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14화 (114/403)

114. 스타 셰프(진).-6-

회귀 전에 현재까지 포함해도 처음 봤다고 확신할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의 극대노. 그 효과는 두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

"……."

"……."

요 이틀 사이 몰라보게 친해진 한석준 선배와 최여린 선배가 종종 토로하던 식중독 트리오를 향한 불만. 특유의 장난기 탓에 죽어라 연습 중일 때도 농담과 수다를 입에서 떼질 않았다던 말.

물론 그게 팍팍한 연습 시간 속에서 작게나마 힘이 됐다는 것을 두 사람은 부정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생겨난 힘마저 세 사람의 수다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온갖 진이 다 빠진다며 투덜댔었지.

그런데 바로 그 세 사람이, 지금은 아무 말도 없었다. 말 그대로 입 한 번 벙긋 않고.

'음. 그럴 만도 하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은 굳이 미사여구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잘못한 게 전혀 없는 나 또한 교장 선생님이 뿜어내는 노기에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 정도로 저릿저릿한 분위기가 숙소 내에 팽배해 있었으니까.

그저 가만히 옆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 정돈데, 딱 맞은편에서 교장 선생님과 한창 아이컨택 중인 저 선배들은 대체 어떤 심정일지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나마 서로 마주 볼 일 없는 실기 연습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메뉴 고안을 위해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있는 상황이어서야 시선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을 터.

지금은 그저 견뎌내고, 또 견뎌내는 수밖에 없는 저들의 모습이 어딘가 애처롭기는 개뿔.

저것도 다 쌓은 업보가 터져 버린 결과. 내가 불쌍히 여길 필요는 없다.

저 선배들은 뭐,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난 모르는 일이다.

"왜 그리 말이 없나요, 여러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도 은근슬쩍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시는지, 점점 미소가 부드러워지는 게 보였다. 다행이다. 아까 웃음은 진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고.

장소의 분위기가 누그러진 덕분인지, 메뉴를 정하는 회의도 점점 가속이 붙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통 입을 열지 않던 세 선배까지 본격적으로 회의에 합류하기 시작하니, 속도가 붙기 시작한 회의에 박차를 가한 것 마냥 점점 뼈대가 세워지고, 살이 붙어간다.

그저 막막하던 그저께 회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일행 모두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모습. 이건 팀 전원이 멀쩡한 모습으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킨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주최 측에서 참가자에게 공지한 바에 따르면, 내일 과제는 '게 요리'라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말한 바와 같이, 내일 만들 요리의 주제가 이미 공지되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모든 게 참가자의 자유였던 첫째 날의 푸드쇼 행사보다 숨통이 트일 것 같은 상황. 하지만, 우리 일행은 그런 생각과는 전혀 상반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튼튼한 올가미로 목이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

무언가가 숨구멍을 틀어막은 듯 숨이 턱 멎는 이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수 없었다.)

'이러니까 어렵단 말이지, 정해진 과제에 맞춰 요리를 만드는 건.'

엊그제 했던 0부터 시작한 메뉴 만들기가 손전등 하나 없이 야밤의 정글을 헤쳐 나가는 것이라면, 지금 이 상황은 완벽한 계산을 거쳐 만들어진 미로에서 단 하나뿐인 출구를 찾아 헤매는 기분이라고 할까.

닦인 길은 있지만, 오히려 그 길이 운신의 폭을 좁아지게 한다.

'거기다, 하필 많고 많은 재료 중에 게를 골랐다 그거지.'

"게라…… 와, 이거 골 때리네."

"상하이답다고 해야 하나……."

"뭐 만들지?"

회의가 한창인 일행 사이에서 탄식 섞인 한탄이 줄지어 새어 나왔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게 맛있잖아? 맛있는 걸로 요리 만들면 쉬운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근데 그건 일반인 관점에서나 보면 그렇지.'

우리 같은 요리사에게 있어서, '너무 맛있는 재료'는 오히려 함부로 건들기 굉장히 힘들다.

모처럼 게라는 주제가 나왔으니, 게를 예시로 들어보자.

여기 대게로 만든 두 가지 요리가 있다고 해보자.

A는 아무 복잡한 과정 없이 그냥 찜통에 찐 게 전부인 대게찜.

B는 숙련된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 전골.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그 대답이 갈리는 비율은 대략 반반이다.

'그게 문제야.'

요리사 입장에서 이 결과는 대단히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요리에 들인 수고가 게거품에 삼켜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너무 맛있는 재료는, 우습게도 그것을 조리하는 요리사의 실력마저 잡아먹는다.

"어렵단 말이지. 이런 거."

"그러게요."

재료를 맛있게 조리해야 할 요리사가 반대로 재료에 잡아먹힌다니, 우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해결하는 게 요리사가 할 일이죠."

"하하……."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 아니냐며 날아드는 장난 섞인 야유에 선생님이 웃었다.

"아마 다른 나라 팀도 힘든 건 매한가지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대로 방법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해 보도록 합시다."

"네에."

"넵."

"알겠음다."

시작은 역시나 교장 선생님부터.

지식이라는 이름의 장작을 모아 열정이라는 불씨를 붙이니, 오랜 세월 잘 말린 장작은 눈 깜짝할 새에 여린 불씨를 키워 사방을 밝히는 커다란 모닥불로 제 몸집을 불렸다.

"음, 일단 어떤 게를 쓸지 먼저 정해야 할 것 같은데."

"게 종류는 역시 꽃게, 대게, 참게 중에서……."

"그걸 쓰면 요리 종류가 엄청 한정되는……."

한 번 붙은 불은 제 스스로 장작을 찾아 집어삼키며 세기를 더한다.

돈, 명예, 미래.

걸린 것이 워낙 무겁다 보니 일행의 태도도 덩달아 진중해졌다.

종류, 조리법, 메뉴의 개수. 조리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일곱 명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을 거듭하고 있자니, 어느새 하나둘 대회 상에 올릴 메뉴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마지막 하나가 정해지질 않네."

"음……."

대회에서 제출해야 하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 가지.

두 가지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어떻게든 정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메뉴가 문제였다.

"솔직히 두 개 정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한계까지 쥐어짠 머리를 부여잡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원재료의 맛에 지지 않는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더군다나 이건 자국의 전통 요리로 승부를 봐야 하는 푸드 엑스포. 여러 나라의 요리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강점인 나에게 이 조건은 한쪽 팔다리를 묶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

과도한 고민에 잔뜩 열이 오른 머리 한구석에서 그만 좀 혹사하라며 성을 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힘들다고 멈추기엔 너무나도 많은 돈이 걸렸…… 아니, 이게 아닌데.

아무튼, 머리는 계속 돌아간다.

'게 요리…… 게 요리…….'

메뉴를 정할 때는 항상 전제를 붙여서.

혹사당한 머리도 제 몸에 배인 습관은 버리지 못했는지, 여느 때와 같은 루트를 밟아 레시피를 구성해나간다.

게, 한식, 꾸꾸, 광고, 엑스포.

미로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짧게 눈을 스친 빛이 내 사고를 출구로 이끈다.

'꾸꾸…… 밥솥…… 밥…… 밥?'

솔직히 말해 아무리 광고를 맡았다지만 굳이 그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적당히 곁들이는 수준으로만 나가도 되고, 아니면 대충 만든 밥으로 볶음밥이나 하면 충분하니까.

'근데 밥솥이 그거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감히 말하건대, 꾸꾸 2020KM-10은 이 전과 후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전기밥솥이다. 특수 제작된 돌과 쇠, 이중구조 내솥은 대충 씻은 쌀을 넣고 취사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돌솥에서 갓 지은 것 같은 뛰어난 맛의 밥을 내놓는다.

이런 규모의 대회에서 사용해도 전혀 꿇릴 게 없는 밥맛.

그렇다면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

그리고 한식의 게 요리 중에서는, 그 어느 나라의 요리보다 가장 밥에 잘 어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애로사항이 좀 있긴 하지만…….'

만약, 그 메뉴를 아무 문제 없이 심사위원 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 상위권 입상도 결코 꿈이 아닐 터……!

'좋아.'

"선생님. 선배님들. 저도 메뉴 하나 고안했는데요."

생각해냈다면 그 즉시 실행. 요리 레시피를 어떻게 바꿀지 연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쏠린 이목이, 메뉴명을 듣자마자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각오를 다졌다.

목표는 5위 이내. 최소 3200만 원. 시간 외 노동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다.

자,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

드디어 찾아온 상하이 푸드 엑스포 마지막 날.

엑스포 행사장은 곧 있을 요리대회를 맞아 그야말로 대격변에 가까운 변화가 찾아왔다.

폐막식을 제외하면 예정된 행사 중 가장 마지막 행사. 요 이틀 동안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풀렸던 엑스포의 대미를 장식할 대회이니만큼, 그 어느 때보다 많을 공을 들인 작업.

행사장의 중심. 수만 명에 달하는 인원마저 감당해낼 수 있는 넓이를 자랑하는 대연회장을 요리 대회를 펼치기 가장 적합한 형태로 뒤바꾸는 데에는 엄청난 수고가 들어갔다.

'힘들었지…….'

이제는 요리대회장으로 바뀌어 버린 대연회장을 바라보며, 마량은 뿌듯하면서도 울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푸드 엑스포의 실무위원으로 뽑힌 지 어언 1년. 고작 사흘 동안 열릴 이 행사를 위해 들어간 시간과 노력, 자금을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이 행사장은 앞으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쓰이겠지만, 지금 같은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임을 짐작하니 더더욱 그러했다.

딸을 시집보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러할까.

격무에 치여 서른 중반이 다 되어가는 나이까지 가정도 꾸리지 못하고 일이 연인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젠 건물이 딸이 되어 버린 현실에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흘렀다.

'후, 좋아. 청승은 이쯤 떨자.'

슬퍼하는 건 폐회식을 끝마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요리를 직접 만들 주방 구역부터 심사위원이 자리할 심사위원석까지.

수도, 가스, 발판, 전기, 카메라, 전광판.

그 전부를 직접 발로 뛰며 검수를 끝마친 마량은 이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관객석 중 하나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손부채질하며 땀을 식혔다.

이제야 막 환풍기와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한 실내는 여전히 찜통이었지만, 그래도 이 행사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며 스스로를 달랜 그가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여러 장의 종이를 끄집어냈다.

서류 상단에 적힌 것은 곧 있을 대회에 참가할 국가의 이름.

운영위원으로서 저들이 만들 메뉴에 대한 사전 검수를 하는 것 또한 그의 업무 중 하나였다.

중국, 영국, 프랑스, 터키, 인도.

각 팀에서 제출한 서류를 세심히 읽으며 종이를 뒤로 넘기던 그의 손이, 한 페이지에서 문득 멈춰 섰다.

"……."

한국.

그에게 미중유의 충격을 안겨준 팀.

2부 행사 때에는 너무 바빠 감히 들릴 생각도 못 했지만, 1부 때와 다른 맛을 준비했다는 말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훌륭한 실력과 인성, 회화 능력을 지닌 어린 요리사의 얼굴을 되새긴 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류를 살폈다.

과연 오늘 그 팀에서는 어떤 메뉴를 준비했을까.

한 줄, 두 줄.

서류에 적힌 글귀를 읽어 내려가던 마량의 눈이, 어느 한 구절에 닿았을 때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류에 적힌 글자는, 酱生蟹.

이 서류의 주인인 한국의 나라로 표기하면, 간장 게장.

우연찮게도 그 메뉴의 제조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던 마량의 입에서, 불신감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만든다고? 이걸?』

불가능한 도전일 텐데.

이걸 하게 놔둬도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이, 마량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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