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19화 (119/403)

119. 류찬혁 크랩.-4-

심사위원단이 비로소 마음을 다잡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심사위원단 또한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 그런 이들이니만큼 그들도 어떻게 만든 요리가 안전하고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요리는 충분히 안전성을 갖추고 만들어진 요리야.'

처음에는 이런 대회에서 전기밥솥 따위나 사용해가며 요리를 하는 그들의 행동에 생긴 불신감 탓에 쉬이 손을 댈 용기를 갖지 못했으나, 앞서 먹은 음식의 퀄리티가 그들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참게를 짧은 시간이기는 했으나 소독하기엔 충분한 시간 동안 쪄냈으며, 그 이후에도 뜨겁게 끓인 양념간장에 넣어 오랜 시간 절였다.

안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터.

'그렇다면 남은 건 맛을 보는 일 뿐이로군.'

생각을 했다면 실천으로.

그런 생각과 함께 시식을 위해 간장게장이 담긴 그릇을 살짝 들어 올린 그들의 눈이, 반짝이는 무언가의 형체를 발견했다.

『오.』

비닐장갑. 먹을 때 사용하란 뜻일 터. 그 와중에 플레이팅 자체에는 손색이 보이지 않게끔 그릇 아래 개어둔 센스에 흡족함을 느낀 그는 비닐장갑을 끼고 간장에 푹 잠겨 있던 게를 두 손으로 집어 끄집어냈다.

─주르륵.

게를 들어 올리자, 게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간장이 붉은빛 갑각을 타고 빗물처럼 영롱하게 반짝임이며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홀린 듯 지켜보던 그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타고 느껴지는 이질감에 흠칫 손을 떨었다.

'무겁다?'

상하이 참게 한 마리의 평균적인 무게는 150~200그램 내외.

그런데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대충 보아도 그 두 배는 되었다. 그런데, 그 무게가 점점 가벼워진다. 그 감각이 마치 물 속 깊이 잠긴 물통을 꺼내들 때처럼…….

'오호라!'

그는 드디어 이 영문 모를 무게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간장.

게딱지 속, 살과 내장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꽉꽉 공간을 차지한 간장이 바로 이 무게의 정체. 그렇기에 간장이 게딱지 바깥으로 흘러나오며 점점 그 무게가 가벼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체를 알아챘기에 오히려 더더욱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떻게 이 짧은 시간 안에 게 속에 간장을 집어넣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간장에 푹 재워놓았다고 해도 고작해야 한 시간. 그 사이에 게가 이토록 간장을 많이 머금고 있다는 건 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무슨 트릭이 있을 텐데…….'

그의 손이 게의 윤곽을 따라 겉면을 훑는다. 비닐장갑 한 겹이 손과 게 사이의 벽이 되긴 하였으나, 그런 얇은 벽으로는 그의 예민한 감각을 속일 수 없었다.

'과연, 이런 술수를 부렸구만.'

배 중앙, 배와 다리를 잇는 관절 바로 아래, 발톱 끝.

간장에 젖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손끝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균열. 확실했다. 이 작은 균열들은 전부 고의적으로 낸 칼집이다.

게딱지 속에 들어찬 간장은 전부 이 칼집을 통해 들어간 것일 터. 심사위원단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저 많은 게마다 이런 걸 전부?'

이 정도면 세심함이라는 범주를 넘어 집념에 가까운 조리법이다.

'마음에 들어.'

하지만, 그런 태도가 오히려 남자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요리에 타협은 없다. 자신의 요리관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그 자세. 프로페셔널함. 그런 정신이 이 요리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심사위원단이 드디어 게를 양손으로 붙잡고 등을 활짝 열어젖혔다.

마치 어릴 적 숨겨놓은 보물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분. 꺼림칙함만이 앞서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린 소년시대의 탐구심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등딱지를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채를 발하는 황금빛 알들! 사실, 황금빛보다는 주황에 가까운 색채였으나, 심사위원단의 시선에는 그저 아름다운 금빛으로 비출 뿐이었다.

떼어낸 등딱지를 다른 접시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몸통.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을 단단히 틀어쥐고 그대로 꺾으니, 몸통이 정확히 반으로 꺾인다. 위아래로 넣어둔 칼집 덕분이다.

살짝 쪄진 듯, 그러면서도 아직 물기를 품은 반투명한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빨리 먹어달라고 교태를 부리듯 떨리는 게살의 유혹을 참지 못한 그가, 참게 반쪽을 한입에 입속으로 집어넣고는 우물우물 씹었다.

『!』

이전에 먹은 한국 팀의 게 요리가 파도라고 친다면, 이 간장게장은 그야말로 3파. 폭풍을 예고하는 게간납의 잔잔한 물결, 거칠어진 바다의 성난 노성이 엿보이는 게국지의 높은 파도.

그리고 이 간장게장은, 물결과 파도에 놀란 이들을 심해 깊숙한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는 거대한 소용돌이!

게살의 세포 사이사이를 물들인 진한 간장의 맛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의 시야가 간장처럼 새까만 의식의 바다 저편을 향해 잠수한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깊은 풍미.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풍겨오는 볶음요리 같은 간장 탄내가 입천장을 타고 비강을 침범한다.

심사위원단은 직감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간장게장. 이 요리는 아직 미완성이다. 진실로 이 요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부품이 필요했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마지막 부품은 그들과 아주 가까운 장소에 있었다.

'밥. 밥!'

그것은 말 그대로 본능이었다.

아직 먹지 않은 반대쪽 몸통을 손가락으로 꾸욱 짓누르니, 압력에 이기지 못한 살이 갑각을 빠져나와 게의 단면 위로 솟는다.

하지만 먹지 않는다.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 여기서 이 솟아오른 살을 먹는 것은 하수의 선택이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뜨끈뜨끈 김을 피워 올리는 하얀 쌀밥 위에 게살을 쏟아냈다. 마치 빵에 잼을 바르는 것 같은 행위. 하지만 그 파괴력은 중국인인 그들에게 있어서 빵과 잼으로 감히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화지에 물감을 끼얹은 것처럼, 하얀 쌀알 사이사이로 게장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스며든다.

살짝 차게 식어 있던 게장국물이 뜨거운 밥을 만나자, 응축되어 있던 풍미가 폭발하듯 단숨에 허공으로 터져 나온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슥슥 비벼서, 크게 한 입.

그들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마치 밥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마치 간장게장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서로가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끌어안아 최고의 화음이 되는 한 숟갈. 운명의 상대.

'어이하여 이들이 이제야 만났는가. 오작교가 늦어 소매를 적셨건만 도래하고도 마를 일이 없구나.'

오늘 먹어본 요리 중, 한 가지의 '게 요리'라는 관점에서는 허점이 분명 있는 음식이었으나, 조합에 따른 맛이라면 평하건대 손에 꼽힐 수준의 요리였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간과하는 것이 있었으니.

"몸통은 맛있게 드셨나요? 여기, 저희가 추천 드리는 방법으로도 한 번 드셔보시죠."

간장게장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찬혁 일행이, 등딱지 속 내장과 밥에 참기름, 깨, 김가루를 뿌려 비빈 게장비빔밥을 내밀었을 때, 심사위원단은 생각했다.

'아, 이건 한 공기 더 먹어야겠구나.' 하고.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킨 소리가 하나가 되더니, 침묵에 빠진 대회장 가운데 공명하여 메아리처럼 울렸다.

***

"아, 힘들다."

공항에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푸념을 차창 바깥을 향해 흘려보냈다.

우리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한국은 쭉 장마였다고 하던데, 하늘이 날 환영하는 건지, 아님 그냥 운이 좋은 건지 지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뻥 뚫려 속이 시원할 정도다.

해가 저물며 길게 뻗어나가는 노을빛으로 물든 주홍빛 하늘.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얕게 굽은 곡선을 뻗은 항적운이 하늘에 획 하나를 길게 새겨놓은 모습이 제법 운치가 좋았다.

긴 시간이었다.

5박 6일이란 긴 시간 중에서 제대로 여행다운 여행을 즐긴 시간이 다 합쳐서 2일도 채 되지 못한다는 건 대체 무슨 꼴인지.

사고가 나도 일. 경사가 나도 일.

사서 고생을 한다는 건 나 같은 놈을 보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 무슨 놈의 전화가 이렇게 오냐."

공항에 도착한 뒤부터 쉴 새 없이 울리는 폰의 진동에도 슬슬 익숙해졌다.

밀려 있던 메시지가 도착하는 건지, 누가 전화를 걸고 있는 건지.

짧고 긴 진동이 뒤섞여 전화인지 코톡 메시지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기에 그냥 핸드폰을 꺼두기로 했다. 뭐, 연락이야 나중에 마저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일행 중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 없어서 집으로 가는 길은 외롭고 고요하기만 했으나,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고독을 씹는 것 같은 소문만 들어본 인싸월드 감성 같은 것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시끄러운 사람이 많던 동네를 다녀오니 이런 적적함조차 반가울 뿐이다.

'그래, 지금이라도 좀 이런 걸 즐겨야지.'

밀려 있던 스케줄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니 어느새 여름방학도 약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2학기 시작도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실기야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아마 교과 수업은 훨씬 어려워졌을 것이다. 젠장, 공부란 놈은 도통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 원.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넋두리를 보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어느덧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쓰읍, 더럽게 무겁네."

기념품이니 부상이니, 저쪽을 떠날 때 워낙 받은 게 많아서 짐이 얼추 두 배는 무거워진 느낌이다. 착각이겠지만.

예쁘지도 않은 동생 녀석 선물은 괜히 사온 건가 싶다가도, 녀석이 떽떽 거릴 걸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무거운 게 낫지 싶다. 그 녀석, 한 번 삐지면 거의 죽을 때까지 간다. 용돈 한 번이면 풀리지만.

"……."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녀석 얼굴이 그리워지다니. 내가 정말 지치긴 지친 것 같다. 빨리 집에 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무거운 짐을 이고 지갑 사정에 안 맞게 택시까지 타가며 어떻게든 집에 도착하니, 내가 이 시간에 도착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건물 현관 전등을 등지고 선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뭐야? 오는 날이 오늘이었어?"

취소.

그립다는 말이고 뭐고 다 취소.

그러면 그렇지. 짜게 식은 눈으로 째려보자, 주아 녀석은 무서운 표정 짓지 말라며 어깨를 툭 치고는 웃었다.

"농담이야. 엄마가 슬슬 올 때 됐다고 나가보래서 왔어. 솔직히 피방이나 갈까 하다가 그냥 기다려준 거다? 고맙지?"

"……하아. 그래. 죽도록 고맙다, 진짜."

얘는 가만히만 있어도 반은 갈 텐데.

덧붙이는 말조차 얄미운 녀석에게 들고 있던 짐 중에서 그나마 가벼운 것을 넘긴 뒤, 우다다 계단을 올라가는 주아의 뒤를 따랐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잘 다녀왔니?"

오랜만에 맡는 집 냄새. 1박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스런 스위트룸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이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집 특유의 향취는 그 어느 곳도 따라할 수 없겠지.

거기에 더해 집안을 흐르는 향긋한 밥내음은 저녁 시간에 되어 주린 배를 기대감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저녁 아직 안 먹었지?"

"네."

"잘 됐다. 마침 저녁 차리고 있었으니까 얼른 짐 정리하고 같이 먹자."

마침은 무슨. 아마 내가 올 시간을 계산하고 차리고 계셨겠지. 하지만 어머니의 배려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가지, 빨랫감, 샤워 용품과 언제 쓸지 모를 여행용 휴대 가방 등등.

그것들을 정리하던 도중, 캐리어 벽면 지퍼백 안에서 나온 두터운 책자 하나를 보고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꺄악!"

갑자기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비명소리.

깜짝 놀란 내가 방문을 박차고 거실로 나가보니, 어머니는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놀라셨는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언젠가 내가 사드린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린 채 주저앉아 계셨다.

"왜 그래요?!"

뭐지? 쥐라도 나온 건가? 낡은 집이니까 그래도 이상할 건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내 예상과는 반대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내게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 이, 이게 뭐라니?"

날 향한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은행 입출금 앱. 그리고 그 앱 중앙에 작게 적힌 '입금' 탭 아래로 적힌 숫자를 본 나는, 괜히 놀랐다는 걸 알고 웃으며 말했다.

"그거요? 엄마 돈이죠."

"무, 뭐라고?"

"이래저래 중국에서 일이 많았거든요."

입금. 21,333,000원.

뒷자리는 괜한 사족이 붙었지만, 나눌 거면 잔돈도 확실히 챙겨가라 성화를 부려 어쩔 수 없이 챙긴 3천원.

걱정할 건 없다. 우리 일행이 정당한 노동을 통해 지불 받은 광고 모델료를 어머니 계좌로 받았을 뿐이다.

교장 선생님을 빼고 여섯이서 나누고, 나중에 세금도 내기는 해야 할 테지만 역시 이만큼 돈이 두둑하게 쌓여있는 걸 보면 마음이 웅장해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나를 기쁘게 만드는 건, 지금 쯤 방바닥에 떨어져 있을 상장 한 장에 적힌 것일 테지만.

"찬혁아……. 대체 중국까지 가서 뭐 하다 온 거니?"

"별건 아니고요. 그냥 상 하나 따고 왔어요."

상하이 푸드 엑스포. 요리대회 3위라는 상을.

한참을 말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시더니 침착을 되찾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가자, 아들."

"예?"

"밥 먹으러. 오랜만에 외식하러 가자."

"……밥도 벌써 다 차리셨으면서 무슨 외식이에요."

취소.

아무래도 이 집안에서 침착하고 있는 건 나뿐인 듯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집에 돌아온 주아 녀석과 힘을 합쳐 어머니를 진정시킨 다음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밥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중국에서 먹은 어느 것보다도 좋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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