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40화 (140/403)

140. 이기는 요리.-1-

1라운드가 끝난 뒤 찾아온 휴식시간. 대회에서 마련해준 휴게실을 마다하고 몰래 자리를 빠져나온 우리는, 현재 사직구장 내부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하나씩 챙겨 사람의 왕래가 적은 구석진 계단에 앉아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그늘진 돌계단에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도 시리고 자리도 딱딱해서 좀 불편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양희연 이 녀석이 강력하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냥 휴게실 있는 게 낫지 않았냐? 거긴 음료수도 공짜던데."

"거 아저씨들 눈 안 보이드나? 한두 명이면 내도 이해를 한다. 근데 죄다 그라믄 우린 어서 쉬노?"

"…… 뭐, 그렇긴 하지."

우리는 우리 요리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B조만이 아니라 대회 전체를 통틀어 30점 만점 점수를 가장 처음 받은 게 우리 팀이었다고 한다.

물론 만점을 받은 팀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점수가 후한 덕인지 우리 이후로도 만점자가 나오긴 했지만, 최초 타이틀이라는 게 원체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지라.

1라운드가 끝나고 먼저 돌아간 탈락팀, 2라운드로 진출한 잔류팀 가릴 것 없이 우리를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게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굳이 자리를 피할 정도로 불편하진 않다.

"그리고 그냥 카페 있자 한 걸 여까지 오자 한 건 니 아이가."

"거긴 거기대로 보는 눈이 많잖아."

이쪽은 휴게실하고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꼭 연예인이라도 본 것 마냥 구경이 났다고 할까.

같은 참가자의 시선이야 동업자 간의 엄격한 잣대가 섞여 있으니 오히려 괜찮지만 평범한 관중이 사람을 대견, 혹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면 어째 가슴이 근질거려서 좀 거북하단 말이지.

'…… 사실대로 말하면 분명 놀리겠지, 이거.'

사내놈이 덩치만 컸지 간은 작다고 낄낄대는 녀석의 얼굴이 불 보듯 뻔해서 잽싸게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2라운드까지 갔네."

"뭐꼬. 그럼 못 갈 줄 알았나."

"그건 아닌데."

조금 더 고전할 줄 알았다는 뜻이다. 오늘 상대는 다들 잔뼈가 굵은 상인들. 다방면에 능통한 요리사보다는 한 가지 장르를 수십 년 동안 파고든 다수의 베테랑과 가장 자신 있는 메뉴로 대결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토록 낙승.

물론 보다 더 장기인 메뉴를 들고나올 2라운드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당장은 제법 여력이 남은 상황이다.

거기다, 상대가 다음 메뉴 선정에 공을 들이는 만큼 우리도 마찬가지로 더더욱 엄선된 메뉴를 준비할 테니 아무 문제 없다. 그건 양희연도 같은 생각인지, 자기가 앉은 계단 바로 아래 칸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웃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좀 배웠나. 니랑 내랑 같이 하믄 우승도 못 할 거 읎다."

거 참 대단한 자신감이시다.

"그런 얘가 아까 심사받을 땐 왜 그렇게 바들바들 떤 거야?"

"떠, 떨긴 누가? 내가? 내가 언제 그랬다고?"

당장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고 알아서 깨닫길 바라며 짜게 식은 눈으로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양희연은 내 시선을 피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 어쩔 수……."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이가! 그 강백동이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다는데!"

"…… 뭐?"

"부산의 자랑! 천하장사! 국민MC 강백동이 내 요리로 먹방을 찍는데 너 같음 안 그러겠냐고!"

아, 그건 인정이지!

하고 받아들이기엔, 지금 느끼는 감정이 너무 착잡해서 뭐라 할 말이 잘 생각나질 않았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살면서 만나본 부산 사람 중에 얘가 제일 부산 사람 같은데.

휴식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구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질리지도 않고 강백동 일대기를 읊는 양희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 지금 강백동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게 아니라 다음 라운드 메뉴는 뭘 만들지를 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같이.

***

─부릉!

육중한 쇳덩이의 심장에 불이 붙는 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부릉!

한 대가 아니다.

열 대.

마운드 위, 관중석을 따라 조별로 조금씩 거리를 두고 모여 있던 푸드트럭.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푸드트럭의 엔진이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린더가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기우뚱 움직이기 시작한 차량의 사이드에 세워진 깃발이 바람을 타고 펄럭이고, 자신의 자리에서 떠난 트럭은 마치 홈런을 친 타자마냥 느긋하게 관중석 앞을 한 바퀴 돌아 그대로 차량용 출구를 통해 마운드에서 빠져나갔다.

퇴장식.

방금 전 치른 1라운드에서 탈락한 팀이 사용한 차량이, 그들의 임시주인과 함께 구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굳이 깃발까지 흔들며 그 이름을 관중에게 각인시킨 건 물론 홍보를 위해서겠지.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온 선수들에게 이 정도 서비스, 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1라운드에 탈락한 선수 분들이 이용하신 차량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관중 여러분! 시청자 여러분! 고생하신 상인 여러분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심사위원이 아니라 MC로서 마이크를 잡은 강백동은 평소보다 훨씬 진중한 어조로 떠나가는 이들을 배웅했다. 분명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간발의 차이로 다음 라운드 진출을 놓친 그들을 향한 예의였다.

잠시 뒤, 모든 차량이 빠져나가고 옅은 흙먼지가 얕게 깔린 구장에 짧은 박수 소리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 아쉽지만 떠날 사람이 떠났을 뿐이다. 이곳은 축제의 장. 너무 적적한 분위기는 축제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강백동이었다.

"자! 뜨거운 햇볕 아래 치러졌던 뜨거운 1라운드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부산시 최고의 솜씨를 가진 달인 열다섯 팀이 남았습니다! 2라운드를 통과하여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다섯 명! 과연, 결승행 티켓을 끊는 건 누가 될 것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강백동이, 다시 한번 구장이 떠나가라 크게 외친다.

"추석 특집! 부산시 배 요리 대회 제2라운드! 시작, 하겠습니다!!"

─부릉!

구장의 중심. 투수가 자리하는 마운드 위에 선 강백동의 선언과 함께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든 차량에 동시에 시동이 걸린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절도 있게.

똑같은 궤적을 그리며 움직인 트럭이 마침내 멈추자 완성되는 도형.

세 대의 트럭이 각각 한 조가 되어, 서로가 한 변을 이루고, 마침내 평평한 바닥 위로 삼각형을 그린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치밀하게 짜인 동선 대로 움직이는 트럭의 모습에 관중이 환호를 보내자, 그 외침에 화답하는 듯 탑차의 주방 문이 그대로 위로 상승하여 어느새 제 몸에 탑승해 있던 참가자들의 모습을 바깥으로 내놓는다.

모두가 중심을 보며 섰던 1라운드와는 달리, 이번에는 각 조의 남은 참가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포지션.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상대 팀을 향한 선수들의 안광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2라운드가, 시작됐다.

***

일식의 역사에서 고기가 식탁 위로 올라오게 된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불교의 영향으로 육지에서 사는 짐승을 사냥하여 잡아먹는 행위가 불법이 된 이래,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인들은 고기를 터부시했다.

물론 산토끼, 멧돼지 같은 짐승을 땅이 아니라 산에 사는 짐승이라고 부르며 사냥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고기라도 간신히 먹어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고기를 얻는다고 해봐야 농업의 발달과 함께 늘어난 인구의 배를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양이 부족했으니, 결국 일본인의 식탁에 주로 올라온 단백질 섭취 수단은 대부분 생선뿐이었다.

그렇다면, 일식의 역사에서 고기는 항상 생선의 들러리에 불과했을까?

고기는 항상 식탁의 주변을 맴도는 존재로 남았을까?

'아니지.'

우리는 답을 안다. 그렇지 않다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양과 교류를 맺으며 비로소 동물을 살생하여 식육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철폐했다.

그와 동시에 일본인은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르는 것 마냥 온갖 고기 요리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요리가 바로 전골요리인 나베나 스키야키, 한국에서 전파된 야키니쿠 등등이지만, 일본의 고기 요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리라면, 이것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돈카츠.

약 1800년 경. 프랑스의 커틀릿이 일본으로 전파된 이후 돈카츠의 역사가 시작됐다.

우습게도 당초에 일본에서는 돼지고기를 커틀릿 재료로 사용하는 일은 비주류에 해당됐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기법 그대로 쇠고기나 닭고기 등을 이용하여 커틀릿을 만들어 먹었고, 그것이 일본의 풍토에 맞게 점점 변화되어 포크커틀릿으로, 그것을 개량하여 얇은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는 돈카츠로 변형된 것이다.

거기서 약 20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돈카츠는 두툼한 고기를 사용하는, 흔히 일식 돈까스라고 불리는 형태로 진화하게 됐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내 말은, 대회 메뉴에서 돈카츠가 빠지면 섭섭하다는 거지."

전날 밤. 나와 양희연은 대회용 메뉴를 고안하며 수많은 일식요리를 찾아 헤맸다.

처음엔 스즈에서 사용하는 메뉴를 조금 개량하여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긴 했지만, 이건 스즈의 대회임과 동시에 나의 대회이기도 했다.

오로지 스즈의 메뉴만을 들고 나가 싸우기에는 나도 나름 자존심이 상한다 이거다.

물론 스즈에서는 이미 돈카츠를 판매하고 있다. 기실, 스즈까지 와서 돈카츠를 주문하는 손님이 없기에 어린 고객용으로나 가끔 나가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근데 좀 애매하지 않나? 돈카츠가 거기서 거기다 아이가. 뭐, 맛있게 만들라믄 못할 건 없지만…… 솔직히 내 생각에 돈카츠는 짧은 시간에 맛있게 만들 순 있어도, 특색 있게 만들긴 어렵다."

음, 정확한 평론이다.

현지에서나 한국에서나 돈카츠 맛집으로 불리는 식당은 대부분 비슷한 방법으로 서로의 특색을 만든다.

튀김옷을 입힐 때 밀가루에 전분이나 땅콩가루, 혹은 참깨가루를 섞는다거나.

돈카츠를 튀기는 기름을 여러 종류의 기름을 섞어 만든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튀김옷 역할을 하는 빵가루를 직접 구운 빵을 갈아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고기는 좋은 고기를 잘 숙성시켜서 쓰거나, 소스를 특별히 수제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자기 가게만의 특색을 뽐내기 위해 노력한다.

근데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돈카츠라는 요리는 이미 정형화가 된 요리라는 것이다.

만드는 방법도 같고, 특색을 내는 방법도 대동소이할 뿐 기초는 비슷하다.

맛집과 평범한 식당의 퀄리티 차이란, 돈카츠 자체의 퀄리티가 아니라 돈카츠에 들어가는 재료의 퀄리티 차이가 된다.

물론 요리는 재료로 반을 먹고 들어간다지만, 요리사로서 재료에만 휘둘린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 아닐까.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돈카츠는 꼭 한번 넣어보고 싶은데, 솔직히 이걸 대회 메뉴로 내놓아서 특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음.

흐음…….

"미치겠네."

좀처럼 방안이 생각이 안 난다. 애당초 돈카츠 자체가 이미 요리로서는 완성형에 가까운 요리이기 때문일까. 알려진 조리법대로 만드는 게 가장 맛있는 요리에 손을 대는 건 요리사의 즐거움이지만, 동시에 악몽 같은 일이라고 한탄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자꾸 고민만 하고 있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양희연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아니, 와 자꾸 돈카츠에 집착하는데? 니 그거 좋아하나?"

"음…… 딱히? 고기는 당연히 좋아하는데 막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근데 와?"

……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지만, 고민에 빠져 있느라 딴 생각 중이던 뇌는 아무런 필터링도 없이 그 말을 그대로 내뱉고 말았다.

"이기는 요리잖아. 돈카츠."

"…… 야."

아차.

일본어로 이기다라는 말인 카츠와 돈카츠를 갖고 말장난을 좀 쳐봤는데, 이건 내가 봐도 좀 심각하게 무리수였다. 특히 양희연 같은 현지인한테는 더더욱.

양희연이 제 눈에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은 냉기를 품고 날 쏘아보며 말했다.

"니, 다시 한번 그딴 소리 하믄 진짜 주둥아릴 찢어 버리는 수가 있다."

"…… 미안합니다."

"뚫린 입이라고 뇌까지 직통으로 구멍을 내면 안 되지."

무서워서 뭔 말도 못 하겠네.

"...뭐, 방금 건 농담이고. 돈카츠라는 게 일식에서도 워낙 대표적인 요리 아니냐. 그러니까 대회에 한 번쯤 보여주지 않으면 아쉽다 그거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라, 처음부터."

그래도 내가 분위기를 식히다 못해 아예 빙하에 메다꽂은 보람은 있는 건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방바닥에 앉아 벽에 축 달라붙어 있던 녀석이 자세를 똑바로 고치고는 말했다.

"그럼 좀 이것저것 다양하게 섞어뿔면 어떻노?"

"응?"

"니 잘하는 거 많잖아. 철정이 금마한테 퓨전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줬다매. 뭐 돈카츠랑 비슷한 거 찾아가 비슷하게 섞으면 되는 거 아이가?"

"돈카츠랑…… 비슷한 거?"

비슷한.

비슷한…….

오.

오호라.

지금, 되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이기는 요리, 진짜로 만들 수도 있겠는데?"

"니 내가 찢어준다 했지?"

"알았어. 안 할게."

거 참, 농담이 안 통해요. 농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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