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25화 (125/403)

125. 지옥주-양.-5-

터덜터덜. 터덜터덜.

기숙사로 향하는 길.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걸음에 힘이 없다. 딱히 우울해졌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생각할 게 많았을 뿐이다.

'……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은 아닌 건가.'

세상에.

내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스타병 중증환자 같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근데 이게 진짜란 말이지……."

작은 한숨과 함께, 내 기억이 십수 분 전으로 돌아갔다.

***

"저 때문…… 이라뇨?"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잔뜩 띄운 내 질문에 선배는 설명하기 까다로운 눈치로 말을 고르다, 이윽고 내게 이 사태의 전말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하는데, 네가 너무 유명해진 게 문제야."

"? 유명해진 게 왜요?"

"그걸 알려면 우선 대회가 열리는 이유부터 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일단 잘 들어봐."

대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서라. 그건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바가 있다.

대회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선 당연히 그 대회를 주관하는 개최자가 있어야 한다.

보통 그 개최자의 역할을 맡는 건 기업이나 시, 군. 이전 엑스포처럼 규모가 커질 경우 국가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저런 단체들은 어째서 요리대회를 개최하는 걸까?

어느 행사건 마찬가지지만, 저런 행사를 한 번 개최할 때마다 깨져나가는 돈은 장난이 아니다.

시설, 홍보, 재료수급, 참가자 모집, 상금, 인건비.

그 외에도 세세하게 파고들면 돈이 나갈 구석이 한도 끝도 없는 게 행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저 사회환원의 개념으로 큰 비용을 감당하며 대회를 개최하는 것일까?

정답은 물론 '아니오'다. 국가나 시, 군이라면 어쨌든 기업이란 곳은 결코 무의미한 낭비를 자행하지 않는다.

그럼 어째서 그들은 대회 같은 행사를 개최하는가? 그건 바로 행사를 개최하여 얻는 이득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름이나 도시의 특산물에 대한 홍보, 미래에 성장할 인재에 대한 눈도장, 행사를 개최하여 얻는 이미지, 행사를 보기 위해 오는 관광객 등.

돈을 소모하는 곳이 많은 만큼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석도 많다.

그 모든 복합적인 득실을 계산하고 이득이 있다고 판단할 때 그들은 소비를 결심한다.

"근데 거기서 너, 정확히는 우리라는 변수가 생긴 거야."

"변수요?"

"응. 이번에 엑스포가 엄청 떴잖아. 근데 떠도 너무 뜨는 바람에 올해 대회를 개최해봤자 전부 묻히는 거 아니냐는 결론이 나온 거지."

이건 또 신박한 소리다.

"고작 그것 때문에요?"

"돈을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고작이라는 말로 끝날 게 아니었다는 거겠지."

이때 새삼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지금 성심고의 입지는 이 바닥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총출동하는 푸드 엑스포. 그곳에서 오직 학생으로만 꾸려진 팀이 3위에 입상한다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사태였던 듯했다.

"나 때도 비슷한 느낌이긴 했는데, 그때는 그나마 나만 학생이었잖니. 게다가 하반기 말에 열린 대회니까 이전에 열린 대회를 무를 수도 없는 시점이었고. 그때 제법 손해가 있었다나 봐."

과연, 한 차례 큰코다치자 그들도 학습을 했는지, 이번에도 작년처럼 손해를 보기 전에 진즉 발을 빼 버렸다는 것이다.

"와. 이게 스노우볼이라는 거구나."

준기에 입에서 나온 말에 일행 전원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선배가 깐 눈밭 비탈 위로 내가 굴린 눈덩이가 말 그대로 집채만큼 덩치를 불린 상황. 절반은 나 때문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쓰나미가 왔을 때 배를 띄울 사람은 없다는 거구나."

"세상에 포레스트 같은 사람이 진짜 있는 건 아니니까."

"댄 중위님도 이건 포기했겠지."

"거, 너네. 왜 그렇게 합이 잘 맞냐."

그 전에 왜 그렇게 그런 옛날 영화를 잘 아는 거야. 명작이긴 하다만.

아무튼.

결국 선배의 말에 뚜렷한 반박거리를 찾지 못한 우리는 얌전히 학교의 지침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커리어를 쌓지 못한다는 건 아까운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개인 출전이요?"

"응. 하반기에 국내 대회가 얼마나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 경비랑 연습비용은 확실하게 책임져준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불행 중 다행인 말이다. 언제 어느 대회에 나갈지는 몰라도 만약 먼 곳으로 간다면 경비는 큰 부담이 됐을 테니까.

'요즘은 돈이 좀 모이긴 했지만…… 이건 쓰지 말고 모아놨다가 나중에 대박 주식이라도 노려야지.'

마침 내가 성인이 막 됐을 쯤에 뉴스에도 나올 만큼 대박이 터졌던 주식은 이미 살피는 중이니까. 아마 별 탈이 없다면 돈으로 고생할 일은 없게 되리라.

"자,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 모두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들어가서 푹 쉬어. 내일도 해야 되잖아. 멸망전."

"아."

이런. 마침 잊고 있었는데.

날 향한 안창민과 백예은의 매서운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작별을 고했다. 미리 말하자면, 창민이 녀석이 통학하는 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눈총을 받았을 테니까.

***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뭔 소리야."

다음 날. 다시금 찾아온 전공탐색 수업시간.

어제 내가 했던 인성질과 그에 당한 B조 아이들의 원망어린 시선을 되새긴 나의 서글픈 말에 철정이 녀석이 개소리 작작하라는 듯 딴죽을 걸었다.

그래. 나도 안다. 이게 다 업보라는 걸.

저 무시무시한 시선 하나하나에 담긴 날 향한 증오심이 그야말로 심장에 비수를 꽂는 듯 내 전신을 타고 오한을 심어주는 이 상황을 만든 건 내 자신이다.

"하하…… 좀 봐줄 생각은…… 없어 보이네."

"혁아.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래."

"자기만 실컷 때려놓고 사지 멀쩡히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당장이라도 발레로 댄스배틀을 신청할 것처럼 구는 백예은과 안창민. 이 두 녀석은 특히 심각했다. 그야말로 날 묻을 의지로 가득한 눈빛에 살짝 기가 죽을 정도다.

"아……."

"망했네, 이거."

설상가상으로 우리 A조도 상대의 분노를 뼈저리게 느꼈는지 이젠 거의 반쯤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 순간 그들에게서도 날 향한 분노가 잠시나마 느껴졌지만, 이윽고 그게 괜한 감정임을 깨달았는지 금세 잠잠해졌다.

"음. 다들 기운이 팔팔하네요."

이 끔찍한 전쟁터를 그런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는 선생님의 배짱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냥 많이 봐서 익숙해진 걸까. 그건 그것대로 끔찍한데.

요 이틀간 그랬던 것처럼 조를 나누어 선 우리. 선생님이 정돈된 주방 상태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어때요. 두 조 모두 한 번씩 주방과 고객 역할을 맡아봤는데. 좀 익숙해졌나요?"

그 질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외쳤다. 물론 속으로만.

"다들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적응이 참 빨라요."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선생님 같으면 이게 익숙해질 것 같아요?'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으나, 선생님은 아랑곳 않고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에 잔뜩 한숨을 내뱉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이 힘든 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됐으니, 오늘을 기점으로 메뉴의 양을 늘려볼까 합니다."

경악.

A조 B조 가릴 것 없이, 학생들 사이로 낙뢰가 내리치듯 경악이 몰아쳤다.

'안 그래도 힘든데, 여기서 메뉴를 더 늘린다고?'

'아니, 늘릴 것 같긴 했지만, 벌써?'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는 아이들의 소곤거림.

마치 쪽배에 올라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술렁임이 아이들을 감쌌다.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이 수업의 요점은 점점 가팔라지는 난이도의 상승에 있다. 그 말은 즉, 언제든 때가 된다면 교사의 판단 아래 수업 자체의 난이도를 확 올려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아무리 그래도 벌써 메뉴를 늘리다니…….'

회귀 전의 경우에는 양식의 차례가 거의 끝날 때쯤이 돼서야 간신히 메뉴의 가짓수가 한 가지 늘어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끝나기는커녕 이제 겨우 사흘 차에 접어든 상황.

'당장 한 개 늘어나는 정도야 문제없지만…….'

진짜 문제는, 벌써 메뉴가 늘어난다면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선생님이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건…….'

적어도 우리의 성장세가 내가 회귀하기 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신다는 뜻.

그건 좋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실력이 향상될수록, 선생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더욱 많아질 테니까.

그리고 그런 나와 선생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바로 우리 반 녀석들의 힘이었다.

"오늘 메뉴는 정통 이탈리안입니다. 파스타와 피자. 파스타는 알리오 에 올리오와 까르보나라. 피자는 마르게리따와 고르곤졸라. 도우는 준비해놓은 반죽이 있지만 직접 소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10분 드리죠. 주방은 바로 준비 시작하세요."

젠장. 하필 또 이렇게 어려운 메뉴라니.

두 메뉴 다 준비만 잘 되어 있다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메뉴지만, 그만큼 오더로 인성질을 부릴 수 있는 폭이 넓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첫날보다 훨씬 쉽게 주방이 혼란해지리라.

과연 A조 아이들이 이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

하지만, 놀랍게도 선생님의 시작 선언 직후 이어진 우리 팀의 조장, 김철정의 행동이 그런 나의 우려를 통쾌하리만치 깔끔하게 깨부쉈다.

"얘들아, 얼타지 말고 시작하자. 찬혁아, 넌 파스타 쪽 담당해서 맡아주고, 승기야! 넌 피자 담당! 소스는 양희연 네가 맡자."

"남은 애들 다 기본은 되니까 적당히 셋으로 갈라지고, 각 담당에서 세 명씩 빠져서 재료 운반이랑 소분 도와줘. 파스타 주방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물부터 올려."

"피자 주방은 재료 만지기 전에 오븐부터 전부 세팅해놔. 온도는 그냥 최고온도로 해. 어차피 화덕보다 온도가 낮아서 그렇게 해도 문제없을 거야. 대신 굽는 시간 확실하게 조율하고."

와우.

이게 정말 그저께 얼타던 우리 조장님 맞나?

이건, 이건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이 녀석, 요 이틀 동안 엄청나게 공부한다 싶더니 그때 우리 조에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체크한 것 같다.

실력이 확실한 아이들 위주로 내세워 헤드 셰프에게 직통으로 상황을 전달받아 주방을 나누어 통제할 수 셰프로 삼고, 남은 아이들이 제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해서 얼타지 않도록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 지시.

'역시 이 녀석도 대단한 녀석이야.'

누구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판단으로 상황에 따른 올바른 지시를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주방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다니.

이거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선생님이 테스트 하위권에 있던 아이들을 굳이 조장으로 세운 이유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선생님의 의도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성장을 이룩해냈다.

그 증거로, 보아라. 선생님의 저 놀란 얼굴을. 박예휘 선생님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놀란 표정을.

그것을 본 내 마음이 기대로 부풀었다.

'이 통솔력만 잘 유지한다면…….'

분명 어떤 오더가 들어와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해볼만 하다.

주방을 수비, 고객을 공격이라고 본다면 어제까지의 전적은 서로 공격팀이 승리하여 1:1 동점.

만약 오늘 우리가 저들의 오더를 거뜬히 받아낸다면, 밸런스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이 멸망전을 수비팀의 승리로 끝낼 수 있다.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 아니냐?'

안창민과 백예은을 주축으로 한 B조 녀석들도 우리 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과연 오늘 웃는 건 어느 쪽이 될지, 그 결말을 스포일러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기분이 좋아진 건 처음이다.

'인생이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더 재밌는 법이랬지?'

인정한다. 과연, 그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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