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차트 역주행.-3-
이야기하기에 앞서, 장백천과 찬혁 두 사람 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장백천이 예상했던 장소의 특수성.
폐쇄적인 정보망 안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관심이 해외 유명 요리사보다 자국 내의 요리사에게 쏠리리라는 것.
그리고 푸드 엑스포가 열리는 현장이 다름 아닌 상하이이기에 외국인 입장객보다 국내 입장객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리라는 것.
이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중국의 여타 지방보다 특히나 외국인의 수가 많은 상하이였으나, 그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객의 7할은 중국인이었으니까.
그 덕분인지 현재 순위표에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국은 여전히 그 아래 팀들과의 격차를 벌린 채 좀처럼 따라잡힐 생각을 않고 있었다.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격차는 아니지만, 야금야금 점유율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는 다른 팀의 헤드 셰프들은 여간 분통이 터지는 것이 아니었다.
'젠장, 저 쥐새끼 같은 놈들.'
'머릿수 많은 것 말고는 자랑할 게 없나.'
그렇다고 요리의 퀄리티가 딴죽을 걸 만큼 낮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들로서는 홈 플레이스의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국 팀을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상위권 팀들이 불합리함을 속으로 토로하며 서로 눈치 싸움을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메리트를 챙겨가는 팀이 있었으니…….
"…… 우리, 뭔가 점점 줄이 늘어나는 것 같지 않니?"
"…… 그러게요."
바로, 찬혁이 소속된 한국팀이 그 주인공이었다.
찬혁 일행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어진 줄이 더더욱 길어지는 것 같다는 착각. 아니, 현실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줄이 늘어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느 정도'라는 선을 확실히 넘긴 지 오래였다.
'뭐지? 대체 뭐지?'
찬혁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 몰리는 인파는 단언컨대 1부 행사 때 몰리던 인파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았다. 찬혁이 눈대중으로 본 줄의 길이만 해도 가장 바빴을 때의 1.5배는 되어 보였으니까.
분명 잘 만든 요리이기에 자신은 있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20개국의 부스가 모인 한 구역을 거의 점거하다시피 할 정도로 둘도 없이 맛있는 요리였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찬혁은 그런 미스테리를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손님이 많이 왔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는 뜻.
미리 만들어둔 재고를 소진하다 못해 이제는 거의 실시간으로 만들고 있는 지경이었고, 심지어 아까는 부족한 재료를 날라주던 운영위원회 측의 실수로 재료가 제때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잠시 일이 멈추기까지 했었다.
그 와중에 줄은 더 늘어났고, 지금은 그 밀린 인파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중이었으니, 얼마나 바쁜지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오해에서 비롯된 상황이었다.
찬혁이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선택한 조리법인 철판에 반죽을 부치는 것은 이전 마량이 말했다시피 중국의 전통 요리인 젠빙을 만드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흔히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팔리는 젠빙은 그만큼 중국인에게 친숙한 요리.
더군다나 찬혁이 호불호가 갈리리라 생각했던 매운맛은 한국인 못지않게, 다른 방면으로는 그보다도 더 매운맛에 익숙한 중국인들의 취향에 적중한 것이다.
현지 사람들에게 익숙한 요리법. 익숙한 생김새.
하지만 그러면서도 색다르고, 또 취향에 딱 맞는 맛.
덤으로 중국어를 마치 모국어마냥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관객을 맞이하는 찬혁의 존재까지.
우연으로 얽힌 시작을, 찬혁의 팀은 필연으로 바꾸어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운 또한 실력. 거기에 더해 요리 솜씨까지 겸비한 한국팀은 완벽한 실력 장사로 이리와 여우가 가득하던 산을 차지한 산군이 된 것이었다.
다만, 여기 그 사실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석준아, 우리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이틀 남았어, 우리는."
"안 되겠네. 좋아. 그럼 오늘 목표는 그 세 놈 뚝배기 깨버리는 거야. 그때까진 살아야 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석준을 보며, 최여린은 과로로 퀭해진 눈을 싸늘하게 흘겨 떴다,
***
어째서일까. 다른 팀들의 기세가 한풀 꺾여갈 때에도 우리 팀의 카운트가 올라가는 기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어났다.
'대체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 있다 오는 건지…….'
너무 바빠서 확인할 새도 없었지만, 아까 방송으로 중국의 판매고가 2000을 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놀랐다.
세상에, 아무리 복잡한 과정도 없이 그냥 음식을 가져다 먹으면 카운트가 되는 편리한 시스템이라지만, 고작 6시간 만에 2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받았다는 건가. 아무리 음식을 평균적인 1인분의 반 정도씩밖에 팔지 않는다 해도, 그 정도면 소모된 식재료 값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푸드쇼 입장료는 따로 받는다지만 입장료로 재료값이 감당이 되나?'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궁금해졌지만, 그런 의문도 이제 슬슬 의미가 없어질 때가 되었다.
몰려다니던 인파가 줄어드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아마 마지막 입장객이 들어온 뒤로 유입되는 관객 없이 빠져나가는 관객만 있는 탓이겠지.
그 말은 즉, 이 푸드쇼의 폐막이 점점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줄이 안 줄어드는 게 신기하긴 한데…….'
이걸 일종의 회광반조라고 보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마감세일 효과랑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인기가 좋았던 닭갈비 총떡튀김은 메뉴를 개발하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나갔다. 정말로 잘 나갔다.
운영위원회에서 우리 부스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케어하는 직원까지 붙여줬을 정도였다. 그것도 두 사람이나. 한 차례 사고로 재료 수급이 늦어졌을 때에야 행해진 조치라 조금 타이밍이 늦지 않았나 싶은 불만이 있긴 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주방. 몸을 덮치는 화구의 열기가 고통스럽고, 조리도구를 계속 손에 쥐고 있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혈 지경이었지만,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조금은 힘이 돌아오는 느낌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숙련된 쿡들도 이만큼이나 단시간에 많은 업무를 하면 배겨내기 힘들 것 임에도, 일행은 약한 소리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기 일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정말, 존경스러운 학우, 선배, 선생님이다.
"아, 자살 마렵다!"
"참아. 걔네 뚝배기 깨기 전까진 안 죽는다며."
"미안, 아무래도 그 전에 죽을 것 같아."
…….거 타이밍 참. 하필 지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는가.
조금 체면 떨어지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저건 좋은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다. 정말 힘들면 아무 말도 못 할 테니까. 이제 곧 이 푸드쇼가 끝난다는 걸 선배들도 눈치챈 거겠지.
그 대화를 듣고 큭큭대는 일행에게 농담 섞은 격려를 보내니, 다들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응수해온다. 서로의 지친 얼굴 사이로 엿보이는 웃음이 눈부시다.
그렇게 실없는 대화로 서로의 힘을 북돋아 주고 있을 때, 마침 재료를 가지러 갔던 인원이 복귀하여 가판대 뒤쪽에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진공팩 안에 꽉꽉 담긴 세척, 세절이 끝난 식재료. 마침 손이 비어 있던 한석준 선배가 재빨리 나가 냉장고에 채우는 것을 돕는다.
그런데, 재료를 나르던 한석준 선배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거 신청 안 한 재료까지 같이 왔는데?"
"예?"
신청 안 한 재료? 있으면 쓰기야 하겠지만. 남을 수도 있는 걸 왜 벌써 줬지?
그 의문을 재료 정리를 끝낸 인원이 나서서 풀어주었다.
『류찬혁 선수. 이게 마지막 재료 지급입니다.』
마지막? 갑자기 건네 듣기에는 꽤나 뜬금없는 단어였지만, 이내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오호라.'
요컨대, 그거다.
"선배님들, 조금만 더 힘내면 될 것 같습니다."
"응?"
"무슨 소리니?"
이 재료를 다 쓰면, 그걸로 끝.
아까까지는 눈앞에 아른거리기만 할 뿐이던 골이, 드디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저희 마지막 재료래요. 저거 다 쓰면 행사 끝이에요."
그 한마디 말에, 일행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것이 손님의 회광반조였다면, 이제 우리가 남은 심지를 불태워야 할 때가 왔다.
***
그 말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석준 선배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닭고기 다 썼어! 고구마랑 채소도 방금 게 마지막!"
이제는 거의 도마의 망령이 되어 버린 선배의 말에 우리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가장 먼저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꺼내 사용하는 한석준 선배에게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건 말 그대로 카운트다운이었다.
한 번 불똥을 튀기기 시작한 심지는,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제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고추장이랑 간장 거의 다 썼어요!"
"닭갈비 마지막 바트 나옵니다!"
"튀김기 기름 마지막 통으로 교체할게요!"
소진, 소진, 소진.
남아있던 재료를 전부 사용했다는 알림이 주방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다.
조리 마지막 단계를 맡았기에 가장 마지막까지 재료가 남는 것은 나뿐.
만들고, 건네고, 만들고, 건네고.
대체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두 종류의 반죽이 들어 있던 바트의 바닥을 국자가 긁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다진 향신채와 닭갈비, 양념이 들어 있던 통들도 점점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팔은 슬슬 말을 안 듣기 시작하고, 더이상 흘릴 땀도 없는지 메마른 피부에서는 버석버석한 소금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멈출 수 없었다. 내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이 남아있었고, 재료가 남아있었고, 또, 요리사의 자존심이 남아있었으니까.
20개를 만들 수 있을 재료가 반으로 줄고, 그것이 다시 한번 반으로 줄어, 드디어 마지막 반죽을 철판 위로 쏟아부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 많네, 류찬혁 주사.』
장백천 셰프. 운영위원회 고문을 맡은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지쳐 내려가던 눈꺼풀이 활짝 뜨였다.
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다가, 어차피 계속 뒤에 서 있었으면 내가 중국어로 말하는 것도 이미 다 들었겠지 싶어 순순히 입을 열었다.
『총주방장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재료가 떨어졌다고 공지를 했음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관객 중 가장 마지막 한 접시를 가져갈 사람이 장백천 셰프일 줄이야.
언젠가 한 번쯤 오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늦은 등장에 당황한 나를 보며 셰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총주방장님은 무슨. 지금은 내 아래에 있는 주사도 아니지 않나.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냥 고문님이라고 부르게.』
『아, 옙. 장백천 고문님.』
그나저나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신 걸까.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장백천 셰프는 평파를 잡고 있던 내 손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부르트고, 물집 잡히고, 여간 고생한 게 아닌가 보구만.』
『아, 예. 뭐…….』
그야 고생을 하긴 했지. 원래 할 필요도 없는 고생이었는데, 체질이 사고를 몰고 다니는 건지. 아까 프랑스인 아저씨 말처럼 나비넥타이에 안경 끼고 탐정 일이나 해볼까. 머리는 길러서 꽁지머리로 묶고 다니는 거야.
이제는 아픈 걸 넘어서 저려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무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장백천 셰프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멋진 손이네. 진짜 주사의 손이야. 손에 생긴 흉터는 우리들에게는 훈장 아니겠나.』
손에 화상 자국과 흉터가 가득한 이 사람이 말하니 농담으로 들리지가 않는다. 아니, 저 진지한 눈빛을 보면 정말로 농담이 아닐 것이다.
그 칭찬인지 무엇인지 알기 힘든 말에 애매한 웃음으로 답한 나는 만들던 총떡튀김을 이어서 만들었다.
반죽을 굽고 속을 채워서 마는 데에 걸린 시간이 대략 30초. 몸은 지쳤어도 경험은 계속 쌓인 덕분인지 기술 하나는 확실히 늘었다.
이윽고 튀김기에서 뜨거운 전신욕까지 마친 총떡튀김을 반으로 갈라 포장하여 직접 셰프에게 건넸지만, 그는 그것을 받지 않고 내 손을 되 밀 뿐이었다.
『고문님?』
『괜찮네. 나보다는 뒤에 있는 관객에게 드리게나. 나야 자네 얼굴이나 한번 볼까 해서 왔을 뿐이니까.』
그 말에 가장 기뻐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뒤에 서 있던 관객이었다.
웃음꽃이 활짝 띈 얼굴로 총떡튀김을 받고 몇 번이나 거듭 고개를 숙이며 떠나간 관객.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셰프에게 내가 말했다.
『기다리셨을 텐데, 드셔보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다음 기회로 미뤄두지. 뭣보다 내가 먹어봤자 관객 수에는 집계가 안 되거든.』
거, 세심한 부분에 신경을 다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마지막 재료까지 소진하자 결국 아쉬운 표정으로 부스를 떠나는 관객을 보며,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 시간 기다려주셨을 텐데, 미처 만족시켜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인사를 마친 뒤에 다시 장백천 셰프에게 시선을 돌리자, 잠자코 나를 바라보고 있던 셰프가 내게 말했다.
『인성이 되어 있는 친구는 언제든 보기가 좋아.』
『뭘요, 당연한 일인데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 당연한 걸 잘 못 하는 것들이 제법 많아서 말일세.』
언젠가 들었던 말에 옛일이 생각나 서로를 보며 잠시 웃었다. 그러기도 잠시, 장백천 셰프가 손가락을 들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한 번 봐보게. 고객도 아는 게야. 그 당연한 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걸.』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그의 검지가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전광판.
여태껏 일에 치이느라 확인하지 못했던 전광판 한쪽, 크게 확대된 화면에, 굉장히 익숙한 국기 하나가 사이를 비집고 끼어 있었다.
『9위, 축하하네. 자네들이 해냈어.』
관객 수 1762명.
한국. 9위.
그 전광판을 바라보고 침묵에 빠져 있던 일동이, 이내 회장이 떠나가리만치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이 엑스포, 많은 것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중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는 바로 이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장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