다 전부 제각각 육수를 만든다.

제각각 만든 육수를 써서 또 전부 다른 돌솥을 사용해 밥을 짓는다.

다시마 쌀식초로 만든 초대리를 섞어 이 밥을 다시 한번 전부 다른 샤리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어육수 샤리, 방어육수 샤리 등등을 승무원이 전선을 잇는 것 마냥 서로 짝을 이루는 네타와 합쳐 초밥으로 완성.

이때 만든 초대리는 설탕과 소금의 비율을 식초보다 늘려 간을 강하게 한 물건이다. 그만큼 샤리의 맛이 강해져 네타의 맛이 죽지만, 그것을 특제 소스로 보완한다.

소스의 정체는 조린 생선의 머릿살과 무.

그 두 가지를 곱게 갈아낸 뒤 물기를 꽉 짜내어 만든 총 8개의 소스.

광어, 송어, 소라, 새우, 송어 등.

종류에 따라 살짝 다른 방식의 조리가 들어갔다지만, 그 골조는 비슷했다.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 넣고 재료의 가성비 따윈 발로 걷어차 버린 조리법.

그 설명을 들은 심사위원단이 질린 얼굴로 반색했다.

"…… 그걸 전부 했다고요?"

"예."

"대체 왜요?"

왜냐고 물으시오면 저는 그저 하려고 해서 했다고 할 수밖에……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본심을 말하자면 이러했다.

"이렇지 않으면 못 이길 것 같아서요."

"예?"

솔직히 생각해봐라. 저쪽이랑 우리랑 재료값 차이가 족히 세 배는 넘을 거다. 아니, 세 배가 뭐야. 특수 생각하면 자칫 다섯 배까지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시세라는 게 그렇다. 정말 좋은 건 부르는 게 값이니까. 괜히 날로 먹는 걸 시세로 산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재료값이 그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상황. 도박이든 사업이든 재력에서 뒤지면 이길 것도 못 이긴다. 그래서 우리도 선택과 집중을 한 거다. 뒤지는 재력을 보충할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저희는 인건비를 택했죠."

"…… 인건비요?"

"저쪽이 재료비를 갈아 넣는 만큼, 저희는 재료에 인력까지 같이 갈아 넣어서 균형을 맞춘 거예요."

심사위원단의 눈이 황당하다는 듯 우리를 바라본다. 정말 그게 전부냐고. 근데 어쩌겠는가. 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호텔 식대가 비싼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사람을 갈아 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갈아 넣은 거고.

그 결론에 심사위원단은 도통 승복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사상이야 사상이고, 음식은 음식이다. 요리가 맛있게 나왔으니 그들이 무어라 불평할 처지는 못 된다.

'뭐, 사실 그것 말고도 이거저거 생각한 게 많긴 하지만.'

"…… 알겠습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걸 눈치챈 건지 아닌 건지, 결국 마땅치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 심사위원단이 자리로 돌아간 뒤에야 우리도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일은 저들의 몫이었다.

이 최고 중의 최고인 다섯 개의 팀 중에서 다시 한번 최고를 가려내야 한다는, 더럽게도 어려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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