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제3라운드.-2-
"쯧."
귀찮은 애새끼들.
모니터를 바라보던 김종권이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애꿎은 모니터를 욕한 것이 아니다.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그 내용.
실시간으로 편집된 결승 진출자 소개 영상. 그중에서도 찬혁과 희연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김종권을 이토록 열이 뻗치게 하는 원흉이었다.
'이래서는 우승해봤자 본전 찾기도 어렵겠어.'
김종권은 평범한 일반인이 감히 상상하기 힘든 돈을 번다.
그가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나, 아니면 할리우드의 톱스타처럼 갈퀴로 돈을 쓸어 담는 수준의 갑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매달 순이익이 억 단위에 이르는 가게를 운영하며 쌓은 부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런 그라고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쓸 때는 확실하게. 돈을 쓰는 만큼의 값어치를 할 수 있는 곳에만 투자를 한다.
요컨대 김종권은 '가성비'를 따지는 타입의 인간이다.
이번 대회에 이치로를 고용하는 데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망설임 없이 사용한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돈을 쓴 가치를 하리라 믿었으니까.
부산 시민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린 지금, 우승 타이틀을 따냈을 때 생길 광고효과는 어중간한 TV광고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단지 결승에 진출했을 뿐임에도 현재 그의 가게에는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예약석이 가득 찼을 정도였다.
그러니 우승까지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루 예약석? 아니, 달 단위의 예약석이 가득 찰지도 모른다. 그 한 달을 잘 통제하여 고객에게 좋은 인상만을 심어준다면 언젠가는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가게처럼 반년 내내 예약이 가득 찰 수도 있다.
그만한 광고효과를 내는 데에 수천만? 껌값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저 꼬맹이들 때문에 일이 꼬이는군.'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의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가게만을 비출 때의 이야기.
고작 고등학생이 쟁쟁한 요리의 달인들을 상대로 이겨 결승까지 올라온 작금의 상황에 관중의 시선은 온통 찬혁 일행에게로 쏠렸다.
이대로 김종권의 식당이 우승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그 관심을 모두 가져오는 것은 요원한 일이겠지.
'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소리나 하면서 꼬마들의 비위 세우기에 바쁠 게 분명해.'
본래 사람에게는 그런 성향이 있다.
이른바 언더독 마니아. 높은 위치에서 상대를 누르기보다, 낮은 곳에서 잘난 놈들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
그런 언더독 기질과 어린 나이의 학생이 노력하는 기특함이 절묘하게 합쳐져 이런 결과가 되었음을 김종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만약 우승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젠장.
그것이야말로 김종권이 가장 꺼리는 사태였다.
정말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 꼬맹이들이 여타 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이 대회에 관해 사용한 모든 돈은 죄다 매몰비용이 될 것이다.
차라리 우승을 하더라도 다른 식당이 하는 게 낫지. 그 상황만큼은 와선 안 된다.
'반타작? 아니. 그 반의 반도 얻지 못할 거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해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김종권이 입을 열었다.
"셰프, 계획은 있습니까?"
"……."
목소리가 향한 곳은 그가 등진 맞은편 좌석.
돌부처처럼 아무 말도 없이 딱딱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치로가 슬쩍 고개를 들고 김종권에게 눈길을 향했다.
"계획, 어떤?"
"결승전에서 우승할 계획 말입니다. 뭐, 생각해 둔 거 없습니까?"
답답한 마음에 혹시나 싶어 이치로에게 질문을 건넨 김종권이었으나, 이내 그는 자신이 질문을 던진 것을 후회하게 됐다.
"없습니다."
"…… 혹시, 지금 내가 잘못 들었습니까?"
"아니요."
한 순간의 고민조차 없이 답하는 이치로의 태도에 김종권은 저도 모르게 살짝 현기증이 돌았다. 세상에, 어쩌자고 이런 놈을 고용해선. 본토에서 곧 제 가게를 낼 만큼 잘 나가는 후배가 있다는 실장의 말에 혹한 게 잘못이었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무른 김종권이 의자를 돌려 이치로를 마주봤다.
"없어요? 계획이 없으면 뭐, 우승은 가만히 남한테 주자 그겁니까?"
"우승은 합니다. 할 겁니다."
"하, 의욕은 있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아주 다행이에요."
비꼬듯 쏘아낸 말을 이치로는 묵묵히 받아냈다.
사실, 이치로 본인에게도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건 아니다.
김종권에게서 미리 받은 선수금과 우승을 했을 시 받을 보수를 합치면 가게 개업에 대한 걱정은 거의 접어놔도 될 수준이었으니까. 자본주의사회에서 충분한 돈은 의욕을 갖기에 더없는 이유다.
"계획. 필요 없습니다. 요리사의 일. 맛있는 음식 만드는 것."
"…… 아, 그래요."
'흥, 장인 흉내 따위를 내기는. 물 건너 요리사란 놈들은 왜 이리 고지식한 척을 좋아하는지. 젠장, 나라도 무슨 수를 써야 하나…….'
속으로 한바탕 불평을 쏟아낸 김종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무는 이치로를 보며 하는 수 없이 되물었다.
"그래서. 뭘 만들려고요."
이치로는 이번에도 단 한 차례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스시."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메뉴는 없다는 듯, 이치로의 두 눈이 형형히 빛났다.
***
"계획이 뭔데."
"뭐?"
눈에 익은 계단에 앉아 흔히 쭈쭈바라 불리는 아이스크림 주둥이를 물고 있던 내게, 양희연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건넸다.
"계획?"
쭈욱.
한껏 빨아들여 쪼그라지는 아이스크림을 보는 녀석의 눈이 매섭다.
"지금 아이스크림이 목구녕으로 넘어 가나? 이제 결승인데 뭐 준비를 해야 할 거 아이가."
자기도 잘만 먹고 있으면서 나한테만 성질이야.
"으음……."
거의 다 먹어치운 아이스크림을 입에서 뗐다.
뭐, 이 녀석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어느덧 우리도 결승까지 왔으니 이전까지보다 더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남은 사람도 하나같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수백이 넘는 가게가 참가한 예선전을 넘어 25팀이 출전한 본선을 거쳐 선발된 최후의 5인.
실력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감히 무시하기 힘든 상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가 무슨 대책을 짜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요리를 만드는 것뿐인데.
"솔직히 말해줄까?"
"?"
"방법이 없어."
"뭐라꼬?"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 말에는 녀석도 항의하기 어려웠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굴 뿐이다.
"그, 그래도 와. 뭐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나. 메뉴를 새로 고안한다거나."
"이런 상태에서 메뉴 생각을 해봤자 제대로 된 거가 나오겠냐."
"끄응……."
이렇게 긴장했을 때 무턱대고 '새로운 메뉴! 참신한 메뉴!' 같은 소릴 하다간 괜히 생각만 꼬인다. 천 리 길도 돌아가라는 말처럼. 지금은 잠시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다.
"그래. 니 말이 맞다. 결승이라고 내가 다 호들갑이네."
"너무 다운될 건 없고."
아이스크림 막대를 지분거리는 녀석의 손에서 막대를 빼내어 내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에 넣으니 아래로 내려가 있던 양희연의 시선이 저절로 내 손을 따라왔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자는 말은 아니야. 적어도 다음에 뭘 만들지 정도는 결정해둬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않겠냐."
"…… 학교에서 그랬지. 뭘 만들지 모르겠을 때에는 자기가 잘 하는 것부터 생각하라꼬."
"그래. 안 잊어먹었네. 그래서, 네가 잘 하는 건 뭔데?"
곰곰이 생각하던 녀석이 내 유도에 따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일식."
"그중에서."
"…… 생선."
"그래. 너 생선 잘 다루지. 생선 요리도 가짓수가 장난 아닌데, 그중에선?"
"음…… 조림?"
"…… 그건 좀 의왼데."
"와?"
"성격에 안 맞잖냐."
그 불같은 성미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조리해야 하는 조림이라니. 특기와 성격이 매칭이 이렇게 안 될 수가.
"뭐라카노? 장난치나?"
"봐봐. 이러는데 조리는 시간은 기다리겠어?"
내 농담에 녀석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가, 이내 옅은 한숨과 함께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리는 게 살짝 무섭긴 하지만.
"아무튼, 조리는 요리가 특기면…… 뭐 도미조림도 있고, 고등어 된장조림 같은 것도 있네."
"그게 대회에 나갈 요리는 아니지 않나?"
"대회용 요리가 뭐 따로 있나. 맛있으면 장땡이지."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식이긴 하지만, 된장찌개가 가정식이라고 호텔에서 안 나오는 건 아니지 않는가.
어떤 요리든 때와 상황에 맞춰 알맞게 조리하면 무궁무진한 쓰임새가 생기는 법이다.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양희연이 이번엔 내게 되물었다.
"그래서 니는?"
"응?"
"너는 만들고 싶은 거 없냐고."
나? 당연히 있다. 만들고 싶은 거.
일식이라고 하면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녀석이 하나 있지 않은가.
"뭔데?"
"듣고 화내면 안 된다."
"…… 뭘 맹글려고 그 소리를 먼저 해쌌노."
그래도 어디 들어나 보자는 듯 몸을 바로 하는 양희연.
그 진지한 태도에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이윽고 심호흡을 몇 차례 반복한 뒤 말을 이었다.
"초밥."
"…… 뭐?"
"초밥 만들고 싶은데."
양희연의 맑고 투명한 두 눈과 내 눈이 서로 일직선을 그리며 마주봤다.
휘둥그렇게 뜨인 녀석의 눈은, 마치 물기 어린 유리구슬처럼 깊은 반짝임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눈을 품은 눈꺼풀과 그 위의 눈썹, 그리고 잔뜩 오므라든 미간이 그 눈빛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지 내게 확실히 전달해주었다.
"니 미쳤나?"
굳이 표정 보고 알려 노력할 필요도 없었나.
"스시를 만들겠다꼬?"
"내가 언제 만들자고 했냐. 만들고 싶다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 같은 말인가?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니 하나만 묻자. 내가 스시 생각을 안 했을 것 같나?"
"아니. 당연히 아니겠지."
"근데 내가 와 그 얘기를 안 꺼냈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굳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정해져 있었다.
무라쿠모.
같은 일식을 주특기로 삼는 고급 일식당이 바로 결승전 상대 중 하나였으니까.
"잘 아네. 그럼 알 거 아이가. 왜 스시 이야길 안 했는지."
"그야 뭐, 당연히 저쪽은 결승에서 초밥을 꺼낼 테니까."
다른 걸 떠나서 일식 요리사. 특히 오마카세 같은 고급 일식당 요리사가 주력으로 꺼내 들 요리라면 굳이 짐작하려 애쓸 것도 없다. 초밥이다.
자연산 금밀복 같은 이 시기에 구하기 어려운 생선을 떡하니 구해온 걸 보면 재료수급도 결코 평범하게 시중에 풀리는 물건을 들고 올 리가 없다.
거기다 복을 조리하던 솜씨를 보면 그 요리사의 실력 또한 결코 우리 아래가 아닐 터. 이거야 뭐, 경력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스시는 맛의 7할을 재료가 담당한데이. 게다가 요리사가 우리보다 못하는 것도 아이고! 그래서 일부러 정면대결은 피한 거 아이가?!"
"확실히, 우리가 쓸 수 있는 재료는 기껏해야 대회에서 나눠주는 재료가 전부지. 그보다 나은 식재료를 우리가 따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에서 한참 모자란 걸 생각하면 아마 승률이 그렇게 높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난, 상대가 나보다 잘날 것 같단 이유로 길을 비켜가고 싶진 않아."
특히 그게 요리에서라면.
"…… 왜?"
초밥이 일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적어도 일식의 꽃을 꼽으라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요리.
그런 요리를 두고 '아이고 졌습니다.'하고 물러서기엔 배알이 꼴린다.
선천적인 반골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아침에 만난 김종권이라는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지금 내 어깨에 얹힌 스즈라는 가게의 이름.
그 가게에서 5년을 일하며 배운 전생의 자존심.
이런 자리에서 그 자존심을 꺾기에는, 이 자리의 그릇이 너무 작다.
"그러니까 이번 결승전에서는 초밥을 쥐고 싶어. 넌, 어떻게 생각하냐?"
"……."
그 질문에, 양희연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