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50화 (150/403)

150. 제3라운드.-6-

결승 시작 전, 초밥을 만들자는 결론을 내린 나와 양희연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 발표 순서는 아마 가장 마지막이 될 거야."

"마지막?"

"응."

'된다'기 보다는 '한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일부러 가장 마지막 순서에 음식을 완성할 생각이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양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굳이? 빨리 하는 게 낫지 않나?"

"그쪽도 장점이 많긴 하지."

보통 요리만화 등을 볼 때면 주인공이 누군가와 요리 실력을 겨루어 이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사실은 누군가와 요리대결은커녕 자기 먹기 살기도 바빠 그럴 틈도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만화는 만화니까.

아무튼 여기서 문제.

그런 만화에서 두 사람이 1대1 대결을 한다 치자. 그럼 이 경우, 승률이 높은 건 먼저 요리를 내놓은 사람일까, 아니면 후에 요리를 내놓은 사람일까?

답은 후자. 요리를 나중에 내놓은 인물의 승률이 비교적 훨씬 높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일까?

아쉽게도 딱히 그렇진 않다.

사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뒷 순번은 앞 순번보다 불리한 점이 많다.

사람의 혀는 생각보다 굉장히 민감한 기관이다.

혀에 있는 수천 개의 미뢰가 음식에 대한 정보를 뇌로 보내면, 뇌는 그 정보를 수신하여 그것을 맛으로 치환한다. 이때 미뢰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발신한다. 그것도 고작 0.몇 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그렇게 민감하고 빠른 만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과부하다.

기계든 사람이든 단시간에 과중한 노동을 하면 당연히 반동이 오는 법. 그리고 혀는 민감한 만큼 그 반동이 빠르게 온다.

예를 들어 초콜릿을 먹고 단 음료를 마시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과부하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후공은 그런 과부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다른 조건을 제하고 심사 하나만을 놓고 보았을 때 보통 대부분의 경우 선공이 후공보다 유리하다. 결국 만화는 만화라는 거지.

실제로 우리는 1, 2라운드를 전부 앞선 순서에 심사를 받아 통과하기도 했고.

내 말이 이어질수록 그걸 듣던 양희연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아니, 말이 이상하지 않나. 말만 들으면 좋을 거 하나 없는데 와?"

하긴, 줄창 후공의 불리함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으니 이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뭐, 끝까지 한 번 들어봐. 결국 불리한 건 우리 바로 앞 순서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1대1 상황일 경우의 이야기. 대결하는 팀이 많아지면 그 약점에도 의외로 빈틈이 생긴다.

"앞 순서? 누가 될지 어떻게 알고?"

"확실하진 않지만 예상은 할 수 있지."

1, 2순위는 아마 만선반점과 남해왕만두 사이에서 갈린다. 왜냐. 두 식당의 주력 메뉴 중 처음부터 만들어도 소요시간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메뉴는 아마 없을 테니까. 그곳에 대해 잘은 몰라도 식당의 분류를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빨리 끝날 두 팀을 제하면 남는 건 세 팀. 우리, 무라쿠모, 김가네 돼지국밥.

그리고 나는 그 셋 중 먼저 끝날 팀을 돼지국밥 팀으로 예상했다. 이 팀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무라쿠모와 우리 팀의 종료 예상 시각이 언제인지 대강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라쿠모가 정말 초밥을 들고 나왔을 경우 한정이긴 하지만.'

초밥을 만들기 위해선 생선을 숙성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선은 들어가는 숙성시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무조건 오래 숙성할수록 맛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 초밥 전문점에서 잡는 숙성시간은 최소 5시간에서 최대 8시간 사이.

물론 대회 중 그렇게 오랜 시간 숙성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숙성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내려면 최소 1시간 이상의 숙성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무라쿠모 측에서는 아마 최대한 숙성시간을 길게 잡은 뒤 시간 종료 직전에 요리를 완성하려 할 터. 우리는 바로 그 무라쿠모의 다음 순서를 노린다. 같은 초밥이란 메뉴를 골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 있나? 그러면 정말로 걔네랑 대가리 박고 함 뜨잔 긴데."

"자신? 글쎄."

솔직히 겨뤄서 이길 수 있단 확신은 없다. 애당초 걔네가 어떤 음식을 만들 줄 알고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믿을 수 있는 건 따로 있지.'

우리가 만든 요리가 맛있으리란 것. 나는 대회가 시작된 후 여태껏 그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되리라는 것도, 나는 의심치 않는다.

***

'아까는 깜짝 놀랐지만, 이제부턴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어.'

두 번째 차례로 심사에 나선 만선반점의 선언을 들으며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첫 번째 타자로 김가네 돼지국밥 팀이 나왔을 때는 살짝 쫄렸다. 분명 만선반점이나 남해왕만두에서 먼저 나설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나중에 나오리라 예상했던 팀이 갑자기 나온 탓이다.

심사에 신경을 쓰진 않았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얼핏 귀로 들려오는 관중의 반응을 보면 꽤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결과는 이 결승전이 끝날 때나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그나저나 저기는 무슨 음식을 준비했으려나.'

아까 재료를 챙길 때, 만선반점에서는 제법 커다란 생선 한 마리를 챙겼다.

맛은 훌륭하지만 구성은 평범한 중화요리점인 가게에서 생선이라. 무슨 메뉴가 나올지 잘 상상은 안 되지만 분명 흔히 볼 수 있는 요리는 아닐 것이다.

"아야, 조림 거의 다 끝나간데이. 니는 어떻노?"

"숙성은 진즉 끝냈고, 지금은 뼈로 다시 뽑는 중. 나도 슬슬 끝나니까 빨리하고 밥 짓자."

"헷갈리면 안 되는 거 알제?"

"잘 기억해두고 있으니까 걱정 마."

잠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우리 파트너가 핀잔을 던졌다. 어차피 우리 메뉴는 시간이 드는 작업이 끝나기 전까진 비교적 바쁠 게 없는 메뉴라 이 정도의 작은 여유는 부려도 괜찮은데도 말이다.

'대신 끝나기 직전이 죽도록 바쁘겠지만.'

그건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어차피 준비도 다 해놨고.

그런 의미로 지금은 잠시 시선을 돌려 다른 팀의 상황도 좀 체크 해볼까. 이것도 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적군을 염탐하는 거지. 그러니까 난 나쁘지 않아.

아마 양희연이 들었다간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낼 것 같은 소리를 속으로 되뇌며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을 위해 심사위원단이 기본적으로 마이크를 차고 있으니 바깥 상황을 알기 쉬워 좋다.

'오, 마침 시작했나 보네.'

아까부터 들려오던 관중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심사가 시작될 징조다.

잠시 후, 기다리던 심사위원단과 만선반점 팀의 목소리가 비로소 내 귓가에 닿기 시작했다.

***

"만선반점의 우남길 선수. 준비한 메뉴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요리는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뜨겁게 끓인 양념을 뿌린 탕추위糖醋鱼입니다. 다른 말로는 어탕수라고도 하죠."

탕추위. 그 세 음절 단어에 박종원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남길을 바라본다.

"탕추위라, 이건 또 보기 힘든 걸 준비하셨네요."

"가게에서도 판매하는 메뉴입니다. 가격대가 비싸 손님이 즐겨 찾는 메뉴는 아니라 비밀메뉴 취급을 받긴 하지만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등장하는 커다란 접시.

접시 위에 1자로 뉘인 생선. 통째로 튀겨져 원형을 거의 유지한 생선은 노란빛 튀김옷 위로 끈적한 황금빛 소스를 듬뿍 머금고 있었다.

그 웅장한 비주얼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전광판에 시선을 뺏긴다.

"탕추위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요리긴 하죠. 전통 중국음식 중 하나로 중국에서는 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입니다만, 엄연히 고급요리에 속하는 음식입니다. 생선 한 마리를 향신채를 넣은 술에 잠시 재웠다가 통째로 튀기는 요리니 비싸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보통은 평생 풀만 먹고 산다고 해서 초어라는 이름이 붙은 잉엇과의 민물고기로 만듭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초어로는 안 보이네요."

박종원의 말대로, 얇은 튀김옷에 가려진 생선의 실루엣은 잉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잉어보다는, 보다 바닷고기에 가까운 넓대한 몸집. 하지만 튀김옷에 가려진 탓에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 애먹는 심사위원단과 관중의 호기심을 해소해주기 위해 우남길이 직접 나섰다.

"돌돔입니다."

"…… 예?"

꿈뻑꿈뻑.

지금 설마 말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심사위원단이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돌돔을 튀겼습니다."

"…… 아이고야."

결국에는 힘이 풀린 듯 넋두리를 내뱉는 심사위원단.

이 말에는 찬혁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돌돔의 시세는 1kg에 약 10만원에 육박한다. 설마 재료차에 그런 것까지 있으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걸 거침없이 튀겨 버린 우남길의 행동력은 더더욱 놀라웠다.

우남길의 선언에 충격을 받은 것은 심사위원단과 찬혁 뿐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에 모인 수천 명의 관중 또한 마찬가지로 우남길의 발언에 마치 끓기 직전의 기름이라도 된 것 마냥 점차 웅성거림을 키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서서 그 경악의 분출구를 만들어야 할 상황. 결국 총대를 멘 것은 그들 중 가장 공신력이 큰 박종원이었다.

"대담한 결정을 하셨네요. 다른 생선도 아니고 돌돔이라니. 보통 한국식 탕추위는 우럭으로 많이 만들거든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우럭으로 만드신 건줄 알았는데, 설마 돌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돌돔은 보통 회로 소비되는 생선이니까요."

"생선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꼭 회 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남길의 당찬 발언에 반박하고 싶은 이들이 4열 종대로 연병장 한 바퀴는 채울 만큼 많았지만 박종원은 의외로 선선히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맞아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고급 생선은 회로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조금 더 다양하게 생선을 소비합니다. 생선의 종류에 따라서 회, 찜, 탕, 구이, 조림 등 많은 조리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튀김 또한 그중 하나죠. 흰살생선은 대부분의 조리법에 두루두루 잘 어울리기 때문에 특히 더 사랑받고요."

젓가락을 집은 박종원은 탕추위를 크게 한 점 떼어내곤, 우남길이 따로 준비한 라이스페이퍼 위에 채 썬 채소 몇 가지와 함께 얹어 동그랗게 말았다. 월남쌈을 떠오르게 하는 비주얼이었다.

"뼈에 들러붙지 않고 뚝 떨어지는 걸 보면 아주 적당히 잘 익었어요. 생선이 휘지 않고 곧게 핀 걸 보면 생선 꼬리를 잡고 들어서 끓는 기름을 국자로 부어가며 튀기신 거죠?"

"그걸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그게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고급기술인데, 카메라가 제대로 찍었을까 모르겠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지체없이 입으로 들어가는 탕추위. 그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수천 쌍의 눈빛 앞에서 박종원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하하하! 이야, 이거 진짜 끝내준다."

대체 무어가 그리 좋은지, 박종원의 웃음은 자지러진 어린아이마냥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여러분. 여러분도 어서 와서 들어요. 후회 안 할 걸?"

"아, 예. 선생님."

그제야 잠시 떨어져 박종원을 관망하던 강백동과 진영배도 그와 똑같이 탕추위를 시식했다.

결과는, 물론 말할 것도 없었다.

"와, 와!"

"이런 고급 생선을 튀김으로 먹어본 건 처음인데, 이렇게 맛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입속에서 말 그대로 폭발하는 감칠맛. 터져 나오는 고기의 육즙. 담백한 살결과 어우러지는 달큰한 소스까지.

회로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그제야 강백동과 진영배는 박종원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맛을 어찌 웃지 않고 배긴단 말인가.

정작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관중은 죽을 맛이었지만.

마치 피라냐 떼가 먹이를 먹는 것처럼 탕추위로 달려든 심사위원단이 물러가자 만선반점의 접시 위에는 새하얀 뼈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찬혁이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씨, 먹고 싶…… 아니. 만만히 볼 상대가 한 명도 없네."

"뭐라 입을 나불대쌌노? 이제 30분 남았다. 빨리 해라!"

"아, 알겠어. 쌀 준비도 다 끝내놨으니까 걱정 마."

바가지 좀 그만 긁으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찬혁이 구슬픈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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