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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45화 (145/403)

145. 제3라운드.-1-

그렇게 찬혁과 희연 일행이 결승 라운드 진출을 반쯤 확정 지으며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나가는 한편, 스즈의 상황은 찬혁 일행만큼 그리 순탄치 못했다.

어느덧 세 시를 지난 시각. 원래도 유입 고객과 이미 가게를 이용 중이던 고객이 겹쳐 업무강도가 정점에 이르는 때이긴 하지만, 거기에 더해 연휴 버프를 받은 가게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바빴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이 이토록 잘 맞기도 힘들 만큼.

"연정아. 3번 테이블 음식 나왔어."

"예! 지금 가요!"

'어휴, 이게 들어온 주문 중에선 마지막이네.'

사장 입장에선 손님이 많은 게 최고지만, 일하는 요리사로선 힘든 일이라며 내심 쓴웃음을 지은 성미설은 홀에 가득 들어찬 인파를 둘러봤다.

빈자리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실내.

해마다 서너 차례는 맛보는 연휴 특수라지만, 이번 연휴는 특히 고객이 많았다. '잘 하면 어제에 이어 연타석 최고 매출 경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렇게 해마다 찾아주는 손님이 늘어나는 것도 가게가 성장한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좋은 인연이 좋은 바람을 몰고 와준 것일까.

속으로 찬혁과 희연의 정겨운 모습을 떠올리며 샐쭉 웃은 성미설이 자신이 사용했던 조리대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 그녀 앞의 다찌석에 앉아 식사를 하던 손님 한 사람이 성미설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오늘따라 자주 웃으시네."

"예? 아하하. 아무렴요. 손님이 이리 많은 데 안 웃고 배깁니까."

"하긴, 오늘 손님이 엄청 많긴 하네요. 고향 다녀오고 처음 밥 먹으러 온 건데 깜짝 놀랐잖아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제 막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남성은 약 1년 전부터 꾸준히 스즈에 출입하는 단골이었다. 얼마 전 첫 자식이 생겼다던가. 아내와 자식을 친정에서 잠시 쉬고 오라고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들렸다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그는 오늘도 맛있게 먹었다는 말과 함께 웃었다.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저만 아는 맛집이란 느낌이 좋았는데 이제 손님까지 많아지면 쉽게 밥 먹으러 오기도 힘들겠어요. 아, 이건 사장님한테 실례인가. 죄송해요. 괜히 초 치는 말이나 했네요."

"괘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가게를 좋아한다는 거 아입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이만 집에 들어가서 유부남의 자유를 만끽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던 남성이, '아.'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 생각났다는 듯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오늘 무슨 대회인가 뭔가 열린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사장님은 안 나가세요?"

"아, 그거요? 우리 딸애랑 가 친구가 같이 나갔어요."

"따님이시면…… 고등학생 아니에요? 와, 그럼 학생 둘이서 나간 거예요? 따님 실력이 대단한가 봐요. 오면서 현수막 걸린 거 보니까 규모도 되게 큰 것 같던데."

"에이, 별거 아입니다."

말로는 너스레를 떨었으나 딸이 칭찬받은 것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 성미설의 콧대가 잔뜩 올라갔다.

"마침 말 나온 김에 어떻게 되고 있나 한 번 볼까요?"

"그래주실랍니까?"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뭐.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핸드폰으로 방송 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요."

'보자보자…….'하며 추임새를 넣던 남성이 핸드폰으로 인터넷 방송을 틀자, 마침 중간 결과를 발표 중이던 대회의 현황판이 화면 가득 올라왔다.

그에 더해 핸드폰의 자그마한 스피커 볼륨을 꽉꽉 채우는 강백동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두 사람은 절로 작은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다섯 개의 조. 열다섯 개의 팀! 이중 결승에 진출하는 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꿀꺽.

성미설은 몰라도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남자마저 절로 긴장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A부터 E까지.

커다란 알파뱃 아래로 슬롯머신의 룰렛이 돌아가는 것 마냥 여러 가게의 이름이 세차게 회전하고, 이윽고 천천히 속도가 느려진다.

─A조. 결승 진출 팀은……! 5팀! 남해왕만두! 축하드립니다!

"다음, 다음입니데이!"

"다, 다음이요?"

─B조에서 결승에 올라갈 팀은 바로! 3팀! 스즈! 젊은 피의 저력이 빛난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즈의 결승 진출이 확정된 그 순간, 잔뜩 긴장한 채 방송을 보고 있던 성미설은 말 그대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어찌나 격한 반응이었는지,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려던 남자조차 깜짝 놀라 말을 삼킬 지경이었다.

이어서 C조의 무라쿠모. D조의 만선반점. E조의 김가네 돼지국밥.

남은 결승 진출 팀이 모두 발표된 뒤에야 간신히 멎은 숨을 내쉬는 그녀의 옆에서 남자가 할 말을 고르던 그때, 갑자기 가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마 깜짝이야."

기존 전화벨 소리가 주방 소음에 묻히는 탓에 설치한 벨소리 증폭기가 제 성능을 과시했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받은 전화는 평범한 예약 전화였다. 거기가 '그' 스즈 맞나요? 라는 요상한 질문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아무튼 별것 아닌 전화였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울리는 전화벨. 이번에도, 평범한 예약 전화였다. 물론 '그 스즈가 맞느냐.'라는 질문까지 똑같았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리는 것까지.

어째서일까. 불현듯 그녀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녀 자신에게 경고하는 전화벨 못지않게 세찬 종소리였다.

***

"……."

이유나가 충동적인 마음에 집을 떠난 지 어언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넘게 지난 현재, 그녀는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연휴가 슬슬 끝나갈 무렵이기 때문인지 고속도로는 연휴 첫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한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 한산한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조금 더 막히는 상황.

경부고속도로의 출구에 거의 근접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녀의 초조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차 내부를 가득 채운 불편한 침묵 속. 소리를 내는 것은 그녀가 모는 차의 구동음과 종종 바깥에서 들려오는 경적. 거치대에서 운전석에 앉은 그녀를 비추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도네이션 소리. 마지막으로…….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아?!"

블루투스로 연결된 차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비프음 뿐이었다.

상대방이 통화 중이니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알림음 뒤로 이어지는 삐─소리.

답답한 나머지 손바닥으로 핸들을 두드리는 그녀를 비추는 핸드폰 화면 속 채팅창이 시청자의 ㅋ으로 가득 차올랐다.

"아니! 이게 말이 돼요? 벌써 일곱 번째 전화야! 근데 왜 계속 통화 중이냐고?!"

그 조롱 섞인 반응에는 이유나도 분명 억울한 점이 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 통화 시도.

첫 번째는 타이밍이 안 좋았다 생각하고 끊은 뒤 조금 기다렸다 다시 걸었고.

두 번째는 아직 통화 중인가 싶어 조금 더 기다렸다 다시 걸었으며.

세 번째엔 이게 우연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네 번째부터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렇게 느끼고 이번 일곱 번째 통화를 시도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어언 20분.

이쯤 되니 이유나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거 큰일 났다.'

이대로 가다간, 부산까지 세 시간이 넘게 달려 내려가도 바람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 맹렬한 위기감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다 못해 미간 정중앙을 꿰뚫었다.

─아ㅋㅋㅋ그러니까 출발하기 전에 전화부터 먼저 했어야지

─벌써 예약 꽉 찼을 듯ㅋㅋㅋㅋ 내가 부산에 있음 바로 예약 박았지ㅋㅋㅋㅋ

─우리 말 좀 들어라! 부산 사는 동기한테 물어보니까 다른 식당도 벌써 꽉꽉 찼다던데

─복귀각 떴나?

"안 떴어! 다 조용히 해!"

설상가상으로, 경북고속도로를 나와 중앙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길이 혼잡한 상황.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검지로 핸들을 톡톡톡톡 질리지도 않고 두들겨댄 그녀의 히스테릭이 멈춘 것은 장장 열다섯 번째 통화가 간신히 연결된 뒤였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식당 스즈입니다.

"바, 받았드아……!"

─아, 예? 예. 받았습니다.

십수 번의 시도를 통해 이어진 통화에 이유나는 통렬한 외침을 터트렸다. 정작 받는 측인 스즈의 알바생 박연정은 당황스러울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빵 터트린 건 다름 아닌 시청자였다.

─와; 밤에 길 걷다 들으면 지렸겠다.

─거의 호랑이 그라울링;

─유나 헤비메탈 할 생각 없음? 세계구급 재능인데;

시청자의 조롱에 이유나의 이마 위로 굵은 핏대가 솟았으나, 예약만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예약을 좀 하려 하는데요."

─예약이요?

"예. 오늘 예약하고 싶어서요."

어찌나 간절했는지 울음기가 맺혀 떨리는 목소리에 시청자가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건 이유나에게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예약이야말로 그녀의 지상과제였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예약이 어려우실 것 같으세요.

"……예?"

그러나, 그 간절한 기도는 슬프게도 하늘에 닿지 못했다.

─바로 직전에 전화 주신 손님까지 해서 아쉽게도 오늘 예약은 자리가 다 차서요.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예약이…… 가득 찼다고……?'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던 정신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바늘에 쿡 찔려 그야말로 산산조각 터져 나갔다.

이럴 순 없었다.

대체 어떻게 생긴 기회란 말인가. 근데 그 기회를 고작 타이밍이 늦었단 이유로 뺏겨야 한다니.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실제로 그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직접 맞이하게 된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손님?

"아, 아…… 예……."

처음에는 힘이 가득했던 이유나의 목소리가 절로 가라앉았다.

─저, 예약 마감 후 첫 번째 손님이신만큼 대기열에 올려드릴 수 있는데요. 예약이 취소되면 먼저 연락드릴 테니 성함과 예약하시고픈 시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것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걸어볼 수 있는 희망이었으나, 그게 덧없는 덫임을 이유나는 모르지 않았다.

'누가 취소하겠어.'

방금 채팅창을 보고 찬혁의 팀이 결승에 진출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그녀다. 설령 그들이 우승을 못 하더라도, 우승 라운드에 진출한 가게에 힘들게 예약을 잡아놓고 취소하려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자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야 하나…….'

아직 중앙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지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면 톨게이트 값이나마 아낄 수 있겠지.

그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실의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마지막 동앗줄이 내려온 것은.

─저기, 저희 식당은 예약석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서 직접 오시면 공석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예?"

번쩍.

실의에 빠져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안광을 되찾았다.

"저, 그 말씀은 혹시 온 순서대로 가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예. 맞아요.

생겼다. 차를 돌리지 못할 이유.

핸들에 힘없이 걸쳐져 있던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갑니다!"

─예, 예? 손님?

이유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왜냐? 운전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누구보다 빨리,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엔진이 모조리 불타 사라질 기세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엔티티 님! 지금 한 놈 더 올라갑니다!

─제발 내일 블박 채널에서 안 보게 살살 가라.

─표정 봐. 맛 갔어. 못 말려.

─누나, 내일 생방은 한명철TV에서 하는 거 맞지?

운전을 조심하란 말. 여유를 가지라는 말. 차분히 가라는 말.

그 어떤 말도 지금 이유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찬혁이 만들 요리를 먹겠다는 굳은 결심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끼요오오오옷!"

이때만큼 자신이 부산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화가 난 적이 없다고, 그녀는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머리로 되뇌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정신이 그녀를 부산의 드라이버로 점차 탈바꿈시키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멈추지 않는 연휴의 하루.

요리대회의 결승이, 그리고 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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