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47화 (147/403)

147. 제3라운드.-3-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부산 최고의 식당을 가려라! 추석 특집 부산시 배 상인 요리대회! 승리의 영광을 잡는 이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 막이 오른다!"

─펑! 펑! 펑!

저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건지. 리허설 때는 못 들었는데.

등 뒤에서 신명나게 터져 나가는 폭죽의 밝디밝은 불빛과 열기가 등으로 느껴졌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됐다는 증명인지, 잠시 중천에 떴던 태양은 벌써 수평선 너머로 제 몸을 숨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 참. 분위기를 탈 줄 아는 하늘이다. 덕분에 애써 준비했을 폭죽이 꽤 운치 있게 빛나지 않는가.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전광판 양옆으로 터지고 있을 폭죽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직구장에서 폭죽놀이를 볼 기회가 태어나 몇 번이나 있겠냐마는, 어쩔 수 없다. 지금 뒤를 돌면 그림이 이상해지니까.

"약 두 달 전. 부산 소재의 모든 식당은 부산시로부터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프렌차이즈, 개인 창업,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모든 식당에게 해당 공문이 전달됐습니다. 그 공문이란 다름 아닌, 요리대회 개최를 알리는 공문이었습니다!"

한껏 가라앉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던 강백동의 성량이, 마치 널뛰기를 하듯 펄쩍 위로 치솟는다.

"그리하여! 총 600여 점의 식당이 참여한 예선전! 경쟁률 24:1! 그 무지막지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스물다섯 개의 점포! 쉰세 명의 달인! 그 경합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올라온 다섯 팀을! 소개하겠습니다!"

─퍼어엉!

이전에 터진 폭죽보다 한층 더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하늘을 물들이는 대형 폭죽의 세례.

그 폭발에 지지 않는 관중의 함성도 슬슬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그마한 만두에 남해의 풍성함을 담는다! 남해왕만두!"

"대회 참가자 최연소!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젊은 달인들이 기어코 이곳까지 왔다! 일식당 스즈!"

"최고의 재료! 최고의 솜씨로 만드는 궁극의 요리! 부산 최대! 전국 최대의 규모는 결코 허세가 아니다! 무라쿠모!"

"개업 60년! 3대에 걸쳐 한때는 어부의! 그리고 지금은 학생과 직장인의 주린 배를 책임져온 경력을 보여주마! 만선반점!

"부산에 어찌 이 음식이 빠질소냐? 부산 최고의 식당은 당연히 우리 차지다! 김가네 돼지국밥!"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문구를 읊을 때마다 파도처럼 거세지는 함성.

적당히 있어 보이는 척 자세를 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소개에 맞춰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후자. 어린애들이 잘난 척 해봤자 이미지 장사에 도움이 안 돼요.

그나저나 이렇게 뻥 뚫린 시선으로 관중석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가게. 정말 생각보다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관중석 여기저기 펄럭이는 현수막이나 플랜카드 따위에서 상대 가게의 이름이 종종 보이지만, 스즈라는 이름은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였으니까. 오히려 내 이름이나 양희연 이름이 적힌 흙수저 버전 박스 플랜카드가 보여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빠야는 끝까지 안 오네."

양희연도 그게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닌지 그런 군소리를 중얼거렸다. 살짝 풀이 죽은 것 같기도 하고. 학교 운동회에 부모님이 안 온 느낌이지 않을까. 나야 뭐 너무 자주 있던 일이라 이젠 별 신경도 안 쓰지만.

아무튼, 그런 양희연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센 함성.

그 소리가 잦아들 때가 돼서야 강백동MC는 간신히 스피커에 제 목소리를 끼워넣을 수 있었다.

"이상 다섯 팀의 우승을 건 최후의 승부!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인가.'

지금부터는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한치라도 실수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외길을 걷는다는 각오로.

아까 양희연은 무라쿠모만을 문제 삼았지만, 내가 정말 보고 있던 건 무라쿠모가 아니다.

정확히는 무라쿠모를 포함한 네 팀 전체.

무라쿠모를 피하겠단 이유로 초밥을 포기하면, 무라쿠모는 물론이요 다른 세 팀에도 이길 방도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객관적인 시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결승 참가자 중 최약체다.

그렇기에,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언더독에게는 언더독만의 싸움법이 있다는 것을.

***

"자! 선수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선수들! 달리고 달려서 재료가 실린 냉장 탑차로 향합니다!"

타이머의 초침이 첫 발걸음을 뗀 그 순간 앞다퉈 차량을 박차고 뛰쳐나오는 각각의 선수들.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화면을 바라보던 박종원과 진영배가 해설을 시작했다.

"냉장차에 비치된 재료들은 농협에서 지원해준 상등품입니다. 농산물, 축산물, 해산물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질이 좋은 물건이에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분명 보다 더 잘난 재료가 있고 못난 재료가 있어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느냐. 그리고 남들보다 빨리 상등품을 채갈 수 있느냐가 승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아! 이 순간! 가장 먼저 재료를 챙긴 팀! 누구죠? 누굽니까!"

강백동의 재촉에 해당 참가자를 향해 카메라가 렌즈를 당겼다.

"아아! 무라쿠모의 이치로 선수! 이치로 선수가 먼저 본인의 차량으로 돌아갑니다!"

전광판 화면이 비춘 것은 다름 아닌 이치로. 다른 이들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에 관중이 놀랐으나, 박종원과 진영배는 이치로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이치로 선수. 굉장히 빨리 복귀했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챙긴 게 많아 보이지는 않죠?"

"예. 기껏해야 야채 몇 종류와 쌀, 조미료 몇 가지가 전부인 것 같은데……."

실제로 이치로가 챙긴 바구니는 채 반절 정도밖에 차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마저도 주재료라고 볼 수 있는 물건은 없는 상황. 그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은 관중도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차량으로 돌아간 이치로는 그들의 의문을 단박에 깨부술 물건을 꺼내 들었다.

"저건 뭐죠? 이치로 선수, 아이스박스를 꺼냈습니다."

"아이스박스 안에 뭐가…… 아! 생선! 엄청난 수의 생선이 들어있네요!"

이치로가 꺼낸 아이스박스.

그리고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다종다양한 생선!

전광판에 비추는 생선의 빛깔만 보고도 박종원은 단박에 짐작했다. 아, 저거 보통 물건이 아니로구나.

거의 죽은 듯 움직임이 없긴 하지만, 마치 바로 방금 수조에서 꺼내온 것 같은 비늘의 광택과 촉촉함, 탱글탱글 볼록 튀어나온 눈, 가끔 움직이며 보이는 선홍빛 아가미.

그 외에도 잔상처가 보이지 않는 점이나 뾰족하게 각이 선 꼬리까지.

"와…… 새벽 경매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을 여기서 다 보네요."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선생님?"

"대단하죠! 보세요! 생선 볼 줄 아시는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저거 대부분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에요! 심지어 비늘 상한 것도 없는 걸 보면 그물이 아니라 바늘 낚시로 잡은 것들이고요!"

그물 낚시와는 달리 바늘 낚시로 잡은 생선은 몸에 잔상처가 남지 않고, 몸부림으로 생선의 근육 내부에 손상이 갈 확률이 매우 적다.

대신 잡히는 양이 그물 낚시보다 확연히 적은 탓에 가격대가 훨씬 높게 책정된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금액 외의 단점이 없다.

하지만 물량으로 다소의 질의 차이는 덮어 버릴 수 있는 요즘 시대에 바늘 낚시로 어업을 하는 어부를 찾는다는 건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어림짐작이지만, 분명 상당한 비용이 들었으리라는 사실을 박종원은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이치로 선수와 무라쿠모가 얼마나 이 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어, 연어, 도미, 새우, 오징어, 심지어 뼈가 그대로 붙은 큼지막한 참치 뱃살 한 토막까지.

조리가 되지 않은 재료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본 대회의 맹점이 아닐 수 없었다. 신선도가 생명인 생선은 오히려 그 제약에서 자유로운 식재료였으니까.

이미 재료 선정에서부터 여느 팀과 크게 격차를 벌린 이치로는, 모든 해산물을 꺼낸 뒤에야 손에 칼을 들었다.

"이치로 선수, 칼을 들었습니다! 엄청난 칼솜씨! 그 많은 생선이 순식간에 토막나고 있습니다!"

"이치로 선수가 준비한 메뉴는 아무래도 초밥인 것 같습니다. 고작 몇 가지 메뉴를 만들기엔 해산물의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심사위원단의 추측은 옳았고, 실제로도 그 이외에 도출되는 답안은 없었다.

그렇게 이치로가 생선을 순식간에 해체하는 동안, 비로소 다른 팀도 모든 재료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관중의 이목은 한 곳에 쏠린 상황.

계속 한 팀만 비추는 건 그림이 예쁘지 않을 것이란 감독의 판단 아래 다른 팀에게도 짧게나마 카메라가 돌아가기는 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아…… 남해왕만두는 고기를 재고 있네요. 거기에 더해 몇 가지 해산물도 준비 중이고요."

"남해왕만두의 시그니쳐 메뉴인 갈비만두와 통해산물만두를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맛이 뛰어나서 점심시간에 바로 뛰어가서 기다리지 않으면 다 팔려서 먹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하죠."

"만선반점은 도미를 손질하고 있군요? 중화요리점에서 도미라…… 무슨 요리가 나올지 기대되네요."

"김가네 돼지국밥에선 돼지고기를 열심히 손질하고 있습니다. 화구에 압력솥이 올라간 걸 보면 압력솥으로 고기를 푹 익혀서 돼지국밥을 준비하려는 것으로 보이네요."

"김가네 돼지국밥 팀은 1, 2라운드 때 대표메뉴인 돼지국밥이 아니라 다른 메뉴로 승부를 봤었죠? 아무래도 끝까지 숨겨두고 있던 비장의 카드로 결판을 낼 모양입니다."

앞서 보여준 모습과 비교하면 조금 힘이 빠진 해설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회 초반에 참가자가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은 다름 아닌 재료.

그러나 그 어떤 팀도 무라쿠모의 재료가 보여준 임팩트에 따라갈 수 없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으니까.

물론 이건 찬혁과 희연의 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다.

"스즈 팀은 생선과 무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전 라운드에서 보며 충분히 느꼈지만, 저 두 선수 손이 정말 빠릅니다. 지금 남은 선수들 중 달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데, 그 어느 팀에도 지지 않을 만큼 손이 빨라요."

어린 나이에 다른 팀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솜씨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팀보다 더 많은 이목을 끌 수 있는 요소는 있었지만, 그나마도 이미 이전 라운드를 거치며 익숙해진 관중의 눈에는 그저 대단하다며 작게 감탄할 뿐, 그 이상 놀랄 일도 아니었다.

"무와 생선…… 조림을 만드는 걸까요?"

"그런 것 같네요. 우리나라 분들이 보시기에 조림은 평범한 가정식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일본에서는 조림이 고급 요리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물론 가정식으로도 자주 먹지만요. 아마 이번에 스즈 팀이 보여줄 요리는 고급 조림 요리일 것 같네요. 저렇게 동그랗게 토막 낸 무의 뾰족한 테두리를 깎아 원반 모양으로 만드는 걸 멘토리面取り라고 하거든요? 조림 요리를 할 때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아하, 한식이나 양식에도 그와 비슷한 과정이 있죠. 모서리가 다른 곳보다 먼저 익어 으스러지면 국물 맛을 헤치니까요."

"예, 맞습니다. 아무튼 스즈 팀이 준비 중인 메뉴는 조림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뭔가…….'

짧은 설명을 끝으로 화면이 넘어가려던 찰나. 박종원은 찬혁 팀의 조리대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하나.

손질하고 있는 무의 양이 제법 많다. 보통 한 마리를 통째로 조림으로 만든다 해도 사용하는 무의 양은 한 개를 넘지 않을 터.

그리도 둘.

조리대 뒤쪽, 얼핏 보인 싱크대 내부에 쌓인 여러 마리의 생선.

여러 가지 조림요리를 만드는 건가? 아니, 굳이 비슷한 맛의 조림 요리를 생선만 바꿔가며 만들어봤자 심사에 그다지 이로운 영향은 주지 못한다. 그 시간에 다른 메뉴를 준비하는 게 낫지.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생선을 저렇게 다양하게 준비한 걸까?

찬혁 팀의 조리대를 비추는 화면 속, 잘 보이지 않는 조리대 한쪽에 놓인 커다란 볼이 어째서인지 박종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커다란 검은 판떼기 여러 장이, 노랗게 빛나는 액체 속에 잠겨 있는 모습.

'설마.'

이 순간, 박종원은 직감했고, 그렇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콰당!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선 박종원의 행동에 강백동과 진영배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박종원의 시선은 이미 화면이 아닌 찬혁 일행의 조리대에 고정된 상황.

"서, 선생님? 왜 그러세요?"

"박종원 씨?"

그들의 물음에도 아랑곳 않고, 박종원은 속으로 가만히 읊조렸다.

'만들 셈이다.'

초밥을.

조림은 기만술. 혹은 다른 의도가 있는 행동.

진짜 저들이 만들 요리는 초밥이다. 저 식초에 담긴 다시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저게 생선을 숙성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건이란 사실을.

재료로도, 솜씨로도 이길 방도가 보이지 않는 상대와, 무언가의 방법을 써서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박종원의 가슴에, 기대라는 이름의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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