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4-
다행히도, 이유나의 복장을 터트릴 뻔했던 상황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박종원이 잠시 말을 끊고 평가를 남기기 전 결과부터 말한 건 어디까지나 '극적인 연출'을 바란 PD의 요청 때문일 뿐, 무턱대고 심사한 건 아니었으니까.
"심사를 마치겠습니다……라고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네요."
당연하지.
흐흐 웃은 박종원이 농담조로 흘린 말에 관중은 물론이요 실시간 스트리밍과 케이블 생방송으로 보고 있떤 시청자까지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나오지만 않았다 뿐이지, 눈이 시뻘게진 관중의 웅성거림을 들은 박종원은 여기서 더 질질 끌었다간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서둘러 말을 쏟아냈다.
"농담이죠, 농담."
아무리 넉살 좋은 박종원이라도 PD가 짠 큐시트대로 행동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되고픈 마음은 없었기에, 그는 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빨리 털어 버릴 결심을 굳혔다.
"일단 말하자면, 저와 강백동 씨, 진영배 회장님은 각각 최대 10점씩 점수를 부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채점 시 중점에 두는 기준이 다르죠."
"기준이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요리를 채점할 때엔 전문성을 중점으로 두고 채점합니다. 해당 요리를 만들 때 알맞은 조리법을 썼는지, 조리 과정 중 이상하거나 위험한 일은 없었는지, 결과물의 상태는 어떠한지 등에 주목하며 채점하죠."
한차례 꼴깍 침을 넘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맞춰 B조 3팀이 만든 이 사누키 우동을 평가한 결과, 다른 심사위원은 몰라도 저는 10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중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봤다 해봐야 고작 우동 아닌가? 당장 마트에 가서 4인용 레토르트를 사도 만원도 하지 않을 요리가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물론, 박종원은 이미 그들의 의심을 해소할 이유를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류찬혁 선수. 혹시 안 삶고 남은 반죽 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잘 됐네요. 감사합니다."
박종원의 속내를 눈치챈 찬혁이 서둘러 도마 위에 남아 있던 소량의 자투리 반죽을 넘겼다.
달라붙지 않게끔 덧가루를 뿌린 반죽을 손에서 굴리던 박종원은 역시 기대한 보람이 있었다며 깊은 미소를 지었다.
"강백동 씨, 제가 아까 사누키 우동에는 특별한 특징이 하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뭘까요?"
"어……."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해 머리를 돌린 질문의 화살에 강백동이 말꼬리를 늘렸다.
기실, 미식가적인 면모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연예인일 뿐인 그로서는 요리에 대한 지식이 다른 두 심사위원에 비해 크게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심사에서 맡은 역할은 오로지 맛.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 요리가 맛이 얼마나 있었느냐를 평가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 사실, 누군가는 '그런 목적이면 미스매치 아니야? 다 고득점일 텐데.'라며 어리둥절해 하는 이도 있었지만, 원래부터가 지역부흥을 위한 대회 아닌가. 최대한 좋은 말만 해줄 사람을 찾다 보니 가장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강백동이었을 뿐이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그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는 법.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며 먹었을 때 느낀 것을 그대로 설명해달라는 박종원의 요청에 강백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국물도 깊게 잘 우려냈고, 간도 딱 좋아서 참 맛있게 먹었는데요. 사실 제가 첫입을 딱 먹었을 때 굉장히 놀란 게 있었어요."
"그게 뭐죠?"
"면이 정말 엄청나게 쫄깃하더라고요. 가끔 갓 잡은 갑오징어 회를 먹을 때 오징어가 이를 튕겨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꼭 그것처럼 면이 이를 되 밀어내는 것처럼 굉장히 탄탄한 느낌을 받았어요."
"정확히 봤습니다. 역시 이 사람 참 먹는 거에 소질 있어."
탄력?
우동은 원래 면이 두꺼워 여타 면요리보다 탄력이 강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라며 웅성대는 관중과 시청자. 그러나 박종원은 가당치도 않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카가와현의 사누키 우동은 전통적으로 '족타'. 즉 발로 밟아서 면을 반죽합니다. 들어가는 재료는 오직 밀가루와 물, 소금이 전부에요. 수십, 수백 번을 지긋이 체중을 실어 밟아주면 자연스럽게 반죽 내부의 공기가 빠지고, 반죽 속에는 반죽의 찰기를 만드는 성분인 글루텐만이 남게 돼요. 이걸 자르고 숙성해서 글루텐이 안정을 갖출 시간을 준 뒤, 다시 겹쳐 쌓고 밟아 반죽해야 간신히 사누키 우동에 사용할 수 있는 면이 됩니다."
찬혁이 넘긴 반죽을 손으로 지분거리던 박종원이, 자투리 반죽의 양 첨단을 두 손으로 잡는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반죽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해요. 우리가 흔히 먹는 공장제 우동하고는 전혀 다르거든요. 반죽의 밀도가 그렇게 높으면, 이런 묘기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박종원이, 반죽을 잡은 두 팔을 줄자를 늘리듯 양쪽으로 천천히 뻗었다.
그 사이에서 찬혁의 우동 반죽이 점점 죽죽 늘어진다.
약 10cm 정도의 길이로 시작했던 반죽이, 15cm, 20cm, 30, 40, 50cm 그 이상으로.
마치 피자 광고를 볼 때면 꼭 나오는 치즈가 늘어나는 광경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한 기세로 늘어나던 반죽은 결국 박종원의 어깨너비를 넘어선 뒤에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굉장하죠?"
"이,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백동이 화들짝 놀라 두 눈을 치켜떴다.
"이게 바로 전통 사누키 우동 반죽의 특징입니다. 다른 반죽 같으면 반죽 사이사이에 공기가 섞여서 진즉 끊어졌을 텐데, 글루텐으로 튼튼하게 연결된 반죽은 이렇게 늘여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 보세요."
천천히, 그러나 사정없이 반죽을 펼쳐 보이던 박종원이 이번에는 한쪽 손에 쥐고 있던 반죽의 끝부분을 놓아 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제 길이의 세 배가 넘게 축 늘어났던 반죽이 다시 조금씩 쪼그라드는 게 보였다. 반죽 자체가 가진 탄력이 엄청나다는 방증이었다.
관중이 입을 틀어막고 놀라는 소리가 사직구장에 짙게 깔렸다.
"와, 선생님. 이건……!"
"이런 걸 삶으니 이로 씹어도 잘 안 끊어지는 면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이게 질기다는 말이 아니에요. 본래 잘 만든 사누키 우동은 떡 같은 식감과 매끈매끈한 면을 삼킬 때 그 목구멍을 스르륵 넘기는 느낌을 즐기는 거예요. 이걸 일본에서는 노도코시喉越し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감촉이 거친데다가 삼킬 때도 쉽게 끊어져서 불쾌한 느낌이 남지만, 잘 만든 사누키 우동은 뒷맛이 굉장히 깔끔해요."
박종원은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선보이면서도, 감탄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에도 사누키 우동을 벤치마킹해서 판매하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면 퀄리티가 이 정도 수준인 가게는 전국에 다섯 개도 채 안 될 겁니다. 이걸 푸드트럭에서 한 시간 만에 만들었다고 현지인한테 보여주면 아무도 안 믿을 걸요? 이건 제가 기술을 배우고 싶을 정도예요."
박종원은 찬혁과 희연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그것도 푸드트럭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이토록 뛰어난 면을 만들어낸 걸까.
'사누키 우동은 물과 소금, 밀가루의 비율을 맞추는 것도 굉장히 까다로울 텐데…….'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이만한 기술을 가졌다니, 성심고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이건 정말 규격을 벗어났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작년에 안효민 학생도 그렇고……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그럴 리가 없었다.
…… 아마도.
***
─와, 저건 진짜 찐이네.
이유나의 방송 채팅으로 누군가 그런 말을 꺼냈다.
─Wls? 입 뚫렸다고 말본새보소.
─개국공신좌가 니 친구냐?
─그 찐이 그 찐이냐고ㅋㅋㅋㅋㅋ
누군가는 예상했을 터이고, 누군가는 예상하지 못했겠으나.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유나는 찬혁과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이들 중에선 그 누구보다 찬혁이 해내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토록 애타는 눈빛으로 찬혁의 심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야, 입 닫아.
─침 흐른다. 야 진짜 흐른다니까?
─얘 눈이 살짝 갔는데?
아니. 거짓말이다. 이 여자, 지금 속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믿음? 없다면 그게 오히려 우스운 소리겠지.
은혜? 당연히 느끼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뒷받침된 성장이었으나, 타고 오를 사다리를 어디선가 가져다준 것은 분명 찬혁의 공이었으니까.
다만 그런 이유나에게 보다 가슴 속 심저心底에 쐐기처럼 깊게 박힌 기억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그날 먹었던 요리.
제정신을 잃을 기세로 처음 먹는 요리를 탐미한 기억은, 여전히 그녀의 뇌리에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날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말이지만, 그녀 본인은 찬혁과 개인적 친분이 없는 만큼, 보다 순수한 고객의 입장으로서 류찬혁이라는 요리사의 팬이 된 것이다.
요컨대 말하자면, 지금 그녀의 심정은 단 두 글자로 축약할 수 있었다.
식욕.
헛통증이라는 말이 있다. 크게 다쳤던 곳이 다 나아도 계속 같은 장소가 아프다거나, 결손 신체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이유나의 상태도 이와 비슷했다.
그날 먹었던 음식의 충격이 계속 입안을 맴도는데, 우습게도 아무런 만족감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갈망만 늘어가는 그 심정은 한 번 느껴보면 더 이상 우습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헛식욕이라고 할까.
그런 이유나가 모처럼 찾아온 소식에 눈이 돌아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시청자는 그녀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후로 1라운드가 끝나 무난히 2라운드 명단에 찬혁의 이름이 올라갈 무렵까지 별 말도 없이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이유나를 두고 시청자들은 아예 채팅창을 정말로 자기네 채팅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얘 이제 그른 것 같은데.
─그나저나 개국공신좌 결승 진출 가능성 어떻게 봄?
─1라운드에서 한 조에 2명 떨어져서 3명 남았으니까…… 2라운드에서 다른 둘을 제쳐야 결승 진출이지?
─ 보니까 B조에는 막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없어 보이던데.
─이렇게만 하면 무난하게 3라운드까지 갈 듯?
몇몇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시청자는 대동소이하게 찬혁의 결승 진출을 예상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목은 B조보다는 다른 조, 혹은 대회 이후에 있을 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다른 조는 볼 거 있던가?
─A조에도 개국공신좌 같은 일식당 하나 있었는데 거기 잘하더라.
─아 그 모듬초회? 거기 잘하긴 해.
─거기랑 D조 중국집 쩔더라.
─E조는 ㄹㅇ 죽음의 조던데. 무슨 돼지국밥집이 한 조에 세 곳이 몰림? 주작 아냐?
─그게 아니라 예선을 지역구로 돌렸는데 하필 E조 지역이 돼지국밥 골목 있는 곳이라 그럼. 부산시민이라 잘 암. 지금 직관 중.
─와ㅋㅋㅋㅋ그럼 대회 끝나고 바로 우승자 식당 달리면 되는 거 아니냐?
─우승자 식당이면 당연히 식당 미어터질 텐데 뭐 하러 가냐ㅋㅋㅋ
─어디 우승할지 알면 예약이라도 할 텐데.
─근데 사실 어디든 미어터질 듯ㅋㅋㅋㅋ강백동 먹는 것만 봐도 맛있어 보여. 본선 진출한 거면 맛은 보증하잖음ㅋㅋㅋㅋ박종원도 전부 호평만 했자너ㅋㅋㅋ
─지금 예약하고 부산으로 달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응 아니야. 추석연휴 기차표 매진됐어.
그런데, 시청자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던 그 순간.
고개는 고정한 채 눈동자만을 굴려 채팅창을 힐끗 살핀 이유나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온 집안이 떠나가라 외쳤다.
"그거다!"
당연히 시청자는 혼비백산. 그중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있던 이들은 고막 나간 것 같다며 깜짝 놀라 뒷북이 된 화면을 바라봤지만, 이미 캠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이유나는 부산스럽게 온 집안을 뒤지고 다니더니, 이윽고 컴퓨터 앞으로 다시 돌아와 말했다.
"얘들아!"
─아 뭐임 내 고막 물어내.
─정신나갈것같애미칠것같애고막나간것가태안들리는것같애
─깜박이 좀 키고 들어와라 쫌!
"나 부산 간다! 오늘 야방이야! 차 가서 방송 킬게 이따 봐!"
말을 제대로 이해할 새도 없이 까맣게 암전하는 화면.
그리고 채팅창에는 스트리머가 방송을 종료했다는 알림문구 하나만이 떡하니 남아 시청자를 혼란에 빠트렸다.
물음표만이 무수히 채팅창을 도배하듯 올라오는 와중, 이유나의 방송 채팅창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그녀의 남동생인 이유성은, 매니저 권한으로 채팅을 얼리며 볼드체로 입력한 문구를 채팅창 가득 띄웠다.
─정신 나간 것아 나갈 땐 좀 씻고 나가라고!
사실, 방송용 풀메를 한 상태였기에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