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42화 (142/403)

142. 이기는 요리-3-

"…… 뭐?"

우리 트럭의 조리대를 촬영하던 카메라맨들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윽고 들려온 '복어'라는 두 음절 단어에 나를 비롯한 양희연과 여타 참가자, 뒤이어 관중까지.

그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후, 후꾸フグ라꼬?"

어찌나 놀랐으면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일본어로 복어의 이름을 되뇌이며 경악하는 양희연.

그런 녀석을 따라 한창 화제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린 나 또한 적게나마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

세상에, 진짜 복어네.

'아니, 이런 데 저런 걸 들고 와?'

이건 결코 대회 수준을 비하하려는 속셈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상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대회에 서킷용 바이크를 끌고 온 격이라고 할까.

'나라고 복어를 아주 안 만져본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격증을 딸 때 뿐이었지, 그 이후로는 건든 적도 없다. 애당초 복어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동양 쪽이라면 모를까 서양에서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라고 해도 복어라는 생선이 얼마나 건들기 까다로운지는 안다. 다른 이유를 다 제치더라도 일단 이렇게 주방의 설비에 애로사항이 꼽히는 자리에서 함부로 건들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저걸 가지고 나왔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식재료든, 아님 요리사 본인의 실력이든.

뭐, 사실 아무래도 좋다. 같은 조였다면 모를까 다른 조에 속한 팀이 무슨 재료를 쓰든 당장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복어처럼 일종의 이벤트성 폭탄을 2라운드에서 터트렸다는 건 이어질 결승에서는 저보다 더한 것이 튀어나온다는 예고일 수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정보라도 되려나.

'복어까지 꺼냈으니 실수만 안 하면 결승 진출은 따놓은당상이겠네.'

이만큼 알았으면 이제 더이상 저쪽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조가 다른 이상 결승에서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서로 대면할 일은 없을 거고, 그런 만큼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결승 진출이다.

"야, 양희연. 그만 보고 할 거 마저 끝내자."

"마, 안 봐도 되나? 아무리 그래도 복인데."

"어차피 성공하든 실패하든 둘 중 하나일 거 아냐.…… 실패하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긴 하겠는데."

"아따, 무서운 소리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잘도 한다."

"그럼 내가 저기 가서 도와주기라도 하랴. 우리 처신이나 잘하자 그거지. 그리고 알잖아, 우리 메뉴는 조리과정 안 보이는 게 더 나은 거."

"…… 그래, 후딱 해서 치워뿔자."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양희연이 다시 제가 하던 일에 시선을 되돌리는 그때, 마지막으로 눈을 돌려 바라본 전광판 속 도마 위에서는 살짝 부푼 복어 위로 칼을 가까이 가져가는 무라쿠모 소속 요리사의 모습이 보였다.

"흠……."

굳어 있지만, 망설임은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눈빛에선 실패란 두 글자를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

"……."

무라쿠모의 대표 선수, 야마나카 이치로山中一朗는 작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향에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짓기 위해 마침 목돈이 필요하던 차에, 선배의 안내로 바다 건너 외국까지 와서 용병 신세가 된 그.

우승하면 이 두 배를 추가로 주겠다며 제법 두둑한 선수금을 떡하니 건네주던 김종권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이 자리에 섰다.

처음에는 돈의 액수와 요리사의 일에는 되도록 참견하지 않겠다던 김종권의 말을 믿고 좋아한 그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입김을 불어넣는 김종권의 태도는 이치로의 마음을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

'젠장, 이 복어도 원래는 결승용이었는데 왜 이걸 2라운드에 꺼내 쓰라는 거야.'

뭐가 주목도고 뭐가 비장의 카드란 말인가. 어차피 요리대회란 맛있고 보기 좋으면 결국 이기는 것인데, 요리사의 일을 사업가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한바탕 속으로 불평을 쏟아낸 이치로는, 이내 긴 날숨과 함께 계속해서 엇나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남의 돈 가져가는 게 언제는 쉬운 일이었나.'

일본에서 가장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한 도쿄의 복어조리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치로라고 한들, 복어는 대충대충 처리할 수 있는 생선이 결코 아니다. 잡생각은 적당히 끊어내고,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이치로가 굵직한 데바를 번뜩이며 칼을 휘두르는 한편, 1라운드를 바라볼 때와 같이 사직구장 스카이 박스에 앉아 있던 김종권은 흡족해진 시선으로 마운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돈값은 하네."

그가 바라보는 전광판에는 현재 눈에 핏발이 설 만큼 집중한 이치로가 복어를 해체하는 장면이 비추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 애쓸 필요는 없지만…….'

복어의 위험성을 아는 이가 들었다면 기함을 할 소리였으나, 그가 이번 대회에 앞서 특별히 준비한 저 복어는 다름 아닌 자연산 금밀복.

원양황복이라고도 불리는 국내에서 식용 가능한 복어 21종 가운데에서도 특히나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의 특징은 바로 독성.

복어에 독이 있는 것이 무슨 대단한 특징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신기하게도 플랑크톤이나 해초류 등의 먹이를 먹으며 몸속에 독을 축적하는 복어 중에서도 금밀어는 몸에 독을 거의 전혀 축적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비교적 안전한 종류에 속한다.

물론 잡는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적어도 동북아시아와 한국 근처에서 잡히는 금밀어는 남중국해 등지에서 잡히는 복어와는 달리 독이 없다.

김종권이 땀 흘리며 해체 작업에 몰두하는 이치로를 보고 액션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은 것 또한 그에 기인한 것이었다.

'저런 장인정신 있는 모습은 이미지 메이킹에는 딱 좋으니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김종권이 홀로 미소 짓는 사이, 어느새 이치로의 요리도 슬슬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복어 요리란 해체와 제독 과정만 철저하게 거친다면 그 이후에는 먹는 방법이 대단히 한정된 요리였으니까.

복어 특유의 기름기 없는 담백함과 은은한 단맛, 쫄깃한 식감을 즐기는 데 과한 조미, 조리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그렇기에 조리과정 또한 상당히 단순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즉 조리시간의 단축을 의미한다. 그 결과.

─빠아아아앙!

"아! 울렸습니다! D조 1팀! 복어를 꺼내 들었던 팀이 가장 먼저 클락션을 울렸어요!"

요리 완성을 알리는 클락션.

침묵 아닌 침묵을 깨트리는 첫 계명성의 주인공은 바로 김종권의 무라쿠모였다.

1라운드를 떠오르게 하는 우렁찬 함성이 구장을 가득 채우고, 심사위원단이 정당한 심사를 위해 무라쿠모의 푸드트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가시죠."

"…… 그, 그럴까요?"

"흐, 흐흠!"

다만, 긴장감 가득한 얼굴에 땀방울을 가득 매달고.

***

"복어삼중주. 라는, 메뉴입니다."

자신의 푸드트럭 앞으로 찾아온 심사위원단을 맞이한 이치로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별다른 설명도, 사족도 달지 않은, 그저 메뉴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인 조촐한 환영.

그 환영식의 주인공이 된 세 명의 심사위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들이 긴장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과묵한 요리사와 긴장한 심사위원.

그 사이에 깔린 침묵을 직업병적인 이유로 버티지 못한 강백동이 다른 이들보다 앞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와, 와하하! 대단하네요! 요리는 잘 모르지만 복어를 다루시는 모습부터 굉장히 남다르시다는 게 한눈에 보이던데요?"

"감사합니다."

"문외한인 제가 봐도 놀라운데, 전문가인 박종원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떠셨나요?"

경력 수십 년 차에 이른 MC다운 노련한 솜씨로 바톤을 건네자, 마음을 추스른 박종원이 그 바톤을 받아들고 말을 이었다.

"아이고, 대단하죠. 저도 복어는 손질하는 방법을 알고만 있지 그걸 팔 수준은 도저히 안 되거든요. 다른 자격하고는 달리 복어는 완전히 전문가의 분야에요. 선수 분…… 그러니까, 혹시 성함이……?"

"성함? 아, 이름. 예. 이치로입니다."

"예, 이치로 선수. 정말 대단한 솜씨였습니다. 가죽 벗기기부터 해체가 끝나기까지 다 합쳐서 5분도 채 안 걸렸어요."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 인사하는 이치로의 행동에 박종원이 근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복어. 복. 부푼 모습만 봐도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굉장히 특이한 생김새를 한 생선이고. 또 굉장히 위험한 식재료입니다. 강백동 씨,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이유요? 독 때문 아닌가요?"

"맞죠. 독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맹독이에요. 이 독의 이름이 바로 테트로도톡신. 청산가리보다 최소 10배에서 최대 1500배는 강한 독성을 가진 독입니다."

"처, 천오백 배요?!"

"예. 괜히 나라에서 복어 손질만 따로 자격증을 두고 관리하는 게 아닙니다. 자격증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자연산 복을 손질할 때는 손이 벌벌 떨린다고 하시는데, 맛이 궁금하단 이유로 아마추어가 함부로 건드리고 그러면 절대 안 됩니다!"

방송 화면에 '결코 집에서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짧고 굵은 경고문이 지나간 뒤, 박종원의 뒤를 이어 진영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복어 요리라는 게 여태껏 그 명맥이 이어져 온 건, 그만큼 도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복어가 너무 맛있거나요."

"옛 중국의 시인이자 요리사 소동파가 이르길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는 맛'이라며 복어의 맛을 극찬했죠. 그만큼 복어라는 특이한 소재가 주는 스릴과 특유의 맛은 과거의 사람에게도 특별했나봅니다."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는 맛……."

죽음이란 단어에 잊고 있던 긴장감이 되살아났는지 침을 꿀꺽 삼키는 강백동의 등을 박종원이 툭툭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은 그럴 생각까진 안 해도 될 것 같으니까."

"예?"

"오늘 이치로 선수가 사용한 복어는 금밀복이라고 불리는 복어입니다. 자연산이어도 한국 근처에서 잡힌 물건이라면 독성이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비교적 굉장히 안전한 종이에요. 뭣보다 방금 손질하는 모습만 봐도 흠잡을 곳이 전혀 없었어요.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박종원의 장담에도 좀처럼 죄어든 표정을 풀지 못하는 강백동. 관중이 덩치에 맞지 않게 움츠러든 그의 모습에 실실 웃음을 쏟아냈다.

구장에 낄낄 대는 웃음이 깔린 것도 잠시, 비로소 설명을 끝낸 박종원은 이치로가 준비한 젓가락을 집고 시식할 준비를 마쳤다.

"복어삼중주. 그 이름대로, 세 가지 방법으로 먹는 복어 회네요."

"예. 생사시미, 무침, 샤브샤브. 세 가지, 드시면 됩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마치 펼친 공작 꼬리깃 같은 모양새로 접시에 깔린 복어 회 한 점을 집어올린 박종원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와…… 보세요, 이 반대편이 보일만큼 얇은 두께. 복어는 식감이 굉장히 쫄깃하지만, 그만큼 두껍게 썰수록 질기게 느껴질 수 있어서 회로 먹을 때는 얇은 두께로 먹는 걸 권장해요. 이렇게나 얇게 써는 건 그 자체로 기술이죠."

"여기, 간장 대신, 모미지오로시紅葉おろし. 추천입니다."

"모미지오로시! 이야, 이거 만들어주는 집도 몇 곳 없는데!"

갈아서 즙을 뺀 무에 홍고추 갈은 것을 섞어 단풍紅葉색을 낸 모미지오로시는 복어처럼 담백한 맛의 횟감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스.

뒤이은 폰즈 베이스 소스 무침과 복어 회 샤브샤브에도 감탄에 감탄을 그치지 못한 박종원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격한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단해요! 진짜 대단해! 와, 복어 품질도 그렇지만 솜씨도 최상급이에요. 솔직히 여기서 이만한 복어를 먹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그 반응에 촉발 받은 다른 두 심사위원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이치로가 준비한 복어에 젓가락을 뻗었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대찬사.

격한 감동을 느낀 세 심사위원은, 만장일치로 최고 점수 30점을 무라쿠모 팀에게 선사했다.

"감사합니다."

정작 그 평가에 이치로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담담히 고개를 꾸벅 숙일 뿐이었지만.

그러나, 이 결과에 가장 난감해진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다른 참가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바로 다음 심사를 받을 참가자'였다.

너무 좋은 평가를 받은 팀의 후발주자는 누구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단은 공평성을 가한다고 말하겠지만, 솔직히 사람 마음이라는 건 모르는 것 아닌가? 라는 것이 여타 참가자의 생각.

사직구장에서, 때아닌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다음 순서는 누가 나설 것인지, 서로가 거의 완성 직전인 요리에서 손을 늦추고 분위기를 살피던 그때.

─빠아아아아아앙!

망설임 없는 누군가의 두 번째 클락션이, 사직구장을 다시 한번 날카로운 경적음으로 가득 채웠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간다.

메아리친 소리의 행방을 역주행하여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여기요. 조리 끝났습니다."

류찬혁과 양희연의 스즈 팀.

그들의 행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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