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86화 (86/403)

86. 메뉴 시연회.-2-

솔직히 말하자. 내가 하고 있는 요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한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물건이다.

'각도로 치면 한 270도쯤?'

그래. 한 그 정도는 어긋나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머랭을 쳐서 콩소메 기법을 이용해 육수를 끓이고, 거기에 한술 더 떠 직화로 구워 색을 낸 닭의 뼈까지 써서 2차로 고아낸다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결코 한식에 사용되는 조리법은 아니다. 내 예상에 불과하지만,주방장님도 처음 이 레시피를 봤을 때에는 '뭐지 이 신박한 또라이는?'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왜냐면 내가 생각해도 그렇거든.'

사실 반쯤은 퇴짜 맞을 각오로 써본 레시피였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발상을 최대한 짜내어 중도를 지키는 선에서 참신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주기 위한 이른바 충격요법 같은 발상.

다만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면, 우리 크루도 죄다 나 못지않은 파천황적 기질이 있었다는 것일까.

'아니, 다들 머리가 젊어서 그런가 오히려 나보다 더한 것 같기도 하고…….'

콩소메 기법으로 불순물 없는 맑은 육수를 뽑겠다는 건 내가 한 발상이 맞다.

닭으로 만드는 육수는 뼈와 껍질에서 나오는 기름과 불순물의 양이 많다. 다시 말하자면 육수 자체에 잡맛이 많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뜻.

이건 아무리 꼼꼼하게 닭을 닦아내고 거품을 열심히 제거해도 해결을 보기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콩소메 기법을 쓴 것이다. 머랭을 넣어 끓인다는 단순한 과정으로 그 어떤 방법보다 불순물의 제거가 쉬우니까.

'눈만 딱 감을 수 있다면 말이지.'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이리라 생각했지만, 이걸 어쩌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크루는 기왕 선을 넘는다면 한두 걸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 준비 끝!"

"나도 육수만 오면 바로 준비할 수 있어."

"……."

저것만 봐도 그렇다.

이미 몇 번이나 미리 만들고 먹어본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다는 듯 활짝 웃는 표정. 요리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보일 수 없는 태도에 내 입꼬리도 저절로 그들을 따라 올라간다.

"거의 다 됐습니다! 면보로 걸러낸 다음 바로 마무리 들어갈게요!"

아쉽게도 공연도 막을 내릴 시간이 됐다. 자, 이제 요리를 끝내도록 하자.

***

"저게…… 한식?"

"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거지?"

술렁술렁.

안가람의 주방.

뜨거운 화구 앞에서 시연회를 대비하여 힘겹게 요리를 해나가는 인원들을 보던 직원들 사이에서 점점 속닥이는 소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작은 속삭임에 불과했던 소리는, 하나둘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몸집을 불려, 이제는 조용히 그 소란에서 빠져 있던 사람마저 그 속으로 끌어들일 만큼 커다란 술렁임이 되어 관중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찬혁의 팀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은 하은이 팀이지만…… '

최동식은 그런 자신의 생각에 무심코 딴지를 걸었다. 스스로 말하고도 살짝 황당했기 때문이다.

저 팀은 원래 백하은의 주도로 모이게 된 것이니 분명 저 팀은 찬혁의 팀이 아닌 백하은의 팀이라 부름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팀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최동식의 눈에 저 팀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백하은이 아닌 찬혁으로 보일 뿐이었다.

'에이, 말도 안 되지.'

아무리 강진과 최동식이 극찬을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견습으로서 업무에 임하는 찬혁을 보고 한 말이었다.

자신이 맡은 재료 하나만 보는 견습의 시야와 요리 전체를 망라하는 팀장의 시야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천재성이나 학습의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경험과 센스.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은 그로써 길러지는 법이니까.

'하은이가 이상하게 뒤로 빠져서 안 나서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최동식의 감정은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을 그렇게 판단하고자 애썼으나, 우습게도 그런 노력이 거듭될수록 더욱 그의 머리를 차지하는 것은 눈앞의 증거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성 쪽이었다.

'업무의 분배, 타이밍 계산, 팀원 사이의 연동 조율…… 완벽해.'

30분이라는 빡빡한 시간제한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제어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도 결코 소홀함을 보이지 않는 찬혁의 모습에서는 심지어 여유마저 느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식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파리에서 미슐랭 3성의 좌를 수십 년 동안 차지한 거성. 호텔 메종 드 에즈에서 연회주방의 수 셰프를 맡아온 인물에게서 여유를 빼앗기려면 고작 하나의 메뉴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찬혁의 모습을 보며 '오랫동안 합을 맞춰서 그런 거겠지.'라고 자기가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결론을 억지로나마 내린 최동식이 여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던 강진에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쟤들, 대체 뭘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

화제를 돌리는 이유는 방금 했던 생각에서 눈을 돌리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만큼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쿡들이 시끄러운 이유가 바로 그 의문 때문이었다. 그들도 남이 요리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것이 결코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입을 모아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안가람에서 일한 경력이 자신보다 수년은 더 긴 강진이라면 무언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시선을 돌린 최동식이었으나, 이내 그가 본 것은 자기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강진의 모습뿐이었다.

"글쎄다. 난 모르겠는데."

"형님도 모르신다고요?"

말도 안 된다는 듯 최동식이 되묻자, 강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최동식을 쏘아붙였다.

"생각을 해봐라. 너는 콩소메에 브라운 스톡 기법까지 써서 만드는 한식 본 적 있냐?"

"어, 없죠?"

"나도 없어 인마! 나보다 훨씬 신세대인 네가 그런데 나는 어떨 것 같냐?"

"아, 그건…… 그렇죠. 예에…… "

세대 언급만 뺀다면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최동식은 말꼬리를 늘리며 입을 다물었다. 세대 언급만 뺀다면.

'국민학교랑 초등학교가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

입 바깥으로 꺼냈다간 강진이 경을 칠 소리라며 입을 꾹 다문 최동식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돌렸으나, 정작 강진은 찬혁 팀의 요리에 집중하느라 그런 최동식이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강진이 최동식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찬혁이 저 녀석, 용병술은 훌륭하구만."

"용병술이요?"

"아니, 용병술이 아니라 장악력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야 대단하긴 하네요."

최동식은 강진이 자신과 같은 부분에서 놀라고 있다고 생각한 듯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강진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그 대답을 일축했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지 않냐?"

"예? 쟤네 팀 말씀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역시, 착각하고 있잖냐. 내가 말한 건 쟤네 팀을 말한 게 아니야."

자신에게 의아한 표정을 보내는 최동식에게 고개를 저은 강진이, 이내 손을 들어 찬혁 팀의 요리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직원들을 가리켰다.

"봐라. 내가 말한 건 저거다."

"……다들 찬혁이네만 보고 있네요."

"그렇지. 다른 애들은 물론이고 주방장님까지 직접 요리 중이신데, 다들 찬혁이 요리 말고는 관심도 없지?"

"!"

"장악하고 있는 거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이목을. 노린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찬혁이 저 녀석. 최대한 요리를 안 가리게끔 움직이면서 요리하고 있어. '내가 이렇게 엄청난 걸 만들고 있어요!'라고 보여주는 것 같지 않냐?"

그 말을 듣고서야 최동식은 찬혁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살필 수 있었다.

'확실히…….'

정말 강진이 말했듯이, 자신의 요리를 보여주듯 직원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동선으로 움직이며 요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비롯한 직원들도 찬혁이 어떤 조리법을 쓰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저게 우연이라면 대단한 일이지만, 만약…….

"의도한 거라면 상당히 영악한 놈이지."

"……그러게요."

최동식이 새삼 놀랍다는 시선으로 찬혁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팀이 만드는 메뉴는 이미 시각을 넘어 후각의 영역을 침범해오고 있었다.

닭육수 특유의 구수한 냄새와 더불어 풍겨오는 여러 한약재가 어우러진 그윽한 향.

그토록 한식답지 않은 조리법만 주구장창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향만큼은 더없이 향토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좋아, 슬슬 앞으로 나가자."

"예?"

"묻지 말고 하란대로 해. 더 뒤처지면 국물도 없어."

보통은 조금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딱 말이 원래 가진 의미로 들린 것 같다고 최동식은 생각했다.

주방의 벽에 달린 시침이 정각을 향해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다.

제한시간이 끝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

공표했던 제한시간이 끝나고. 우리 팀을 비롯한 시연회에 나온 직원들은 서로가 만든 메뉴를 들고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다들 재밌고 예쁜 모양의 접시들을 가져왔지만, 비주얼적인 측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케일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거창한 접시를 쓰고 있는 건 아무리 봐도 우리 팀인 듯했다.

'그야 애당초 접시가 아니니까…….'

우리 팀이 요리를 담은 것은 접시가 아니라 냄비였다. 그것도 직경이 대략 한 뼘을 살짝 넘을 만큼 제법 크기가 있는 검은 질냄비. 지금은 살짝 볼품없게 평범한 가스렌지 위에 올라가 있었지만, 따로 숯을 넣어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전용 화로가 딸린 굉장한 고급냄비였다.

"이런 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예전에 아빠가 유명한 그릇 장인한테 사정사정해서 세트로 구비했다고 일주일 동안 자랑하셨거든. 갑자기 생각나서 가져왔지! 이거 우리 아빠가 되게 아끼는 거다? 잘 쓰지도 않아!"

"……아, 예.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 것 같네요."

저렇게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보는데 모를 리가 있나. 역시 이번에도 멋대로 가져온 건 선배인데 화는 내가 뒤집어쓰고 있다.

'예쁘고 분위기가 잘 어울려서 좋기는 하네.'

근데,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 이런 질그릇을 직접 구워서 판매하는 장인이라면 아마…….

'……생각하지 말자.'

절대로.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그릇에 자그마한 흠집조차 생기지 않게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 명심하고 있자.

'한 달 월급 수준이 아니야.'

갑절?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뜬금없이 찾아온 채무의 부담에 몸을 떨기도 잠시, 마지막으로 당신이 직접 만드신 요리를 가져와 세팅한 주방장님이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지금부터 시연회 시식을 시작하자. 선정 방법은 알다시피 평소처럼 하면 된다."

주방장님의 영문 모를 발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선배가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찬혁이는 가게 단톡방에 초대가 안 됐었지? 우리 스케줄은 내가 종합해서 받다 보니까 깜빡하고 있었어."

"그런 게 있었습니까?"

전혀 몰랐다. 근데 왜 하필 지금?

선배는 내 의문에 한마디 답변도 없이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주머니 속에서 작게 진동한 핸드폰을 꺼내어 화면을 보니, 안가람 직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단톡방 하나에서 초대가 도착해 있었다.

"일단 들어가 봐. 설명은 차차 해줄게."

선배의 말에 따라 얌전히 단톡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선배는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로써 알게 된 꽤나 신기한 정보가 하나.

"……메뉴 결정을 단톡방 투표로 한다고요?"

"응. 익명성도 보장되지, 참여하기도 쉽지, 조작도 못하지. 얼마나 간편하니?"

"……맞는 말이네요."

뭔가 되게 최신문물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최신식인 탓에 전통을 중요시하는 주방 분위기와는 묘하게 딴판이라 괴리감이 들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긴 했지만.

선배답지 않은 논리정연한 설명에 내심 감탄하며 톡방을 확인하자, 과연 선배의 말대로 각 항목에 맞춰서 개설된 투표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겹치는 항목도 있었고, 단일이지만 쓰느냐 마느냐로 나누어진 항목도 있었지만, 그중에서 단연코 눈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가 출자한 메인 항목이었다.

'주방장님 메뉴가 1번, 우리 메뉴가 2번인가.'

항목 확인이 끝날 때쯤, 출석체크 겸 주방에 있는 인원수 확인을 위해 주방장님이 짧은 톡을 한마디 올리자마자 말풍선 옆 숫자가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보였다.

'와, 명색이 브레이크 타임인데 정말 아무도 안 나갔나보네.'

그 엄청난 열정의 집합에 내심 놀랐지만, 주방장님은 평소 일이라는 듯 아무런 감흥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오늘도 이탈자가 없나…… 흠, 다들 시급에 보너스로 넣어둘 테니 그렇게 알도록."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치며 환호하는 안가람의 쿡들. 솔직히 나도 놀랐다. 아니 세상에, 인상 사납다고 한 건 다 취소다. 사회인에게 있어 돈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사람이다.

잔뜩 텐션이 오른 직원들이 잠잠해지자, 주방장님이 이제 할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 뒤로 물러났다.

"이제 시식 후 알아서 투표해라. 마감은 브레이크 타임 종료 10분 전까지. 발표는 바로 한다."

노동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민주주의를 배달 받을 시간이다.

과연 1일지 2일지…… 폭풍전야. 우리가 만든 요리가 통할지 어떨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혹시나 떨어진대도 너무 상심하지는 말자고 굳게 마음을 먹은 그때, 시식에 나서야 할 직원들의 발걸음이 묘하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 나는 고개를 들어 그런 쿡들의 행동을 살폈다.

"응?"

아니,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와."

"이거, 할만하겠는데?"

직원들은, 그저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

우리가 만든 메뉴를 시식하기 위해서.

내 회심의 시선 끌기 작전이 제대로 먹혀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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