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43화 (143/403)

143. 이기는 요리.-4-

"조리 끝났습니다."

운이 좋다.

클락션을 울리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 아아. B조 3팀의 조리가 끝난 것 같네요. 지금 바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어가 선사한 맛의 여운에 푹 취해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린 강백동이 누구보다 먼저 우리의 신호에 반응하고 외쳤다. 아마 심사용으로 주어진 양만 갖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사람이다 보니 그만큼 회복도 빨랐던 걸까. 억측이지만.

다른 두 심사위원은 그들을 채근하는 강백동의 말에 따라 급히 고개를 끄덕이곤 살짝 속도를 붙인 잰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양희연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마, 괘안나?"

"뭐가?"

"순서 말이다. 어차피 돈카츠 아이가. 좀 더 놔뒀다 다다음 순서에 해도 괘안았을 긴데."

소곤거리며 불안함을 표출하는 녀석의 생각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잘 한 사람 바로 다음 순서는 불편하다'라는 심리. 보통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법하다.

'바로 그거 때문이지. 내가 운이 좋다고 한 건.'

어찌 보면 주눅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홈런 친 타자 다음으로 타석에 선 것처럼, 혹은 수백 야드짜리 페어웨이 티샷을 친 선수의 다음 차례가 나일 때 그런 것처럼.

다른 이가 어떻게 보든 압박감이라는 건 한도 끝도 없이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을 좀먹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의 생각.

홈런을 맞은 투수의 심리적 부담감을 이용할 기회도, 장타가 꺾이는 모습을 보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이용할 기회도.

진짜 제대로 된 한 방을 때릴 기회는 바로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다.

'여기 모인 선수는 전부 프로야.'

맞다. 프로다. 다만, 장사의 프로다.

대회라는 장르에 한해서는 대부분 아마추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제법 당당하게 프로를 자처할 수 있는 경력자다.

그런 내가 판단했다. 지금이 기회라고.

"믿어. 지금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기회야."

거의 단정 짓다시피 말하는 나를 보며 양희연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한숨을 얕게 내쉬며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니 하잔 대로 해서 조진 게 어 있나. 어디 맘껏 해 봐라. 맞춰줄게."

그 이상 아무 군소리도 붙이지 않는 양희연을 잠시 빤히 바라보니, 녀석은 가늘게 뜬 눈초리로 나를 힐끗거리곤 오히려 이쪽을 닦달한다.

"뭐하노. 빨리 안 하나."

그 당당함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주 헛으로 산 건 아니다 싶은 느낌에 그나마 헛웃음 대신 실소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래. 빨리 해야지. 자기들이 뽑기를 미루던 제비에 박 씨가 매달려 있었단 사실을 알려주려면 말이야.

'그 제비가 그 제비는 아니지만.'

남몰래 그런 농이나 꺼내자니, 문득 언젠가 들었던 개그센스가 낡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영 납득 못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1라운드 때처럼 촬영진을 대동한 심사위원단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복어로 느낀 만족감이 가시지 않은 듯 얼굴에서부터 은은한 미소가 배어 있는 세 사람.

'다음엔 또 얼마나 뛰어난 요리가 나올까?'라는 생각보다는 '방금 그거 맛있었지…….'라는 감상이 더욱 강하게 남은 그 표정에 보통 사람이라면 쉬이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으나, 다행히 그건 지금의 우리에겐 크게 상관이 없는 소리였다.

그나마 여기까지 오며 대회를 진행할 정신은 차린 그들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어 질문을 건네 왔다.

"자, B조 3팀. 준비한 요리를 보여주시죠."

이 대목, 심약한 사람이라면 '너희 때문에 우리 여운이 깨졌으니 책임져!'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만약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내가 할 대답은 오로지 이 한마디뿐이다.

"예. 알겠습니다."

심사위원단의 행동이 빠른 만큼, 우리도 준비한 음식의 플레이팅을 서둘러 마무리한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양배추 샐러드와 양변을 바삭하게 구워 삼각형으로 자른 식빵 두 장, 식감 있게 다진 피클, 찍어 먹을 세 종류 소스, 레몬 한 조각.

마지막으로 그 중심을 장식하는 황금빛 돈카츠.

접시 위에 최후의 화룡점정을 찍으니, 이로서 우리의 메뉴가 고객의 상에 나갈 준비를 끝낸다.

"특제 돈카츠. 완성입니다."

시간이 됐다. 그들에게서 만족감을 앗아갈 시간이.

***

찬혁의 손이 음식 접시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백동은 특유의 호들갑을 떨며 음식의 모양새를 칭찬하고 나섰다.

"이야. 이번 것도 참 맛있어 보이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그 말대로, 거친 빵가루 옷을 빈틈 하나 없이 차려 입은 선명한 황금빛 돈카츠와 알록달록 색의 조화를 맞춘 부재료의 향연은 분명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빼어났다.

심사를 위해 양을 줄이느라 적어진 볼륨감조차 그 자체로 아기자기한 멋을 뿜어내어, 꼭 디오라마나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우선 외관상으로는 도저히 빈틈을 찾을 수 없는 완성도 높은 일품.

그러나 그런 완성도가 무색하게도 박종원의 눈가에는 잠시 실망의 빛이 스쳤다.

'……음?'

아무리 짧다고는 하나 손님의 반응을 살피는 데에 세월을 쏟아온 찬혁의 눈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허점이 없는 일품일진대,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찬혁이 의아해하던 찰나. 잠시 뒤로 빠져 촬영팀이 찬찬히 음식의 모습을 렌즈에 담을 여유를 주었던 강백동이 박종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와, 근데 선생님도 참 대단하세요. 처음에 안심을 손질하는 모습만 보고 바로 선수가 무슨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맞추셨네요?"

"예? 아, 아하하. 그야 저도 경력이 좀 있지 않겠습니까. 운도 좀 따라줬고요."

"선생님도 참 겸손은!"

그 대화를 듣고서야 찬혁은 의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예상한 게 그대로 나와서 실망했다 그거구만.'

찬혁의 생각이 정답이었다. 박종원은 현재 처음 보여준 솜씨에 비해 생각 외로 뻔한 선택지를 들고 온 찬혁 팀의 메뉴 결정에 작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돈카츠라. 어지간히 잘 만들어도 가게의 특색을 내세우기 힘든 메뉴인데. 그걸 골랐단 말이지.'

1라운드 때는 우동. 2라운드 때는 돈카츠.

일식의 근본이라 부를만한 선택이지만, 그만큼 메뉴 자체만 보아선 참신함을 느끼기가 어려운 구조였기에 내심 2라운드에 찬혁 팀이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던가.

찬혁 팀은 박종원이 처음 예상했던 그대로 돈카츠라는 메뉴를 들고 나왔다. 그나마 1라운드 때에는 첫 메뉴이자 냉우동이라는 반길만한 요소도 있었지만, 지금 박종원이 보고 있는 돈카츠 세트는 그야말로 고급 돈카츠의 정석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정석이라 함은,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

이 대회에 출전한 이들 중 가장 젊은 피를 가진 열정 있는 아이들에게서 혁신의 두 글자를 내심 기대하고 있던 박종원에게는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도, 솜씨는 분명 대단한 아이들이다. 이번에도 또 놀라운 요리겠지.'

다만, 정석적인 요리를 주제로 수십 년의 시간을 쌓은 다른 참가자 사이에서 살아남아 다음 라운드로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겠지만.

"자, 이제 시식해보도록 합시다."

적당히 사색을 끝마친 박종원을 중심으로 선 심사위원단이 드디어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들었다. 눈으로 심사하는 시간은 끝나고, 이제는 혀로 그 맛을 평가할 시간이 왔다.

그리고 이 순간, 찬혁의 안광이 번뜩인다.

'그래. 드셔보시죠. 그럼 알 겁니다.'

외관은 그저 정석 그 자체인 돈카츠 속에, 대체 어떠한 혁신이 담겨 있는지.

심사위원단의 두 손에 들린 식기가, 비로소 각자의 앞에 놓인 돈카츠 위로 올라갔다.

푸욱.

이때, 과장을 좀 보태어 심사위원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식기를 저도 모르게 놓칠 뻔했다.

"어, 어라?"

"음?"

"어어?"

핸드폰을 보며 계단을 내려오다 계단의 개수를 하나 착각한 것처럼.

땅을 짚고 헤엄치다 느닷없이 수심이 깊은 곳을 맞닥뜨린 것처럼.

그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촉감에, 그들의 몸이 화들짝 놀라고 만 것이다.

"뭐지?"

그 촉감의 정체는 바로 포크. 정확히는 방금 막 포크로 찌른 돈카츠에서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돈카츠의 크기는 지름이 6cm였으며, 두께가 2cm였다.

누가 보아도 돼지 안심을 통으로 썰어서 그대로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외형.

그런데 이 감촉은 아니었다. '이건 2cm 두께의 고기를 찌르는 촉감이 아니다'라고 손이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삭한 튀김옷의 벽을 뚫는 특유의 느낌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마치 단단한 두부를 포크로 찌른 것 같은 느낌.

그것을 느낀 박종원이 놀란 눈짓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찬혁이 입을 열었다.

"말씀을 미처 못 드렸는데, 이 돈카츠에는 별명이 있거든요."

별명?

의아한 표정을 지은 심사위원 세 사람의 고개가 자신에게로 향하자, 희희낙락한 악동의 미소를 지은 찬혁이 말을 잇는다.

"밀푀유 돈카츠. 그게 이 돈카츠의 별명입니다."

여기서, 밀푀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박종원이 유일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 말에 반응한 것 또한 당연하게도 그였다.

"밀푀유 돈카츠....,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층층이 겹쳐 만든 돈카츠죠. 안심을 통으로 튀긴 히레카츠나 등심으로 만든 로스카츠보다 훨씬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자신이 아는 밀푀유 돈카츠와는 뭔가 다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박종원의 두 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포크를 든 손은 돈카츠를 찍어 고정하고, 나이프를 든 손은 중앙을 갈라 한 덩어리 돈카츠를 정확히 반으로 나눈다.

그리하여 드러난 돈카츠의 단면, 그 모습을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박종원은 이내 한 방 먹었다는 듯 커다란 웃음을 토해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과연, 이거구만!"

그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백동과 진영배도 서둘러 그 뒤를 따라 찬혁이 만든 돈카츠를 똑같은 모양새로 잘랐다.

"으, 으잉……?"

"뭐야 이거, 고기 색이?"

관중과 참가자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 담기고, 시청자의 채팅창에는 의문부호가 수도 없이 떠오를 때. 심사위원단 중 그나마 끝까지 방송을 잊지 않고 있던 강백동이 본인이 자른 돈카츠의 단면을 카메라 가까이 들이댄 뒤에야 그들은 그 의문을 풀 수가 있었다.

"자네, 이건 돈카츠가 아니지 않나!"

렌즈에 담긴 돈카츠의 단면.

그곳엔 모두가 예상하던 겹겹이 쌓은 채 익은 하얀 돼지고기 따위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얀 돼지고기 '또한' 있었다.

단면에 드러난 색은 다양했다. 비단처럼 얇은 고기 사이로 온갖 색이 혼재되어, 마치 상품에 찍힌 바코드마냥 어지럽도록 꽉꽉 들어찬 모습.

대체 이 해괴한 모양새는 무엇이냐는 듯 눈알을 굴리는 그들 앞에서, 찬혁과 양희연은 어른 놀리기에 성공한 아이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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