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34화 (134/403)

134. 부산행.-6-

주최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대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참가자에게 친절하지 못한 시스템을 갖기 일쑤다.

예를 들면 보통 국가 조리자격증 실기에서 메뉴 두 개를 만드는 데에 주어지는 시간은 대략 60분 내외. 이때 만드는 요리는 육수를 뽑는 등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은 대충 시늉만 하며, 맛보다는 외관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에 비해 이런 시식 심사 요리대회에서 주어지는 시간은 평균 90분 정도. 아무리 막 자격증을 따는 시험자와 대회 참가자 사이에 엄청난 실력의 격차가 있다지만 요리 하나의 퍼포먼스를 완전히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금 부족한 시간.

거기에 더해 어떤 대회에서는 조리시설의 열악함이 문제가 된 적도 있었고, 또 어느 곳은 채점방식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점수에 문제가 제기된 적도 있다.

그렇다고 이게 딱히 무슨 참가자에 대한 차별이니 뭐니 하는 불합리한 이유 때문에 생기는 일은 아니다. 그저 주최자가 관객과 심사위원 입장으로 보기 편하게 대회를 구성하다 보니 만들어진 구조적 결함이라고 할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돈을 써서 대회를 여는 건 그쪽인데. 참가자야 밑져야 본전이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니도 대회를 많이 나가긴 했구나."

"응?"

"많이 안다 싶어서."

"뭐, 나름 대회반이잖냐. 건너건너 들은 게 많을 뿐이지."

구시렁대던 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양희연이 신기하다는 듯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작은 감탄사를 뱉었다.

푸념은 잠시 내려두고, 슬슬 내일 열릴 대회에 대해 깊게 알아보기로 마음먹은 우리. 양희연이 같이 가져온 대전표를 대회규칙이 적힌 인쇄물 위로 펼치고 한 점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이게 우리다."

"흠."

대진표의 모양새가 제법 특이하다. A, B, C, D로 나누어진 네 개의 조. 그리고 한 조에 속한 다섯 개의 팀.

각 조마다 2번의 라운드를 거치며, 1라운드에 두 팀씩, 총 네 팀을 탈락시켜 마지막 남은 다섯 팀이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많네."

"그치? 말도 마라. 예선엔 더 했다."

본선에 진출하는 팀만 총합 스물인데 예선은 어땠을지 생각하니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하긴. 우리나라 요식업계가 원체 과포화 상태긴 하지만, 특히나 부산처럼 관광특수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지역은 현지인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식당의 수가 많다. 아마 관광객이 없다면 반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진짜 엄마야랑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니는 절대 모를끼다."

그 뒤로도 한창 여름방학 때 벌어진 예선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녀석의 기세에 눌려 말을 끊을 생각도 못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기를 십여 분.

간신히 할 말을 마친 듯 언성을 줄인 양희연은 그러고도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는지 대진표를 들고선 나를 향해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야가 꼭 해주라던 말 있었는데."

"뭔데?"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조금 질린 나머지 표정이 찡그려졌지만, 희연은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주의해야 하는 가게가 몇 곳 있다. 잘 하는 곳."

"……. 흠."

장난스럽게 실실대던 양희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중해졌다.

과연, 이건 아까 예선 이야기처럼 대충 듣고 넘길 건 아닌 것 같다.

***

그렇게 찬혁과 희연이 대회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여타 가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한 점포 당 10만 원이라는 거의 명분에 가까운 참가비를 내고 도시 전체에 가게 간판을 내보일 기회는 결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인터넷이나 잡지 등지에서 맛집이라 소문이 자자한 식당.

이제 막 신장개업하여 고객의 주목을 모을 필요가 있는 식당.

전성기에는 원조식당 딱지를 달고 승승장구했으나, 지금은 하락세에 접어들어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식당.

그저 개인과 식당의 명예를 위해 참가하는 식당.

그 외에도 본선에 올라온 수많은 실력 있는 식당의 점주들은 대회 우승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태세로 임하고 있었다.

"사장님? 주방이랑 홀 정리 다 끝났는데 왜 안 들어가세요?"

"내일 대회 아니냐. 나가기 전에 조금만 더 연습하려고."

"사장님도 참…… 어차피 반평생 주방에만 계셨으면서 뭘 더 연습하시게요."

"모르는 소리 마라. 칼도 썰기 전에는 날을 세워주는 거야.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냐. 상관 말고 얼른 들어가 봐."

"참 대단하시다니까. 그럼, 먼저 가볼게요. 힘내세요."

"오냐."

이렇게 대회에 앞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는 인물도 있는 한편……

"으흠흠, 종권이 여기 있나?"

"아, 회장님! 요즘 왜 이리 얼굴 보기가 어려우십니까! 자자, 이쪽에 앉으세요!"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길을 고르는 이 또한 분명 있었다.

부산 외곽, 오는 사람만 온다는 값비싼 산중요정山中料亭.

어둑한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는 호롱불 아래 모인 두 남자.

한쪽은 부산 요식업회 회장이자, 내일 있을 추석 특집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은 진영배 회장.

다른 한쪽은 그 대회의 참가자이자 부산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대형 일식집을 운영하는 김종권 사장.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수상쩍은 두 남자는, 그들만으로는 도저히 다 먹지 못할 만큼 푸짐하게 차려진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진영배에 비해 환한 웃음을 머금은 김종권.

그렇게 잠시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던 그들 사이의 침묵을 먼저 나서 깨트린 김종권이 웃음을 지은 그대로 술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먼저 한 잔 받으시죠."

"아니, 이보게. 종권이."

"팔 떨어집니다. 어서요."

"…….고맙게 받음세."

청록색으로 반짝이는 비취 주전자.

그 주둥이에서 흘러나온 투명한 술이 진영배의 잔을 채우자 은은한 술 향기가 별실을 가득 채운다.

"여기 주인장께 부탁해 특별히 공수한 삼해주三亥酒입니다."

"…….그 귀한 걸 용케 준비했군."

"돈이면 안 될 게 어디 있겠습니까."

"돈만 있다고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은 아닐 텐데."

"그건 돈이 모자란 사람이나 그렇겠지요."

자본만능주의에 뼛속까지 물든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으나, 진영배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 앉은 남자는 흔히 말하는 돈지랄의 화신 같은 이였으니까.

처음 가게를 지을 때부터 상가를 돈으로 밀어붙여 갈아 엎어버리고 자신의 가게를 아예 새로 건축하여 세운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그 거대한 가게를 현지에서 목돈을 주고 고용한 현지 요리사들로 가득 채우고, 다른 이들을 자본으로 압박하여 돈으로 그 지역 음식상권의 정점에 오른 남자.

대체 돈이 어디서 나는 건지, 소문으로는 선친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엄청나다는 소문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할 뿐이다.

서로 술잔을 부딪쳐가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나름 부족함 없이 사는 진영배라도 쉬이 먹기 힘든 귀한 삼해주와 산해진미로 만들어진 안주.

평소 대식가로 소문난 진영배라면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했을 터이나, 장소에 깔린 분위기 탓에 이미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즐길 마음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김종권은 그에게 농담을 건네곤 하며 여전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진영배는 알고 있다. 그것이 독사의 웃음이라는 것을.

그의 자본에 밀려 피눈물을 흘릴 상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부산 요식업회의 전대 회장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그런 김종권의 폭주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만큼 그와 뒤에서 이어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듣자 하니 이번 재개발에서도 한몫 톡톡히 잡았다던데…….'

토지 재개발 사업이 공표되기도 전에 이미 그 지역에 엄청나게 땅을 사들였다고 했던가, 그와 암암리에 이어진 정치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이미 상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이보게, 김종권 사장."

"…….예. 회장님."

결국, 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진영배가 먼저 칼을 뽑아들었다. 진영배의 날 선 시선이 김종권을 향한다.

"미리 말해두지. 자네가 나한테 뭘 바라는지는 몰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말이 요식업회 회장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고작 명예직에 불과해. 실무적으로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사안은 그렇게 많지 않아."

"예. 압니다."

"그걸 알면 대체 왜 날 부른 건가?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자네 말을 잘 들어줄 텐데 말이야."

진영배의 날카로운 시선 앞에서, 김종권은 그저 변함없는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기울였다.

한 모금, 두 모금.

천천히 술잔을 비운 김종권이 잔을 내려놓았을 때,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저 사람 좋은 환한 웃음이 아니라, 비릿함을 숨긴 독사의 얼굴이었다.

"하하, 뭔가 착각하시는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부탁을 할 생각이 아니거든요."

"……."

"내일 열리는 추석연휴 요리대회, 제 가게에서도 참가했다는 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알지. 자네 가게가 가장 주목받는 곳 중 하나였으니까."

이 시점에서, 진영배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추 깨달았다.

"김 사장, 혹시 내게 편파 판정이라도 내려주길 바라는 건가?"

어느 의미 정곡으로 꽂힌 말에 김종권이 놀란 시늉을 하며 펄쩍 뛰었다.

"아니, 편파 판정이라뇨?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저희 가게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그게 편파 판정이 아니면 대체 뭐냐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꾹 참은 진영배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네가 그럴 필요가 있나? 용병을 고용했다고 벌써 소문이 자자하던데. 가만히만 있어도 수상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

"맞는 말씀이지만, 제가 조금 더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요. 하하."

확실한 걸 좋아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심사위원인 자기와 독대하는 위험을 무릅쓰다니, 전혀 반대되는 말이지 않은가.

"사실 제가 이번에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승? 자네가?"

"예."

대회에서 우승을 노린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충분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다크호스. 이상하다. 진영배는 생각했다.

'뭔가 있어.'

"……우승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보군."

"역시 회장님! 눈치가 좋으십니다."

"잔말 말고 말해보게. 대체 뭣 때문에 우승에 집착하는 건가?"

거칠게 쏘아붙이는 진영배에게 여유가 너무 없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준 김종권이 다시금 술을 들이켜고는, 잔을 내려두고 담배를 물었다.

그 무례한 태도에 헛숨을 삼킨 진영배였으나, 김종권은 그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올해 말, 프랜차이즈화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화라고?"

아무리 뚝심이 좋기로 소문난 진영배라도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종권의 가게, 무라쿠모むらくも는 떼구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 업장의 덩치를 불리는 것에만 집중해왔다.

처음에는 대형 1층으로 시작한 식당이 지금은 리모델링과 증축을 반복하여 3층 전체를 사용하는 식당으로 변했을 정도로.

그런 그가 갑자기 프랜차이즈화라니, 누구나 할 만한 발상이라지만 그 말이 김종권의 입에서 나올 줄은 진영배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심중은 알 수 없지만, 우승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승과 동시에 프랜차이즈화 깜짝 발표. 분명 홍보하기에 이만한 기회는 없을 터. 우승에 집착하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이보게, 김 사장."

하지만, 진영배는 그 파도에 올라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슨 대단한 보상을 해줄지 모르겠지만 그런 눈에 띄는 판에 함부로 몸을 담았다가 탈이라도 난다면 분명 곱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현재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미안하네만, 그 제안은 못 들은 걸로……."

그리고 김종권은, 전영배가 그리 나오리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회장님. 아드님이 한 분 계시죠?"

"!"

"전역한 지 이제 곧 10년이 다 되는데 아직 변변찮은 직장도 구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군대에서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나와서 평생 뛰지도 못할 신세가 됐는데 유공자 신청도 반려됐다던가요.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그렇기에,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함께 그를 찾아온 것이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대회, 저희 가게가 우승한다면 자제 분을 저희 2호점의 점장으로 받죠. 물론, 서류상으로 올라간 이름일 뿐입니다. 이름은 있지만 존재는 없는, 그저 가게의 매상 일부를 연금처럼 받으면서 편히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봐, 당신!"

"그렇게 된다면 저희가 성공하는 게 회장님 입장에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본인만 생각하실 게 아니라, 훗날 사장님이 떠난 뒤에 아드님이 살 방법도 미리 준비해 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영배의 허망한 눈길이 김종권을 향했다.

그는 독사였다.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어 드러난 살갗을 깨무는, 맹독을 가진 독사.

"어떻게 하시겠어요?"

"……. 내, 생각해두지."

그날, 두 사람은 요정의 대문 앞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세간 사람은 알지 못할 야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누군가가 다음 날 대회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도.

누군가가 새벽 늦게까지 숫돌에 칼을 갈고 있을 때도.

누군가가 계략의 성공에 흥겨워 이른 축배를 들 때도.

시간은 막힘없이, 언제나 등속으로 흐른다.

별빛이 빛나는 밤을 지나, 눈꺼풀을 서서히 닫는 그믐이 밤의 장막 너머로 사라지고.

드디어. 대회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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