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13화 (113/403)

113. 스타 셰프(진).-5-

끝났다.

밑도 끝도 없이 대체 뭐가 끝났냐고 묻는다면, 뭐. 일단 내 인생이 끝난 것만큼은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은 기분이다.

…… 아니, 정말로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몸을 실은 참가자 숙소 행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짐을 끌어안은 채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아침에 일어났던 하이재킹 사건 탓에 짐을 그대로 버스 안에 두고 다녔던 것이 불행이자 다행이었다.

'덕분에 쓸데없이 숙소를 오갈 필요는 없어졌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을 휘몰아쳤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 짐을 가져다주며 좋아 죽으려 들던 안창민이 짓던 비웃음과 연민이 공존하는 그 표정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돌아가서 보자. 망할 놈 같으니.'

아무튼, 농담은 이쯤에서 끝내고 간단히 상황을 정리해 보자.

2부 행사였던 시연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직후 자리를 비웠던 교장 선생님은 어느새 고영태 팀장과 모든 협상을 끝내고 돌아오셨다.

결과만 말하자면, 저쪽에서 내건 제안 대부분을 수용했다던가.

그 대부분의 제안 내용 속에는 물론 나의 엑스포 대회 참가 또한 당연하다시피 기입되어 있었다. 내 정확한 기억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사실 기억하고 말 것도 없이 저쪽에서 내민 제안 자체가 극도로 단순했기 때문에 외우기 쉬웠을 뿐이지만.

내가 대회에 참여 할 것, 신제품을 대회 도중 노출이 잘 되는 위치에 두고 사용할 것. 고작 이 두 가지가 제안의 전부였으니, 그것도 기억 못 하면 청년. 아니, 청소년 치매를 의심해야 하는 수준이겠지.

"선생님. 그럼 페이도 따로 나오는 건가요?"

식중독 옐…… 아니, 김해중 선배가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건넨 질문에 교장 선생님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이에요. 저희도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거니까요. 보수가 없다면 불공정 계약이죠."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자신의 학생이 피해를 보는 꼴은 볼 수 없다며 웃는 교장 선생님을 따라 일행 모두가 웃었다.

이 경우, 나는 따라 웃어야 하는 걸까. 일단 웃는 척이라도 해보자.

"쌤. 그럼 저희 얼마나 받는 거예요?"

"음…… 그건 돌아가서 알아봅시다."

대답을 뒤로 미루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에 대체 페이가 얼마나 세기에 그러느냐며 일행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이상하네. 아까 들었을 때엔 보수가 그렇게 센 편은 아니었는데.'

물론 학생 신분으로 보면 굉장히 큰돈이었지만, 사회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비용은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세금을 빼더라도 인당 100만 원이나 간신히 돌아갈까 싶은 금액.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실제로 내가 아는 광고업계에서 오가는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회귀 전 일하던 호텔에서 제발 자기네 가구를 써달라고 10만 유로 가까이 되는 금액을 자랑하는 가구 세트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었으니까.

물론 지금 우리 학생들이 가진 이름값이야 그 호텔에 비하면 달. 아니, 태양 앞에 반딧불이나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푸드 엑스포 쯤 되는 최고의 장소에서 교장 선생님 같은 대가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다는 걸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 부분은 좀 조율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계약에서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과정인 페이 협의를 어떻게 이토록 빨리 해결한 건지, 나조차 궁금할 지경이다. 고영태 과장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상은 아닌데 말이다.

"흠."

뭐, 돌아가셔서 알려주신다 했으니 조만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겠지.

당장은 신경을 끄자. 우선 지금은 걸어 다니느라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겸, 곧 닥칠 고난에 대비하기 위한 단잠을 자두기로 했다.

***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깔끔하게 재단장을 마친 우리 일행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 그 주변으로 둘러 앉았다.

딱히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리 말을 맞춰둔 것 같은 행동거지에 교장 선생님이 웃는다.

"다들 많이 궁금했나 보네요."

주어가 빠지긴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 말뜻을 헤아리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기대감으로 가득 차오른 눈빛에 당해내지 못하겠다는 듯 상체를 살짝 뒤로 뺀 선생님이 말했다.

"에이 쌤. 그러지 말구 빨리 알려주세요."

"얼마에요? 저희 내일 뛰면 얼마나 벌어요?"

식중독 트리오 선배들의 눈빛이 탐욕…… 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감정으로 물들어 번들거렸다.

순간 세상에 팽배한 황금만능주의가 이토록 어린 아해들의 영혼을 타락시켰는가 회의감이 들려는 차였다. 틀려서 다행이지 싶다.

아무튼, 이들은 '돈을 버는 것' 보다는 '자신의 행위가 돈을 점수 삼아 평가받는 것'에 조금 더 이목이 쏠려 있었다.

'차라리 다행인가.'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아마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적은 양의 보수를 받더라도 크게 신경 쓸 일은 없겠지.

그렇다면 협의를 진행하여 페이를 정해온 교장 선생님으로서도 부담감을 덜 갖게 될 것이다. 그 증거로, 살짝 굳어 있던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피식하는 헛웃음과 함께 풀리는 것이 보였다.

교장 선생님의 반응을 보건대, 아쉽게도 광고 보수는 썩 대단치 않은 수준인가보다. 거 참. 인심 좀 더 쓰지. 안 그래도 광고비 많이 쓴다고 욕도 먹으면서.

'하긴 뭐, 출장 나온 과장이 유통할 수 있는 자금 권한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모처럼 다시 참가자까지 됐건만.

'아마 4, 500 정도 하겠네.'

저번에 고영태 과장이 제안한 것에서 약간 줄어든 금액이었느나, 그 정도만 되어도 학생끼리 나누면 제법 큰 돈이다. 내 기준이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다들 어느 정도 희망을 접고 이어질 교장 선생님의 말을 기다리던 그때, 선생님의 입에서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 낱말이 튀어나왔다.

"100만 원."

"…… 예?"

"우리가 받을 돈 말이에요. 100만 원입니다."

술렁, 술렁술렁.

"백?"

"백이라고?"

"진짜? 백 밖에 안줘?"

교장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니, 끝나기도 전에 일행은 패닉에 빠졌다.

100만 원?

'혹시 지금 말을 잘못 들었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다른 일행을 보고서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와 같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 인당 100만 원 말씀하시는 거 맞……죠?"

"아뇨. 팀 전체에 100만 원이죠. 나눠봤자 비행기 푯값도 안 나오겠네요."

"……정말로요?"

"정말로요. 놀랐죠?"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그런 우리에게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내는 선생님.

그 담담하다 못해 태평한 태도에 일행이 느낀 당황스러움은 그대로 분노로 치환되었다.

"아니, 쌤! 저희 진짜 그거밖에 안 받아요?"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쪽에서 그 가격에 하자고 했어요?"

지금, 선배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적기 때문이 아니었다.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기대를 건다는 뜻과 상동. 즉, 이 투자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100만 원 정도의 가치밖에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선배들과 나를 비롯해 교장 선생님까지 있는 이 팀에 투자할 가치는 고작 이것뿐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은 금액. 분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교장 선생님은 우리의 그런 격한 반응에 오히려 더 깊은 웃음을 지어보이시는 것 아닌가.

"하, 하하하!"

이제는 아예 소리까지 내며 웃으시는 선생님. 선생님이 소리를 내며 웃는 일은 굉장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기에, 한창 분노에 몸을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온 집안을 서성거리던 선배들까지 무심코 말을 잃고 그런 교장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그렇게 한참을 웃으시다가, 몇 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마음이 진정된 듯 웃음을 그치시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 미안합니다. 여러분도 어느새 어엿한 요리사라는 생각이 들어서."

"예?"

"과소한 평가에 울분을 보이는 건 자신의 솜씨에 자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스스로가 만든 요리에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건 요리사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질이에요. 다만, 자신이 과해 자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겸손을 보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충고를 듣고 다들 침착함을 되찾은 걸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있던 선배 몇 사람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냉수를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계속됐다.

둔중하게 뼈를 때리는 것 같은 침묵. 맞고 또 맞아서 점점 몸이 구겨지는 것 같은 그 고요함이 싫었지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놀리려 하지 않았다.

한 사람만 빼고.

"아, 그리고 그 100만 원은 제가 꾸꾸 측에 제안한 거랍니다."

…… 뭐요?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이의 눈이 교장 선생님에게 향했다.

폭풍전야. 벼락이 떨어진 직후, 소리가 빛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가올 때 같은 일촉즉발의 침묵은, 아까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했다.

방금 그것이 몽둥이에 의한 구타라면, 지금은 마치 핀을 뽑은 수류탄을 바로 눈앞에 떡하니 놔둔 것만 같은…….

안전핀은 뽑혔고, 클립도 날아갔다. 남은 건 안전손잡이 뿐이다. 누군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폭발한다. 분명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죠."

그때였다. 누가 잡은 것인지 모를 수류탄의 안전손잡이 위로, 교장 선생님의 손이 겹쳐진다. 아직 터트리지 못하게, 도화선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처럼.

"저희가 받을 수 있는 '최소' 보수가 100만 원인 거예요."

"최소…… 요?"

"예. 만약 내일 대회. 저희가 10개 팀 중 최하위인 10위를 기록하면, 저희는 100만 원을 받습니다."

선생님의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발언에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최소. 그렇다면 변할 수도 있다는 걸까?

그 의문을 풀어주기 위하여, 선생님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

"10개 팀 중 9위를 하면 200만 원."

"8위를 하면 400만 원."

"7위를 하면 800만 원."

이때가 돼서야, 우리 모두가 눈치를 챘고, 또한 어이라는 놈을 상실하고 말았다.

저딴 계약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서로를 마주 보는 눈에 담긴 똑같은 의문.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교장 선생님은 말을 이어나간다.

"4위를 하면 6400만 원."

"3위를 하면, 어머나. 1억2800만 원이 됐네요."

뭔가 이상하다. 평소에 알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다.

"1억 벌기. 되게 쉽죠?"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대망의 1위를 하면!"

선생님의 손바닥이, 우리를 향해 쫙 펼쳐졌다.

"5억! 세상에 여러분! 5억이라니, 들으니까 신기하지 않나요? 전 딱히 필요 없으니 여러분끼리 나눠 가져요! 한 사람당 8000만 원쯤 받겠네요. 어때요, 이러면 조금 의욕이 생기기 시작하죠?"

의욕이라고? 의욕이 다 얼어 죽겠다!

저 선생님이 왜 안 하던 짓을, 그것도 저렇게 익숙하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특히 무서운 건 5억쯤은 필요 없다고 던지는 저 패기였다. 세상에, 난 죽어도 저런 말 못 할 것 같은데.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공포감이었지만, 일단 효과는 좋았다. 다들 잔뜩 쪼그라들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간신히 전 대회반 부장이라는 직함을 살려 용기를 낸 한석준 선배가 선생님에게 말을 여쭸다.

"저, 선생님? 혹시 저희가 무슨 문제라도……."

"문제요? 아니요. 없어요. 제가 설마 여러분이 말썽 좀 일으켰다고 이렇게 부담감을 잔뜩 주는 계약을 했겠어요? 중요한 엑스포를 앞두고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먹어서 몸 좀 아플 수 있죠. 제 관리소홀 문제이기도 하고, 크게 탈이 안 난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교장 선생님의 날카로워진 눈빛이 식중독 트리오에게 향한다. 설마 저 셋,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김해중 학생, 조유빈 학생, 이행찬 학생."

"에, 옙!"

"퇴원 후 사흘 동안은 죽 외에는 먹지 말란 말, 분명 들었죠?"

"……."

"……."

이보세요. 선배님들. 거기서 왜 입을 다물어요.

"그런데 왜 숙소 쓰레기통에 이런 게 버려져 있었을까요? 그것도 잘 안 보이는 제일 밑바닥 아래 꾹꾹 눌려서."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손에 들린 비닐쪼가리를 보고, 나는 그저 황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냉동음식 포장용기의 비닐 뚜껑처럼 보이는 그 검은색 비닐에는, 중국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조차 '아, 이건 먹으면 가는 물건이구나.'라는 걸 예감하게 할 정도로 핏빛처럼 새빨간 글씨가 한 면을 꽉꽉 채운 커다란 폰트로 적혀 있었다.

'세상에, 미친놈들.'

위세척한 다음 날 빈속에 마라탄탄면? 뭐지? 어떻게 안 죽었지? 아, 이건 화내도 인정이지.

그냥, 집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근데 솜씨는 좋아서 그럴 수도 없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작두날에 목을 갖다 댄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연습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빠질 수도 없다. 상금이 탐나서.

…… 젠장. 부디 누구든 좋으니 날 여기서 꺼내주었으면 하는 심정과, 이곳에 계속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연달아 부딪치기 시작했다.

어딘가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창민이 녀석의 얼굴이 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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