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류찬혁 크랩.-1-
우리 같은 사람이나 아는 것이긴 하지만, 간장게장은 보기보다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게의 손질. 날카로운 가시를 잘 제거하고 갑각 이곳저곳에 낀 이물질을 솔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박박 닦아준다.
그다음에는 건고추, 파, 마늘, 양파, 생강 등의 향신채를 간장에 넣고 푹 끓여준 뒤, 손질한 게를 이 간장에 재워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재워둔 게를 간장에서 빼낸 뒤, 거름망에 걸러준 간장을 다시 한번 끓이고 식혀서 빼두었던 게를 재차 넣고 재운다.
이것이 한 사이클.
이 사이클을 다섯 차례 정도 반복해야 비로소 간장게장은 완성된다.
'막상 먹고 싶어도 직접 하려면 손이 가고, 사자니 비싸서 잘 안 해 먹었었지…….'
어째서 그냥 처음 넣은 상태 그대로 재우는 게 아니라 다시 빼고 끓이고 식히고 재우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인가. 그건 게 특유의 성질에 있다.
갑각류는 바다의 청소부. 그들은 바다 바닥 저 아래를 기어 다니며 죽은 생물 등을 먹이로 삼는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게의 몸에는 잡스런 세균이 많다. 더군다나 게는 부패가 굉장히 빠른 생물이다.
그렇기에 재워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패가 일어나며, 그 부패 과정 중 나오는 세균이 들어간 간장을 끓여서 연달아 소독해 주지 않으면 세균에 의한 식중독이 일어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조리 소요 시간이 보름에 달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잃는 게 있다면 반대로 얻는 것도 있는 법.
간장게장이라는 음식은 조리에 시간이 드는 대신, 그렇게 시간을 들인 만큼 양념의 맛을 제 몸 깊숙한 곳까지 테트리스 블록을 쌓듯 차곡차곡 받아들여 깊고 진한 맛을 내게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할 건 정확히 그 반대.'
짧은 시간 안에 안전성을 챙기는 건 좋지만 그만큼 양념이 밸 시간이 적다.
그걸 해결하는 것이 이 요리의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다.
'좋아, 시작하자.'
우선은 참게부터.
어젯밤 미리 만들어 놓은 간장양념을 꺼낸다.
건고추, 생강, 양파, 마늘, 대파, 그 외에도 잡다한 향신료를 넣고, 마무리로 한 가지 꼼수를 부린 물건.
들고 올 때부터 더럽게 무거웠던 이 간장양념이 가득 들어간 바트 속에 손질한 참게를 푹 잠기도록 투입.
'좋아. 얼마 안 걸렸어.'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해야 5분. 유능한 팀원의 덕을 톡톡히 봤다.
'중요한 건 시간 계산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이게 분배해서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골라내야만 이 요리를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힐끔 눈을 돌려 확인한 시계가 가리키는 남은 시간은 대략 50분. 제법 빡빡하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너무 늦게 마무리해서 시간을 초과하든, 너무 일찍 꺼내서 맛이 제대로 배지 않든, 어느 쪽이던 참혹한 결과가 날 친히 맞이해 줄 테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다.
***
한편, 무대 아래 관객석.
아침 일찍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무대와 전광판 양쪽 모두를 쾌적한 환경으로 볼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한 1, 2학년 항생들과 그 인솔교사 역할을 맡고 있던 박예휘는 의자에 앉은 채 검점 열기를 더해가는 대회를 같은 학교 학생들의 일일 사회자 노릇을 하며 관람하고 있었다.
요 며칠 3학년 쪽에서 일어났던 사고 탓에 해당 학생들 가정과의 연락이나 1, 2학년 아이들의 멘탈케어 등을 연유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였으나,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접 이곳에 왔다.
그리하여 시간은 흘러 현재.
박예휘는 옆자리에 앉은 안효민과 의아함이 잔뜩 서린 시선으로 찬혁 일행의 조리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저거……."
"그래. 네 생각이 맞나 보다."
그들 또한 일류 요리사라는 딱지를 당당하게 내걸 수 있는 인물들. 그렇기에 찬혁이 지금 준비 중인 요리가 무엇인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가능할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박예휘는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있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박예휘가 보았던 류찬혁이라는 학생은 상식이란 것과는 도통 동떨어진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충분히 통감하고 있는 안효민 또한 박예휘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죠?'라고 박예휘의 의견에 동감할 뿐이었다.
그들은 믿고 있었다. 도통 속내를 알 수가 없는 게 저 류찬혁이라는 인물의 특징이지만, 그러면서도 하나 확실한 건, 결코 요리로 장난을 칠 인물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찬혁이 갑자기 전기밥솥을 가져와 사용할 때도, 간장게장으로 보이는 요리를 준비하는 지금에도 별다른 불안감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대회반 학생들도 마찬가지.
"찬혁이 쟤 이번에는 또 뭘 어쩌려고 저러냐?"
"몰라. 그래도 쟤니까 알아서 잘 하지 않을까?"
"…… 그렇지?"
"아무렴."
여태껏 찬혁이 보여준 실력…… 도 있지만, 그보다 더욱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찬혁이 어지간히 미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지만, 적어도 그 미친 짓이 실패로 돌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이런 엄청난 규모의 행사에서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는 찬혁의 행동에 보이는 무덤덤한 태도가 그들 사이에 쌓인 신뢰의 깊이를 나타내는 반증이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여태껏 찬혁을 잘 알아왔던 이들의 이야기.
『자! 벌써 주어진 시간의 절반가량이 흐른 지금! 점점 각 팀의 선수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팀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요리도 하나둘 나오고 있는 상황! 그럼 여기서 심사위원단 여러분의 중간평가를 한 번 듣고 가시겠습니다!』
사회자가 무대 위를 한 바퀴 돌자, 그 뒤를 따라 이동한 카메라가 전광판에 각 팀의 모습을 담아 송출한다.
전광판에 한 팀의 모습이 송출될 때마다 주석을 넣듯 따라붙는 심사위원단의 평가가 이어졌다.
『아, 중국 팀. 말할 필요도 없죠. 첫째 날 행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팀입니다. 인기, 기량, 협동심. 무엇 하나 빠짐없는 팀이죠. 특히 팀장인 리 샹첸 주사는 강소요리의 달인이지 않습니까? 좋은 성적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전 세계에서 요리 문화를 말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유럽 음식 문화의 으뜸이라는 주장이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미국. 미국의 요리란 전통이 없는 게 전통이죠. 온 나라의 개척자와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나라는 그런 만큼 동, 서양을 가리지 않고 온갖 나라의 음식 문화가 한데 섞여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화합으로 우릴 놀라게 해줄지 기대됩니다.』
『터키 팀. 터키의 요리의 기본을 설명하자면, 바로 풍족함입니다. 현대에는 미국을 축복받은 땅을 가진 나라라고 부르지만, 과거에 축복받은 땅을 가진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오스만 제국 시절의 터키야말로 그 답이었죠. 현대에서도 그 위상은 죽지 않았고, 그만큼 터키의 요리는 온갖 재료를 풍족하게 사용하는 게 특징입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호화스런 요리를 준비했을지 군침이 도는군요.』
『일본. 과제를 생각하면 이 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입니다. 일본의 식문화는 사방이 바다인 국토의 특성상 해산물에 관한 부분이 크게 발달했죠. 그만큼 육식 문화에서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평입니다만, 이번 과제가 과제인 만큼 오늘은 일본의 강점만을 보여줄 수 있겠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한 팀, 한 팀. 짧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길지는 않게.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관객들 또한 쉽게 그 나라의 음식에 대한 지식에 대한 요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끔 깔끔한 설명을 마치고, 드디어 카메라가 한국 팀의 조리대를 비췄다.
『아, 저건…….』
『…… 그렇죠.』
전광판에 한국 팀의 모습이 나온 그 순간, 심사위원석은 그야말로 차가운 물이라도 뿌린 것 마냥 싸늘하게 식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아까도 관객과 심사위원단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던 전기밥솥.
메뉴에 곁들일 밥을 짓는 팀이 그들만 있는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속된 말로 '있어 보이는' 방식을 사용하여 밥을 짓고 있었다. 숯과 돌솥을 사용하거나, 무쇠 가마솥 등을 말이다.
그 와중에 등장한 전기밥솥은 심사위원단과 관객의 눈에는 성의가 없어 보이기에 충분했다. 심사위원단의 시선에 떨떠름한 감정이 섞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한국 팀. 안영길 대가 한 사람을 제외하면 전원이 학생이라는 파격적인 구성의 팀이죠. 첫날 행사 때 엄청난 속도로 순위표를 가로지르는 인상적인 모습을 앞서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도 분명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에 착오가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검토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곁들일 뿐인 음식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점이 보이는 팀이네요.』
관객 사이에서도 그 혹평에 동조하는 이가 제법 되는지,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해는 안 됐지만, 분명 좋은 말은 아닐 시끄러운 소리에 성심고 일행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국 팀이 현재 만드는 요리는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지금 제일 눈에 띄는 메뉴는…… 간장게장? 간장게장을 만들고 있는 것 같네요?』
다섯 명의 심사위원단 중 한 사람이 화들짝 놀라자, 덩달아 놀란 다른 이들이 왜 그러냐는 듯 처음 놀란 심사위원을 살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총을 받은 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간장게장이라는 요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짧은 식견이나마 자신이 아는 바를 설명하는 심사위원. 간장게장에 대한 지식이 밝혀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15일이요?』
『예. 그 정도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안전함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으니까요.』
『그럼 한국 팀은 대체 한 시간 안에 저걸 어떻게 만들려는 겁니까?』
『글쎄요…….』
전광판 너머에 있는 카메라 렌즈가 찬혁의 조리대 위를 클로즈업하여 비추자, 행사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이 찬혁의 조리대 위에 놓인 바트로 향했다. 진한 빛깔을 띤 새까만 간장 속, 차곡차곡 잠긴 참게 무더기.
대체 저걸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의문이 잔뜩 담긴 눈빛이 수도 없이 자신을 향하는 상황 속에서, 찬혁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로지 자신이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팀원이 사용할 재료를 손질하거나, 중간중간 미처 다른 이들이 신경 쓰지 못한 냄비를 확인하는 등.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던 찬혁의 눈이 잠시 다른 곳, 시계를 힐끔거린 그 순간. 찬혁은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온도가 식지 않게끔 약한 불로 달구던 찜기. 그 속에 간장에 잠겨 있던 참게를 모조리 꺼내어 넣은 뒤 뚜껑을 닫고 찐다. 그리고 그다음은 간장.
빈 냄비에 게가 담겨 있던 간장을 전부 쏟아부은 뒤, 업소용 화구 특유의 엄청난 화력으로 그것을 순식간에 펄펄 끓이고는, 냄비를 통째로 얼음물이 잔뜩 든 통에 넣어 온도를 식힌다.
그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 데 5분은 들었을까?
그러고서는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참게를 다시 찜기에서 꺼내는 찬혁. 게는 겉에만 새빨갛게 물들었을 뿐, 속살에는 열기가 제대로 닿지 못했을 터. 하지만 찬혁은 개의치 않고 아직 열기가 남은 양념간장 속에 쪄낸 게들을 다시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식지 않은 냄비를 열기도, 냉기도 없는 조리대 위로 올려, 상온에서 식히기 시작했다. 간장에 남은 잔열. 그것으로 게를 익힘과 동시에 살균하는 것이다.
"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과정. 어지간한 사람들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안효민. 그리고 그녀를 비롯한 성심고 일행은 찬혁이 행한 조리법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저렇게 하면 살균은 확실하지!"
"맛도 그냥 재우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간장 속에 재웠으니까 금방 스며들 거고."
"무슨 생각을 하나 했는데, 저걸 저렇게 해버리네."
"…… 근데 저거, 간장게장이라고 해야 하나……?"
순식간에 관중의 입을 실력으로 다물게 만든 찬혁의 솜씨에 일행이 열광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그들의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었다.
"…… 흠. 안 될 텐데."
박예휘. 아직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그가, 간장게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냄비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는다.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박예휘가 그 의문에 답했다.
"분명 살균에 대한 건 잘 해결했다만, 맛은 장담할 수가 없구나."
"왜요?"
"참게는 꽃게보다 사이즈는 더 작지만, 상하이 참게는 아니다. 상하이 참게는 대갑게라고도 부를 만큼 크기가 크지. 먹을 건 많지만 그만큼 갑각도 두껍고, 맛이 잘 스며들지 않아. 그리고 지금 찬혁이가 쓰는 건……."
"…… 상하이 참게……?"
"그렇지."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한번 나락으로.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타고 있는 것 마냥 일행 사이의 분위기가 위아래로 요동쳤으나, 박예휘는 그저 묵묵히 전광판으로 비추는 찬혁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