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4가지.-4-
'소불고기? 총떡?'
마량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해괴한 이름을 듣고 혼란에 빠져있을 때, 마침내 조리도구의 점검을 끝낸 찬혁 일행은 뒤이어 요리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느슨해진 조리복 소매를 단단히 여미고, 조리모와 위생 마스크를 써 위생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차림새를 단정히 정리한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일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그 모습에 대체 어떤 요리가 나올지 머릿속으로 몇 차례나 상상을 반복하던 마량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제법…….'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좁은 주방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한 위치선정.
'처음 선 주방에서 최소한의 접점만 남겨둔 퍼스널 스페이스를 저토록 빨리 나눌 줄이야. 저러면 조리 중에 서로에게 방해될 일은 없지.'
저렇게나 단숨에 자신이 서야 할 곳을 판단하고 영역을 분담했다는 건, 분명 사전에 자신의 역할을 확실하게 머리에 때려 박았다는 뜻. 더군다나 마량은 찬혁 일행이 결성된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급조된 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움직임이 유기적이야…… 협동력이라는 게 생기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요 하룻밤 새 상당한 연습을 거친 건가.'
각자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챙긴 찬혁 일행이 드디어 요리를 시작했다.
마량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철저한 분업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철판 담당, 화구 담당, 도공 담당, 조미 담당, 튀김 담당, 마지막으로 소분 포장 및 재료 담당까지.
여섯 명의 요리사가 각자의 맡은 바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그중에서도 마량의 눈길이 쏠린 곳은 역시나 찬혁의 섹션이었다.
관객이 거니는 통로와 가장 근접한 곳. 투명한 아크릴판 너머로 보이는 1미터 길이의 철판은 그 어느 곳보다도 가장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찬혁은 두 개의 커다란 바트에 각각 재료를 쏟아붓고, 거품기로 그것을 열심히 휘저었다.
'반죽?'
마량이 파악한 바트의 내용물은 다름 아닌 반죽. 밀가루가 들어간 듯 보이는 하얀색 반죽과 옅은 팥색 반죽을 본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죽을 두 가지나 쓰는군요. 메뉴가 두 가지인가요?』
마량의 질문에 찬혁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아뇨. 저희는 오늘 단일 메뉴를 준비했습니다.』
『호오. 단일 메뉴라. 알겠습니다.』
두 종류의 반죽을 사용하는 메뉴. 마량은 방금 찬혁이 말했던 메뉴의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2겹 소불고기…… 뭐더라. 아무튼, 2겹이라는 건 저 반죽으로 두 겹의 피를 만든다는 건가?'
평범한 반죽과는 달리 끈적이며 흘러내릴 정도의 농도로 완성된 반죽을 보며 마량은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저건 면이나 만두용 반죽이 아니야. 그것보다는…… 그래, 밀떡 같은 곳에 쓰이는…….'
점점 더 추측에 추측을 더해가며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던 마량. 이어지는 찬혁의 행동은 과연 마량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달군 철판에 골고루 기름칠을 한 뒤, 충분히 뒤섞은 반죽이 담긴 바트를 철판의 화기가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두고 각각 국자를 꽂는다.
'철판에서 반죽을 구울 셈이로군.'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에 김이 빠진 마량이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모양이 잡힌 것도 아니고, 그냥 네모반듯한 철판에서 저 반죽을 그대로 구웠다간 모양이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 원한다면 모양에 맞는 틀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을 터. 그런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찬혁의 행태에 마량은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선생님이 장담하신 실력도 고작 이 정도……?'
하지만.
『아, 아니……?!』
찬혁의 요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두, 두 개를 동시에?!』
두 종류의 반죽을 동시에 달군 철판 위로 끼얹는 찬혁!
그 말도 안 되는 행위에 마량은 경악했다.
『무, 뭐하는 겁니까! 만든 재료를 버릴 셈입니까?! 그렇게 했다간 반죽이 뒤섞여 쓰지도 못하게 될 텐데!!』
중간에 가림막 하나 없는 평범한 맨 철판. 그런 곳에 대책 없이 저런 묽은 농도의 반죽을 동시에 부었다간 한 곳으로 섞이는 게 당연지사!
그런 사태가 일어날까 호통을 치는 마량이었으나, 괴이하게도 찬혁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뭐, 뭐. 일단 보고 계세요. 이야기는 요리를 끝낸 다음에 해도 안 늦잖아요.』
철판의 양쪽에 반죽을 부은 찬혁은, 뒤이어 특이하게 생긴 물건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나눠 쥐었다. 꼭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평탄화 할 때 사용하는 고무래를 작게 축소 시켜놓은 것 같은 모양새를 한 도구.
그것을 본 마량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그, 그건……?!』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생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인인 마량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전통음식인 젠빙을 만드는 도구인 평파平耙! 그러나 마량이 놀람을 그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두 손에 평파를 쥔 찬혁이 재빠르게 손을 놀렸다.
묽은 반죽 위를 그리는 원의 궤적. 단 한 번의 부드러운 스냅이 불러온 결과를 본 마량의 입이 쩍 벌어진다.
'두, 두 개를 단번에!'
혹자가 말한다. 젠빙을 만들 때, 반죽을 원 모양으로 펼치는 데 한 달. 평파를 세 번 돌려 원을 만드는 데 일 년. 그리고, 한 번의 평파질로 원 모양을 만드는 데 삼 년.
'그렇다면, 두 개의 반죽을 단번에 원 모양으로 만드는 데에는 대체……?'
사람의 사지는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팔은 고작 서로 다른 도형 두 개조차 동시에 그리지 못하고, 얼마든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다리는 제기 몇 번을 차는 것도 힘겨워한다.
'이건 대체 뭐야.'
마량은 자신의 상식이 그야말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일 수 있는 기교. 하지만 그 겉보기에는 간단한 그 기교 속에 녹아든 힘의 가감, 기술, 경험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눈대중으로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약관조차 들지 못한 소년은 그런 상식 따윈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그저 당연한 일을 행하듯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교를 부리고 있었다.
마량의 시선에 놀라움과 경악을 넘어 질려 버린 눈빛이 담겼으나, 찬혁은 그저 제 할 일을 마저 행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야, 이게 아직 되네. 중식당 일할 때 재미 겸 속도 내려고 연습했던 건데."
마량이 그 뜻을 알았다면 놀라 까무러쳤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 찬혁은 다른 섹션에서 전달해 준 특제 소불고기볶음을 잘 익은 메밀반죽 위에 얹어 둥글게 만 뒤, 그것을 다시 한번 녹말, 밀가루, 계란을 섞은 반죽으로 속재료가 빠져나오지 않게끔 감쌌다.
총떡의 바깥을 감싼 밀반죽은 아직 살짝 덜 익은 상태. 하지만 괜찮다. 그게 찬혁의 의도였으니까.
'일부러 철판 양쪽 화력을 다르게 했으니까.'
메밀반죽은 조금 더 강한 화력으로 빨리 익게, 밀반죽은 조금 더 약한 화력으로 늦게 익게.
들어간 재료의 차이 탓에 익는 시간이 다른 두 반죽을 같은 시간 동안 익혀서 각기 원하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귀찮은 계산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첫 번째 시도 만에 제법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뽑아낸 찬혁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단 사실에 기뻐할 뿐이었다.
'이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아직 제대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하얀 총떡을 튀김 섹션에 있던 예은에게로 넘기자, 그것을 받은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180도로 예열된 고온의 기름 속으로 망설임 없이 총떡을 집어넣는다.
이게 바로 찬혁이 고안한 네 가지 요소의 마지막 하나, 유지력을 만들기 위한 비법. 2중 튀김.
중식에서 대부분의 튀김요리는 한 번만 튀기는 일이 드물다.
처음에는 튀김옷이 타지 않고 속재료가 익게끔 낮은 온도에서 비교적 장시간 1차로 튀기고, 2차에서 튀김옷이 바삭해지도록 높은 온도에서 단숨에 튀긴다!
이 조리법에는 말로 다하지 못할 무수한 장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찬혁이 꼽은 장점은 바로 '데우는 것' 이었다.
'뜨거워도, 미지근해도, 차가워도 맛있는 요리는 있을 수 없어. 그러면 나가기 전에 뜨겁게 만들어서 주면 되잖아?'
총떡 자체를 속재료 삼고, 겉을 한 번 더 튀김옷 같은 피로 감싸 직전에 튀겨내는 것! 그것이 바로 찬혁이 주장한 2겹 총떡 튀김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마량 또한 찬혁 일행의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하면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은 뒤 내가기 전에 튀겨서 바로 건네주기만 하면 돼!'
180도에서 단 30초! 그 시간을 거친 밀반죽은 단숨에 바삭바삭한 식감을 자랑할 터! 그에 더불어 속재료 또한 먹을 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온기를 되찾게 된다.
어찌 보면 전자렌지로 데우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기름으로 튀기는 것 자체가 요리의 완성! 찬혀 일행의 메뉴는 요리를 완성 직전의 상태에서 방치하다가, 관객의 주문이 들어올 때 비로소 완성되는 요리였다.
『자, 드셔보시죠.』
『고, 고맙습니다.』
경탄에 젖어 있던 마량은 찬혁이 건네준 요리를 공손한 자세로 받아들었다.
속째료가 돋보일 수 있게끔 사선으로 말끔하게 잘린 튀김이 푸드 엑스포라는 글자가 프린팅 된 포장지에 곱게 담겨 있었다.
꿀꺽.
'어, 엄청난 향이다……!'
첫 타자로 코를 강타하는 튀긴 밀가루의 향에 마량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언제, 어느 시대고 튀김과 곡물의 조합은 항상 옳았다. 그것이 밀가루라면 그야말로 찰떡궁합! 튀긴 밀가루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킁, 킁킁.
그 뒤를 이어 타석에 들어서는 것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간장의 향기!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중국 전통의 화구에서 물기 하나 없이 볶아진 소불고기 위로 피어오르는 눌어붙은 간장의 약한 탄내는 마치 자신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드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못 참아!'
─바삭!
물었다!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마량의 튼튼한 치아가, 찬혁 일행이 만든 총떡 튀김을 단숨에 물어뜯었다!
『으, 으읍?!』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바삭함!
고온의 기름에서 튀겨진 밀가루 튀김옷은 그야말로 얇은 전병과자!
그 바삭한 갑옷을 단숨에 뚫은 치아가, 이번에는 그 아래 가려져 있던 속살을 파고든다!
'이번엔 쫄깃해!'
기름에 직접 튀긴 밀반죽과는 다르게, 철판의 열기만으로 익힌 메밀반죽은 총떡이란 이름에 걸맞게 폭신폭신하면서도 쫄깃한 떡처럼 이를 감싸왔다.
고소함의 뒤를 따라오는 메밀 특유의 쌉싸름함은 말 그대로 흑백대비 콘트라스트! 그 뒤얽힌 맛의 조화에도 이는 멈출 줄 모르고 더더욱 그 속을 탐한다!
『오, 오옷!』
왔다. 왔다! 왔다!! 소불고기가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러 들어왔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반죽의 간이 심심하지 않았냐는 듯, 존재를 알아채자마자 진한 짠맛으로 단숨에 침샘을 폭발시키는 소불고기의 맹렬한 짠맛!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참기름, 파, 마늘 등이 얽힌 복잡한 감칠맛이 짠맛을 덮고, 2차로 뒤 섞인 두 겹의 반죽이 단숨에 맹렬한 짠맛을 딱 알맞은 맛으로 탈바꿈시킨다!
마량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지 못한다!
이미 주인의 손을 벗어난 그의 입은 마지막 한 조각을 넘어 포장지까지 씹어 삼킬 기세로 맹렬하게 저작운동을 반복했다.
한 입, 두 입. 단 몇 차례의 상하운동만으로 들고 있던 총떡 튀김을 단숨에 먹어치운 마량의 눈에서, 한 줄기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미, 미미美味……!』
***
"와오."
뭐지 이 사람. 요리사가 아니라 푸드 파이터 출신인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마량 운영위원은 내가 건넨 2겹 소불고기 총떡 튀김을 맹렬한 기세로 먹어치웠다.
그의 눈가로 땀인지, 무엇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당황스런 기색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괜히 소란을 피웠군요.』
『아뇨. 뭐.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내 말에도 거듭 죄송하다며 우리 일행 모두에게 한 번씩 고개를 숙인 마량 운영위원이 다시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장백천 선생님이 그러시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이 일을 하며 또 한 번 배웠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굉장히 만족스러운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덕분에 이번 박람회는 풍족하겠군요. 그게 맛있는 요리의 힘이니까요.』
『…… 예?』
뭔 소리야.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그의 눈이 결연한 빛으로 반짝였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고 있자니, 마량 운영위원은 또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 예.』
뭔가 되게 갑자기 왔다가 급하게 가는 사람이구만.
그런데, 어딘가 망설임 섞인 표정으로 우물쭈물 떠나지 못하는 마량 심사위원.
그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내가 하는 수 없이 먼저 말을 건네자, 그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애원하듯 답했다.
『저, 염치불구하고 말씀드립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그…… 2겹 소불고기…… 그러니까…….』
『2겹소불고기총떡 튀김이요?』
『아, 예! 그, 그걸 조금만 더 만들어주실 수 있으신지……?』
……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보네.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일행에게 그 말을 전하자, 일행은 폭소를 터뜨리며 그러겠노라고 답했고, 마량 운영위원은 그 대답에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그날. 그는 세 개의 총떡튀김을 더 얻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