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차트 역주행.-1-
마량 운영위원을 배웅하고 난 뒤, 일행의 텐션은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와, 봤어? 거의 걸신들린 것처럼 먹던데?"
"저 정도면 우리도 할 만한 거 아냐?"
"진짜 다행이다. 처음에 그 자식들 실려 갈 땐 어쩌나 했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제부터 사고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도 끝도 없이 일어났으니, 이틀 만에 겨우 찾아온 호조에 드디어 안심할 구석을 찾아낸 것일 테니까.
다만…….
"혁아? 왜 그래? 표정 안 좋아."
"원래 이래."
"…… 흐응. 확실히 혁이는 인상 사납지."
"뭔 소리야. 아무튼 별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아직 좋아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평범한 대회나 시합이 아닌 푸드쇼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준다고 바로 알아들을 사람은 아마 이 중에서는 교장 선생님 말고는 없을 테지만.
'역시나.'
그 증거로, 당장은 웃고 계신 것처럼 보이는 교장 선생님도 조금 더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면 미간 언저리에 미세한 주름이 잡힌 게 눈에 띈다. 부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석준아, 우리 이러다 대회 쓸어 먹는 거 아냐?"
"에이, 쟁쟁한 셰프가 저렇게 많은데 무슨…… 그래도, 기대는 해도 되나?"
일찌감치 김치국을 식도에 호스를 꽂아 넣고 들이켜는 최여린 선배와 손사래를 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옅은 기대감이 서린 한석준 선배의 얼굴을 보며 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곧 알게 되겠지.'
이 방식이 얼마나 우리 같은 팀한테 불공평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예상대로 들어맞은 현실이 우리를 반겨왔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나도 모르겠어…… 분명 벌떼 같이 몰릴 줄 알았는데……."
아까 보여주던 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던 활기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우리 일행은 현재 절찬리 멘붕에 빠져 있었다.
'역시나.'
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유는 당연하게도 앞서 말했던 푸드쇼라는 행사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다들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지, 교장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넋이 나가 있는 모습. 그야 그럴 법도 하다.
'상황이 이래선 말이지…….'
푸드쇼 행사 시작과 함께 관객이 본격적으로 입장하기 시작한 지 약 10분.
한국팀. 소모 식자재 없음.
쉽게 말해서, 우리 부스에는 여태껏 단 한 명의 관객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사람이 그득그득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는 일행을 보며 손에 쥔 평파의 손잡이를 매만지던 그때, 내 바로 옆, 튀김 섹션을 맡고 있던 백예은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혁아. 알고 있었지?"
"…… 뭘?"
"이렇게 될 거."
…… 이 녀석, 요즘 감이 좋은데. 아니, 눈치가 좋은 건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농을 섞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니 녀석의 시선이 새초롬한 빛을 담아 날카롭게 선다.
"장난치지 말구."
"알겠어, 알겠어."
설명하라고 해도 그리 대단찮은 것이긴 하겠지만, 대충이나마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이야기일 테니, 말해 주도록 하자.
"뭐, 상황이 이런 것도 사실 당연한 거야."
"당연하다니?"
"저기 봐봐."
설명에 들어가기 앞서, 우선 지금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손을 들어 어느 곳을 가리켰다. 백예은의 시선이 내 팔에서 시작하여 그 연장선을 따라, 마침내 그 끝에 있던 무언가에 닿았다.
"전광판?"
"전광판 말고, 전광판에 뜬 걸 보라고."
행사장 이곳저곳, 관객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가장 가시성이 좋은 장소에 설치된 수많은 전광판. 저 속에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푸드 엑스포의 1일차 행사인 푸드쇼는 제법 특이한 구성으로 각 부스 별 경쟁을 부추기는데, 저 전광판 또한 그 부추김을 발생시키는 장치 중 하나다.
"뭐야 저거? 랭킹?"
"오, 한 번에 맞췄어."
"보면 알지 저런 건."
백예은이 말한 대로, 저 전광판이 송출하는 영상은 다름 아닌 순위표였다. 특히 가장 크게 확대되어 있는 1위부터 10위까지를 보여주는 화면 속에서는 지금도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나라들의 국기 옆 숫자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근데 저게 왜?"
"잘 봐봐. 지금 순위권 다툼하는 나라가 어디어디인지."
"…… 아!"
백예은은 그제야 내가 할 말을 눈치챈 듯 외마디 경탄을 내뱉으며 눈을 활짝 떴다.
상위권에 보이는 국가는 대략 중국, 영국, 터키,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 상위권에 있을법한 나라의 집합이긴 하지만, 저 나라 사이에는 쉽게 눈치채지 못할 공통점 하나가 있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유명인!"
"정답."
그렇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아침을 먹을 때 보았던 셰프들 중에서도 특히나 TV쇼나 인터넷 방송 등지에 자주 등장하여 유명세를 떨친,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한 셰프들이 소속된 팀이 현재 랭킹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관객들이 전부 저기로 간 거구나!"
"바로 그거야. 인지도만 따지면 교장 선생님도 제법 알려진 편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장 선생님은 작년 글로벌 푸드 페스티벌 이후로 대외활동이 적으시니까, 어쩔 수 없이 저 사람들보다 인지도가 밀리지."
"그럼 어떻게 해? 우리 이렇게 있다가 끝나는 거 아냐?"
걱정이 가득 담긴 백예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아니야. 오히려 이제 곧 우리한테 기회가 넘어올 차례거든."
그래. 나는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객의 종이 팔찌에 인쇄된 QR코드를 부스에 달린 인식기로 찍어 카운트를 기록하는 엑스포의 카운팅 시스템. 그리고 그 카운트를 표시하는 전광판.
저 전광판에 보이는 순위권 나라들의 평균 카운트는 약 40 내외. 그렇다면, 이제 곧 올 때가 됐다.
"선배님들! 속도 더 내셔야 합니다!"
긴 줄을 기다릴 수 없어 그 주변을 맴돌거나, 이미 볼일이 있던 부스를 탐방한 뒤 다른 나라의 요리를 물색하기 시작한 관객이 올 때가.
냉장고에서 휴지 중이던 바트를 잽싸게 꺼낸 나를 따라 영문도 모르고 허둥지둥 손을 더 빨리 놀리기 시작하는 팀원들, 그 속에서 교장 선생님이 놀란 눈치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진짜 힘든 시간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장 큰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기회란 언제나 위기 속에 있는 법이니까.
사방팔방 흩어지기 시작한 관객. 그 관객을 얼마나 우리에게로 끌어올 수 있느냐가, 푸드쇼 성공의 갈림길이 된다.
"좋아. 해보자."
이런 형태의 행사에 있어서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요리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나는 그 대답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행사는 크게 보면 일종의 푸드트럭 거리랑 비슷해.'
수없이 늘어선 푸드트럭에서 어느 곳을 선택하든 그건 소비자의 자유, 그러나 그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건 생산자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것이 특히 그러했다.
'그리고 푸드트럭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예를 들어보자. 푸드트럭 A와 B가 있다.
A, B는 둘 다 현재 손님이 없다.
A의 주인은 푸드트럭 내부에서 끊임없이 요리를 만들거나 재료 준비, 청소를 하는 등, 영업을 하고 있다는 티를 낸다.
B의 주인은 그저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창구에서 하염없이 가만히만 서 있다.
A와 B. 소비자는 이 둘 중 어느 쪽에 먼저 시선이 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A. 즉, 고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일단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설령 그게 의미 없이 끓는 냄비를 젓고 텅 빈 웍을 흔드는 것이어도, 결국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고객에게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덫을 놓아 사냥을 하는 거미도 사냥에 나서기 전에는 집을 짓는 법. 요리사에게 있어 호객이란 거미집을 짓는 행위이자 초롱 아귀의 등불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 조그만 녀석들처럼 사냥에 맞게 진화한 신체기관은 없지만, 그 대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훈련한 두 팔과 조리도구가 있다.
"오."
반죽을 부치며 관객의 이동추이를 꼼꼼히 살피고 있던 그때, 뚜렷한 행선지 없이 행사장을 거니는 듯 보이는 인파가 내 눈에 띄었다.
'왔다.'
미끼에 걸린 먹잇감…… 이 아니라, 길 잃은 관객이 행차하셨다. 자, 수면에 물고기가 어른거리면 낚시꾼은 응당 미끼를 흔들어줘야 하는 법. 드디어 시작된다. 우리의 진짜 행사가.
***
어느덧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
야외와 실내를 가리는 채광창 너머로 우뚝 선 국기봉의 짧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대략적으로 시간을 가늠한 장백천은 잠시 몸을 맡기고 있던 휴식터의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시작한 지도 제법 됐군.』
11시부터 시작된 행사도 어느덧 초반을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장백천은 지금도 저희끼리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여러 나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작은 실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무엇을 하든 우리 대중화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미식에 있어 자신의 조국보다 빼어난 나라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평생의 철학이었기에 나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으나, 그는 마치 이미 정해진 사실을 말하는 것 마냥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백천이 무모한 패기를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해외 인터넷과의 연결이 거의 차단되어 있다시피 한 만큼, 그들의 인터넷 시장도 내수적으로 굴러간다. 더군다나 이곳은 상하이. 아무리 엑스포 관객 중 해외에서 유입된 관광객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그 숫자는 본토인 중국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즉, 팀의 얼굴 역할을 맡은 요리사가 서로 비슷한 인지도를 가졌다고 하여도 홈 플레이스의 이점을 등에 업은 중국팀을 다른 나라가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장백천은 그런 것이 없더라도 조국의 우위를 확신하고 있었으니, 자기주장 하나는 확고한 사내였다.
『…… 흠.』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류찬혁. 몇 달 전에 고작 17세라는 나이로 자신을 감탄하게 만든 재주를 가진 소년. 조국의 요리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과연 이번에는 찬혁이 어떤 마법을 부렸을지. 장백천이 이렇게 서둘러 발을 옮긴 이유는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갑, 을, 병을 지났으니, 이제야 정 차례로군.』
천간天干의 순서에 따라 나뉜 구역.
정식 운영위원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고문인 그가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음에도 직접 현장을 살피러 나온 것도 어느 의미 그에 대한 변명이었다.
관계자 전용 복도를 지나 도착한 정 구역.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으나, 다행히 문제가 생긴 듯 보이지는 않았다.
구역의 상황을 대략 파악한 장백천은 그제야 자신이 이곳에 왔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전광판으로 본 현황은 퍽 만족스러웠다.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중국 팀이 다른 팀들을 앞서고 있었고, 지금도 조금씩 차이는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상황이 유지가 되면 오늘 행사의 주역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중국이 될 터였다.
조국의 성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장백천은 뒤이어 찬혁이 속한 한국팀의 행적을 좇았다. 확대되어 표시된 10위권에는 보이지 않아 점차 순위권의 숫자를 따라 읽어 내려가던 그가, 태극기를 발견한 직후 눈에 들어온 이상한 현상에 눈을 찌푸렸다.
'뭔가, 점점?'
하얀 바탕에 홍청 태극무늬가 인상적인 국기가,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순위표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50…….45…….40…….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그 이상하리만치 빠른 속도에 장백천이 놀랄 새도 없이, 더욱 높은 곳을 향한 등정을 시작한 그들은 발을 멈추지 않는다.
차트 역주행의 시작. 장백천은, 그 태동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