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38화 (138/403)

138.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3-

한번 시작한 함성은 좀처럼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일상이 매드맥스인 이곳 사람들한테 클락션 도발은 "쫄?"하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일까.

아무리 천하의 양희연이라 하더라도 수십 초를 넘어 이제는 분 단위로 이어질 기세인 함성에는 질리지 않을 수 없었는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마, 이게 부산이다……!"

"알겠으니까 그만해라."

그쯤 되면 오히려 이쪽이 서글퍼지는 기분이니까.

그래도 이 행동 덕분에 당초의 목적은 제대로 성공할 수 있었다. 무슨 목적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이것이다.

"B조 3팀. 요리는 완성하셨나요?"

박종원. 2010년대에 TV속 요식업계를 거의 혼자 반 이상 잡아먹은 거물 중의 거물. 그리고 그를 비롯한 천하장사 강백동과 부산 요식업회 회장 진영배.

하나 같이 녹록하지 않은 세 사람과 그 인물들을 다각도에서 촬영하며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하는 카메라맨 여럿까지.

우리가 관중의 환호에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새 우리 차량 앞으로 다가온 심사위원단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체할 것 없지, 면 요리는 면이 다 삶아진 그 순간부터 퀄리티가 내려간다. 조금이라도 빨리 맛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만든 요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죠."

"사누키 우동입니다. 일본 카가와현에서 기초한 일본 전통 요리죠. 오늘은 차가운 국물과 얼음물에 식힌 면으로 냉우동 스타일로 만들어봤습니다."

"마침 땡볕에 계속 돌아다니느라 시원한 게 먹고 싶었는데, 백동 씨는 어때요?"

"아이고, 저야 좋죠, 선생님."

"하여튼 이 사람은 먹는 거 참 좋아해. 예전에 못 먹고 방송할 때는 어떻게 참았어요?"

방송을 위한 가벼운 토크가 마이크를 통해 구장 전체로 방송되자 그 말을 들은 관중이 가벼운 웃음을 흘린다.

"여기요, 선수분."

"예?"

어라. 이건 또 뭐야.

카메라가 나를 비추지 않는 틈을 타 어느새 차량 바로 앞으로 온 야광조끼를 입은 사람이 자그만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뭔가를 건네주었다. 뭔가 하고 받아 보니, 네모난 모양의 마이크다. 앞주머니에 넣으면 딱 들어갈 것 같다.

"옆쪽에 전원 버튼 눌러주신 다음 앞주머니에 넣어주시면 되세요. 마이크는 코에서 먼 쪽으로 향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아, 예."

까라면 까야지. 방송용 송출 화면에 내 목소리가 제대로 잡히게 하기 위해 준 것이리라.

"이건 옆에 분 부탁드릴게요."

난 하나 더. 아니, 이게 아니라.

추가로 받은 마이크를 양희연에게 넘겨주려는데, 이 녀석, 뭔가 굉장히 굳어 있다. 그래도 말은 들었는지 어떻게 몸은 돌렸지만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거칠게 구르는 눈동자가 괜히 무섭다.

"야, 와봐."

"어, 어?"

"잠깐 와봐."

얘한테 주면 착용하는 데 한참은 걸리겠다.

전원을 켜고, 양희연의 조리복 앞주머니에 마이크를 잘 집어넣는다. 들었던 대로 안테나처럼 삐죽 튀어나온 부분은 코에서 먼 쪽으로 향하게.

"긴장 풀어. 힘줬다 빼고, 알지?"

"아, 알았다."

얜 요리할 때만도 알아서 잘 하더니 왜 지금 와서 긴장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그렇게 서로 마이크 착용을 완료하니, 곁눈질로 우리를 살피고 있던 박종원이 예능 분위기 토크를 마무리 짓고 다시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시식하도록 하겠습니다."

"옙."

당연히 그래야지. 심사위원이 시식하는 걸 누가 막는다고.

"그런데."

얌전히 시식하는 걸 구경하려던 찰나, 갑자기 박종원 심사위원이 운을 띄웠다.

"그냥 우동이라고 하면 되는 걸, 일부러 사누키 우동이라고 말한 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죠? 이유를 들어보고 싶네요."

오호라. 벌써 마이크가 일할 차례인가. 안 될 거 없지.

"사누키 우동은 한국으로 치면 돼지국밥을 부산 돼지국밥, 닭갈비를 춘천 닭갈비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고, 그만한 이름값을 하는 음식이기도 하죠."

"맞죠. 국내에서는 우동이 서민들이 적당히 싼 값에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라는 정도의 인식이 있어요. 근데 이게 일본에서는 다르거든요."

그가 띄운 운에 내가 바람을 넣어주니, 말문이 트인 박종원 심사위원은 심사위원 각자의 개인접시에 우동을 옮겨 담으며 돛단배가 순풍을 탄 듯 기세를 실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동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요리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칼국수에서 유래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쪽은 비주류고, 현지에서는 천년도 더 전에 어떤 승려가 중국으로 건너가 제면을 배워 일본에 퍼트렸다는 설이 가장 주류로 받아들여집니다."

박종원이 TV에서 보여주는 모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름 아닌 해박함. 동, 서양을 가리지 않고 직접 몸으로 경험하며 쌓아온 음식에 대한 수많은 지식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승려면……스님 말입니까?"

"예. 그런데 이 스님의 고향이 바로 카가와현. 옛날에는 사누키라고 불린 지역입니다."

"아하! 그래서 사누키 우동이라고 부르는 거네요?"

"예. 류찬혁 선수의 말이 딱 맞아요. 그냥 닭갈비를 춘천에서는 춘천 닭갈비란 이름으로 차별화해서 부르는 것처럼 말이죠. 근데 사누키 우동에는 또 특징이 하나 있어요."

"특징이요?"

"그건 먹어보시면 알아요. 자, 여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작은 접시에 보기 좋게 담긴 우동은 확대해서 보면 처음 큰 대접에 담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일 만큼 정갈한 모양새를 자랑했다. 역시, 솜씨가 좋은 사람이다.

"그럼 어디……."

후르륵.

젓가락을 쥔 세 심사위원이 동시에 면발을 집어 입으로 빨아들였다.

언제 들어도 매력적인 소리. 소란스럽던 관중마저 그 폭력적일만치 위장을 자극하는 소리에 모두가 벙어리라도 된 것 마냥 침묵에 잠겨 군침을 꿀꺽 삼켰다.

후룩, 후룩, 후룩.

여기에 프로 푸드섹서라 불린 강백동 특유의 쫄깃한 면치기 소리가 섞여 들어가니, 그 침묵은 더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인터넷 방송에서 라면만 끓여 먹고 그 회사의 라면 매출을 40퍼 이상 상승시킨 사나이다운 솜씨다.

"……."

"……."

"……."

잠시 후, 국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켠 심사위원들은 깔끔하게 동난 그릇을 보고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양을 조절했기에 대접에 담은 분량도 1인분의 8할 정도였고, 그걸 셋으로 나눴으니 젓가락질 두어 번이면 동날 양이었으니까.

그 기나긴 침묵에 관중도 분위기를 버거워하던 찰나, 마침내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박종원 심사위원이었다.

"와, 이거……."

감탄하다 못해 허탈감이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그는 접시에서 눈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전 이거 평가 못 하겠는데요."

그 순간, 전광판이 갑자기 뚝 꺼지며 어딘가 쌈마이한 로고가 불쑥 올라오더니, 이윽고 신명나는 CM송이 귀가 아플 만큼 우렁찬 소리로 사직구장의 오디오를 빈틈없이 메웠다.

불뚝이 진~한 라면!

잠깐만, 이거 설마.

그 순간 놀라서 고개를 두리번거린 내 눈에, 저 멀리 벤치에서부터 도루왕 못지않은 속도로 큐시트를 쥐고 달려오는 방송국 직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니 세상에. PD야, 너네 그렇게 살면 큰일 나.

***

"아 뭐야!"

대전의 한 주택에서 짜증에 찬 여성의 목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여성의 이름은 이유나, 과거 찬혁이 호텔 상천에서 현장실습을 할 적에 찬혁이 만든 탄탄미엔만 서른 그릇을 해치우며 식사, 방송 양쪽 모두 개인기록을 경신한 인터넷 방송인이다.

몇 달 전 있었던 이른바 면최몇 사건으로 중소기업에 오른 그녀는 평소 먹방, 게임, 저스트 채팅 등의 컨텐츠를 주력으로 삼으며 활동했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어느 방송의 중계를 하는, 이른바 리액션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아ㅋㅋㅋㅋ60초는 인정이지ㅋㅋㅋㅃㅃ.

─혹시 꼬우십니까? 꼬우면……아시죠?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매하십시오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런 그녀가 중계를 하던 방송은 다름 아닌 추석특집 부산 상인 요리대회.

먹방 스트리머인만큼 평소에도 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지만, 아무리 그런 이유나라 하더라도 일부러 수익까지 포기해가며 다른 방송을 중계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왜 하필 끊어도 거기서 끊는데요! 다른 참가자 많잖아!"

그래, 없'었'다. 어느 시청자 한 명이 보내준 도네이션, 도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찬혁 본인이 알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최근 인터넷에서 찬혁의 유명세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유명세라고 해봤자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머 게시판 등지에 종종 글이 올라오면 금방 추천글로 올라가는 정도의 반짝 빛났다가 사그라질 유명세였지만, 그만큼 그 한순간의 반짝임은 마치 섬광탄처럼 인터넷 사용자의 뇌리에 깊은 인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갑작스런 상승세에 올라타 함께 성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유나였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반올림하여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하던 인지도를 순식간에 대기업으로 만들어준 것은 찬혁의 공이나 다름없었다. 면최몇 사건으로 한 방, 그리고 푸드 엑스포 사건으로 한 방.

묵직한 2연타로 전례 없는 성장을 이룩한 그녀에게 찬혁은 은인이자,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만나고픈 사람이었다.

은인이란 의미로도, 요리사라는 의미로도.

그런데 한 시청자가 가져온 영상 도네이션에 놀랍게도 어느 요리대회에 출전한 찬혁의 모습이 비춘 것이다.

그 시간부로 모든 일정을 단박에 조기 종료한 이유나는 합방마저 내팽개친 채 이렇게 방송 시청에 열중하게 됐고, 지금으로 이어진다.

"진짜 타이밍 너무 좋아서 화나네?"

딱 심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박종원의 '심사 불가'라는 말과 동시에 시작된 60초 광고는 그야말로 악랄한 편집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반가운 찬혁의 얼굴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또 다른 음식에 배를 곯던 와중에 딱 화면을 대체한 라면 광고는 쓸데없이 요철이 좋아서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와, 근데 쟤는 진짜 못하는 게 뭐야?

─예전에 호텔 뷔페에서 봤을 때는 중식 하고 있었잖아?

─요전에 엑스포로 갤 달굴 때는 한식이었고.

─근데 지금은 부산 가서 일식을 하고 있네?

─양식까지 잘하면 그랜드슬램ㅋㅋㅋㅋㅋㅋ─근데 박종원이 저러는 거 보면 사실 진짜 맛없어서 평가 못 하는 거 아님?

─아ㅋㅋㅋ 개국공신 못 믿냐고ㅋㅋㅋㅋ─반대로 한, 중을 그렇게 잘하는데 일식 못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음?

채팅창을 꽉꽉 채우며 갑론을박을 펼치는 시청자였지만, 그녀도 그런 호들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고등학생이 솜씨가 좋대 봤자 다른 사람에게는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

'근데 그건 직접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고.'

한 번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그때 호텔 상천에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에게 확신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 시작한다!"

드디어 1초가 1시간 같던 60초가 흘렀다.

애타는 눈빛으로 방송마저 잊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 부산 요리대회라는 로고가 쓱 지나가며 다시 한번 사직구장을 비추고, 화면이 끊기기 약 30초 전의 상황을 리플레이한 영상이 쓱 지나가고는, 재차 찬혁의 트럭을 비춘다.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박종원과 강백동, 그리고 진영배까지.

심사는 안 하고 찬혁의 푸드코트를 등진 세 사람이 찬혁 일행 몰래 무언가 쑥덕쑥덕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그 장면을 이유나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볼 찰나, 심사위원끼리 대화를 끝낸 박종원이 찬혁 일행에게로 다가더니,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30점 만점 드릴게요. 정말 잘 먹었어요."

"……뭐?"

화면의 앞뒤를 짜맞출 수 없는 그 광경에, 방송 화면에 클로즈업 된 찬혁과 캠에 비춘 이유나의 얼빵한 얼굴이 교차한다.

이윽고,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이유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짤라 먹었으면 중간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 미친놈들아아아!"

그런 그녀 앞에 놓인 모니터의 채팅창에, 수없이 많은 ㅋ자가 끝없이 화면을 도배하듯 채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