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94화 (94/403)

94. 안가람에서의 마지막 휴일.-4-

음파 병기의 힘은 대단했다. 나른한 주말 아침의 졸음기를 단숨에 쫓아낼 정도의 위력을 가진 물건에 고작 그런 수식어밖에 달 수 없다는 게 통탄스러웠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야야…… 아직도 귀가 울리는 것 같아. 좀만 살살 깨워주면 안 돼?"

"살살 깨우려 했어요. 노크도 엄청 했는데 안 일어나시는 걸 어떡합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두 귀를 매만지는 선배가 한스런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게 창민이처럼 재깍재깍 일어나면 얼마나 좋아.

"그럼 차라리 들어와서 깨워주지."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요, 남사스럽게. 아무튼 자리에 앉으세요. 아침 해놨어요."

뾰로통하게 뺨을 부풀리는 선배를 마지막으로 집에 있던 모두가 식탁에 앉았다.

먼저 일어났던 백하은 쿡은 어색한 몸짓으로 뻣뻣하게 굳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창민이는 언젠가 보았던 요리책과 같은 시리즈로 묶인 책을 열심히 탐독 중. 선배는 입을 가린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졸린 티를 내고 있다.

나른한 아침 풍경에 작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할 풍경이겠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꾸벅이던 선배가 나른한 눈빛을 보내왔다.

"냄새 좋다. 혼자 한 거야?"

"아무도 안 일어나니 혼자 했죠."

"고생했어. 못 도와줘서 미안하네."

"됐어요. 안 그래도 어제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분한 듯 부들부들 떨리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선배에게 마찬가지로 미소로 답한 뒤, 준비해놨던 메뉴를 탁자 위로 날랐다.

산채비빔밥과 계란후라이 몇 개,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은 강된장이 담긴 뚝배기까지.

추가로 준비한 반찬 몇 가지까지 같이 놓으니 일행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솟았다.

"오, 맛있겠다."

"강된장 비빔밥? 마침 입이 니글거려서 좀 산뜻한 게 땡겼는데, 센스 좋네!"

"그럴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어제 먹은 게 좀 기름졌어야지.

"잘 먹을게! 찬혁이 너도 얼른 앉아. 같이 먹자."

"예, 잠시만요."

들뜬 기색으로 신나서 숟가락을 드는 효민 선배와 무심한 듯 책을 덮는 창민이. 두 남매에게는 제법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 언니, 식사 안 하세요?"

"응? 아, 먹어야지. 응."

백하은 쿡만은 숟가락을 들고 비빔밥을 쿡쿡 뒤적이며 좀처럼 첫 수저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음, 이럴 것 같긴 했다. 그렇게 마시고 속이 좋지는 않을 테니.

'그래서 준비한 게 있지.'

내가 아직 주방에서 나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

미리 준비한 국그릇에 준비해 둔 그것. 뜨끈한 콩나물국을 가득 담아 테이블로 내가자 그늘이 잔뜩 져 있던 백하은 쿡의 눈빛이 변했다.

'속 푸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지.'

고춧가루, 후추통을 반찬 옆에 같이 세팅해두자 번개처럼 향하는 시선들. 그 밀집된 시선을 뚫고 먼저 순서를 가져간 것은, 다름 아닌 백하은 쿡의 손이었다.

***

결론만을 말하자면, 아침 메뉴의 반응은 과할 정도로 좋았다. 혹시나 해서 살짝 여분을 남겨둔 밥까지 밥풀 한 톨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었을 정도로.

요리사에게 빈 접시란 최고의 상찬이다. 그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마찬가지다.

"밥 다 먹었으면 이제 일이나 하죠. 집에 가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는 해놓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대청소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청소 정도야 매일 하고 있지만, 주방, 거실, 화장실, 그리고 각자 사용하던 방까지 깔끔하게 청소를 해둬야지 이다음에 올 청소업체 분들도 고생을 덜 하시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이 집을 사용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신 교장 선생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나도 도와줄게."

"예? 백하은 쿡까지 도와주실 건 없어요. 하룻밤 잡아둔 것도 죄송한데 집에 들어가 보셔야죠."

"괜찮아. 어차피 혼자 자취 중인 데다가 따로 약속도 없으니까. 밥값은 해야지."

"…… 그러시다면야, 저희야 감사하죠. 잘 부탁드릴게요."

그런 와중에 청소를 돕겠다며 나선 백하은 쿡을 한사코 말린 우리였으나, 그녀는 완고한 태도로 팔까지 걷어붙이며 우리의 만류를 반대로 거절했다.

청소야 손이 하나라도 많으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니, 결국 이기지 못한 우리는 기꺼이 그녀의 뜻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빨리 끝났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애초에 별로 더럽지도 않던걸."

어느덧 청소를 시작한 지 두 시간이 흘렀다.

사용했던 곳이라면 빠짐없이 꼼꼼하게 청소를 마치고 짐까지 챙기니, 드디어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게 점점 실감되기 시작했다.

"뭔가 엄청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났네."

"그러게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말 그대로 남들보다 긴 하루를 살았으니까. 가게를 다니는 동안 수면을 취한 시간을 전부 합쳐도 20시간을 조금 넘는 정도다. 이 두 남매가 그토록 죽은 듯 잠만 자던 이유가 있다.

일주일 동안 있던 일을 털어내니 선배 또한 우습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힘들긴 했어."

"그래도 얻은 건 있으니까요. 백하은 쿡한테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자기 탓에 고생만 시키다 보낸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쓰게 웃었다. 나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대신 지금은커녕 훗날에도 이루지 못할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해주지 않았는가.

"나야말로 너희한테 감사하게 생각해. 전부 너희들 덕분인걸."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야말로 언니가 없었음 절대 못 했을 텐데요."

맞는 말이다. 백하은 쿡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자료가 없었다면 주방장님이 만든 초교탕과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무지막지하게 맛있는 요리였으니까.

모두가 나서서 자신을 두둔하자, 멋쩍은 듯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던 백하은 쿡이 고맙다고 말을 맺으며 들고 있던 헬멧을 눌러 썼다. 바이저에 가려진 표정이 읽기 어려웠다. 아마 본인도 그걸 노리고 한 행동일 것이다.

"아무튼, 나도 이만 가볼게. 밥, 정말로 잘 먹었어. 맛있더라."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보세요."

혹시라도 취기가 남아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됐지만, 그 정도로 자기 간수를 못 할 사람은 아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크루즈 바이크에 가볍게 몸을 실은 그녀가 시동을 걸자, 거친 배기음이 머플러를 터트릴 듯 튀어나온다.

그 소리를 듣고 한 걸음 물러나는 우리를 향해 백하은 쿡이 고개를 돌렸다. 바이저에 가려 시선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나를 향한 시선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백하은 쿡?"

"나…… 말해줘…… 고마……."

"예? 뭐라고요?"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헬멧에 가려진 데다가 배기음까지 겹쳐서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질 않았다. 결국 그녀도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바이저를 올리고는 좀 더 커다랗게 키운 목소리로 날 향해 외쳤다.

"찾아볼게! 네가 말한 대로!"

"?"

찾아? 뭘?

그 말에 담긴 뜻을 내가 물을 새도 없이, 다시 바이저를 내린 그녀가 바이크의 엑셀을 당겼다. 과연, 커다란 크기에 맞게 대단한 마력을 자랑하는 바이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골목을 꺾어 우리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창민이와 효민 선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질문을 건넸다.

"뭐라고 하신 거야? 잘 못 들었는데."

"모르겠어."

궁금하다는 듯 내게 눈치를 주는 남매였으나, 아쉽게도 나도 잘 모르니 알려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내 버스 탑승 시간도 점점 다가오는 상황이니, 슬슬 출발해야 늦지 않게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고 몸을 돌리자 그걸 알아챈 일행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길을 양보하며 몸을 뒤로 뺐다.

"벌써 가게?"

"백하은 쿡도 가셨으니, 저도 이만 가봐야죠. 버스 시간도 있고."

"고생했어. 덕분에 재밌기도 했고."

"나도. 방학 재밌게 보내라."

"어."

투박한 남자들의 대화에 선배가 이제 곧 헤어지는데 할 말이 그것뿐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야말로 그 반응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죽을 사람도 아니고."

"맞아. 어차피 몇 주 안 있어서 또 볼 거 아냐. 상하이 다녀와야지."

"그래도!"

무슨 정든 강아지 분양 보내는 아이마냥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하는 선배. 그런 그녀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창민이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재촉했다.

"얼른 가. 이러다 붙잡히겠다."

"어. 그래야겠네. 근데 너랑 선배는? 안 가?"

갈 길은 반대지만 그래도 출발은 같이할 줄 알았는데.

끝내 훌쩍이기 시작한 선배를 대신하여 창민이가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우리는 아빠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 가져갈 짐도 조금 늘었잖아."

"아."

하긴, 식재료야 얼추 다 썼지만 남은 게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외에도 조미료나 장 같은 것들이 좀 남아 있던 것을 아이스박스에 미리 챙겨놓은 것이 생각났다.

'그거 둘이서 가져가려면 좀 버겁긴 하겠네.'

사정을 짐작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창민이가 걱정 말라며 웃었다.

"조금 이따가 오시기로 하셨으니까, 우리도 금방…… 응?"

그러던 도중, 나를 보며 웃던 창민이의 두 눈이 갑자기 놀란 듯 크게 떠졌다.

그 시선은 내가 아니라 내 뒤쪽을 향해 있었다. 뒤쪽이라고 해봤자 골목길밖에 없을 터. 창민이의 시선을 따라 의아해하며 눈을 돌린 나는, 이윽고 이 녀석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향해 있던 골목길에서, 한 대의 차가 이쪽을 향해 머리를 향한 채 멈춰 있었다. 그것뿐이라면 이토록 놀라진 않았겠지만, 그 운전선 창문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놀란 진짜 이유였다.

"아빠?"

"주방장님?"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나와 내 손에 들린 짐을 한 차례 번갈아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라."

거부하기에는, 내 깜냥이 모자라지는 제안이었다.

***

"……."

"……."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차 내부.

조수석에 앉은 나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며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하고 계신 주방장님의 옆자리에서 마찬가지로 말없이 안전벨트를 매만지고 있었다.

지금, 차 안에는 단둘뿐이었다.

주방장님, 나. 이렇게 단둘.

선배와 창민이가 있었다면 시끄러울지언정 적어도 이토록 어색하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이신 건지 주방장님은 그 둘을 집에 놔두고 나 혼자만 차에 태운 채 차를 몰고 계셨다.

"저기, 주방장님?"

"왜."

"효민 선배나 창민이는 왜……."

"가는 길이 반대니까. 다녀가는 길에 태워 가면 돼."

그러시구나. 어차피 날 내려주고 다시 그 집을 들렀다 돌아가는 거나 같이 태우고 한 바퀴 돌아가는 거나 별 차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뭔가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태워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아까 백하은 쿡이 한 말은 뭐였던 거지?'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안 하니 사색할 시간이 늘었다.

찾는다. 네가 말한 대로

'내가 말한 대로?'

내가 무슨 말을 했던가?

좌석에 몸을 기댄 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가 한 말. 내가 한 말.

대화야 많이 나누긴 했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아."

내 기억이 담긴 상자를 뒤지던 중, 한 사건이 내 뇌리를 스쳤다.

대체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어젯밤, 백하은 쿡에게 했던 이야기. 설마 백하은 쿡, 기억 못 한 게 아니라 못하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건가?

'맙소사.'

까먹은 게 아니었다고?

갑작스럽게 닥친 현실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세상에. 아침에 그게 다 연기였단 말인가. 하기야 기억한다고 해봐야 서로 어색해지기만 했을 테니 그런 거짓말이야 기꺼이 받아줄 수 있었지만, 그럴 거면 대체 왜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하고 갔단 말인가.

"…… 멀미라도 나는 거냐?"

"아, 아뇨. 괜찮습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마른세수를 하는 나를 본 주방장님이 질문을 건넸지만,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숨을 내쉬며 괜찮다고 답변할 뿐이었다. 주방장님이 보시기엔 그런 내가 괜찮지 않아 보였는지 차의 속도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감사한 배려였다.

"류찬혁 견습. 아니, 이젠 직원이 아니지."

잠시 그 상태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내게 웬일로 주방장님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류찬혁 학생."

"예."

"고생했다."

"…… 예?"

주방장님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그것도 심지어 요 일주일 동안 봬오며 처음 들어본 따뜻한 목소리로.

깜짝 놀란 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주방장님은 그것을 듣지 못한 것 마냥 말을 이었다.

"난 자네 같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 솔직히 말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제법 있었지만, 요리하는 걸 보면…… 아니, 일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눈에 독기가 서려 있어. 자네는 뭘 해도 열심히 하는 부류의 사람이야. 잘 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감사…… 합니다……?"

칭찬이 맞는 것인지 헷갈리는 말의 나열에 멋대로 얼빠진 얼굴이 되는 게 느껴졌다. 주방에서는 효민 선배와 엮인 일이 아니면 매번 기계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분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거기서 말을 끝맺은 주방장님과, 할 말을 찾지 못한 나.

그런 우리 사이로 내려앉은 짧은 침묵이, 다시 한번 주방장님의 선창으로 깨졌다.

"음…… 아무래도 이런 말에는 소질이 없어서, 미안하게 됐다. 안사람한테도 말주변이 없다고 혼나곤 하는데, 괜한 말은 아닌 모양이야. 류찬혁 학생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 아뇨. 전혀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곱게 접어 마음 한구석에 숨겼다.

침묵과 대화가 비정기적으로 우리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도 목적지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주방장님은 입을 여실 때마다 짧게 짧게 칭찬인지 무엇인지 잘 모를 말씀을 이어나갔다. 아마, 본인은 정말 순수하게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차는 남부터미널 앞에서 멈췄다. 승차권을 예약한 곳이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주방장님도 같이 내리더니 손수 내 트렁크를 챙겨주셨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어른의 친절을 너무 사양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야."

"…… 감사합니다."

뭘까. 이 친절함. 주방 바깥에서 성격이 거의 이중인격자처럼 변하는 셰프도 많이 상대해 봤지만, 이런 느낌으로 변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살짝 머리에 렉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설마 예정보다 집에 일찍 온 것도 날 데려다주러……?

'에이. 그건 자의식과잉이지.'

그것만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우리 가게에서 일해 줘서 고맙다. 조심히 가고, 부모님께 안부 인사 전해다오."

"예."

"그리고……."

"……?"

"혹시, 겨울방학 때 그럴 생각이 있다면, 다시 한번 찾아줬으면 좋겠구나. 겨울철 안가람도 일손이 부족하거든."

"아."

주방장님의 눈이, 나를 곧게 바라봤다.

회귀 전, 나는 저런 눈빛을 몇 차례인가 본 적이 있다. 놓치기 싫은 셰프가 퇴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오너의 눈빛.

그 눈빛이 향하던 대상은 대부분 내가 아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주방장님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에 주책없이 들뜬 내 마음이, 몸을 앞질러 입을 통해 그에게로 달렸다.

"예. 그렇게 된다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회귀한 나의 첫 번째 퇴사는, 아무래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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