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부산행.-4-
'장어를 건들겠다고?'
김재훈은 보무도 당당히 뒷주방으로 들어가는 찬혁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현지 장인도 까다로워하는 걸, 고작 17살 꼬마가?'
그는 찬혁의 호언장담이 그저 허세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어는 그만큼 다루기 어려운 생선이니까. 김재훈 자신조차 장어는 감히 거들떠보지도 못할 정도로.
'저런 어린애가 어떻게 우리 가게를 대표할 수 있다는 거야.'
김재훈에게도 자부심이 있다.
일식의 길을 걷는 요리사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이제 들어온 지 1년이 조금 안 된 신참이지만, 여태껏 겪어본 어느 주방보다 쿡의 입장을 살피고 부족함 없게 돌본 성미설이 가꾼 스즈라는 가게에 대한 자부심.
성미설의 본가인 운류에서 기술을 배운 이도겸이나, 이제 곧 실장으로 올라가 앞주방에 설 예정인 원철이 나선다면 모를까, 이래선 굴러들어온 돌멩이가 박힌 돌을 빼내는 꼴이지 않은가. 그것도 어디서 어떻게 굴러온 건지도 모르는 돌멩이가.
그건 김재훈에게 있어 대단히 불쾌한 처사였다. 자신은 고사하고 그의 두 상사나 성미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가게를 도매금 취급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만약, 그 꼬마가 정말 제대로 장어를 다룰 줄 아는 녀석이라면…….'
과연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재훈은, 그럴 자신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
이 업계는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곳. 자신을 증명한 이에게 증명하지 못한 이가 무어라 논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
착잡한 심정으로 앞주방과 뒷주방을 잇는 출입문을 바라보던 도중, 드디어 등장한 찬혁의 모습에 일동이 자세를 바로 했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처음 성미설에게 테스트를 받았을 때처럼 조리복을 입고, 커다란 쟁반 가득 여러 조리도구와 재료를 싣고 온 찬혁이 다찌석에 앉은 그들 바로 앞에 서자마자 무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 우나기보초うなぎ包丁가 있으면 혹시 빌릴 수 있을까요? 제가 아직 구비를 못 해서……."
우나기보초. 다른 재료가 아닌 장어만을 손질하기 위한, 장어를 다루기에 앞서 필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도구.
이 순간, 김재훈은 성미설의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진심으로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아하하! 그래. 내 거 빌려줄게. 고 아래 서랍에 있다."
"감사합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내 옆을 삿대질하는 성 셰프의 말에 따라 서랍장을 열고 칼을 꺼내 들었다.
"오, 관동식이네요?"
"오메야, 니 그런 것도 아나?"
"나름 요리사 지망생이니까요. 공부는 잘 해야죠."
"모르는 아도 많은데, 참말로 기특하네."
"하하……."
세계 어느 나라의 식칼과 비교해도 굉장히 특이한 모양새.
꼭 사다리꼴 도형을 길게 늘여 반으로 뚝 잘라낸 것 같은, 곡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칼날은 우나기보초, 장어칼 중에서도 관동식 장어칼이 가진 특징 중 하나다.
관동식 외에도 가죽 자르는 칼처럼 쇠막대 끝에 날만 덩그러니 있는 오사카식, 도끼처럼 생긴 교토식, 길이를 재는 자처럼 생긴 나고야식 등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가진 장어칼이지만, 그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직선 구조와 두꺼운 칼날이다.
장어의 억센 뼈를 가르기 위한 두꺼운 칼날, 장어 특유의 점액을 긁어 제거하기 위한 직선 구조.
다른 칼이 가진 장점을 전부 포기하고 오로지 장어만을 위해 만들어진 칼이기에, 그만큼 장어를 손질하는 데 있어선 이만한 것도 없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야. 마음껏 해봐라."
성 셰프의 호응에 힘입어 드디어 칼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 자기소개 이후로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도겸 실장님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류찬혁 학생. 장어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예?"
칼들 들자마자 들려온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특유의 짙은 눈썹을 살짝 기울인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겸 실장님의 얼굴을 본 나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은 뒤 답했다.
"음…… 글쎄요. 솔직히 잘 알고 있다고는 못하겠네요."
"…… 그건 어째서지?"
모르는 걸 왜 모르냐고 물어보면 돌려줄 말이 없는 게 보통이겠지만, 이 장어라는 녀석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워낙 신기한 생선이잖아요."
"그렇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수긍하는 실장님에게서 도마로 눈을 돌린 나는 작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말을 이었다.
"장어는 한, 중, 일 같은 동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영국 등지의 유럽에서도 식용으로 쓰이는 생선인 데다가, 특히 이쪽 문화권에서는 장어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장어의 생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게 많지 않을 정도로 수수께끼에 쌓여 있으니까요."
신경을 마비시킴과 동시에 점액을 약간이나마 굳게 만들어 제거하기 편하도록 얼음물에 담아놨던 장어를 대야에서 꺼낸 뒤, 아가미 바로 뒤쪽을 살짝 내리쳐 척추만 끊기도록 칼집을 낸다. 이래야만 해체 도중 몸부림쳐서 살이 상하지도 않고, 사람이 다치지도 않는다.
그 후 장어의 턱뼈 바로 뒤, 잡아당겨도 뼈에 걸려 살이 찢어지지 않는 부위에 송곳을 꽂아 도마에 고정. 몸통이 얇고 길며, 미끄러운 장어를 손질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작업이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태어난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만, 장어는 그 반대죠. 바다에서 태어나 성체가 되는 시기가 되면 일부는 바다에서 살고, 일부는 다시 강으로 돌아오죠. 산란기에는 바다 중에서도 특정한 장소에 알을 낳는데 이때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반년이나 걸린다니, 신기한 일이에요. 산란을 위해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선이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게다가 치어는 생긴 것도 장어랑 완전 딴판이라 오죽하면 학자도 처음에는 다른 생선인 줄 알고 새로운 학명을 붙여줬으니까요. 아마 치어 때랑 성체 때 학명이 다른 유일한 생선 아닐까요?"
송곳으로 고정한 장어를 몇 차례 훑어 몸이 일직선이 되게 만든 뒤, 처음 만든 칼집에서부터 등의 지느러미 라인을 따라 장어칼의 뾰족한 끝부분을 이용해 정중앙을 쭉 긋는다.
이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척추에 붙은 억센 갈비뼈를 확실히 잘라낼 것, 펼쳐진 모양이 되어야 하므로 배에는 칼날이 닿지 않게 할 것.
장어는 지역에 따라 배 쪽에서 칼을 넣어 펼치는 배 가르기, 등 쪽에서 칼을 넣어 펼치는 등 가르기가 있는데 내가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장어는 알에서 태어날 때도 신기하지만, 성장 과정을 보면 더 신기하죠. 성장환경에 따라 모양새가 완전히 다르게 바뀌니까요."
활짝 열린 장어의 척추를 단숨에 잘라낸 뒤, 칼날을 수평으로 세워 내장을 긁어내고 칼끝으로 갈비뼈와 지느러미를 제거한다. 직선 구조의 강점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풍천에서 자라면 뱀장어, 강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다에서 자라면 붕장어, 갯벌에서 키우면 갯장어가 된다니, 꼭 게임에서 나오는 생물 같지 않나요? 왜, 전기 쥐가 나오는 그 게임처럼 말이에요."
"아하하, 맞네."
익숙한 이야기가 나오자 재미있다는 듯 웃는 성 셰프에게 마주 끄덕이며 작업을 이어나간다.
잘라낸 척추와 지느러미, 머리를 한 차례 물로 씻어 점액과 핏물을 닦아낸 뒤, 이걸 한 차례 직화로 구워 색을 내주고 아침에 사용한 뒤 보관해두었던 다시마와 가츠오부시를 꺼내어 함께 섞어 소스의 베이스가 될 육수를 만든다.
"그 가츠오부시랑 다시마…… 한 번 사용했던 거로군. 2번 다시를 쓰는 건가?"
"예. 1번 다시는 가츠오 풍미가 너무 진해서 장어의 존재감을 가리니까요."
"센스가 있구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온 장어뼈 육수에 간장, 술, 미링, 설탕 등을 넣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뭉근하게 졸여주면 소스는 완성.
다음은 드디어 장어 손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작업을 시작할 차례다.
내가 다음 작업에 들어가려는 것을 눈치챈 이도겸 실장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꽂기 3년, 손질 8년, 굽기 평생.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알죠. 유명한 말이잖아요."
숯불에서 철망 위에 얹어 장어를 굽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장어를 구울 때 꼬치를 꽂아 굽는다. 번거로운 방식이지만, 일본의 장어 굽는 문화가 그런 식으로 발달한 데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
이유는 이후 직접 시연할 테니, 지금은 우선 집중. 이건 나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할 확률이 큰 작업이다.
하지만 이도겸 실장님은 내게 그럴 여유를 주고 싶지 않은 듯,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넸다.
"손질과 굽기는 솜씨가 필요하다 쳐도, 고작 꼬치를 꽂는 데에 그토록 많은 연습이 필요한 건 어째서일까?"
"분명 '고작' 꼬치를 꽂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겠죠."
"흠. 계속해봐. 말로 말고, 행동으로."
"예."
장어에 꼬치를 꽂는 건 보는 것만큼 쉬운 기술이 결코 아니다.
살과 껍질, 그 사이의 얇은 기름층이 있는 곳에 정확히 꼬치를 투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너무 살 가운데에 꼬치를 꽂으면 굽는 과정에서 살이 뭉개져 꼬치가 빠져 버릴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껍질에 너무 가깝게 꽂으면 꼬치가 장어를 뚫고 나와 버린다.
'그 미세한 층을 손끝의 감각으로 찾아 뚫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패하면 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최대한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간신히 꼬치를 정확하게 꽂는 데 성공했다. 음, 내가 봐도 이건 훌륭하다.
'좋아!'
여기까지 잘 됐다면, 남은 건 쉬운 일 뿐…… 은 개뿔. 이제부터가 제일 어려운 과정이다.
굽는 과정, 이게 정말 어렵다.
숯을 피우기 위한 자리는 있지만, 숯이 충분한 화력을 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이번에는 아쉽지만 야끼화로를 사용했다.
장어를 구울 때는 먼저 껍질부터.
적당한 세기의 불로 시작해서 천천히 장어 내부에 화기를 침투시켜 기름을 녹이고 겉면의 수분을 제거해준 뒤, 그 후 센불로 굽는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장어의 구운 정도를 판단하는 건 오로지 요리사의 감각에 달려 있다. 너무 구우면 살이 퍽퍽해지고, 덜 구우면 살이 물컹거려 불쾌한 식감이 남는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상태를 판별하는 요리사의 솜씨.
'아직…… 아직…… 지금이다!'
순간의 판단으로 장어를 화로에서 빼내는 나.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장어를 꼬챙이에 꽂아 굽는 이유 하나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쪄내는 것.
진즉 세팅해놓은 찜통에 살짝 덜 구워진 장어를 넣어 찐 뒤, 그것을 꺼내자마자 재차 화로에서 소스를 발라가며 굽는다!
이렇게 찐 장어는 조직 사이에 빈틈이 커져 소스를 머금을 곳이 많아지지만, 그만큼 살이 으스러지기도 쉽다. 이때 꼬챙이가 손잡이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장어구이를 꼬치에서 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 뒤, 히츠ひつ라 불리는 상자처럼 생긴 대접에 갓 지은 밥을 깔고 장어소스를 흩뿌려 그 위에 얹는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어덮밥이지만, 히츠마부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히츠마부시의 중요한 포인트는 먹는 방법.
장어덮밥을 4등분하여 처음에는 그대로 먹는다.
두 번째에는 김과 실파, 와사비에 비벼 먹는다.
세 번째에는 육수를 부어 말아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 가지 중 가장 맛있게 먹은 방법으로 먹는다.
이를 위한 부재료를 함께 쟁반 하나에 담아 그대로 내놓으면……!
"히츠마부시, 완성입니다."
나고야의 명물. 히츠마부시가 완성된다.
***
찬혁이 그들 앞으로 내놓은 쟁반을 바라보는 일행은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여 있었다.
보기에도 완벽한 히츠마부시. 아마 분명 맛도 그 모양새에 뒤지지 않을 터.
'소스가 아쉬울 지경이군.'
이름 있는 가게의 장어소스는 쓰고 남은 소스에 새로 만든 것을 붓고 또 붓기를 반복하며 깊고 농후한 맛을 연출한다. 가게와 소스는 같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론, 스즈에서도 그런 소스를 따로 보관하고 있지만, 이건 개인의 실력을 보는 자리이니만큼 찬혁도 새로운 소스를 만들어 사용했다.
찬혁이 만든 소스도 분명 전통 작법을 따라 만들어낸 뛰어난 소스였지만, 이것은 그런 소스가 점수를 깎아 먹을 정도로 훌륭한 일품이었다.
맛볼 것도 없었다. 자기 입으로 주력이 아니라고 말한 일식에서 이 정도 솜씨라면, 분명 대회에서 기대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겠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던 그때, 갑자기 찬혁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꺼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요."
"……?"
"히츠마부시는 심심풀이로 먹기에는 좀 비싼 요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 뭐?"
그 말을 들은 이들 속에서 김재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원철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정작 그 말에 뜻밖의 반응을 보인 것은 다른 두 사람, 성미설과 이도겸이었다.
"하, 하하하하! 마, 니 이리 잘난 걸 맹글고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가?"
"…… 큽, 너는, 크흡, 어지간하면 어디서 개그 같은 거 하지 않는 게 좋겠다."
"…… 그렇게 재미없었나요?"
대체 저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원철과 김재훈.
그런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 차례 숨을 몰아쉰 이도겸이 말을 이었다.
"사장님. 전 이 정도면 불만 없습니다."
"그치? 내 말 맞제?"
"예. 이 정도면 당장 저희 앞주방에 세워도 되겠네요. 요리 중에 말 걸어도 실수도 없고, 대응도 잘 해요. 요리에만 집중하면 쇼맨십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정도면 대회에서도 제법 잘 하겠어요."
그제야 찬혁은 조리 도중 그가 그토록 쉴 틈도 안 주고 말을 건넨 이유를 깨달았다. 조리하는 중 누군가의 말에 대응하는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서.
그건 앞주방처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곳에서도 중요한 능력이지만, 대회처럼 누군가의 방해가 있을지도 모르는 환경에서는 특히 더 중요한 능력이기도 했으니까.
성미설은 이도겸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 뒤,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아니, 안 되겠다. 아는 아직 앞주방에는 못 세운다."
"예? 왜 그러십니까?"
"얼굴이 너무 딱딱하다 안카나. 생긴 건 훤칠하이 잘 생겼는디 인상을 너무 써가 무섭다. 손님들이 무서워가 밥도 제대로 못 무을 기다."
그 말에 확실히 그렇다며 수긍하는 이도겸.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아닌 찬혁 쪽에서 거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하!"
소리를 어떻게든 죽이려는 웃음이었지만, 정작 기세가 너무 커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섞일 만큼 당찬 웃음.
그 모습에 성미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야. 니는 또 와 웃노.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나?"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간신히 웃음이 멎은 찬혁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누구한테 듣던 말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그게 동일인물이란 사실은, 찬혁이 밝히지 않으면 영영 모를 테지만.
아마 그것을 앞으로도 알지 못할 네 사람은, 그런 찬혁을 이상한 얼굴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