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30화 (130/403)

130. 부산행.-2-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다는 듯. 찬혁은 얌전히 테이블 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조리복과 조리도구 등의 필요한 물건만을 챙겨 방금 성미설이 나온 뒷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꼭 자기 집에 온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거지. 누가 보면 여기서 이미 여러 날은 일한 것처럼 보이는 그 담담한 태도에 성미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얘, 혹시 뭐 미리 말해줬니?』

『아니. 아무것도. 엄마, 또 버릇 나왔어.』

『아이쿠.』

당황한 나머지 성미설의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일본어에 양희연이 같은 일본어로 대꾸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대화하며 한국말을 배운 희연과 달리 성인이 된 뒤에야 배우자를 통해 한국어를 배운 그녀로서는 아직 모국어가 더 익숙했기에 종종 나오는 습관이었다.

"고친다고 고치는데 잘 안 된다."

"꼭 고쳐야 하나? 뭐 나쁘다고."

"우리야 괜찮아도 남이 들음 무신 말 하는 지도 모른다 안 하나. 괜히 흉본다 칸다."

"걱정도 팔자야."

서로 장난스럽게 아옹다옹 거리기도 잠시, 웃음으로 가족 내전을 종식시킨 두 모녀가 대화를 이었다.

"근데 아무것도 안 알려 줬다고? 그 말 진짜가?"

"진짜래도 그러네."

"이상하네. 그런데 그리 당당하이."

그녀가 찬혁을 이상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느 주방이든 새로 들어온 신참의 실력을 주방장이 테스트해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지만, 그 메뉴를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주방장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메뉴는 간단한 단품 요리가 될 수도 있고, 테스트를 받을 사람이 중요한 일을 맡는 역할이라면 난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성미설이 가장 선호하는 테스트 방법은 일식 정식 만들기다. 프로를 기준으로 잡아도 어려운 과제지만, 그 사람의 메뉴를 정하는 센스나 조리하는 솜씨 등을 단번에 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으니까.

다만 성미설은 과연 이 테스트를 그대로 진행해도 되는지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딸아이가 직접 실력이 좋다고 추천해준 아이라지만, 학생한테 이렇게 어려운 과제를 주어도 되는지도 의문이었고, 그렇다고 이런 테스트도 치르지 않고 가게의 간판을 맡기기에는 그녀가 본인의 가게에 가진 자부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고민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와중에, 설명도 해주지 않았음에도 핀 포인트로 과제를 딱 집어 말하는 찬혁의 모습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찾아보니까 확실히 실력은 좋은 애던데…….'

서울시 배 대회, 푸드 엑스포.

그런 규모의 대회에서 17살의 나이로 수상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이미 실력은 증명된 셈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식의 경우였다.

아무리 기초가 탄탄히 잡혔다 한들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든 프로만 한 실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건 당연한 것이다. 음악으로 치자면 평생 거문고만 연습한 학생에게 바이올린을 들려주고 프로처럼 켜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딸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으니만큼 믿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그럼에도 아직 미심쩍은 심정을 채 버리지 못하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는 성미설을 향해 양희연이 핀잔을 흘렸다.

"걱정 마라. 쟤 잘 한다. 나 못 믿나?"

"그건 아닌데……."

"아니긴 뭘. 표정이 딱 봐도 근심만 가득 한데. 아 나오네."

뒷주방과 카운터를 잇는 문의 유리창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찬혁의 그림자를 눈치챈 양희연이 말을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조리복으로 갈아입은 찬혁이 본인의 칼과 재료 몇 가지를 들고 앞주방으로 나왔다.

훤칠한 키와 새하얀 조리복이 잘 어울리는 모습. 벌써 제법 요리사 태가 살아 있는 찬혁의 분위기에 감탄하는 사이, 들고 온 재료와 도구를 조리대 위로 옮긴 찬혁이 말을 이었다.

"준비 끝났는데, 바로 시작하면 될까요?"

"벌써? 메뉴도 다 정했나?"

"예."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 재료를 쓰임새와 순서에 맞게 가지런히 늘어놓는 찬혁을 향한 성미설의 의심이 기대로 점차 바뀌어가는 현장 앞에서, 드디어 찬혁의 요리가 시작됐다.

***

내가 지금부터 만들 음식은 일식 정식이다.

정식…… 이라고 해도, 정식에 들어가는 음식은 '이것이다!'라고 딱 정해진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백반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백반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저기는 무엇을 팔겠구나.'하고 단번에 아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 백반집에서 생선구이 백반을 팔지 돼지불백을 팔지 메뉴도 안 보고 어찌 알겠는가.

정식도 마찬가지다.

기본 중의 기본인 평범한 백반 정식부터 돈카츠나 규카츠 같은 카츠정식, 소바가 메인인 소바정식, 우동이 메인인 우동정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렇기에 다짜고짜 정식을 만들라고 한다면 메뉴 선정에 혼동을 느낄 사람이 많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예전 이 식당에서 처음 이것과 똑같은 테스트를 받을 때 만들었던 정식이 있으니까.

'튀김정식.'

일본식 튀김인 덴프라天ぷら를 메인으로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곁들이는 정식. 그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내가 이 메뉴를 고른 건 그저 메뉴를 고르기 간편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못 잊지.'

회귀 전, 이 테스트에서 처음 성 셰프에게 튀김정식을 선보였을 때 셰프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음, 그럭저럭 맛있네. 이쯤 하면 됐다."

가게의 오너에게 첫인상을 어떻게 심느냐가 걸린 중요한 테스트였기에 최선을 다해 만든 요리였지만, 결과는 그럭저럭.

분했다. 분했지만, 그게 정당한 평가라는 걸 납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점차 실력을 쌓아 그때보다 훨씬 성장한 뒤에도 그날의 평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추억의 메뉴로, 나는 재도전한다.

오늘은 내 첫 평가이자, 복수전이기도 한 것이다.

'자, 시작하자.'

만들 품목은 밥, 된장국, 차완무시, 땅콩소스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모듬튀김.

먼저 쌀을 불려둔 뒤 일본식 된장국인 미소시루를 만들기 위한 다시, 육수를 준비한다.

일본의 거의 모든 시루모노汁物의 기본을 이루는 가츠오다시는 기본적으로 단 두 개의 재료만 있으면 만드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바로 다시마와 가츠오부시지.'

다만, 그 두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료의 질과 육수를 뽑는 요리사의 솜씨. 후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전자 또한, 이 주방이라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

가다랑어의 살을 찐 뒤에 훈연하여 치즈처럼 엄격한 관리 아래 만드는 가츠오부시. 그중에서도 질이 좋은 녀석은 두드리면 마치 목탁을 두드리는 것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

'이렇게 말이지.'

─통. 통.

냉동고에 잘 보관되어 있던 가츠오부시는 기대한 대로 훌륭한 품질을 자랑했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츠오부시는 이런 덩어리를 미리 얇게 깎아서 판매되지만, 이 주방에서는 생산한 직후 모습 그대로인 가츠오부시를 직접 대패로 깎아 사용한다.

'솔직히 좀 귀찮기는 하지만 이것도 장점이 있지.'

대패의 날 각도를 조절해 가츠오부시의 두께를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것. 보통 얇게 깎은 가츠오부시는 고명용으로, 두껍게 깎은 가츠오부시는 육수용으로 사용한다. 지금은 당연히 두껍게 깎는다.

그리고 다시마.

다시마는 면적이 넓고 두꺼우며, 잘 마른 것을 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이것을 물에 넣어 삶아 맛을 빼주기 전에 석쇠 위에서 타지 않게끔 살짝 구워주는 게 중요한 포인트다.

앞선 작업이 모두 끝났다면, 먼저 냄비에 차가운 물과 다시마를 담아 천천히 온도를 올린다. 그리고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 다시마를 빼낸다. 이때 다시마를 꽉 꼬집어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면 충분히 맛이 빠져나온 것이다.

"잘 빠졌네."

음, 크게 힘을 안 줬는데도 자국이 선명하다. 천천히 온도를 올린 덕분에 맛이 잘 빠져나온 것이다.

그 뒤에는 한 번 팔팔 끓여 다시마 잡내를 날려준 뒤에 살짝 찬물을 부어 온도를 약간 낮추고 가츠오부시를 넣어 다시 한번 끓인다. 다만 이때는 아주 잠깐이면 충분하다. 거품을 제거하기 위함이니까.

거품을 제거하여 불순물을 제거했다면 불을 끄고 찬물을 조금 더 넣어 온도를 살짝 낮춰준 뒤 그대로 자연스럽게 식도록 시간을 준다.

이후 어느 정도 식은 육수를 면보로 잘 걸러낸 것을 1번 다시라고 한다. 새 다시마와 가츠오부시를 사용해서 낸 국물이라는 뜻이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진 않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이 다시는 다른 요리에도 고루 사용될 재료이니 더욱 신중을 기했다.

그 뒤에는 채소 손질.

가지, 호박, 버섯, 양배추, 파, 마늘 등의 채소를 용도에 맞게 손질하여 처리한다.

모든 채소의 손질과 뒷정리가 끝날 때쯤 충분히 식은 육수를 잘 걸러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요리에 나섰다.

잘 비벼 씻은 쌀을 작은 무쇠밥솥에 넣어 안치고, 얼음물에 중탕해 차게 식힌 가츠오다시와 계란, 속재료를 넣은 차완무시를 찜통에 넣는 것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메뉴는 끝.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만이 남았다.

튀김.

예상 소요 시간은 지금까지 사용한 시간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될 테지만, 아마 분명 그 배는 치열한 순간이 될 터. 완벽한 한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손은 눈보다 민감하니까.

***

『대단해…….』

한편, 이제 막 기름을 달구고 튀김반죽을 만들기 시작한 찬혁을 보던 성미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마디 감탄사를 입 밖으로 흘렸다.

장인.

그녀는 찬혁의 솜씨에 감히 그 말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모노츠쿠리物作り 정신은 현대에 와서는 늙은 세대의 아집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긴 했으나, 적어도 요리라는 업계에서 그런 정신은 여전히 대우받아야 하는 것으로 남았다.

물론 태생부터 전통 일본 요리사인 성미설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장인이라는 두 음절 단어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찬사였다.

사실, 찬혁이 요리를 막 시작한 직후 가츠오다시를 만들 때부터 성미설의 눈은 이미 더 커질 곳도 없이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요리책 등을 통해 가츠오다시를 만드는 기술 정도는 충분히 보편적이게 알려진 것이 되었으나, 그런 세간 속에서 저토록 근본에 가까운 다시를 뽑는 기술은 굉장히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그 뒤로 이어진 칼놀림이나 지금 튀김을 만드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주 차게 식힌 얼음물에 계란과 밀가루, 그리고 곱게 빻은 땅콩가루를 섞어 만든 튀김반죽에 심혈을 다해 정성껏 손질한 재료를 넣어 튀김옷을 입히고, 카놀라유와 참기름을 황금비율로 혼합한 기름으로 튀긴다.

튀김옷을 묻히는 기술, 기름에 넣을 때 재료를 움직여 예쁜 컬을 만드는 손목 스냅. 튀김옷 찌꺼기인 텐카스天かす를 재빨리 처리하는 순발력. 무엇 하나 칭찬하지 않을 것이 없었다.

'순서도 좋아.'

연근, 고구마, 단호박, 가지 등.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재료를 먼저 튀기고 그 뒤를 이어 두부, 새우처럼 단시간에 익는 재료를 튀긴다.

익은 튀김옷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다. 완벽한 온도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튀긴 찬란한 황금색.

꿀꺽.

침이 넘어갔다.

튀김요리 따위, 이제껏 수천, 수만 번은 만들었을 텐데. 고작 음식을 눈으로만 먹었을 뿐임에도 그 맛이 어떨지 너무나 기대되어 군침이 절로 솟구쳤다.

"좋아, 튀김 끝."

'드디어!'

찬혁의 조리 완료 선언에 성미설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입으로 외치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인내심과 품위를 지키기 위한 이성의 덕이 컸다.

1인용 치고는 제법 큰 쟁반 위에 찬혁이 만든 음식이 하나 둘 올라간다.

모락모락 하얀 김이 올라오는 포슬포슬한 밥.

만가닥버섯과 두부, 생미역이 들어간 향긋한 된장국.

꽃 모양으로 자른 당근조각과 표고버섯이 들어간 차완무시.

땅콩, 식초, 설탕으로 만든 소스와 잘게 다진 매실장아찌를 넣고 버무린 양배추샐러드.

마지막으로, 기름종이 위에 우뚝 솟은 원뿔 모양으로 장식된 황금빛 모듬튀김.

"완성됐습니다. 모듬튀김 정식입니다."

가츠오다시와 미림, 간장, 설탕 등을 넣고 끓여 만든 소스와 다이콘오로시를 별첨으로 건네주며 찬혁이 밝게 웃었다.

그 싱그러운 미소를 보며, 성미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찬혁에게 말을 건넸다.

"아야."

"예?"

"니 졸업하믄 우리 가게 평생 취직 안 할래? 우리 아 줄게."

"……예?"

별 황당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는 찬혁의 옆에서, 뜬금없이 계약금 취급을 당한 양희연의 분노에 찬 외침이 온 가게를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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