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이기는 요리.-5-
"으흠~. 야, 이거 맛있다."
다른 심사위원보다 앞서 찬혁 팀이 만든 요리를 시식한 박종원이 높은 콧소리를 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만 종종 내는 특유의 버릇.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강백동이 짐짓 놀란 눈초리를 박종원에게 향한다.
"아니, 선생님. 그렇게 맛있습니까?"
"말해 뭐해요. 강백동 씨 것도 있잖아요. 얼른 드셔보세요."
"아, 그렇네요."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강백동의 어수룩한 모습에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럼 어디……."
짧은 준비를 마친 그가 드디어 제 역할을 마저 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두 번은 나누어 먹었어야 할 크기의 돈카츠를 단번에 해치우는 강백동의 입.
입은 굳게 다물어졌으나 끊임없이 상하로 움직이는 광대와 볼 근육이 그의 입속에서 어떤 저작운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케 하고, 그에 맞춰 마찬가지로 쉼 없이 변화하는 그의 표정이 점차 오묘해진다.
"음, 음? 오. 와."
꿀꺽.
마침내 입에 든 것을 식도로 넘긴 강백동.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허탈한 것 같기도 한 그의 오묘한 표정이 그의 감상을 그대로 얼굴로 대변했다.
"와, 이거 너무너무 맛있네요!"
"그쵸? 신기하지 않아요?"
박종원의 말대로, 강백동은 자신이 직접 느끼고도 확실하게 실감이 나지 않는 이 요리의 식감에 제법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뭐랄까……. 처음은 바삭한데, 다음은 쫄깃하고, 그 다음은 엄청나게 부드러워서……. 꼭 요리 여러 개를 입에 넣고 씹는 느낌이에요."
"그런데도 맛은 밥이랑 잘 맞는 반찬을 먹는 것처럼 전혀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리고요."
"예, 딱 그 말씀대롭니다."
강백동으로서는 그저 신기하다는 말. 그리고 맛있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먹는 것에는 프로지만 음식에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백동과 그를 비롯한 관중의 시선은 저절로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이에게로 향했다. 박종원에게로 말이다.
"흐음……."
하지만, 어째서인지 박종원은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스를 찍어 먹고. 빵에 소스를 발라 샌드위치처럼 만들어서도 먹어보고.
얼마 안 되는 분량의 음식을 알뜰살뜰하게 주어진 모든 방법을 이용해 식사에 가까운 시식을 마친 뒤에야, 박종원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일단,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로요. 앞서 심사한 복어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어요. 복어가 입이라는 방에서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맛을 찾기 위해 고생하는 느낌이라면 여러분의 요리는……강렬하고 복잡하게 혀를 꽉 채우는 맛? 방문을 열자마자 진한 맛이 몸을 강타하는 느낌이었어요."
박종원의 그 말은 그야말로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앞서 먹은 복어는 담백함과 은은한 단맛.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감칠맛을 천천히 즐기는 요리였다면 찬혁의 요리는 단순하게 혀에 진한 맛을 사방팔방에서 때려 박는, 현대인을 위한 요리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찬혁이 다른 팀이 꺼리는 두 번째 차례를 망설임 없이 채간 이유였다.
예를 들면 통렬하게 매운 음식을 먹은 뒤의 단 음료처럼.
간이 안 된 흰죽을 먹은 뒤의 짠지처럼.
전혀 다른 장르가 주는 맛. 서로 주장하는 바가 극단적으로 다르기에, 오히려 서로와 상충하며 그 맛을 극대화할 수 있으리란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걸 상정한 거라면…….'
정말, 훗날이 두려운 아이다. 박종원은 겉으로는 너스레를 떨면서도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조리법은…… 솔직히 자세히는 못 봤지만 대충 예상은 되네요. 저민 돼지고기와 쇠고기 사이에 다진 해산물을 넣고 쌓아서 튀긴 거죠?"
"예."
"아주 참신한 발상이었어요. 그렇게 복잡한 요리법을 썼으면서 익힌 정도도 딱 알맞고, 간도 잘 어우러졌고요. 그럼 이제 점수를 드릴 시간인데……."
주변을 힐끗 둘러본 박종원이 말을 이었다.
"저는 10점을 드리고 싶습니다. 백동 씨 같은 경우는 뭐, 이미 10점을 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은데, 제 말 맞죠?"
"아, 예. 아하하. 역시 선생님한테는 뭘 숨길 수가 없네요."
"숨기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접시를 그렇게 깨끗하게 비웠구만."
그 발언을 들은 촬영진이 잽싸게 카메라를 돌리자, 커다란 전광판 위로 튀김 부스러기만 살짝 남은 강백동의 접시가 드러난다.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강백동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박종원 또한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알아요. 맛있었죠?"
"예. 10점이 안 아까운 맛이었습니다."
"그럼, 이걸로 20점인데……. 진영배 회장님?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백동을 지나 진영배에게로 돌아가는 박종원의 화살.
그 화살에 똑바로 겨눠진 진영배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튼다.
이건 일종의 배려였다. 방송 경험이 전무한 탓에 발언 사이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겉돌던 그에게 심사분량을 분배해주기 위한 박종원의 배려.
그것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내 진중한 표정을 지은 진영배는 지체 없이 자신에게 돌아온 바턴을 잡아챘다.
"하나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 요리를 만든 건가요?"
바턴을 잡아챈 뒤의 스타트가 너무 빨라, 카메라마저 그 모습을 놓쳤다는 게 문제였지만.
***
"아, 죄송합니다. 궁금한 걸 묻는다는 게 너무 생각 없이 말이 나갔네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실 수 있죠."
살짝 수위가 과격한 발언에 대회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기도 잠시,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진영배 회장의 필사적인 해명 끝에 톱니바퀴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그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러했다.
'전문점에서도 이렇게 조리하려면 조금 귀찮은 게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요리를 만들 결심을 했는가?'
"음……."
그 대답을 위해서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돈카츠라는 메뉴를 처음 떠올렸을 때 우리는 '이걸 어떻게 바꿔야 잘 바꿨다고 소문이 날까?'하는 고민을 한참 동안 했었다.
기실 돈카츠라는 요리는 그 자체가 굉장히 '낡은 요리'에 속하는 요리다.
안심, 등심, 갈비, 목살부터 시작해서 돈카츠와 꼬치 요리의 합작이라 할 수 있는 쿠시카츠 같은 음식까지 친다면 삼겹살도 포함된다.
부위별로 나누는 것은 물론이요 속에는 치즈에 고구마 무스 등을 채워 넣는 요리도 있고, 외부 환경으로까지 눈을 돌리면 카레를 소스 대신 쓰는 조리법부터 덮밥이나 샌드위치까지.
그 전부를 따지면 대체 돈카츠란 요리란 얼마나 많은 분야에 발을 뻗고 있는 것인지 셀 수조차 없다. 이미 그 자체로 장르가 되어 버린 요리다.
요컨대 말하자면 한 적 없는 시도가 적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의 손을 탄 요리라는 것이다. 뭐, 전통이라는 이름이 말머리에 붙은 요리 중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아무튼, 그렇게 우리만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즈만의 돈카츠'라는 컨셉을 위해 이래저래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
돈카츠는 위대한 요리다. 다만, 고작 하나의 요리일 뿐이다.
그 메뉴 하나만을 고집하는 전문점도 아닌 곳에서 고작 하나의 요리에 여력을 쏟아 뒤쫓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메뉴를 가게에 맞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스즈에서 돈카츠라는 메뉴가 차지하는 입지는 미묘하다는 걸 알고 갈 필요가 있다.
하루에 점심, 저녁 총합 100명의 손님을 받았다 쳤을 때, 그중 돈카츠를 주문하는 고객은 한 손에 꼽을 만큼도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다.
당연한 일이다. 스즈의 주 고객층이 원하는 메뉴는 돈카츠가 아니다. 큰맘 먹고 값비싼 고급 일식당까지 와서 돈카츠를 주문하는 고객은 정말 극소수니까.
해봤자 가족 동반 고객이 어린아이에게 먹일 메뉴로 시키는 정도인데, 그나마도 선택지가 갈려서 평균적으로 한 달에 팔리는 양은 많아봤자 오십 접시가 안 된다. 이쯤 되면 이 메뉴를 위한 재고를 갖춰 놓는 것 자체가 조금 무리수로 느껴질 정도……지만.
우습게도, 그런 어린아이에게만 소량으로 팔리는 제품이기에 가능한 조리법이 있다.
아마 다른 메뉴를 이런 식으로 만들라 하면 힘든 조리법이.
준비할 재료는 먼저 돼지고기와 쇠고기.
되도록 기름기가 없이 살코기만 있는 부위를 고기망치로 두드려 얇게 펼친다.
이것을 여러 장 준비하고, 그 다음은 새우와 게살, 흰살 생선 등의 부재료.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일하다 보며 안 사실이지만, 스즈 같은 고급 식당은 100의 재료가 들어가면 그중 5~10의 재료는 못 쓰는 재료라고 봐야 한다.
'품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모양이 못나거나, 크기가 손님상에 나가기에는 좀 작거나, 아니면 손질 과정 중 남는 자투리 고기 등이 제법 많이 나오는 것이다.
새우나 게, 생선은 그 대표주자다.
이런 자투리 재료를 깔끔하게 손질하여 살을 다져 반죽하면 제법 괜찮은 씨푸드 민스가 탄생한다.
이것을 얇게 펼친 고기 사이에 잼처럼 발라서 돼지와 소를 번갈아 포개 올리고, 마지막으로 보다 넓게 펼친 돼지 등심으로 감싸 튀김옷을 입혀 튀겨준다.
이렇게 하면 모양이 쉬이 망가지지 않고 튀기기 시작한 모습 그대로 예쁜 모양의 튀김이 나온다.
"가게 입장에서도 남는 재료를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고, 어린 고객에게도 다양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 훌륭한 발상이네요. 식자재의 낭비는 협회와 시에서도 항상 피하고픈 일입니다. 스즈에서는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 작품을 만든 거고요."
꿈보다 해몽이긴 했지만, 적어도 반은 맞는 소리니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일부러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든 것 또한 해당 메뉴의 주 고객층인 어린아이를 위한 것인가요?"
"예. 어린이는 성인보다 미각이 예민해서 성인은 쉽게 느끼지 못하는 비린맛에도 강하게 거부감을 표하니까요. 새우살, 생선살 등을 반죽할 때 비린맛을 가리는 허브 등을 같이 넣어 반죽하고, 거기에 더해 일부러 보다 저항감을 적게 느끼는 육고기의 비중을 크게 하여 비린맛을 최소화하고 어우러지는 맛을 연출했습니다. 소스는 마요네즈를 써서 와사비나 할라피뇨 매운맛을 최대한 죽이고 향미만을 살렸고요."
"호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짓는 진영배에게, 나는 농담조로 사족을 덧붙였다.
"게다가."
"?"
"도둑질도 해본 놈이 한다잖아요.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해산물 맛을 알아둬야 커서도 저희 가게에 오지 않겠습니까. 저희도 나름 일식집이니까, 진짜 주력은 해산물이거든요."
"……하하하! 어린 손님 혀를 꽉 잡아둬서 미래의 단골을 만들겠다는 말인가요? 참 미래지향적인 발상이네요."
"저희도 어리거든요. 얘가 커서 가게 받을 때까지 따라올 단골을 만드려면 지금부터 미리미리 밑밥을 뿌려놔야죠."
그 말이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은 진영배 회장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그래요. 우리처럼 늙은 사람은 지금 밖에 못 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처럼 앞날을 바라보는 젊은이를 보면 절로 힘이 솟죠. 우리 대신 앞을 봐줄 사람이 있으니 지금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어요. 이제야 여러분처럼 어린 아이를 가게 대표로 세운 성미설 사장님의 혜안을 알 것 같습니다."
성 셰프의 혜안?
……글쎄, 셰프에게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 말에는 양희연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진영배 회장의 얼굴에서는 도통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저는 해당 팀이 만든 요리가 얼마나 가게가 내놓은 기치에 부합하는지, 메뉴와 가게가 서로 괴리되지는 않는지를 중점으로 평가합니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진영배 회장이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10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종원 10점.
강백동 10점.
진영배 10점.
총합 30점.
'……이게 되네.'
이것으로, 1, 2라운드 연속 총합 30점 만점.
3라운드 결승 진출이 거의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어때. 이기는 요리. 효과 굉장하지?"
내 가벼운 농담에 양희연은 대답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