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84화 (84/403)

84. 치킨 레이스.-5-

목요일 밤.

나와 선배, 그리고 창민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백하은 쿡과 함께 아마 마지막이 될 연습에 종지부를 찍으며 길었던 연습 시간의 막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신기하네, 우리가 만들었던 레시피에서 이런 요리가 튀어나오다니……."

효민 선배는 여태껏 우리가 낼 요리를 손수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건 창민이도 마찬가지였지만.

"처음에 교정 도울 때는 사실 잘 상상이 안 갔는데, 대단하네, 이거."

"이해해. 아마 그렇게 익숙한 요리법은 아닐 테니까."

"아니, 익숙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닌 것 같긴 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처럼 이 요리의 근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는 창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보통 한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리법을 썼으니까."

"그런데도 되게 익숙한 맛이 나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심지어 맛있어."

"그야 당연하지. 맛있으라고 만들었으니까."

"하긴 것도 그러네."

그렇게 시답잖은 농담을 섞어가며 접시를 돌리다 보니, 어느새 요리가 담긴 접시는 깔끔하게 동이 났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먹는 손길은 늦추지 않았다는 것. 요컨대 맛있다는 뜻이다.

선배도 이 요리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복날에만 쓰려니 아깝다.'며 눈꺼풀을 굳게 닫은 채 고개를 주억이고 있을 정도니, 선배딴에도 충분히 합격 이상의 점수를 받을만한 요리라는 뜻이겠지.

"백하은 쿡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정도면 가능성 있겠죠?"

"아, 응. 물론이지."

"?"

'어디 편찮으신가.'

왠지 모르게 뜸을 들이며 대답한 백하은 쿡은, 이내 그 특유의 매서운 눈초리를 가늘게 뜨며 요리가 담겨 있던 접시를 무표정으로 가만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니, 노려보는 게 맞나?'

사실 분위기만 보아선 노려보는 게 아니라 그냥 눈가에 힘이 풀렸을 뿐인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과인 내가 이렇게 말하기는 좀 뭐하긴 하지만 워낙 눈초리가 오해하기 쉽게 생겨먹은 건 부정할 수가 없으니 원.

오죽했으면 나를 따라 백하은 쿡에게로 시선을 향한 두 남매의 입이 합죽이가 됐겠는가.

"……."

'야, 왜 저러시는 것 같냐.'

'내가 어떻게 알아.'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창민이의 질문에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답을 돌려줬다. 알아도 그쪽이 아는 게 정상이다. 다들 계속 깜빡하는 것 같은데 난 저 사람이랑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됐단 말이다.

뭐 심각한 고민이라도 하시는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기도 잠시,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이내 평소처럼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옅은 미소 섞인 표정을 되찾은 백하은 쿡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이 정도면 난 분명 승산이 있다고 봐."

"그렇죠?"

처음에는 각 레시피의 장점과 내 방식을 얼기설기 엮은 것에 불과했던 레시피였으나, 이 세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도를 더한 메뉴가 얼마나 맛있는지는 방금 만들어 먹어본 것으로 이미 확인했다.

'솔직히 이게 주방장님 수준의 요리사한테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제껏 내가 만들었던 한식 메뉴 중에서, 이게 최고라는 것.

최고의 요리가 나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다. 내가 만든 요리를 믿는 것. 그게 바로 요리사가 지녀야 할 본분이니까.

"내일, 기대되네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을 바라보며, 나는 입에 작은 미소를 내걸었다.

챔프의 왕좌에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데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손에 쥔 이것이 계란일지, 아니면 바위도 깨부술 쇳덩이일지.

'내일.'

싫어도 그 답을 알 수 있게 되리라.

***

우글우글. 와글와글.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 안가람의 주방.

땀이 말라 소금이 되도록 일한 쿡들은 보통 휴식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비우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그 누구도 주방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니만큼 조리 시의 쇳소리나 압력솥 소리, 그 외 기타 등등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하지 않나 싶은 시끌벅적한 직원들의 수다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들이 어째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가, 그것은 지금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의 화제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레시피 낸 거 몇 팀이랍니까?"

"나도 정확히 몰라. 주방장님이 스무 개 좀 넘게 온 거에서 반은 잘라 버렸다던데."

지금 안가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바로 말복 특선 메뉴에 대한 것이었다.

"야아, 주방장님도 너무 엄하시다니까요. 잘린 레시피 주워서 요리 올튜버한테 갖다 주기만 해도 조회수 100만은 뚝딱일 텐데. 형님은 작년에 정말로 파셨잖아요? 어차피 안 쓸 거라면서."

"아, 그 얘기 하지 마라. 그걸 정가가 아니라 수익 분배 계약으로 팔았어야 됐는데……."

"그래서 그 돈 뭐에 쓰셨습니까? 설마 또 게임기 사셨어요?"

"그랬으면 뭐? 타이틀이라도 하나 사줄 거냐?"

"형수님한테 제가 혼납니다. 보나 마나 또 혼났죠? 그러게 형수님 선물이라도 같이 사든가 하셔야 안 혼난다니까요."

"시끄러워!…… 당연히 사줬지. 내가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겠냐."

안가람 해산물 파트장 강진과 그의 직속 부하이자 바로 아래 기수 후배인 최동식.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나누고 있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눈은 흔들림 없이 주방에 서 있는 인물들의 행동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손동작 하나, 들어가는 재료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깃든 눈빛.

그리고, 그런 눈빛을 한 인물은 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

"……."

이 자리에 모인 직원 전부가, 대화나 침묵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그들과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모처럼 온 쉬는 시간에 자리를 비우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요리사니까.

지금부터 시작될 메뉴 선발 시연회에서 꼽히게 될 메뉴는 그들이 당장 내일부터 만들 요리이자, 억만금을 주고서도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할 요리기술의 정수다.

상급자 차원에서의 강요나 요구가 없었음에도 그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휴식시간마저 내놓은 이유는, 단지 업무에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라 배움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중후한 분위기 속에서, 강진과 최동식의 눈이 조리대 앞에 자리한 면면을 재빠르게 훑었다.

"보자, 황가家랑 정가家는 안 나온다고 했었지?"

"예. 다른 파트장들도 다들 작년에 냈으니까 올해는 아래 애들한테 넘긴다고 하시던데요."

"하긴, 이 짓을 두 해 연속으로 하기엔 다들 나이가 있으니, 체력이 달리겠지."

"자기비하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위아래로 서너 살 차이밖에 안 나시면서."

"너 진짜 요즘 힘이 남아돌지? 막내들이랑 한 일주일쯤 부대끼게 해줄까?"

"죄송합니다."

곡예사가 선을 넘나들 듯 깐죽거림과 시비의 선을 재빨리 오가는 최동식을 매섭게 쏘아본 강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젠장. 내가 왜 이놈을 맞후임으로 만나서…… 찬혁이 같은 애가 맞후임이면 좀 좋았냐. 말 잘 듣지, 예의 바르지, 실력 좋지. 이 업계에 실력이랑 인성이 정비례하는 놈이 몇 명이나 된다고."

"와, 선 넘으십니다. 걔가 이상한 거지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에요. 형님이나 저나 같은 나이였으면 절대 못 비볐어요.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 그렇긴 하지."

웬일로 최동식의 얄미운 말을 순순히 수긍하는 강진.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파트에서 고작 하루만 일했을 뿐인데, 그 사이에 찬혁이 선보인 솜씨는 나름 짬밥을 먹었다고 자부하는 그들조차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걔 이야기는 그만하자. 자괴감 든다."

"…… 옙."

잠시 침묵을 거친 그들은 곧바로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 나오는 애 중에 주목할 만한 애는 있냐?"

강진의 질문에 팔짱을 끼고 있던 최동식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글쎄요…… 아, 한 명 있네요."

"누구?"

"왜 있잖아요. 육류 파트에 백하은이라고 어린 애요."

"아, 백하은이? 걔는 최연소로 녹건까지 땄음 됐지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대?"

"녹건이 아니라 그린 스카프요, 그린 스카프."

"몰라. 왜 한식 주방에서 영어를 써야 되는데. 난 내 맘대로 부를 거다."

녹건이란 과거, 안가람의 서열 표시를 스카프가 아닌 위생용 두건으로 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은어였다. 두건에서 스카프로 모양은 변했지만, 위계에 따른 색은 똑같았기 때문에 강진처럼 오랜 기간 일한 직원들은 대부분 컬러 스카프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욕심이야 누구든 있죠. 근데 기왕이면 좋은 말로 하시지 욕심이 뭡니까 욕심이. 뭐, 열정, 정열! 그런 거 있잖아요."

"인마, 욕심이란 말의 뜻을 알긴 하냐?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얻고 싶은 걸 욕심이라 하는 거다. 분수에 안 맞는 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분수가 맞춰지게끔 노력을 하지 않겠냐? 결국 욕심이 있어야 노력도 할 수 있는 거야."

"거, 명언병도 참."

"뭐라고?"

"아닙니다."

이번에도 선 바깥으로 잽싸게 빠져나가는 그를 고까운 눈길로 바라보던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걔는 뭘로 나온데? 고기메뉴?"

그녀가 육류파트 출신이라는 생각이 기반에 깔린 합리적 추론이었으나, 뒤이어 최동식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그의 합리를 단박에 깨부수고 말았다.

"아뇨. 메인이라고 하던데요."

"뭐?"

메인. 안가람에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다름 아닌 가게의 총주방장인 안상필이 주관하는 분야였으니까.

실제로 1년 전, 파트장끼리 올해 특선 메뉴 메인을 차지하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내기를 했다가 세 사람이 사이좋게 안상필에게 깨진 것은 주방 직원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메인? 메인이라고 했냐, 지금?"

"예, 맞습니다. 작년에 형님들이 도전했다 탈탈 털린 그거요."

"아, 이 새…… 크흠, 아무튼. 백하은이 메인에 도전했다 이거지?"

부끄러운 과거사를 망설임 없이 후벼 파는 최동식에게 무심코 욕을 박으려다, 늦둥이 딸아이와 험한 말은 쓰지 않기로 약속한 사실이 번뜩 떠오른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거 참, 올해도 분루를 삼킬 불쌍한 영혼이 한 사람 더 늘어나겠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진의 어조에는 분명 이번에도 안상필이 이기리라는 강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실제로 타당한 믿음이었기에, 최동식 또한 군말 없이 그 뜻에 동의했다.

정해진 결과에 그녀에 대한 관심을 접은 그들의 화제가 이번에는 막내 신참, 찬혁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막내 얘는 밥 먹으러 간 건가?"

"그렇지 않을까요? 어차피 내일이면 체험실습도 끝날 테고, 일도 힘들 테니 쉬러 간 거겠죠."

"몰골이 말이 아니긴 했지."

"효민이랑 창민이도 안 보이는 거 보면 친구들끼리 어울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요. 아, 부러운 젊음이여, 꽃다운 청춘이여. 내 청춘은 요리와 속도위반해서 아주 신혼집을 차렸건만."

"나보다 한참 어린놈이 말이 많다."

"하하, 아. 마침 왔네요."

그 순간, 잠시 서로를 향해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직원 휴게실과 이어진 문으로 향했다. 백하은, 곧 챔피언의 앞에서 무릎 꿇을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는 도전자가 콜로세움에 들어서고 있었다.

"응?"

"어라?"

그런데, 두 사람의 눈이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인물들을 보고 휘둥그레 뜨였다.

안효민, 안창민. 그리고 류찬혁.

이 주방의 크루 중에서도 가장 어린 세 사람이, 마치 조수라도 된 것 마냥 조리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백하은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까.

***

휴게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온몸에 꽂히는 시선에 무심코 몸을 움찔 떨었다.

이토록 많은 시선을 받은 것은 아마 호텔 상천 이래지 않을까.

'쓰읍, 괜히 긴장되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 모인 인물들은 그 모두가 일류 중의 일류인 요리사라는 것이겠지.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안광이 몸에 닿을 때마다, 그 부분이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푹푹 파이는 것 같은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긴장할 거 없다.'

요리사의 무기는 요리.

그러므로 내 손에 들린 건 고금제일의 보검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다.

근거는 없지만, 자신은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요리를 만드는 것.

"후우우……."

한숨을 뱉는다. 긴장이란 이름의 공기로 풍선처럼 부푼 몸이 날카로운 시선다발에 터지지 않게끔.

'좋아!'

잃을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나는 요리사고, 지금은 요리사가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다.

"조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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