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09화 (109/403)

109. 스타 셰프(진).─1─

랭킹 10위 이내 진입. 탑텐. 도내 최상위…… 아니, 이건 제쳐두고.

아무튼, 부르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우리가 세운 기록은 단순히 말하자면 간단한 것이었다.

9위.

엑스포에 참가 의사를 밝힌 100여 개의 국가 중 두 손에 꼽히는 순위. 그래봤자 말석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가 처해 있던 상황과, 경쟁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

'솔직히 10위는커녕 20위권 위에 간신히 올라가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우리 일행 중에서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 증거로 우리가 부스 뒷정리를 하던 사이 운영위원회 사무실로 팀장인 교장 선생님이 다녀오실 때까지 제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니, 진짜 어떻게 한 거지?

사람의 행운과 불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 같은 게 있다고 한다면 아마 어제 우리의 행운 곡선은 그래프 지하에 터널을 뚫어놨을 것이다.

팀원의 갑작스런 식중독.

참가 신청 난항.

당장 눈앞에 닥친 엑스포.

그나마 갑자기 만나게 된 장백천 셰프의 도움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난제는 용케 해결해냈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현실은 막막했다.

엑스포에서 직접 초청을 받을 만큼 경력, 유명세, 실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셰프만이 자리한 행사. 대체 그 틈바구니를 어떻게 살아나온 건지 우리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차량을 타고 숙소까지 돌아가던 와중에도, 일행 사이에서는 거의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킨 채, 아무 말도 없이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우리 방으로 돌아가는 길. 어째서인지 우리를 알아본 같은 참가자 몇 명이 우리를 보며 박수를 쳐주었으나, 간신히 굳은 웃음을 지어 보였을 뿐 제대로 된 대답마저 하지 못했다.

재밌는 사건은 그 직후에 있었다.

우리가 숙소로 복귀했을 때는 대략 저녁 9시가량이었다. 그리고 오늘 퇴원이 예정되어 있었던 선배 세 명의 퇴원 예정 시각은 오후 여섯 시.

요컨대, 이런 것이었다.

"어, 어서와!"

"고생했지?"

"아따 행님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치 노래의 화음처럼 동시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

깜짝 놀란 우리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 여태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현관 앞에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던 선배 세 사람이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그 사이로 불편한 침묵이 오간다.

서슬 퍼런빛이 서린 눈을 번뜩이는 한석준 선배, 최여린 선배와, 지은 죄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이마에서 슬금슬금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세 선배들.

그 팽팽한 긴장감을 먼저 나서서 끊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최여린 선배였다.

"야 이 정신 나간 새끼들아!"

"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최여린 선배의 더블 래리어트! 클린 히트. 효과는 굉장했다! 교장 선생님도 계신데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오히려 선생님이 계시니까 저 정도로 선을 지킨 게 아닐까?

"어, 어?!"

인간 모양의 포탄에 단박에 한 덩어리가 되어 날아간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잔상을 눈으로 쫓으며 입을 쩍 벌리는 선배의 앞으로, 이번에는 한석준 선배가 나섰다.

"야."

"왜, 왜 그래?"

"넣을게."

"……살살 해주라."

대사가 엄하지만, 평범한 헤드락이었다. 거의 반쯤 울부짖는 모습이 정말 아파 보이긴 했지만.

다섯 사람의 때아닌 레슬링은 결국 덤벼들었다가 먼저 체력이 고갈된 두 사람의 탈진으로 끝났다. 그나마 반격 없이 접수만 해준 건 그들 나름의 사과 표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창 난장판이 벌어진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 쓴웃음을 짓고 지켜보던 그때,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있던 최여린 선배가 갑자기 작게 히끅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

"어……."

울고 있다. 매번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던 선배가.

소리 죽인 울먹임으로 시작된 눈물은, 점점 소리를 키워가며 종국에는 거의 대성통곡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는 얼굴은 보여주기 싫은지 어느새 가져온 소파 쿠션에 얼굴을 묻고 있었지만 그 울음소리만큼은 도저히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흠칫흠칫 떨리는 최여린 선배의 뒤로 선배들이 다가가 앉았다.

"어, 야. 왜 울고 그러냐."

"……미안."

"그, 많이 망쳤어? 야, 괜찮아. 망칠 수도 있지."

"넌 좀 닥쳐라."

분위기를 못 읽는 선배도 있었지만, 어쨌든 자그마한 위로라도 해보려 애쓰는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던 일행 사이에 소리 죽인 웃음이 오갔다.

그것도 모르고 점점 진지한 분위기로 까마득한 옛날 잘못까지 끄집어내어 거듭 사과하는 그들에게, 간신히 울음을 진정시킨 최여린 선배가 툭 쏘아내듯 말했다.

"9위……."

"응? 뭐라고?"

"미안한데 다시 좀……."

"9위 했다고 병신들아! 다 꺼져! 얼굴 보기도 싫어!"

그 말을 끝으로, 최여린 선배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감추며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쫓던 선배들의 눈이 우리에게 향했다.

"그렇게 됐네요."

행사가 마무리 된 직후에 우리 사이에서 울렸던 함성이, 이번에는 숙소 전체를 가득 채웠다.

***

축하연 같은 건 따로 하지 않았다.

엑스포 일정이 전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 일행에게 절실한 것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묻던 선배들의 집요한 질문마저 떨쳐내게 만든 것.

그건 바로 수면이었다.

우리에게는, 정말 압도적으로 수면이 부족했다.

어제 새벽부터 시작해서 대략 40시간 가까이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한 몸은 청소년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체력으로도 쉬이 배겨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잤다. 밥마저 거르고 정말 미친 듯이 잤다. 배보다는 잠이 더 고팠으니까.

원래 숙소 정원보다 세 사람이나 더 늘어난 상황이었지만, 선배들이 자발적으로 침실을 내게 양보해 준 덕에 제법 쾌적한 환경에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었다.

"우, 우리는 거실에서 잘게. 응."

"우리 대신 많이 고생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렴."

"그러니까 편하게 침실에서 푹신한 이불 깔고 자. 부탁할게. 자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자발적인 양보였다. 적어도 난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아무튼, 그렇게 편한 잠자리에서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해 준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몸이 산산이 분해되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어우, 쓰읍……."

젠장. 근육통이 지금 와서 밀려오네.

물집 잡힌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에 더해 장딴지와 팔뚝 부근이 꼭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하다. P.T 처음 받은 날이 딱 이랬는데. 고통과 함께 살아난 끔찍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야야……."

느낌이 반나절은 갈 것 같은데. 쓰읍,

시간이나 확인할 겸 집어든 핸드폰. 그런데, 그 핸드폰 화면 속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얘네는 또 왜 불이 나 있대."

언젠가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단톡방.

이름도 따로 설정해두지 않아 나, 철정이, 양희연, 나현주의 이름으로 버젓이 등록된 그 톡방이, 마치 불이라도 난 것 마냥 쉴 새 없이 알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완전 매너모드로 해놔서 다행이지, 그냥 놔뒀으면 톡 때문에 잠에서 깼겠다.

'뭔 이야기를 하길래 이러는 거야?'

하루에 서너 마디가 올까 말까 한 톡방이라 가만 놔두고 있었는데, 웬일로 오늘따라 이 녀석들이 활발하다. 이 아침댓바람부터 대체 무슨……. 아니, 여기가 7시쯤 됐으니 저기는 벌써 8시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보다 아주 이른 아침은 아니다.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톡방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톡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위로 올라가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도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어, 숫자 줄었다. 얘 들어왔는데?

─야 류찬혁. 너 톡 보고 있지? 대답해. 대답 안 해?

─아 빨리 대답 하라고--

기다려라. 아직 자판도 안 띄웠다.

─뭐야.

─야 너 지금 중국이지?

─어. 엑스포 간다고 저번에 말했잖아.

─그거 엑스포 관람하러 가는 거라고 하지 않았냐?

그랬다. 불의의 사건으로 졸지에 참가자가 되긴 했지만.

─ㅇ. 근데 그게 왜.

번갈아 질문을 던지는 양희연과 김철정. 그런데 이상하다. 얘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왜 소리가 나오냐. 위로 올려서 양희연이 올린 거 보고 와봐.

─?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긴 했지만 일단 철정이 녀석이 시키는 대로 했다.

'거, 톡 한 번 엄청나게 했네.'

올리고 또 올려도 양희연이 올렸다는 게 나오질 않는데……. 아, 찾았다.

"……뭐야 이거."

양희연이 올린 것은 10초 정도 되는 짧은 움짤이었다. 그냥 철판 위에서 요리를 하는 평범한 영상. 움직임이 말끔한 것이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영상'이나 'street food cooking' 같은 이름으로 영상에 끼워 넣기 좋을 것 같은 움짤. 다만,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아니 잠깐만.

"나잖아, 이거."

그랬다. 양희연이 올린 움짤의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그것도 바로 어제 엑스포에서 열일하던 나를 관객 시점에서 찍은 영상.

"뭐야 이거."

─이거 뭐냐?

─나야말로 묻고 싶다. 넌 관람하러 갔다는 애가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보니까 백예은이랑 안효민 선배도 같이 있더라? 뭐 사고라도 났어?

나만 아는 게 아니라 그 두 사람까지?

─일이 조금 있기는 했는데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사고 좀 작작 치고 다녀.

─나 때문 아니야. 것보다 이건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사고를 낸 주체는 내가 아니란 말이다.

억울한 마음과 의문을 담아 꾹꾹 눌러쓴 톡을 보내자, 철정이 녀석이 재빨리 답했다.

─아무튼 축하한다. 너 마북 스타야.

─뭐?

─저거 마스크북에 뜬 영상이다. 덤으로 틱탁이랑 올튜브도.

─?????

─지금쯤 너 얼굴 단 국뽕TV 10개는 나왔어.

─축하해 찬혁아.

뭐지 이놈들? 나를 갈고리 수집기로 만들고 싶은 건가?

영문을 알 수 없어 물음표만 잔뜩 찍어 보낸 내 메시지 아래로, ㅋ으로 도배된 녀석들이 톡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현주 너, 왜 그렇게 진지하냐. 정말 축하하는 것 같잖아.

……

잠시 후.

신나서 이곳저곳에서 동영상 링크를 퍼온 녀석들 덕분에 대충 이 사달이 난 이유를 알게 됐다.

나를 비롯한 많은 요리사들이 부스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해외에서 먼저 인기 동영상이 됐고, 그 속에서 태극기를 달고 나온 나를 용케 발견한 한국 올튜버가 그 장면을 따와 움짤로 만들어 배포.

그 와중에 한국이 엑스포에서 10위 안에 들었다는 소식이 나오자 움짤의 배포 속도가 수십 배로 늘었다고 한다.

덤으로, 한국에서 국뽕 코인을 가장 잘 타는 방법 하나가 그대로 적중한 게 가장 큰 요인이 됐다.

"……이건 못 봤었는데."

9위를 기록했던 한국팀 아래로, 하얀 배경에 빨간 동그라미 하나가 찍힌 국기가 10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진을 본 내 얼굴이 참담한 표정으로 물드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이 있었지. 썸네일에 태극기 달고 붉닭 먹으면서 일본 욕하면 조회수 100만 금방이라고.

우습게도, 내 상태가 그와 엇비슷했다. 가슴에 태극기 달고 매운 닭갈비 요리로 일본보다 바로 한 단계 위에 랭크됐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

이 방법, 정말로 쓸데없이 효과가 좋았다.

"……기왕 유명인이 될 거면 마북보다는 미슐랭에서 되고 싶었는데……."

…… 이걸 좋은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쓰라린 팔뚝이 이러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며 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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