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제3라운드.-7-
심사는 지체 없이 진행됐다. 물론 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세 번째 심사로 나선 팀은 내가 예상한 대로 남해왕만두 팀이었다.
'그 팀도 상당했지.'
남해왕만두 팀에서 준비한 메뉴는 갈비만두와 통 해물만두. 이름은 평범했지만, 내용물은 범상치 않았다.
우선 갈비만두. 이건 정말 물건이었다.
뼈가 붙은 우대갈비를 상온에서 양념에 절이고, 그걸 통째로 가져다 압력솥에 넣어 부드럽게 익힌 뒤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넣어 찜통으로 익히는 2중 가열 시스템.
그렇게 익은 고기는 그야말로 손가락을 올리면 푹 들어갈 만큼 부드럽다. 그걸 익반죽으로 만든 쫄깃한 만두피로 감싸 한 차례 찐 다음 튀긴 갈비만두.
상상이 가는가?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저게 바로 겉바속촉이다.
'설마 저 조리법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우연찮게도 그 조리법은 내게 있어선 굉장히 익숙한, 그리운 조리법이었다. 저건 동파육을 만드는 방법의 일종이었으니까. 심지어 항아리에 통째로 넣어 익히는 방법으로 일종의 수비드 효과를 내어 단백질을 부드럽게 분해하는 조리법은 참신하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오징어와 새우를 엄지 한마디 길이로 토막 내어 다진 김치 등과 함께 속을 채운 통 해물만두는 조금 심심한 감이 있었지만, 살짝 느끼한 갈비만두와의 궁합을 생각하면 결코 혹평은 할 수 없는 메뉴였다.
'다만…….'
아쉽게도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순서가 좋지 않았다고 할까.
특등급 한우 우대갈비를 통째로 넣어 만든 것만으로 임팩트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1kg당 10만원의 가격을 자랑하는 제철 돌돔을 통째로 튀겨 만든 탕추위 만큼은 아니었다.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뭐 아무튼. 그렇게 세 명의 경쟁자들이 앞서 결승선을 넘어가고 마지막까지 남은 건 결국 두 팀.
우리와 무라쿠모.
일단 이 시점까지는 약간의 오차가 있긴 했어도 나름 예상한 대로 굴러갔다. 이 다음부터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상대가 정말 미치도록 잘해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설령 적당히 잘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더라도 재료의 차이를 어떻게든 뛰어넘어 보겠다고 기존 조리법보다 훨씬 복잡한 순서로 요리를 하던 우리가 실수해서 예상 이하의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
모 아니면 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결과를 정하는 건 신이나 운 같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일 테니까.
***
"자! 점점 끝을 향해 달려 나가는 추석특집 부산상인 요리대회! 그 장절한 고행길의 끝이 드디어 저희의 눈앞까지 다다랐습니다! 갈비만두와 통 해물만두라는 걸작을 선보인 남해왕만두가 결승지점을 통과함과 동시에, 남은 시간! 앞으로 30분!"
강백동이 말을 끊기가 무섭게 새까맣게 암전하는 전광판에 그라데이션 효과와 함께 떠오르는 디지털 숫자.
30:00이란 숫자에서 29:59로. 다시 58로.
1초씩 줄어들기 시작한 시계 화면을 본 관중은 마치 갇힌 밀실의 천장이 슬금슬금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작 남은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전광판의 위치였으나, 차라리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몇몇 이들은 생각했다.
그저 구경꾼의 입장으로 보아도 이토록 살이 떨리는데, 저 자리에 선 장본인이라면 대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으니까.
"와, 저 사람들 지금쯤 표정 싹 굳었겠네."
"그니까. 나는 학기 지날 때마다 자기소개만 해도 죽겠는데 대회는 어떻겠어."
푸드트럭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찬혁 팀과 무라쿠모 팀의 면면을 상상하며 관중은 하필 맨 마지막 순서로 낙점된 두 팀에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윽고 타이머를 비추고 있던 전광판의 정중앙에 한 줄기 선이 그이고, 양쪽으로 나눠져 비춰지기 시작한 두 팀의 모습을 본 관중은 자신들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끓는 물과 닫힌 냄비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로 가득한 주방.
그 속에서 다른 곳에는 눈 돌릴 새도 없이 요리에 몰두하는 두 팀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혼란스런 주방 속에서 마이크 따위를 찰 여유는 그들에게 없었으니까.
그러나 주방의 환한 조명 아래 극명히 드러난 두 팀, 네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조리에 임하고 있는지는 그 얼굴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두 팀의 분위기가 정말 정반대네요."
"아마 팀을 이끄는 리더의 성미가 다른 탓이겠죠."
그런 박종원과 진영배의 말대로, 스즈 팀과 무라쿠모 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
"……?!"
"……!"
척 보아도 이미 대 여섯 개는 넘어간 냄비. 기존에 있던 화구에 더해 부탄가스렌지까지 꺼내 사용하며 이마 위로 흐르는 땀방울도 닦지 못한 탓에 찡그려진 얼굴로 입을 뻥긋거리며 서로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찬혁과 양희연.
"……."
"……."
그와 반대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냉랭한 분위기 속. 마치 수술대 앞에 선 의사처럼 정교하고 신속한 손놀림으로 장식용 야채를 준비하며 짤막한 몇 마디 말만을 가끔 주고받는 이치로와 그 조수.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과 싸늘하게 식은 얼음의 대결. 어딜 봐도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공통점이 없진 않았다.
그건 바로 그 어느 쪽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스스로가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
얇디얇은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것 같은 그 긴박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은 점점 종막을 향해 등속으로, 멈추지 않고 질주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긴박함에 최후의 화룡점정이 찍혔다.
"아, 무라쿠모 팀. 드디어 솥을 열어 밥을 꺼냈습니다!"
마치 초고속으로 달리는 F1머신 두 대가 결승선을 바로 앞에 둔 것 같은 긴장감.
서킷의 마지막 코너를 돌아 비로소 최후의 직진코스에 먼저 들어선 팀은 다름 아닌 이치로의 무라쿠모 팀이었다.
극한까지 차오른 긴장감을 느낀 박종원이 서둘러 강백동의 배턴을 이어 받아 입을 열었다.
"초밥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초밥의 기초이자 밑받침이 되는 밥, 샤리しゃり고요. 또 하나는 샤리의 위에 얹어 초밥의 종류를 가르는 회, 네타ネタ입니다."
"네타는 숙성 작업을 제외하면 모양을 맞춰 자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미 작업을 끝낸 무라쿠모 팀에게는 그다지 오래 걸릴 일이 아니죠. 문제는 샤리입니다."
"진영배 회장님 말씀대로 지금부터 정말 어려운 작업이 될 겁니다. 샤리는 식초에 설탕, 소금 등을 넣어 끓인 초대리를 밥과 잘 섞어서 만들죠. 이때 부채질을 하면서 밥을 잘 식혀주지 않으면 밥알이 코팅되는 게 아니라 식초를 아예 흡수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한 고생이 전부 허사가 되는 거예요!"
여태껏 구역을 나뉘어 요리에 임하던 이치로와 그 조수가 처음으로 같은 위치에 모인다.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나무대야가 놓여 있었다. 밥과 초대리를 섞을 때 쓰는 도구인 한기리半切り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열린 밥솥에서 퍼낸 밥을 한기리와 다른 대접 두 곳으로 나눠 담는 이치로. 결과적으로 한기리에 담긴 밥은 밥솥에서 꺼낸 밥의 일부분에 불과했고, 관중은 그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그것을 놓칠 박종원이 아니다.
"밥솥 가장 중심 부분에 있던 밥만 사용하려는 거네요."
"중심이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있지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긴 말에 앞서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은 박종원이 말을 이었다.
"보통 우리나라 분들은 밥을 만들 때 고압력 밥솥을 사용하시고는 합니다. 고압력 밥솥에도 물론 장점은 있습니다. 밥을 지은 후 보존이 더 유리하고, 현미 등이 섞인 잡곡밥은 고압력 밥솥으로 만든 게 더욱 맛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저희가 가장 자주 먹는 흰쌀밥은 오히려 고압력으로 짓는 것보다 무압력 상태로 짓는 게 더 맛있다는 거예요."
"무압력이요? 무압력 밥솥이란 걸 광고에서 본 적 있는 것 같긴 한데…… 근데 그게 중심에 있는 밥을 사용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정답은 바로 온도에 있습니다."
"온도요?"
강백동의 반문에 박종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밥을 지을 때 가장 맛있는 온도는 100도 직전. 즉 물이 끓어오르기 거의 직전의 온도에서 약 10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익혔을 때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압력솥을 쓰면 어떻게 되겠어요?"
"압력이 높아지니까……."
"솥 안의 수온이 10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
"바로 그겁니다. 물론 보다 고온에서 익히는 만큼 조리시간은 단축되지만, 그 대신 어느 정도 맛의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밥을 지을 때 가장 맛있게 익힐 수 있는 용기가 온도를 길게 유지하면서 압력이 높아지지 않는 뚝배기인 거예요. 그런데 만약 많은 양의 밥을 짓는다면, 아무리 무압력 밥솥이라고 해도 모든 부분의 온도가 똑같을까요?"
"그렇진 않겠죠. 불이 직접적으로 닿는 바닥부분은 보다 뜨거울 테고, 열기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들 테니…… 아하!"
그제야 눈치챘다는 듯 손뼉을 치는 진영배. 이해가 빠른 그의 모습에 박종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밥을 짓는 데 최적의 온도가 유지되는 구간은 보통 솥의 중심부. 즉, 중심부의 밥은 다른 곳보다 밥맛이 더 뛰어나단 뜻이죠."
그렇기에 무라쿠모 팀은 밥솥의 중심부에 있는 밥만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박종원이 말하고 싶은 바였고, 그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호, 심사위원을 아무나 뽑은 건 아니라 이거로군. 저걸 알고 있을 줄이야.'
이치로는 작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승의 가게에서 제자로 일하며 몇 년 후에야 간신히 체득한 지식을 명쾌하게 밝히는 박종원의 모습에 감탄한 것이다.
그렇게 감탄하는 와중에도 그의 몸은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 기계처럼 제 일을 수행했다. 한기리 속에 있는 밥을 양손에 쥔 주걱의 날을 이용해 가르고 뒤엎으면, 옆에 있던 조수는 손에 든 부채로 밥을 쉼 없이 식히며 초대리를 조금씩 흩뿌린다.
일본 현지에서 공수한 고급 적식초로 만든 초대리와 최고의 밥. 거기에 한 해에 한두 번 볼까말까 한 최고급 생선까지.
'그야말로 천군만마로군.'
가볍게 웃은 이치로의 손이 번개처럼 내달렸다.
적당히 섞인 샤리를 대야 째 조수의 손에 맡기고, 드디어 네타가 될 재료를 꺼내는 그.
밥과의 일체감을 위해 상온에 꺼내두어 온도를 맞춰둔 재료가 하나씩 그의 옆에 나열한다.
광어, 연어, 도미, 새우, 오징어, 문어, 성게, 날치알, 계란말이, 참치.
총 열 가지의 재료와 산 정상의 1급수로 정성껏 키운 와사비, 최고급 김까지.
이걸 사서 먹는다면 인당 1, 2만 엔 정도로는 수지타산도 맞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며, 초밥을 쥘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이치로가 마침내 차량의 클락션을 누른다.
─빠아아아앙!
"어, 뭐, 뭐죠? 끝내 스즈 팀보다 먼저 클락션을 울리는 무라쿠모 팀. 그런데 아직 요리가 완성이 덜 된 것 같은데요."
"…… 일단 가봅시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라쿠모 팀의 차량 앞으로 이동하는 심사위원단. 그들을 맞이한 이치로가 심사위원단 앞으로 각각 나무접시를 내려놓는다.
"음?"
물론, 접시 위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이 행태에 의문을 느끼는 심사위원단에게 이치로가 말했다.
"스시. 만든 그 순간이 가장 맛있습니다. 완성, 손님 앞에서."
"아……."
타당한 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심사위원단은 그 말을 쉽게 승복할 수 없었다. 이건 엄연한 대회. 심사는 완성품으로 받는 게 상식이다. 아무리 초밥이 쥐는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하더라도 인당 열 가지. 총 서른 개의 초밥을 쥐려면 손이 빠르다 해도 5분은 걸릴 터.
아직 경기 종료까지 10분 이상 남았다지만, 그래도 이건 경우에 어긋났다. 막말로 바로 옆에서 조리 중인 스즈 팀이 그들보다 음식을 빨리 내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쩌죠?"
"이건 아무래도……."
아무리 맛이 중요하다지만, 지금은 우선 심사를 보류하고 완성한 뒤로 미루는 게 아직 조리에 몰두하고 있는 스즈 팀을 위한 예의일 터. 그렇게 의견을 정리한 심사위원단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그런 그들을 막았다.
"하세요."
"응?"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는 심사위원단.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끼어들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한 팀.
"하세요. 심사."
찬혁 일행뿐이었으니까.
요리를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조리대 앞에서 그들을 빤히 바라보며 말하는 찬혁의 말에 심사위원단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 류찬혁 선수. 정말 괜찮습니까?"
고작 몇 분 정도의 차이로 그 맛이 크게 변할 리는 없겠으나, 심사에 영향이 없지는 않을 터. 심사위원단을 대표한 백종원이 그런 우려가 담긴 눈빛을 보냈음에도 찬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희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아마 다 만든 다음에 심사를 본다고 해도 저희가 살짝 더 늦게 완성될 거예요. 저희는 오히려 지금 해주시는 게 나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찬혁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심사위원단은 그 지나치게 담대한 태도에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다른 팀이 불만이 없다면, 심사위원단도 이를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으니까.
"…… 앞서 끝낸 세 팀도 괜찮다고 합니다."
어느새 의중을 물어보고 온 것인지, 박종원의 곁에 다가온 스태프가 한 말에 심사위원단이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무라쿠모 팀.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두 팀의 승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