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20화 (120/403)

120. 2학기 전야.-1-

학생에게 있어 여름방학이란 인생에서도 한정된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미성년자에게만 허락된 휴식기다.

물론 꽁으로 한 달 내내 쉬라는 게 아니라 숙제나 과제를 하거나 학원 등을 다니며 2학기에 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달이라는 시간은 반년 동안 학업에 몰두하며 전력 질주한 학생들이 그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

그리고, 지금 나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다.

어째서냐고?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바로 그 소중한 시간을! 정말 쓸데없는 전화 때문에! 잠도 못잘 정도로 낭비하고 있으니까!

'그만, 그만, 그만! 진짜 적당히 좀 못하나?'

핸드폰을 들고 한껏 터져 나오려던 괴성이 입속에서 맴돈다. 그저 긴 한숨만이 내 울분을 표출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간에 기별도 안 오는 수준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빌라에 우리만 사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소리를 빽빽 질러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사시사철 핸드폰을 꺼놓고 살 수도 없고…….'

쓸데없는 연락도 많이 오지만 그만큼 필요한 연락도 종종 오곤 한다.

당장 집에 돌아온 날 밤에 연락했던 사장님이나 친구들, 집에 잘 들어갔냐고 안부 전화를 돌리던 선생님 등등.

……사실 그것밖에 없지만.

아, 그리고 입금 현황과 기타 세금 문제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던 고영태 과장이라든가.

'엄청 좋아하시던데…….'

생각보다 훨씬 노출시간이 긴 덕분에 엄청난 탄력을 받았다며 좋아하던 고영태 과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대회가 끝난 직후에 꾸꾸 부스에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서 거대 트레일러 두 대 분량 정도를 현장에서 팔고 거기에 더해서 세 대 분량의 예약을 받았다던가.

당장 하루 만에 늘어난 매출을 따져보면 광고비에 비해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며, 추가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기업에서 먼저 나서서 돈을 얹어준다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마 내 생각보다 훨씬 어마어마하게 홍보가 된 것 같은데…… 사실 내 알 바는 아니다. 나야 뭐 이미 받을 만큼 받아 챙겼으니, 인연이 닿으면 다음에도 또 기회가 있겠지.

아무튼,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내게 연락을 보내는 이들은 대부분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을 나 몰라라 하던 친가 쪽 친척.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중학교 동창. 심지어는 대부업체나 영 수상쩍은 투자 제의를 하는 회사까지.

대체 어디서 내 연락처를 얻은 건지 전화, 문자, 인터넷 메일, 마스크북 메신저 등등. 온갖 경로를 통해 내게 닿는 연락만 하루 수십 건을 가뿐히 넘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 연락 전부를 커버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태다. 차단은 빠릿빠릿 돌리고 있는데 왜 숫자가 줄어들지를 않는 건지.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쉬는 것도, 뭘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정신 상태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벌써 금요일. 내일 모레에는 기숙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사무치도록 아쉬울 뿐이다.

내 시간……내 노력…….

후우.

짜증은 나지만 하는 수 없지. 어차피 내 번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조만간 바꾸든가 해야겠다.

─지이이잉.

아 근데 진짜.

질리지도 않고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는 단숨에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짜증이 난 표정을 지은 그 순간, 하필 좋지 않은 의미로 타이밍을 딱 맞춰 내 방으로 들어온 주아 녀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야! 돈 많이 벌었다며! 귀여운 동생 옷 한 벌만……!"

"……."

"……."

"……뭐. 계속 말해봐."

"아닙니다. 저 그냥 나갈게요."

그래. 가는 사람 안 말린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조심스럽다 못해 공손한 태도로 문고리 소리조차 나지 않게끔 문을 닫고 다시 나가는 주아 녀석의 모습이 퍽 웃겨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쟤는 보고 있으면 웃기기라도 한 게 장점이라니까.

살짝 물올랐던 짜증이 주아 덕분에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나는 녀석의 쓸모에 새삼 감탄했다. 방 바깥에서 이 안까지 들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엄마! 쟤 어떡해! 학교에서 왕따 당하나 봐! 완전 사람 하나 죽일 얼굴이었다니까? 아, 진짜루!'

야 인마. 대체 무슨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니는 거냐.

이후, 주아 녀석이 근거 없는 모함으로 내게 뒤집어씌운 살인미수 혐의는 누명이라고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에 대략 한 시간가량의 시간을 낭비했다.

젠장. 진짜 좀 쉬게 놔둬 줬으면 좋겠는데.

***

고통과 짜증의 굴레에서 번민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찬혁이 알게 된다면 통곡을 할 사실이었으나, 이토록 그가 외부의 시달림을 겪게 된 것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찬혁이 뜻하지 않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분명 우연의 일치에 의한 사고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의도가 분명히 가미되어 있는 계획적인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꾸꾸전자의 광고 건.

당초, 꾸꾸전자는 해외에서 바이럴 마케팅 비용으로 억 단위의 돈이 지출되는 상황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안영길 선생님이라면 우리도 잘 아는 분이라지만, 고작 학생들 대회에 그만큼이나 돈을 써야 하나?"

가장 먼저 고영태로부터 도착한 보고서에 적힌 계약 내용을 본 꾸꾸전자 임원진의 반응은 대단히 시큰둥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꾸꾸전자가 아무리 홍보란 분야에서 비용절감이란 단어의 뜻을 모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홍보 정책을 비판받는 업체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아무 생각 없이 대기업의 자리를 맡은 게 아니다.

연예인을 비롯한 스포츠 스타, 인터넷 방송인, 홈쇼핑 광고와 백화점 매석까지.

그 모든 투자는 어디까지나 돌아올 리턴의 기댓값이 투자 대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경영진의 판단 아래 진행된 것. 다시 말해 그들은 그다지 기대가 가지 않는 상품에 함부로 투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다.

"뭣보다 이 계약 내용은 뭔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계약을 한 거야?"

더군다나 상식을 파괴하는 계약 내용 또한 그들의 투자심리에 제동을 걸었다. 계약서 내용을 무슨 주사위 굴려서 결정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이 조건을 그대로 수용한 고영태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제기될만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예. 성심고 측과 제휴할 기회를 손에서 놓기는 아쉽지만, 이 제안은 적당히 퇴짜를 놓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쪽에서도 설마 이런 계약을 진심으로 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 적당히 쥐여주면 만족하겠죠."

안영길의 진심을 자기네의 상식으로 부정하던 그들은 결국 그런 결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뒤집은 것이 있었으니.

"저, 과장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응? 뭔데?"

엑스포가 폐막한 다음날. 쿠쿠의 문의 센터에 하나둘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신제품 출시 현황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중국에서 선발매한 신제품이 있다던데. 언제 판매 시작하나요?

─왜 꾸꾸전자는 한국 기업인데 중국 먼저 챙겨요? 한국에서도 신제품 정식 출시 빨리 시작해 주세요.

글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중국에서 열린 푸드 엑스포 요리대회에서 한국 팀이 사용했다는 전기밥솥 성능이 그렇게 좋다더라. 중국 쪽 커뮤니티 말로는 벌써 품귀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던데, 왜 한국에서 먼저 발매하지 않느냐. 빨리 한국에도 판매를 시작해달라.

대체적으로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고영태는 처음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전략을 사용하고자 했을 때, 바이럴 마케팅의 첫 번째 전파 시작 지점은 당연히 한국이라고 예상했었다.

한국 팀. 찬혁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 커뮤니티였기에 그 예상은 분명 타당했다.

하지만 고영태 또한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한국 팀이 보여준 놀라운 선전과 찬혁의 꾀가 그대로 적중한 제품의 노출 빈도, 그리고 그에 쐐기를 박은 심사위원단의 평가였다.

[한국 팀의 음식은 분명 굉장히 훌륭한 수준이었으나, 그 대부분이 밥이 없었다면 반쪽만도 못 한 요리였다. 밥과 한국 팀의 요리는 비익연리지교比翼連理之交와 같다. 어느 한쪽이든 부족하면 완성되지 못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높은 점수를 준 이유는 결국 밥맛이었다. 한국 팀이 만든 밥은 그들이 만든 요리를 거뜬히 감당해낼 만큼 수준이 높았다.]

결정타였다. 그 평가를 실시간으로 들은 관객들은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찬혁 일행이 홍보한 밥솥을 구매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는 어딜 거칠 것도 없이 곧바로 꾸꾸전자의 성과표에 반영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상황.

"세상에……."

"고작 하루 판매로 역대 최고 월매출 제품 판매량의 50%를 찍었다고?"

믿기지 않았으나, 임원진이 맞닥뜨린 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변하지 않는 현실.

거기에 더해 현장 구매자들이 그들의 커뮤니티에 올린 글의 상승효과에 힘입어, 중국에서는 날이 지날수록 꾸꾸전자의 신제품을 찾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꾸꾸전자의 대표는 칼을 빼들었다.

"탈 수밖에 없다. 이 빅 웨이브에!"

꾸꾸전자의 행동은 신속했다.

로비, 제의, 계약.

합법과 불법의 선 위를 줄타기하며 그들은 자국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사와 종이신문, 미식잡지, 공중파 광고, 홈쇼핑, 개인방송인 광고 등등.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뿌려가며 찬혁 일행이 성과를 이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사의 제품을 홍보했다.

아마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하리만치 빠른 확산세를 보고 분명 의심을 했겠으나, 우습게도 한국의 여론은 말 그대로 국뽕을 치사량으로 투여받아 인사불성이 된 지 오래였다.

아마 역사를 뒤져보아도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둔 바이럴 마케팅은 없을 터. 고영태는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덩치를 불려 버린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노우볼을 바라보며 코밑을 쓱 훑을 뿐이었다.

"인사고과 개꿀."

"과장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아내한테."

"……과장님은 결혼 참 잘하신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상황은 모두에게 좋게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꾸꾸전자는 돈과 '해외까지 나가 꿈을 펼치는 학생을 지원해준 참기업.'이란 이미지를 얻었고, 성심고는 '세계적인 대회에서 3위 안에 입상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운 어린 실력자들을 키운 학교.'라는 명함을 얻었다.

다만,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팀원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얼굴이 팔려 버린 찬혁은…….

─지이이잉.

─지이이잉.

"제발……! 좀……!"

기숙사로 돌아가는 바로 전날인 토요일 밤이 되어서도, 편안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찬혁은 결심했다.

'이 망할 놈의 핸드폰, 내일 당장 전화번호 바꿔 버린다.'

회귀 전과 후를 통틀어, 그의 인생 최초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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