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74화 (74/403)

74. 미트 더 호크아이.-2-

안상필 대가. 아니, 이제는 안상필 주방장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사장님? 지금 그에게 어떤 호칭을 붙여서 부를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걸 문제 삼기에는, 그가 날 바라보는 눈초리가 너무나도 매서웠으니까.

"저기, 그러니까…… 사장님?"

"주방장님이라고 불러라."

"네. 주방장님."

자그마한 꼬투리 하나라도 잡혔다간 당장에라도 치도곤을 치를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감히 찍소리도 낼 수 없었다. 도대체 이분은 왜 처음 본 사람을 이리 흉흉한 눈길로 바라본단 말인가.

'아니, 당연한 건가.'

이제 막 방년의 딸아이가 갑자기 일주일이나 모르는 남정네와 같은 집에서 지내겠다는 말을 고작 출가 일주일 전에 들었을 아버지의 심정을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회귀 전 나이가 지금의 그보다 어리고, 딸을 키워본 경험도 없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상상력이라는 힘은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애당초 내 잘못도 아닌데…….'

잘잘못을 굳이 따져야 한다면 이 상황의 책임은 별안간 사람을 꼬드긴 선배에게 있을 것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내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지만, 이 상황은 당사자도 아닌 다른 사람이 내는 성을 내가 듣는 꼴이니 원.

'하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만 생각해도 이게 내 잘못이 아니란 것을 당연히 알겠지만, 이런 사태 속에서 딸 가진 아버지의 머리가 어떻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두고 보면 나아지겠지. 일단은 가만히 있자.'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상필 대가는 내게 향하던 고까운 시선을 거두고는 주방에 흩어져 있던 인원들을 불러 모았다. 주방에서 흔히 있는 현장 아침 미팅의 시간이다.

주방에 자리한 사람은 대부분이 빨간색과 파란색 스카프를 매단 하급자였고, 상급자 라인인 초록색이나 검은색 스카프를 멘 사람은 적거나 아예 없었다.

'최상급자인 주방장이 출근했는데 그 아래가 아무도 없다고?'

그런 당연한 의문에 답해 주는 이도 없이, 안상필 대가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모인 쿡들을 향해 담담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전달할 뿐이다.

"오늘은 11시부터 개시한다. 선임자들은 예약표 수시로 확인하면서 정확한 시간에 음식 나오게끔 신경 쓰고."

"예!"

"재료 손질 진행 상황은?"

"전부 끝냈습니다. 아침 청소도 방금 마쳤고요."

"…… 빠르군. 좋아. 교대로 휴식하면서 준비 마무리하자."

간결하지만 날카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끝마치고 주방 내부 사무실로 들어가는 안상필 대가. 그 행태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쿡들이 참고 있던 숨을 힘겹게 뱉어냈다.

"어우, 여기만 거진 1년을 다녔는데 주방장님한테 아침 보고 드릴 때는 아직도 떨리네."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던 김지성 쿡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그 이산화탄소의 물결 속에 자신의 숨결을 한 가닥 더 불어 넣고 있었다.

"다른 때에도 항상 저러셔요?"

"오늘 정도면 꽤 스무스하게 넘어간 거야. 평소 같았으면 청소 끝날 때까지 항상 직접 감독하시거든."

"허어."

흔히 말하는 부지런하고 유능한 상사의 모범적인 사례라며 혀를 내두른 김지성 쿡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너 혹시 뭐 잘못한 거 있냐?"

"예?"

"주방장님이 깐깐하긴 해도 쉽게 화를 내실 분이 아니거든. 근데 방금 주방장님이 너 볼 때 눈이 어땠는지 알아?"

안상필 대가의 눈 모양을 흉내라도 내려는 것인지 기괴하게 눈알을 부라리는 김지성 쿡. 대충 하고 싶은 말은 이해됐지만, 솔직하게 '효민 선배랑 동거해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헛웃음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아무튼, 주방장님한테 안 찍히게 조심해. 이미 좀 늦은 것 같긴 하지만."

"잘못 보신 거겠죠. 원체 눈매가 독수리상이시던데."

"그런가? 맞는 말이긴 한데……."

자기가 말하고도 긴가민가하다는 듯 귓가를 긁적인 김지성 쿡이 곧 앞치마를 묶고 있던 끈을 풀며 말했다.

"뭐, 일단 쉬는 시간 아까우니까 적당히 바람이나 쐬고 오자. 진짜 바쁜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한숨 돌릴 시간은 있어야지. 가자."

"네."

맞는 말이다. 일 사이사이 조금씩 쉬어주지 않으면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방전되는 법이니까.

이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휴게실을 맛보여주겠다며 기세등등하게 나선 김지성 쿡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아침에 나와 안창민이 고생하며 정리해둔 냉장창고였다.

한껏 기세를 부리기에 무언가 했더니 돌고 돌아 다시 여기라니. 어이가 살짝 가출하는 기분이었지만 내 손에 들린 손수 탄 아이스커피가 그 허전함을 달래주었다. 고작 믹스커피에 불과해도 꿀맛이지 않냐는 김지성 쿡의 말에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희망온도 0~3도의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그늘과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커피 한 모금.

결국, 이런 게 막내의 낙이었으니까.

***

김지성이 예고한 대로. 그리고 찬혁이 경험한 대로 주방이 정말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손님이 들이닥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13번 테이블 나갈 올챙이국수 아직 멀었어!?"

"다 됐습니다!"

"21번 테이블 호박죽 셋에 타락죽 하나야! 숫자 잘 세서 나가!

"예!"

1층 10석, 2층 10석. 총 20개의 테이블이 가게가 오픈하자마자 단숨에 만석. 예약 대기 시간이 평균 1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한상차림에 올라가는 메뉴는 대략적으로 열 가지가 넘는다. 죽. 생선구이, 조림, 숙회, 육회, 고기구이, 나물, 잡채, 신선로, 완탕, 비빔밥, 국수 등등.

한 테이블에 올라가는 메뉴의 가짓수만 따져도 그러한 와중에 개별적으로 조리해야 하는 코스까지 하나둘 주문에 섞이기 시작하니 찬혁은 정신이 나갈 것 같다는 말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복잡한 것만 따지면 상천보다 더하네.'

손님은 본래 한 시에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슷한 시간에 들어오더라도 시간차라는 것이 있고, 자그마한 시간 경과마저 염두에 둬야만 하는 주방이 그만큼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

그럼에도 안가람의 쿡들은 그 이름값에 뒤지지 않는 솜씨로 막힘없이 업무를 처리해내고 있었다.

'대단하네. 역시 안가람이라 이건가.'

옥석을 가르는 경쟁을 뚫고,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세공사가 갈고닦은 최상품의 옥만이 모인 주방.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 모두가 결코 범상치 않은 솜씨로 자신에게 부과된 업무를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쿡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안상필의 솜씨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

코스, 한상을 가리지 않고 각 요리가 나와야 하는 최적의 타이밍을 결코 놓치지 않는 대가의 지시가 없었다면 주방은 지금쯤 말 그대로 혼돈의 도가니탕 속에서 익사하고 있었을 터.

찬혁 또한 얼마 전 열렸던 대회를 대비하며 다른 종목에 비해 부족함이 있던 한식에 대해 적지 않은 공부와 연습을 거쳤다고 생각했으나, 과연 한식에 생애를 바친 안상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런 자신감이 무색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 오길 잘 했어.'

그런 자신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코 열등감이 아니다. 그런 쓰잘떼기 없는 감정이 파고들 여지는 이미 옛날 옛적에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찬혁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고 성장하기 위한 의지. 그저 그뿐이다.

그러나 그런 찬혁에게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찬혁이 주방의 쿡들을 살피는 만큼, 쿡들 또한 그를 살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래 몇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바깥 인원을 받지 않았던 안가람에 들어온 뉴 페이스. 아무리 성심고의 대회반 출신이라 해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는 아직 풋내 나는 애송이에 불과한 그가, 프로 중의 프로인 그들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얘 진짜 학생 맞나?'

'이 정도면 어지간하게 구른 프로보다…… 아니, 그거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요리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 하는 것은 다르다.

날고 기는 대회에서 수상경력을 쌓은 셰프와 현장에서 오랜 시간 굴러본 셰프.

훗날 어느 쪽이 더 높은 성취를 이룩할지는 미지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업장이든 더 선호하는 인재는 대부분 후자라는 것.

업무로서의 요리는 시간 싸움이다. 맛을 잘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의 시간을 들여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효율이고, 그 효율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다.

그리고, 안가람 크루들의 눈에 보이는 류찬혁이라는 인물은 더 없는 프로였다.

요리를 그저 공부로 배운 범생이가 아닌 현장에서 십수 년은 닳고 닳은 프로. 많은 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앞장서서 부족한 재료를 준비하고, 주방을 청소하고, 각 메뉴가 담길 접시를 세팅하는 찬혁의 모습을 본 안효민이 그녀의 아버지 옆에 붙어 작게 소곤댔다.

"어때요, 아빠. 잘 데려왔죠?"

"…… 주방에서는 주방장님이라고 불러라."

"예잇."

악동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딸에게서 눈을 돌리며, 안상필은 다시 찬혁을 주시했다.

토막을 낸 무나 오이 따위를 손이 아닌 도마 위로 굴려 단숨에 껍질을 잘라내는 기법, 곧게 쌓은 계란지단 수십 장을 단숨에 채 썰면서도 길이와 모양은 일정하게 유지하는 솜씨.

그 외에 여타 재료를 처리할 때마다 보이는 각종 기법들.

그리고 그 속에 배인 익숙함은 머리로 배웠다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아닌 몸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경지. 학생답지 않은 재주였다.

'재주가 아니라 노력의 산물인가.'

어느 쪽이 됐든, 안상필은 그 나름대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감정 표현이 굉장히 적다는 말을 종종 들어온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그래, 창민이가 그 난리를 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구나."

"그렇죠? 그러게 제가 뭐랬어요!"

"조용히 해. 아빠 아직 화 안 풀렸다."

찬혁에 대한 놀라움은 여전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는 아직도 자기는 무시하고 지 할아버지와 엄마의 허락만을 받고 멋대로 집을 뛰쳐나간 딸에 대한 분노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삐진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그에게는 분노였다.

"치, 아까는 주방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으면서."

"나는 그래도 돼. 여기 주인은 나니까."

"와, 치사해."

"불만 있으면 네가 주인 해라. 20년은 더 있어야겠다만."

인상을 팍 찡그리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딸을 보며 안상필이 속으로 웃었다. 안효민의 마이페이스 기질이 누구를 닮아 그런 것인지 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옆구리를 검지로 콕콕 찌르기 시작한 효민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낸 안상필이 그녀에게 말했다.

"효민아."

"왜요. 주방장님."

아버지의 장난에 맞춰 짐짓 삐진 말투로 대꾸하는 효민에게 그가 보다 진지한 말투로 말을 잇는다.

"이따가 집…… 후우, 집에 들어가면 쟤한테 한번 물어봐라."

내일부터는 재료준비가 아니라 요리를 맡을 생각 없느냐, 라고

자신 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온 전례 없는 파격적인 선언에, 안효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켜졌다.

순식간에 결정된 자신의 임시 승진을, 재료준비에 여념이 없던 찬혁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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