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치킨 레이스.-3-
백하은에게 있어 요리란 무엇일까.
'글쎄…… 뭐일까.'
요리에 인생을 바친 지 열 하고도 몇 번의 해가 넘어갔지만, 그 의문은 그녀 자신으로서도 아직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요리사라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노동과 보상의 균형이 그렇게 잘 맞는 직업은 아니다.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리다 보면 요리와 관련된 방송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루 순수익만 수백만 원을 넘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라느니, 일반인들도 아는 유명한 스타셰프 같은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대단한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그 빛에 밀리지 않는 반짝임을 뽐낸다.
하지만 그런 업장이나 인물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도만 해도 한 해에 폐업한 식당이 무려 5만여 개에 이르렀다. 폐업을 하는 식당의 수가 그 정도인데, 실제로 운영을 하는 식당은 과연 몇 곳일까. 10, 20만 정도의 단위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고작 5천만 인구가 사는 나라에 식당만 수십만. 그중에서 유명세를 떨칠 만큼 성공한 식당은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많게 잡아도 수천. 가혹할 정도의 비율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말로 적자만 보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하며 간신히 목숨줄을 이어나가는 식당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하하."
그게 그 뜻이 아닐 텐데.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 절로 메마른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런 현실 앞에서, 어머니는 자신을 언제고 다른 이들보다 앞서는, 그리고 더욱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 애쓰셨다.
8살에 처음으로 칼을 잡았고, 9살에 불을 쓰는 법을 배웠으며, 10살에는 고급 요리 하나 쯤은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엄한 교육과 노력의 성과였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물론 힘들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쁨과 스스로가 요리를 좋아한 덕분에 그 고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요리를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요리 실력이 늘수록 흡족해하며 칭찬해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좋았던 건지는, 그때의 하은으로서는 쉬이 구분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칼조차 잡아본 적 없던 그녀의 여동생, 백예은이 갑자기 주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마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쯤이던가.'
처음에는 그저 어린아이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은이 어머니에게 기술을 사사하는 것을 항상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이였으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했었고, 또 기대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동생에게. 항상 꿈꾸던 이상적인 세 모녀의 모습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왔으니까.
경직된 몸짓으로 쭈뼛쭈뼛 주방에 들어서는 예은을 본 날, 하은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믿음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처음 주방에 들어온 예은이 그때의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일품을 만들기 전까지는.
그날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요리는 그녀의 열등감이 되었다.
***
"자, 다들 수고 많았어!"
"고생하셨습니다."
거의 철야 하다시피 계속된 연습이 끝난 게 바로 방금 같은데, 어느덧 시침은 안가람의 브레이크 타임의 시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로에 절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가며 일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살짝 뭉친 게 풀린 느낌이다. 이게 젊음인가. 가진 것을 몽땅 잃어도 좋으니 젊음을 되찾고 싶다 말하던 억만장자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일이 좀 편하기도 했고.'
오늘은 웬일로 나와 창민이가 함께 같은 업무를 맡았다. 생선을 다루느라 손과 앞치마에 비린내가 잔뜩 배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력 있는 녀석과 짝을 지어 일하니 확실히 일이 편했다.
특히 실시간으로 원숙해지는 안창민의 생선 다루는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몸에 쌓인 피로마저 소름이 끼쳐 달아나는 것 같았으니, 내 경악한 심정을 알만하지 않은가.
'무슨 게임도 아니고, 레벨 올라가는 것처럼 실력이 좋아지네.'
그런 놀라움을 애써 속으로 감춘 나는 어딘가 찝찝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며 영문 모를 숫자를 읊고 있는 창민이를 마주 봤다.
"난 열다섯, 얘는 스물여섯……."
"? 뭐 할 말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 싱거운 녀석일세."
고개를 휙 돌리는 녀석에게 작은 핀잔을 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묘하게 예약이 적었네."
이번 낮 장사는 이상하게 그리 바쁘지 않았다. 예약 상황판에 적힌 숫자도 고작 마흔 팀 남짓. 피크 때 안가람에서 소화해내는 고객이 시간 당 20팀가량이라는 걸 생각하면 평소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성적이었다.
그런 내 의문에 안창민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돌려준다.
"일종의 존버지."
"존버?"
"사람들은 기왕 돈을 쓸 거면 평일보다는 특별한 날을 선호하니까. 예약이 대부분 복날로 몰려서 그런 걸 거야. 그런 날이 껴 있는 시즌은 항상 이랬어."
"아하."
특히 행사의 달인 5월은 말도 못 한다며 치를 떠는 녀석의 모습이 절로 납득 됐다. 미국에서 일할 시절, 미국판 어버이날인 어머니의 날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시즌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파리에서 일할 때는 안 바쁜 날이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네.'
그날은 또 얼마나 바쁠지 걱정이 앞섰지만, 그만큼 솟구치는 기대감에 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재밌겠다."
"재미? 하여간 너도 제정신은 아니야."
창민이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이 녀석도 곧 알게 될 거다. 아니, 정확히는 암과 이해를 넘어 공감하는 경지에 이르겠지.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며 작게 혀를 찬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 먹을래? 누나도 곧 올 것 같은데."
"아, 미안. 생각해보니 말을 안 했구나."
"응? 뭘?"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선배랑 같이 먹어라."
뜬금없이 빠진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안창민이 살짝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누구랑?"
그 시선이 꼭 '우리 말고 친한 사람도 없으면서?'하는 느낌이라 열이 뻗친다. 맞는 말이라 차마 반박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특히.
"있어, 그런 사람이. 아무튼 선배한테 말 좀 부탁할게. 이따 봐."
"어, 야. 잠깐만."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자리를 뜨기로 결심했다. 슬슬 약속했던 시간이 되어가던 차였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깥을 향해 나서는 나를 붙잡는 창민이었으나, 나는 매정히 손을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백하은 쿡을 찾아서.
***
"오늘도 감사히 먹었습니다."
"됐어. 어차피 법카 쓰는데 뭐."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이전에 들렸던 곳이 아닌 조금 떨어진 다른 카페에 들어왔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전날 저녁에 사준 것까지 합치면 도합 세 끼를 만날 때마다 얻어먹자니 묘하게 양심에 찔렸다. 나보다 어린 후배한테 밥을 얻어먹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뭐, 원래도 선배였고 지금도 선배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기분이.
맞은편에 앉아 음료도 본체만체 하며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백하은 쿡. 어째선지 평소보다 조금 거친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한 대 피고 오셔도 괜찮은데요."
"그런 거 아니거든?! 난 일어나서 주방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피워!"
깜짝이야.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지르는 걸까. 검은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딱 금연 3일 차에 접어든 금단증상 걸린 사람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거친 분위기는 딱히 담배 탓은 아닌 듯했다.
"저기, 그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아줄 수 있니?"
"왜요?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 아무튼, 부탁 좀 할게."
"그러시다면야 뭐."
달뜬 숨을 씩씩 내뱉는 백하은 쿡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아이스티 속 얼음까지 아드득 씹어 먹는 모습에 겁먹어서 그런 건 아니다. 진짜로.
'요리사가 담배 피우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요리사도 사람이다. 고객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흡연의 자유 정도야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는 걸 들어보면 반드시 퇴근한 뒤에만 핀다는 것 같으니, 그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흡연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대학 다닐 때 힘들었단 말이야…… 그때 어쩌다 배운 걸 왜 아직 못 끊어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모기 기어가는 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 백하은 쿡.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 말을 끊임없이 흘리던 그녀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튼, 이런 소리 하려고 따로 부른 건 아니야. 아니, 물론 비밀로 해주면 고맙긴 하겠는데."
"알겠으니까 진정하세요."
횡설수설하는 말을 한 번 끊어주니, 백하은 쿡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간신히 대화를 할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녀가 제자리를 찾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혹시, 힘들지 않니?"
"예?"
무슨 상담센터에서 나올 것 같은 첫 마디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너희한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고작 이틀 만에 주방장님의 초교탕보다 더 맛있는 메뉴를 만든다니, 다시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턱을 괸 그녀의 시선이 마주치기 민망하다는 듯 옆으로 돌아갔다. 꼭 실수를 저지르고 눈을 피하는 반려견 같은 모양새라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효민이나 창민이는 아무래도 구면이니까, 이렇게 물어봐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
'과연, 우리 세 명 중에서 나를 콕 집어 불러낸 건 그런 이유였나.'
뜻이 그렇다면 나도 솔직히 답변해 주는 게 맞겠지.
"사실 꽤 벅찬 부탁이긴 하죠. 3년 차 쿡 한 명에 학생 셋이서 20년 가까이 안가람을 휘어잡고 계신 주방장님보다 나은 메뉴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가차 없이 내뱉은 말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핏 보면 좌절감마저 느껴지는 얼굴이었으나, 아쉽게도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 역시, 지금이라도……."
"그런데 말이죠. 애당초 어렵고 힘들단 이유로 그만둘 거면 요리사는 진즉 때려치웠을 겁니다."
내 시선을 피하고 있던 그녀의 눈이 다시금 정면을 향한다.
"선배나 창민이는 몰라도, 저는 제 몸뚱이 하나 믿고 이 시뻘건 레드오션에 들어왔거든요? 해마다 전국에서 폐업하는 식당만 수만인데, 고작 며칠 고생하는 거 갖고 죽는 소리나 내고 있으면 이 업계에서 어떻게 살아남겠어요."
어째선지 놀란 표정을 짓는 백하은 쿡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애당초 전 그렇게 재능이 출중한 것도 아니란 말이죠. 저도 제 나름 죽어라 노력해서 겨우 이 정도라도 하게 된 겁니다. 쿡한테는 가소롭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담담한 논조로 투덜대듯 말을 이어나가던 그때, 그녀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며 내 말을 끊었다.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 시선을 돌린 곳에는, 이상하리만치 물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하은 쿡이 있었다.
"가소롭지 않아."
"예?"
"하나도, 가소롭지 않아."
어딘가 격양된, 그러면서도 묘하게 침체된 눈빛을 자아내던 그녀는 자기가 한 일에 자기가 놀랐는지, 흠칫 몸을 떨고는 사과를 하며 몸을 뒤로 뺐다.
"미, 미안."
"아닙니다. 저야말로 괜한 소리를 했네요."
서로가 말을 잃은 채 가만히 앉아 있기도 잠시, 그녀가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것을 확인한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띄워볼 겸 여태 마음속에서 굴러다니던 궁금증을 그녀에게 꺼내보였다.
"저기, 백하은 쿡?"
"응?"
"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이렇게 서두르시는 이유가 뭡니까?"
어제 저녁, 쿡의 USB를 보며 나는 그 의문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눈이 돌아갈 것만 같은 방대한 자료들과 미래를 경험한 내가 보기에도 참신한 발상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꾸준히 메뉴를 개발해나갔다면, 적어도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우리가 현재 상정하고 있는 수준보다 더욱 나은 결과물을 그녀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굳이 시간도 얼마 안 남은 올해 하겠다고 우리를 공동저자로 끌어들였단 건…….'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가.
내 의문을 경청한 백하은 쿡은, 이내 굉장히 담담한 어조로 답변을 돌려주었다.
"아, 나 내년 초에 그만둘 예정이거든. 퇴사하기 전에 유종의 미를 거둘 생각이었지."
"…… 예?"
"이것도 비밀로 부탁할게. 주방장님한테도 아직 말 안 한 거라."
"……."
그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며 맹랑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만난 지 이틀 된 사람한테 이렇게 쉽게 털어놓는 비밀이 대체 무슨 비밀인가 싶었지만, 그런 사정을 들어 버리면 적당한 태도로 임하기에는 마음이 찔리지 않는가.
'원래도 적당히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낼 수밖에.
피는 못 속인다더니,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솜씨가 아주 쌍으로 대단한 자매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