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차트 역주행.-2-
그 부스가 남자의 눈에 띄었던 건 우연의 일치였다.
큰맘 먹고 돈을 지출하여 홀로 여행을 온 상하이. 첫날에는 관광을 즐기고, 둘째 날인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마침 상하이에서 푸드 엑스포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와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객이 너무 많아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팜플렛에서 본 유명한 요리사들의 이름을 보고 부스를 찾아가도 고작 10분도 안 되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마음을 접은 그는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돌아다니는 신세가 됐다.
엑스포에 오느라 아침마저 변변찮게 먹은 탓에 더더욱 가면 갈수록 더해지기만 하는 허기를 애써 참으며 간단하게나마 빨리 먹을 수 있는 부스가 없을까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이, 이내 서 있는 사람 하나 없는 부스를 발견했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 걱정도 살짝 됐지만, 그보다는 이 허기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그는 별다른 주저도 보이지 않고 그 부스로 향했다.
부스 앞에 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린 나이로 보이는 소년, 찬혁이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동양인들은 원체 나이가 적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어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린 소년에 불과한 찬혁의 모습에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더했다.
'얘만 그런 게 아니라 한 명 빼고 다 어린아이들이구만. 학생인가?'
그가 가늘어진 눈초리로 주방에서 일하는 면면의 모습을 살피던 도중, 하던 작업을 마무리한 찬혁이 철판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아."
『어.』
마주치는 눈빛.
갑작스런 대면에 남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지? 중국어는 못하는데, 아니, 중국인이 맞나? 영어로 말하면 알아들으려나?'
그도 영어가 그렇게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마 말하면 알아듣겠지 싶은 심정으로 우선 입을 열었다.
『어…… 안녕하세요. 이건 어떤 음식인가요?』
'짧은 영어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알아듣겠지.'
솔직히 이 소년이 알아듣고 영어로 대답한다 하여도 정작 그 자신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러나 찬혁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오셨군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프랑스어. 그것도 제법 유창한.
우연히 들린 부스에 있던 동양인 소년에게서 이토록 유창한 프랑스어를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의 눈이 크게 열렸다.
『프랑스어? 아니, 그보다 제가 프랑스인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발음이요. 불어를 오래 쓰신 분들 특유의 발음이 있죠. 그것 말고도 옷차림 같은 걸 보고 짐작해 봤는데, 정답이어서 다행이네요.』
어린 나이에 대단한 눈썰미를 보여주는 찬혁의 모습에 그는 소리 죽인 감탄사를 흘렸다.
『탐정의 소질이 있네요. 대성하겠어요.』
『꿈은 요리사지만요.』
『하하, 모습만 보면 이미 훌륭한 셰프인걸요. 이 음식은 어떤 음식인가요?』
『총떡 튀김이라는 요리입니다. 속재료를 두 종류의 피로 감싸서 한 번 튀긴 한국 음식이죠.』
『한국Corée? 북쪽…… 이 아니라 남쪽이겠죠. 농담입니다. 아무튼, 초, 총뚜…… 이런, 발음이 어렵네요.』
『이해합니다.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그럼 감사하죠. 아, 만드는 모습을 찍어도 괜찮을까요?』
『물론 괜찮습니다.』
그는 부스 앞에 설치되어 있던 적외선 인식기에 팔찌를 가져다 댔다. 짧은 전자음과 함께 올라가는 숫자. 소리를 들은 찬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들어 놓은 건 있지만…… 첫 손님이니 처음부터 만든 걸로 드려볼까.'
반죽을 부은 뒤 평파로 동그랗게 펼치고, 그 속에 재료를 채운 뒤 말아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고작해야 수십 초.
렌즈 너머로 펼쳐진 그 섬세하고도 재빠른 손놀림에 남자가 미처 놀랄 틈도 없이 단박에 완성된 요리.
그것을 받아든 그는 멍한 표정으로 찬혁을 바라봤으나, 찬혁은 그저 잔잔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음식을 먹어치운 남자는 생각했다.
'아, 진짜 여기 와서 다행이다.'라고.
한입 물자마자 제자리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운 남자가 들뜬 표정을 짓고 외쳤다.
『하, 하나! 아니. 두 개 더 주세요!』
그 열렬한 반응에 찬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됐으나, 그럼에도 그 요청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네요.』
『어, 어째서……?』
마치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남자의 뒤편을 가리킨 찬혁이 말을 이었다.
『다른 손님이 오셔서요. 다시 줄을 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과연, 찬혁의 말대로 어느새 그의 뒤에 선 몇 명의 사람들을 본 그의 고개가 맥없이 떨어졌으나, 그는 별말 없이 걸어가더니 그대로 맨 뒷줄로 돌아가 우뚝 섰다.
평소 딱히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줄 서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남성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몸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악마에게 혼을 팔면 이런 느낌일까.'
어느 선인先人이 말했던가, 악마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온다고.
감히 말하건대, 그 말은 틀렸다. 사탄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건넬 뿐이다. 다만, 무지막지하게 맛있어서 한 번 맛보면 거부할 방도가 없는 선악과를 말이다.
***
결론부터 말하자.
내 예상은 잘 풀렸다. 그것도 과하게.
"불고기 남은 거 거의 다 써갑니다!"
"얼마나 남았나요?"
"10개…… 아니, 9개만 더 말면 동나요!"
"기다려요! 5분이면 한 바트 더 나와요!"
"옙!"
첫 손님을 맞고 약 한 시간이 조금 넘었다. 행사 시작 후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한 명, 두 명 몰리기 시작한 관객의 줄은 지금에 이르러선 거의 수십에 다다르는 인파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좀처럼 줄지도 않고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인파가.
'역시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야.'
한 개 만드는 데 1분. 튀기고 포장하는 데 1분. 처음부터 만들어도 오래 걸려봐야 관객의 손에 쥐어질 때까지 2분 남짓한 시간 밖에 안 걸리는 요리인데, 나가는 속도가 새로운 관객이 유입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초반에는 적당히 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여유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조차 없다.
반죽을 부치고, 다진 파, 소불고기, 볶은 깻가루, 양념 등을 뿌려 또 하나를 완성하자마자 바로 다음 순서로 이행.
이쯤 되면 내가 요리사인지 총떡 만드는 기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혁아! 만들어둔 재고 거의 떨어졌어!"
"벌써?!"
젠장. 너무 빠른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제까지 만든 총떡이 대략 200개는 넘었을 터. 한 개를 반으로 가른 게 1인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적어도 400명이 넘게 왔다는 건가?
'진짜네.'
힐끗 눈을 돌려 확인한 전광판에서 태극기를 발견한 나는 그 옆에 기입된 426이라는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진짜로 400명이 넘었네. 30위권까지 올라간 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다.
하긴, 운영위원회에서 추산한 엑스포 예상 입장객 수가 10만 명은 거뜬할 거라고 하던데, 400명이면 아직 전체 관람객의 0.4% 수준에 불과하다.…… 는 개뿔. 이대로 가다간 천 명도 금방일 것 같다.
실제로 당장 10위권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벌써 700명에서 800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아주 헛소리도 아니었다.
손님이 많은 건 언제든 기쁜 일이지만, 마냥 환영할 수는 없는 게 이 일의 딜레마다. 재료비도 안 들어간다지만 상을 못 타면 들어오는 돈도 없고, 얻는 건 명예뿐이니까.
'그렇다고 우는소리를 할 수는 없지.'
요리사가 손님에게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 때는 오로지 부당한 컴플레인이 걸렸을 때 뿐. 그 이외에는 어느 누가 와도 환영하는 게 도리.
'아직 누구도 실수하는 낌새는 안 보여.'
요컨대 다들 아직 한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상황이 몇 시간 동안 이어지면 일행의 번아웃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다행히 휴식시간이 머지않았다. 지금까지 한 만큼만 더 고생하면 된다.
……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오래 남은 것 같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나저나, 1부 행사가 끝날 때쯤이면 슬슬 한계가 보이겠는걸.'
신규로 유입되는 관객에 더해 다시 줄을 서는 관객까지 있는 지금은 점점 줄이 늘어나고만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우리 목표는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거야.'
현재 우리의 순위는 30위권 초반. 지금까지 올라온 속도는 분명 빠르다. 하지만, 이건 하위권을 뚫을 때의 이야기.
이런 랭킹은 보통 상위로 가면 갈수록 그 문이 좁아진다.
실제로, 하위권에서는 거의 분당 한 칸씩 순위를 올린 우리였으나, 중위권인 50위권을 넘은 뒤부터는 그 속도가 배로 느려졌다.
30위권에 든 지금도 서서히 올라가고는 있지만, 처음에 비하면 거의 멈춘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속도라면 아마 1부 행사가 끝날 때쯤은 되어야 20위권 초중반에 안착할 터.
'음…….'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빠른 속도일 테니까.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야.'
이건 예상이지만, 아마 이 증가세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주식으로 치면 우리는 지금 최고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사람은 똑같은 것에는 언젠가 질리는 법이고, 뭣보다 이 행사장 안에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천지인만큼 관객이 우리 쪽에만 몰려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마침 잘 됐네.'
설령 150km의 직구를 던지는 파이어볼러라도 그거 하나만으로 메이저에서 주류로 살아남기는 어려운 법이다. 제구를 칼처럼 잘하든, 심리전을 잘하든, 숨겨둔 비수를 몇 개는 쟁여놓고 있어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우리 팀 또한 숨겨둔 비수가 있다.
'우리도 직구만 연습한 건 아니거든.'
2부 행사. 그때가 이 비수를 꺼낼 타이밍이 될 것이다.
***
엑스포 참가자들의 식사 및 휴식을 위한 한 시간의 쉬는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재개된 2부 푸드쇼.
여태껏 정지 화상마냥 1부 행사가 끝난 그때 그대로 멈춰있던 순위표도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 22위. 많이 올라갔는걸.』
그 전광판을 보며, 찬혁 일행의 부스를 첫 번째로 찾은 관객이었던 남성이 감개가 깊다는 듯 중얼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찾아보았을 리가 없던 한국이란 나라의 국기 모양까지 외운 그는, 처음에는 저 아래에 있던 하얀 태극기가 벌써 저만한 위치까지 도달했다는 것에 묘한 감동마저 느끼고 있었다.
'나만의 작은 맛집이 미슐랭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인데.'
남이 들었으면 황당할 정도의 비유였으나, 남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폼으로 네 번이나 다시 줄을 서가며 먹은 게 아니다. 심지어 한 번에 하나씩밖에 받지 못함에도 그러했으니, 그 애정을 알만했다.
'그래도 이젠 놓아줄 때가 됐지.'
다섯 번이나 먹었으면 충분할 터. 그는 옅은 아쉬움을 느끼며 애수 깃든 표정으로 벌써 줄이 꽤 늘어선 찬혁의 부스를 바라보았다.
2부 행사를 맞아 자신은 이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으로 가겠지만, 그들이 부디 별 탈 없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며.
『…… 응?』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한국 팀에 부스에서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저 음식.
네모난 직사각형 튀김을 사선으로 잘라낸 모양새는 분명 몇 번이나 보아서 익숙한 자태였으나, 정작 그 내용물은 처음 그가 보았던 것과 무언가 달라 보였다.
『잘못 봤나?』
이제 그만 놓아줘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그였으나, 그의 몸은 그 뜻과는 반대로 점점 한국 팀의 부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확실히 보였다.
그가 아는 한국팀의 음식 속에는 분명 햄버거의 패티 같은 색을 가진 짭짤한 양념이 된 저민 고기볶음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음식은 전혀 달랐다.
새빨간. 그야말로 새빨간 붉은색. 눈에 확 들어오면서도 어딘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색채가, 이번에도 그를 자석처럼 끌어들였다.
결국 그는 다시 줄을 섰다.
줄이 줄어들며 부스로 다가갈수록 풍겨오는 숨길 수 없는 매콤한 향. 코끝을 따끔하게 찌르는 그 향기에 눈물이 핑 돌지만, 그러면서도 입속의 군침이 멎질 않는다.
잠시 후, 찬혁과 남성이 다시 한번 얼굴을 마주했다.
『어라? 또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밝은 미소로 환영하는 찬혁이었으나, 그는 그 환영에 답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만드는 요리는……?』
『아, 마침 잘 오셨어요. 2부 행사에 맞춰서 속재료를 바꿨거든요.』
역시!
남자의 생각대로 속재료가 바뀐 것이 맞았다.
『그, 그 속재료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음…… 닭고기랑 여러 재료를 매운 양념으로 볶은 요리인데, 이름을 발음하시기가 좀 어려울 거예요.』
찬혁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닭갈비총떡튀김. 음, 덜 맵게 하긴 했어도 살짝 매울 수 있는데, 하나 드릴까요?』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그 요리는 먹자마자 땀이 줄줄 흘러나올 만큼 매웠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그의 발길을 부스 앞에 줄선 대열 속으로 이끌었다.
사탄의 두 번째 선악과가, 그의 정신을 매운맛으로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