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부산행-7-
아직 하늘에 푸른빛이 살짝 남은 이른 아침.
성 셰프의 차에 신세를 지고 대회장에 도착한 우리는 차의 트렁크 앞에 옹기종기 모여 대회에 가지고 들어갈 짐을 챙기고 있었다.
"웁…… 우에에……."
슬프게도,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생기긴 했지만.
'젠장, 이걸 잊고 있었네.'
성 셰프는 기본적으로 차를 험하게 몬다. 언젠가 성 셰프가 모는 차의 뒷자리를 얻어 탄 이후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이라면 아직 그때처럼 운전하진 않겠지 하고 낙관론을 펼친 게 실수였다.
"마, 니 개안나."
"어, 어. 괜찮아, 괜찮아."
급기야 헛구역질까지 하는 내가 걱정이었는지, 안쓰러운 얼굴로 등을 토닥이던 양희연이 내게 생수통을 하나 까서 건네줬다. 고마운 배려다.
"땡큐."
"천천히 마셔라. 체할라."
"설마 이 나이에 물로 체하겠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 요놈아."
차 안에 있었던 물인지, 살짝 미지근해진 생수로 입까지 헹구고 나니 조금은 살만해졌다. 트렁크에 싣고 온 대회에 쓸 도구를 내려놓던 성 셰프가 미안한 눈치로 얕게 웃었다.
"아하하, 미안타. 내가 운전이 좀 험해가."
"아뇨. 뭘요. 여기까지 바래다주신 것만도 감사하죠."
안 그래도 짐이 무거웠는데, 그걸 둘이서 들고 다녔을 생각을 하면 벌써 다리가 풀리는 기분이다. 대회에서 조리도구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물, 즉 접시와 냄비 등 음식을 담을 예쁜 용기다.
대회가 대회이니만큼 가게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접시 중에서 미리 골라두었던 것을 챙겨온 건데 가짓수가 제법 많아 묵직했다. 박스에 안 깨지도록 담아오느라 들기도 불편했고.
속을 달랜 나와 양희연이 기물을 제외한 짐을 마저 챙길 때까지 떠나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던 성 셰프가 운전석 차체 위로 살짝 몸을 기대곤 말했다.
"찬혁아, 희연아."
"예?"
"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
사장님은 아까처럼 어딘가 미안한 눈길을 우리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달라졌다는 건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렇게 된 거 확실히 하는 것도 지켜봐 줘야 하는디, 가게 준비도 해야 하고, 이만 가봐야 쓰것다."
끝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몇 번이고 차 문을 여닫기를 반복하는 성 셰프를 양희연이 재촉했다.
"알겠다. 빨리 가라! 누가 보면 아 군대 보내는 줄 알겠다!"
"야 인마……."
하필 비유를 해도 꼭 지 같은 것만……!
그 성질을 '갈게, 가!'라며 똑같이 큰소리로 맞받아친 성 셰프가, 손짓으로 인사함과 동시에 차를 몰아 떠난다.
주차장 출구를 지나 머리를 꺾어 사라지는 그녀를 배웅한 우리. 짐을 내려놓고 손을 흔들던 희연이 녀석은 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손을 내리고 다시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서로 묵묵히 짐을 챙기는 와중, 녀석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응?"
"아니, 원래 우리가 알아서 해결했어야 하는 긴디, 괜히 힘들게 하는 것 같아가."
"난 또 뭐라고. 신경 쓸 거 없어. 싫다는 사람 데려온 것도 아닌데."
양희연은 가게 같은 거 하루쯤 쉬고 나가든, 이도겸 실장님한테 부탁하든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구시렁댔지만, 아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좀 적을 때라면 모를까, 이렇게 오픈부터 사람이 꽉꽉 찰 정도로 바쁜 때에 성 셰프나 실장님 같은 핵심 인력이 빠지면 분명 서비스에 차질이 생긴다.
성 셰프는 그런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장사나 그런 걸 떠나서, 고객에게 항상 최선의 대접을 다하지 못하는 건 고객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10년 전부터 그랬고, 5년 후에도 그럴 테지.
일식, 양식 같은 전공을 떠나서 그저 한 사람의 요리인으로서 존경하는 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됐고, 들어가자."
아마 이 녀석도 언젠가 이해하는 때가 오긴 하겠지.
"아니, 솔직히 가게 매일 여는 거 하루쯤은 괜찮지 않나? 응?"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
이번 대회는 그 규모 상 대회장으로 사용할 장소가 굉장히 한정되는 문제가 있었다.
팀마다 최대 인원이 3명으로 제한되어 있다지만 그 팀이 스물이나 되면 최대 60명이나 되는 인원이 영역을 나눠야 한다.
물론 찬혁처럼 두 명이서 출전한 팀도 있고, 어느 팀은 혼자서만 출전하기도 했으나. 어찌 됐든 간에 인원이 적어도 주방 규모는 같아야 했으니 공간창출에 대해 개최를 담당하고 있던 공무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설 주방 20개를 설치하려면 기본적으로 실내에서는 굉장히 무리가 있는 법.
근데 여기서 부산시는 꽤 엄청난 발상을 해냈다.
"사직……쓸까?"
"쓸까? 써 버릴까?"
부산시의 명물.
애증의 대상인 자이언츠의 홈구장.
부산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라 불리는 야구가 열리는 부산시의 자랑 사직구장을 통째로 대회장으로 사용한다는 발상을.
"근데 괜찮을까요? 사람들이 경기장 상태 훼손하는 거 아닌가 말이 많던데요."
그러나 모든 일이 쉽게 풀릴 수는 없었다.
나름 신박한 해결책이라며 제법 관심을 끌던 이 사안은 가설주방 등을 설치, 해체하며 경기장에 훼손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려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어찌 된 인연인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부와 요리대회 담당 공무원 사이에서 기막힌 우연이 생겼다.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푸드트럭 창업 도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에서 푸드트럭을 구매하여, 심사를 통해 선발한 창업 의지를 가진 청년에게 트럭을 대여해주어 창업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한때는 대단한 발상이라 칭찬받았던 프로그램이지만, 푸드트럭 시장의 과포화로 인하여 창업자가 하향세를 그리고, 대여비를 내지 못한 차량이 반납되며 정부는 꽤 많은 수의 푸드트럭을 창고에서 썩힐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서 속된 말로 이 두 부처 사이에 아다리가 맞았다.
"야, 듣자 하니 너네 주방 필요하다며. 우리 좋은 거 있는데 이거 빌려 갈래?"
"응? 뭐야. 이거 있음 설치하고 해체하는 것 보다 훨씬 싸게 먹히네? 구장에 타이어 자국은 좀 남아도 롤러 몇 번 돌리면 싹 지워지겠고……. 이거다!"
그야말로 극적인 타결.
이리하여 추석연휴를 맞아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직구장 외벽에는 선수와 구단 포스터 대신 요리대회 포스터가.
그리고 마운드 위에는 선수 대신 스무 대의 알록달록한 푸드트럭이 곧 찾아올 또 다른 선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탑차 뚜껑을 활짝 열고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야. 너 예선 치를 때도 이렇게 했냐?"
"아니, 그냥 평범하게 실습 시험장 가가 했는데."
"……그럼 이건 뭐냐."
"……내한테 묻지 마라."
꿀꽈배기 봉지조차 입을 다물지 못할 충격적인 광경에, 참가자들은 그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마운드 외곽을 꽉 채운 수많은 트럭을 바라볼 뿐이었다.
덤으로, 찬혁 일행은 3루 바로 옆에 있던 푸드트럭으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어느 야구선수의 자리였다.
***
"와,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싱크대도 있다. 저거 함 켜봐라. 물 나오나?"
"보자, 어. 나온다. 물탱크가 따로 있나보네?"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우리가 사용할 푸드트럭에 들어온 우리는 짐을 옮기자마자 가장 먼저 기능점검을 실시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뭘 쓸 수 있고, 쓸 수 없는지도 살피지 않고 대회를 시작했다가 낭패를 볼 수는 없으니까.
수도, 가스, 전기, 정수시설, 안에 준비된 조리도구 등.
최대한 빠짐없이 꼼꼼하게 눈여겨보며 설비를 전부 살필 때쯤, 방금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진행요원이 다시 찾아왔다.
"B조 3팀 짐 정리 끝나셨나요?"
"아, 예."
"그럼 잠시 아까 들어오셨던 벤치로 좀 모여주시겠어요? 간단한 전달사항이 있거든요."
"예, 곧 가겠습니다."
아직 조금 할 게 남긴 했는데, 까라면 까야지 뭐.
건드렸던 설비와 도구를 전부 원래 있던 대로 정리하고 진행요원이 말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마침 다른 팀도 모이기 시작했는지 들어올 때 보였던 면면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50명 쯤 되나…….'
생각보다 숫자가 많다.
몇 사람은 벌써 조리복까지 입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의 가슴팍에 박힌 자수를 본 내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무라쿠모.
'……저기구나.'
어제 양희연 녀석이 알려주었던 주의해야 할 가게 중 하나다. 과연, 얼굴만 봐도 노련미가 물씬 풍겨나오는 게, 저 옷을 입은 요리사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생긴 조리복을 입은 사람이 또 두 사람. 마치 수행원이라도 된 것 마냥 처음 본 남자의 뒤로 따라붙어 있다.
"저기, 좁다. 요리 불편해다. 사람 줄이겠습니다."
"그건 셰프 마음대로 하세요.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이 더운 날씨에 잘도 저렇게 입고 있네. 안 덥나?'
같은 팀……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팀 정원은 세 명인데 저 사람까지 하면 네 명이고, 뭣보다 조리복조차 입고 있지 않은 걸 보면 그냥 관계자인 듯했다.
"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양복차림의 남자가 갑자기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까만 선글라스 위로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는 게 보인다.
'아차.'
너무 보고 있었나.
아닌 척 꾸벅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리려던 찰나, 그가 갑자기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해봤자 몇 미터 안 되는 거리, 얼마 안 가 내 앞에 선 남성이 내게 말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니?"
"예?"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아뇨. 잠깐 눈 둘 곳이 없어서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괜찮아. 오히려 내가 좀 예민하게 굴었구나. 미안하다."
친절한 사람이다. 근데, 뭐라고 할까. 묘한 분위기다. 말이 한겹 덧씌워진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분명 말투는 친절한데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내 소개를 안 했구나. 난 김종권이다. 일식당 무라쿠모의 사장이야. 만나서 반갑다."
"아, 예. 반갑습니다. 일식당 스즈 대표로 나온 류찬혁이라고 합니다."
"……선수? 혹시나 했는데 굉장히 어리구나. 그나저나 스즈라……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아하하, 아직 좀 규모가 작은 곳이거든요. 이번 기회에 가게 홍보하려고 왔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옆에 서 있던 양희연이 움찔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좀 참아라.
"그래, 본선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실력 있는 식당이겠지. 열심히 하렴."
"……예. 감사합니다."
간단한 악수를 나눈 직후, 참가자가 아닌 이는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는 진행요원의 말에 그 또한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도중, 옆에서 양희연의 성난 목소리가 내 고막을 찔러온다.
"마! 니 말이면 다가!"
"아니 좀, 그냥 인사치례잖아. 넘어 갑시다 우리."
"……그나저나, 저 아저씨가 그 무라쿠모 사장이라꼬?"
"자기가 그렇다는데 뭐, 거짓말은 아니겠지. 요리사는 아닌 것 같지만."
"응?"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나는 짧게 답했다.
"손에 굳은살이 없어. 적어도 요리하는 사람은 아니야."
"니 그런 것도 아나."
"누구든 알 걸. 당장 너도 손에 굳은살 엄청나잖아."
"지금 시비거나."
"칭찬이야."
"무, 뭐라카노?!"
슬슬 그 반응도 재밌어지기 시작했는데.
아무튼, 저 김종권이란 사람이 무라쿠모의 사장이란 건 정말인 듯했다. 그 가게 조리복 입은 요리사와 대화하던 걸 보면 그건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거짓말을 안 한 건 아니겠지만.'
스즈를 모른다고?
뻥치고 있네. 자기 딴에는 잘 속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건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우리처럼 영세한 사업자도 다른 본선 진출자들을 조사했는데, 설마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일식당을 운영한다는 사장이 그런 사전조사도 안 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은 의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수수께끼가 하나 늘어난 채, 대회는 개막을 앞두고 있었다. 시린 새벽녘 푸른빛이 하늘에서 자취를 감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